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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전 Apr 19. 2021

인생이란 기차를 탄 여행자

매일을 여행자의 마음으로

 삶은 언제 멈출지 모르는 기차에 탑승하는 것이다.  날숨과 함께 내뱉는 울음을 신호탄으로, 기차는 급발진 한다. 생의 초년, 기차가 인생을 싣고 달릴 때의 속도와 새로움은 버겁기까지 하다. 롤러코스터를  듯한 속도에  온몸은 이리저리 휘둘리고, 눈을 잠시 감았다 뜨면 금세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무엇하나 놓칠까 스쳐가는 모든 것을 애정어린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행자의 구간은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다. 나이가 들며 세상의 베일을  겹씩 벗겨가다 보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삶은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다. 기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지만, 몸은 젖은 솜처럼 눅눅히 관성을 머금고 중력과  몸이 된다. 익숙해져 버린 풍경은 창틀에 걸린 그림이 되어 정적인 이미지로 박제된다. 계속해서 발을 내딛고는 있지만 주변은 쉽사리 바뀌지 않고, 빠르게 달리고 있는지 천천히 달리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몸엔 감각이 작용하지 않는  하다.


 이것은 앎의 착각에서 비롯된 착시이다. 외부의 우주이든 내부의 우주이든, 모든 풍경은 앎에 대해 오만할수록 권태롭다. 기차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무엇인가를 다 안다고 착각할수록 창 밖엔 똑같은 풍경만이 펼쳐지고 놀라움은 자취를 감춘다. 학문에 대해서, 우주의 원리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까지. ‘그것’의 꼭대기에 올랐다고 착각하는 순간, 새로운 풍경을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세상은 내가 무지할 때 가장 빠르게 흐른다. 앞으로 맞이할 풍경이 나날이 기대되고, 이미 지나쳐버린 전봇대 하나도 아쉽게 느껴질때, 하루하루가 기대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기차는 제 속도를 되찾는다. 니체가 왜 어린아이의 상태를 이야기했는지 알 것 같다. 어린 아이는 모든 오브제를 새로운 풍경으로 받아들인다. 세상이 주는 경이로움을 탐닉하기에 그들에게 낮은 너무나 짧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생의 출발점에서 기차가 멀어질수록, 어린아이의 호기심은 멀리 아득해진다.


 그렇기에, 인생이 느리고 권태롭게 느껴진다면 의식적으로 선로를 틀어 다시 인생의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 취향, 취미, 영화, 책, 일,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단정지었던 유형의 사람들을 부러 접하며 다른 풍경을 그려야 한다. 익숙한 것들을 부숴야한다. 모든 변화는 어지럽다. 대신에 몸은 다시금 중력의 존재를 자각하기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시야에 멀미를 느낄 수도 있다. 다행히 일단 방향을 틀면 곧 탄성을 지를 만한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더 알고 싶어진다. 다가울 것들이 몹시 궁금해진다.


  느림은 회피이고 빠름은 용기이다. 혼란스러운 시야를 마주할 용기, 멀미를 기꺼이 감수할 용기, 어린아이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직면할 용기는 기차의 운전대를 잡게 한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그런 능력을 몸에 지니고 태어났다. 우주법칙의 지배를 받는 탓이다. 그러니 맘껏 용기를 내도 좋다.


생의 태초에 그러했던 것처럼. 목청껏 터뜨리자.

어제와 다른 나의 탄생을 알리는 울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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