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 그 이후의 흐릿한 삶에 관하여
인수인계와 서류 정리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나면, 어느덧 진짜 '쉬었음 청년'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회사에서 싼 짐이 당신의 집으로 도착했을때 당신은 실감이 날 것이다. 그후부터 당신의 마음을 예측해 보자면, 일주일 정도는 '그래 고생했으니 푹 쉬자.' 라며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고 싶을 것이고, 한 달 정도는 그 동안 회사에 묶여 있느라 못했던 취미들을 이것저것 시도해볼 것이다. 평소보다 에너지가 남기에 매일 운동을 할 수도 있다. 일 하느라 바빠서 자주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한달쯤 넘으면 무료해진 일상에 해외 여행의 문을 두드려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슬슬 쉬었음 상태를 청산하기 위해 잡코리아를 기웃 기웃 하다가도, 자기소개-면접-인적성-임원면접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을 보다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역시 그냥 그때가 나았나 싶기도 하고.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이제 당신 앞에는 무한하게 흐린 가능성이 놓여져 있다. 갑자기 생각도 못했던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어디 해외로 워킹 홀리데이를 훌쩍 떠날수도 있는 것이고, 취미를 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은 무한한 동시에 흐릿하다. 제대로 닦지 않은 창문처럼 뿌옇다. 닦는다고 제대로 닦여지지도 않는다. 뭔가 하나같이 다 어설프다. 애초에 목적한 바가 있어서 쉬었음 상태가 된 것이 아니므로. 좀 헤매도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두렵다. 이번에 내딛는 발은 진짜 낭떠러지가 아닐까. 떨어지더라도 내가 있을 곳에 낙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들이 감싼다. 그리고 이제, 그 무거운 공기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