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떠난 뉴욕 여행이 남긴 것들
퇴사 한달 후, 그러니까 어느덧 백수 생활이 슬슬 몸에 배고 분주함에서 나태함으로 내 몸이 기울어가던 즈음 나는 해외여행을 떠났다. 어느덧 나이는 들었고, 겁은 늘었고, 몸도 무거워져서 계획을 짜는 것마저 귀찮고 버거웠다. 하지만 여행이라도 가지 않으면 이 소중한 시간을 아무것도 안하고 흘려보내는 것만 같아 일종의 의무감으로 짐을 쌌다. 계획도 내 기준에서는 완벽하게 짜지 않았다. 대략 뭘 하겠다 정도만 있었고, 일정에 너무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 왠만한건 예약도 하지 않았다
내가 떠난 곳은 미국, 그 중에서도 뉴욕. 보통 뉴욕에 가는 사람들은 영화나 미드에서 접한 화려한 모습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가는 듯 했다. 그에 반해 나는 뉴욕에 대한 큰 로망이 없었다. 미국에서도 도보 여행이 용이한 곳이라기에 선택한 것일 뿐. 하지만 여행이 끝난 지금, 나는 뉴욕에 대한 온갖 로망을 배낭에 싣고 서울로 돌아왔다
도시에 대한 첫인상은. 거대한 회색 빌딩들이 체스판의 말처럼 빼곡히 놓여져 있었다는 것. 그리고 흔히 뉴요커라 불리는,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틈새로 구글맵을 켜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살피던 나는 누가 봐도 이곳이 낯선 여행객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 물살 같은 사람들의 흐름과 거대한 빌딩에 압도당했다. 그러나 점점 뉴욕의 숨겨진 얼굴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각자 갈 길이 바쁘면서도 '쏘리' 를 인사처럼 건네는 뉴욕 사람들, 자세히 보면 저마다 다르게 생겨 불규칙한 산맥같은 광경을 자아내는 빌딩의 아름다움 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옹골차게 자리 잡고 있는 자그마한 공원들까지.
뉴욕은 점점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브루클린, 어퍼 이스트 등 방문하는 동네마다 다른 인상을 받았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주문을 하고 지하철을 타는 일상적인 행위를 의식적으로 하게 되자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낯설음은 나에게 인지적인 피곤함과 동시에 인풋을 주었다. 뇌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위해 팽팽 돌았다. 그런 약간의 긴장이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반복된 일상에 지친 나에게 가장 필요한 자극이었다.
휴양지나 비슷한 문화를 가진 국가를 여행하는 것과는 달랐다. 뉴욕에서 경험한 것들은 늘 상상 이상으로 크고 최상급이었다. 단적으로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부터 브로드웨이 뮤지컬까지. 다른 곳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내게 선사해주었다.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인생이 하루 아침에 스펙타클하게 바뀌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국에 돌아오면 돌아온대로, 또 원래 모습대로 쉬이 살게 된다. 인간이란 그렇다. 하지만 내가 겪은 세상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정답 밖에 또 다른 정답으로 사는 세상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힘이 난다. 낯선 곳에서 이리 저리 부딪히면서도 결국 적응해나가는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 여행이 주는 가치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