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바라보기 전에
부모님(들)이 꼭 하시는 말씀들이 있다. “나이 먹으면 괜찮아져, 다 그렇게 살게돼. “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마다 해주시는 말씀이다. 열혈 30대를 지나서, 나이를 먹으면 꼭 소진해야 할 것에만 에너지를 쓰게 될 테니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상대의 손을 꼭 잡고서, 부지런히 관계라는 성을 쌓아갔던 것 같다.
어렵게 다져낸 바닥 위에 정성껏 두 손으로 꼭꼭 눌러가며 성을 쌓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파도가 날아들었고, 한걸음 한걸음 소중하게 내딛은 내 발자욱과 함께 정체없이 사라졌다.
내 믿음이, 아니 나의 성이 무너져 내렸을 때 그 공허함 위에 분노와 슬픔, 실망감이 차츰 피어올라 상대를 향한 칼날로 변하고
그 칼날을 품에 쥐고 상대에게 휘두를 때마다 나의 몸과 마음은 많은 것들을 소진하고 있었다.
몸덩이는 물에 젖은 휴지처럼 속절없이 축 쳐졌고, 마음은 담배연기와 함께 잿덩이가 되었다.
타인들의 삶은 나와 다른지 너무나 묻고 싶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둘의 관계일 뿐이었다.
내 모든 시야를 가로막는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달려 나가 보았지만,
지금 내가 볼 수 있는 건 없었다. 지금은, 볼 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상대와의 관계란, 관계라는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흘러가게 둬야만 하는 류가 아니었을까?
내가 조금 더 성을 견고하게 쌓았더라도, 그건 모래성일 뿐이었다는 것을 결국 알게 되지 않았을까.
나에게는 어렵기만 한 관계라는 것이 어쩌면
파도의 결을 따라 흘러가듯, 나아갈 듯 다시 되돌아오는 그 간격마저 지나고 나면
언젠가 지금과는 다른 곳에 안착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이 먹으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그때에 할 수 있는 하나의 덩어리인 것 같다.
그 말을 이해하는 때와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온 기다림으로 겪어낸 부모님의 ‘흘러가라’ 던 말에 조금 더 가까이 가보려 한다.
흘러간다는 감각을 나는 체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