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말고 그냥 그 산업단지, 여수
장거리 연애를 했었다. 남해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설레기 시작했고, 마지막 휴게소라는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섬진강 휴게소에 들러 거울을 한번 봤다. 이순신 대교를 지나서 동그랗고 길쭉한 석유화학단지의 공장들이 연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 보이면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바다는 지겹도록 보고 자라 별 감흥도 없지만 이 도시가 특별 해진 건 온전히 사람 때문이었다.
관광객들이 여수 밤바다와 포차 거리의 낭만을 즐길 때 조금 다른 여수를 여행했다. 저기가 대머리 부장 집이야, 까꿍이 국밥 괜찮지 근데 광양에 가마솥 국밥이라고 진짜 맛있는 집 있어, 새벽에 향일암에서 내려오면서 먹는 갓김치에 막걸리 좋지, 이순신대교 속도 제한이 60 인건 너무하다, 여수 최고의 풍경은 바다가 아니라 산업단지야 사람이 어떻게 이 모든 걸 만들었을까?- 여수 최고의 풍경은 바다도 산업단지도 아닌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여수를 떠나 몇 번의 이사를 했고 지금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다. 경부고속도로, 대구 부산고속도로, 촘촘한 우리나라의 고속도로에 감사하며 꽤 오랜 기간 만났었네. 그와 나눈 감정, 대화들은 모두 지나간 이야기들이 되었고 이제 그를 떠올리면 쓴웃음을 지을 뿐이지만,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한 채 2시간 거리를 주말마다 오가며 용감하게 만남을 시작했던 그때의 여수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오후 4시에 오는 어린 왕자를 기다리며 3시부터 행복했던 여우처럼 나는 여수로 향하는 길의 광양, 순천쯤부터 행복했었다.
*원글은 2020.09.09.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