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슈퍼파워

어디선가 딸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는 나타나는

by 푸푸


연락도 없이 엄마가 들이닥쳤을 때 나는 마침 울고 있었다. 두 시간 동안 내리 울음을 쏟아내고 있는 나의 아가를 보며 나도 함께 울고 있었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이유로 몇 시간째 포효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눈물을 쏟아내는 아가를 둥가둥가 안아주고, 엉덩이를 토닥이다 못해 찰싹여도 보고, 까꿍 까꿍 애교도 떨어보다가 결국 “너 정말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소리 지르는 엄마를 보며 아가는 또 한 번 큰 울음을 터뜨린 참이었다.


“아기가 울지, 그런다고 엄마인 네가 같이 울고 있으면 되니” 엄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엉망이 된 거실을 정리하고 부엌에 쌓여있는 젖병들을 헹구어간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짐승같은 울음을 쏟아내던 손녀를 꽤 쉽게 달래나간다. “이렇게 착한 아가가 어디있담.”-방금까지 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아가를 천사라고 칭하는 엄마의 그런 말은 양육자로서의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릴 뿐이다. “그래, 나한테만 그렇게 울고불고하나보네. 내가 싫나 보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어본다. 상관없다, 어차피 아가와 함께 엉엉 울고 있는 바보같은 모습도 다 들켰는데, 유치하다 생각해도 상관없다.


“아빠가 나 아기 때 너무 많이 울어서 장롱 속에 넣어둔 적 있댔잖아. 나 그거 서운했었는데, 이제 그 맘 이해한다?”

“장롱 속에 넣기만 했다니.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이불도 덮어두었다”

“그래 나 이제 그거 안 서운해. 그럴 수 있어. 아빠가 그럴만했지.“

“아가야, 넌 나의 소중한 손녀지만 느이 엄마는 내 딸이야. 내 딸 힘들게 하지 말아라. 할머니가 그러면 미워할 거다.”


육아가 쉬울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런 장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고작 200일 아가에게 내가 뭘 바라고 있는 건가-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내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의 가치관과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만 같다는 부담감과 책임감 아래에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것 마저 조심하며 살고 있는 내 가슴은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육아에 지친 내가 밤새 이유식을 만들었는데 넌 어떻게 이걸 두 스푼 먹고 거부해’라는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후 내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꽤 자주 느낀다. 학생 때의 성적도, 직장인으로서의 업무 성과도 대체로 내 노력과 비례했고 크게 내 예상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이 일은 내 노력이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곧잘 흘러간다. 나는 아기를 낳기 전과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아기가 아팠을 때는 (거의) 무신론자인 내가 기도 비슷한 것을 해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꽤 허용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고, 연애 시절 남편은 내가 상대방의 사생활을 매우 존중하고 신뢰하는 편이라고 말했으며, 나 역시도 자신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기를 낳은 지금 나는 아가에 대해서 매우 통제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출산할 때 ‘뇌’를 같이 낳아버렸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는데, 나는 내 정체성을 낳아버렸나, 지금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렇게 하루하루 내 기대와 다르게 마음대로 성장하고 있는 나의 아가는, 기대치 못한 절망만큼 예상치 못한 행복감을 주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씽긋 웃어주기 시작했고, 나를 미치게 하는 울음의 끝에 가끔 (우연히) ‘으어어어 엄마’라는 말을 내뱉고, 나의 어설픈 까꿍에 숨이 넘어갈 듯 웃어주기도 하고, 그 작은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만진다. 졸릴 때면 내 품에 얼굴을 부비고 낯선 사람 때문에 울음 터졌다가 내 품에서 쉬이 진정한다. 통통한 허벅지와 부드러운 볼살을 마음껏 만질 수 있는 것도 엄마의 특권이겠다.


울 엄마가 하필 그날 그때 우리 집에 들이닥쳤을 때, 엄마와 딸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생각하게 되었다. 딸의 슬픔이나 고통을 엄마는 멀리서도 느낄 수가 있는 건가, 탯줄이 떨어지고 난 후 양육 과정에서 수많은 일들을 함께 하며 보이지 않는 어떤 끈이 생겨나는 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나도 나중에 우리 아가의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엄마가 될까, 울 엄마처럼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가 된 후로 엄마에게 미안한 일들이 늘어났다. 엄마가 어떤 맘으로 나를 키웠으며, 그 시절에 엄마로 사는 것은 얼마나 더 고된 일들로 가득했을지를 짐작해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된 후로 엄마에게 더 뻔뻔해질 수도 있게 되었다. 엄마가 사실은 나 때문에 행복한 순간이 꽤 많았을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고단한 육아 길의 끝에서 우리도 연결될 수 있을까 아가야. 우리도 우리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거겠지 아가야. 내일도 어쩌면 전쟁이겠지만, 그래도 또다시 결국은 사랑하겠지 아가야. 자장가의 끝에 항상 너에게 되뇌이는 말처럼-아프거나 힘들면 큰 소리로 엄마 부르는거야. 사랑해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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