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위한 힐링] #4
초인종 소리, 그리고 문 쪽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조이와 두배가 쏟아져 들어온다.
녀석들은 다소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인사한다.
녀석들의 기억 속에 내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옹알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 새 중학생이 되어 있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 너무 기뻐서 조이라 불렀고, 둘째가 태어났을 때는 기쁨이 두배가 되어서 두배라 불렀다고 한다. 삼촌 부부는 여태 이 녀석들을 조이와 두배라고 부른다. 나도 이 애칭이 좋다.
두배는 태어날 때 몸무게가 2kg 조금 넘을 정도로 작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름을 두배라 불러주어서 그런지 늘 언니보다 먹을 것을 두배로 찾는다.
두배는 냉장고를 뒤져 주스를 한 잔 마시더니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삼촌 : 저 녀석 또 시작이다.
삼촌이 웃으며 두배를 가리켰다.
삼촌 : 여자 아이들은 게임을 별로 안한다고 하던데, 저 녀석은 좀 유별나다. 게임을 저리도 좋아하지 뭐냐.
선영 : 저렇게 게임 하도록 그냥 놔두세요?
삼촌 : 처음에는 못하게 했었지. 그러나 나 어렸을 때 생각이 나더구나. 나 역시 오락실 쫓아다니던 시절이 있었거든. 무엇이건 해석만 잘 하면 배울 것이 분명히 있더구나. 그래서 생각 끝에 몇 가지 규칙을 정하고 게임을 허용했지. 저 녀석은 지금 억제가 아니라 조절을 배우고 있는 중이고.
삼촌은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삼촌 : 너도 컴퓨터 게임을 해본 적이 있니?
선영 : 뭐 조금요.
삼촌 : 게임을 한다는 것은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지.
자기가 주인공이니깐 어떤 방향이건, 어떤 행동이건, 어떤 아이템이건,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지.
그런데 그 선택의 결과는 프로그램으로 정해져 있다.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간 결과가 나오고, 어떤 특정한 행동 또는 아이템을 선택하면, 역시 그에 대한 결과가 나온다. 그건 누가 정했을까?
선영 : 컴퓨터 게임을 만든 프로그래머가 정했겠죠?
삼촌 : 그래, 게임의 규칙으로 정해놓은 거지. 어느 날 나는 두배가 게임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일면 저 컴퓨터 게임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선영 : 인생이 컴퓨터 게임과 같다고요? 음, 인생이 너무 가볍게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삼촌 : 어쩌면 저런 컴퓨터 게임은 신이 인간 세상에 던지는 비유일런지도 몰라.
사람이 창조해내는 것들이라는게 다 신적인 영감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닐까?
삼촌은 잠시 말을 쉬고, 두배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삼촌 : 게임의 규칙 안에서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서 게임의 시나리오가 달라지지.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10분 안에 게임이 끝나기도 하고, 2시간 넘게 지속되기도 한다.
선택에 대한 결과는 정해져 있어. 그러나 주인공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해.
그러므로 게임의 시나리오도 무궁무진하지. 우리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선영 : 음, 아주 역설적인 걸요? 선택에 대한 결과는 정해져 있으므로 시나리오는 정해져 있다고 할 수도 있고, 그러나 선택할 경우의 수가 딱 한 가지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 정해진 시나리오는 없다고 할 수도 있는 거네요.
삼촌 : 그래, 바로 그것이지. 우리의 인생은 컴퓨터 게임과는 비교가 도 안 될 정도로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이 있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자유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우리 운명의 시나리오는 무한한 경우의 수로 존재하지.
그저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시나리오가 한 발 한 발 우리가 선택의 발길을 내딛을 때마다 한 발 한 발 현실로 실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 우리의 운명을 창조하는 창조자다.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창조자…
삼촌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창조자' 라는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했다.
정신이 바짝 나는 듯 했다. 그래 나는 꼭두각시가 아니지.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고 있지.
삼촌 : 그러므로 임신하지 못하는 것이
신이 결정해놓은 네 운명인 것 같다는 생각은 이제 집어 던지자.
그 생각이 현실이 되기를 거부해라.
네 운명의 시나리오는 너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선택권을 신이건, 누구건, 다른 존재에게 내어주는 것도, 그 역시 너의 선택일 뿐이야.
선영 : 아기를 갖고, 안 갖는 것도 제 선택에 달린 문제라구요?
이재성은 지금 여기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