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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May 13. 2021

제주도 숲길을 걷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 여행길이 막히자 사람들은 제주도로 제주도로 향한다. 제주도는 비교적 둘러보거나 즐길 것이 많고 먹어 볼만한 것도 다양한 편이다. 타 지역에 비해 제주도의 코로나 환자 수도 적으니, 오랫동안 집안에 갇혀 답답해진 몸과 마음을 풀 수 있는 최적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부산발 제주행 항공기는 가득 찬 승객으로 인해 무거워진 몸을 뒤뚱거리다가 겨우 활주로를 이륙하여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제주도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박물관, 유리의 성이나 테마파크 대신에 자연과 숲길을 선택한다. 이러다 보니 과거에 한적하게 느린 걸음으로 즐기던 제주의 숲길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숲길을 걸으면서도 비말로 전염되는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 그리고 제주시는 안전성 확보를 위해 1일 방문자 수를 50%로 줄이기로 했다. 사람간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당 방문자 수 조정 또는 시간 간격을 두고 사람들을 출입시키지 않고, 1일 방문 인원수만 통제하니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고 있다. 아침부터 방문자들이 몰려드니 짧은 시간 내에 제한된 인원수를 초과하고 만다. 늦은 오전 중에 숲길을 방문하고자 달려온 관광객들이 발길을 돌려야 한다. 오후부터는 숲길에 사람들이 없어진다.


이번 제주도 방문에서 나는 제주도의 자연과 숲길을 걷기로 했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마라도 선착장 배 위에서 내려본 짙푸른 바닷속에서 자리돔 몇 마리가 유영하고 있었다. 지난번 이곳에서 벵에돔을 낚던 기억이 스쳐갔다. 민박집과 초등학교 분교를 지나, 과거 TV 예능 '자기야'에 출연했던 해녀의 가족사진을 내건 식당 앞을 걸어갔다. 먼발치로 교회가 보이고, 눈앞에는 상당한 크기의 해수관음상을 세운 절집이 있어 신앙심 깊은 관광객의 발걸음을 잡아끌었다. 기원정사 앞뜰 바위마다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 표정들이 새겨져 있어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해안가로 난 도로를 걷다가 대한민국 최남단 글자가 새겨진 표지석 앞에서 관광객들이 포즈를 취했다. 면적 0.3 평방 km, 최고점 29m, 해안선 길이 4.2km인 마라도 중심부의 작은 구릉과 완만한 경사를 가진 넓은 초원은 유유자적 걷기에 적당하다. 마라도를 한 바퀴 돈 다음 중국집에 들려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 먹으며, 마라도의 이곳저곳을 기억에 저장했다.     


화분 하나에 자연의 숲 하나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10여 만평이나 되는 종합 식물원인 한림공원을 다시 들렸다. 아름드리 야자수 그늘을 지나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형성된 협재굴과 쌍용굴을 통과했다. 용암이 흘러내린 동굴을 통해 과거 제주도의 활화산 규모를 예측해 보았다. 서울의 3배나 되는 제주도 곳곳에서 기생화산들이 폭발하여 검붉은 용암이 흘러내리고 화산재를 하늘 높이 뿜어 냈을 것이다. 용암과 화산재가 섬 전체를 뒤덮고 사방은 검은 연기로 휩싸여 천지를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을 것이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 화산재가 가라앉고, 용암이 굳어 현무암으로 산 중턱에 거대한 암반을 형성하고 흘러내린 용암은 해안 저지대를 덮었다. 활화산이 숨을 죽이고 서서히 안정화된 후에 사람들이 나타나 송악산 앞바다 해안가에 발자국 화석을 남겼다.

한림공원 내 웃는 바위

화분 하나에 자연을 축소하여 작은 숲을 재현하고, 수 백 년 된 수령의 분재들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있는 한림공원 분재원 길을 걸었다. 9개의 테마 공원으로 구성된 한림공원도 제주도의 자연을 걷는 장소로 부족함이 없었다.


사려니 삼나무 숲을 찾아갔다. 상쾌한 나무향을 맡으며 숲길을 걸었다. 비자림 인근에서 사려니 오름으로 이어지는 삼나무가 우거진 숲길, 사려니는 1930년대에 심은 수령 90년의 삼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숲이다. 사려니 숲길은 벌거숭이 산에 녹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곳이라 원시상태의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살린 것은 아니다. 미로 숲길, 월든 삼거리를 지나 물찻오름까지 트래킹을 즐기기에 좋다.  사려니는 '신성한 숲'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른 삼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 사이로 스며드는 반짝이는 햇살을 즐기며 신성한 숲의 정기를 한껏 들어마셨다. 가슴이 청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늘잎 모양의 늘 푸른 비자나무 수 천 그루가 자생하는 비자림을 찾아갔다. 천년의 신비를 담고 있는 듯한 태곳적 고풍의 모습과 다양한 형태의 나무들이 외지인을 맞이해 주었다. 서로 다른 나무가 가까이 자라다가 몸집이 커지면서 맞닿아 하나로 합쳐진 연리목, 꼬불꼬불 뒤틀린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이웃 나무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후한 목소리와 재잘거리는 새싹들의 밝은 목소리가 비자림 숲의 바람에 실려 귀가에서 아롱거렸다.

천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비자림 숲

 지난 수 백 년간 이 숲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있을 아름드리 나무들은 오랜 세월의 풍파와 자연의 재해를 이겨낸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더러는 번개를 맞고도 살아났고, 더러는 태풍에 허리가 잘려 나갔지만 밑동에 싹을 내어 생명을 이어갔다.

21세기 제주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비자림 숲의 터줏대감

수령이 800년이나 된 비자나무는 21세기 제주의 무사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주목으로 비자림 숲을 지키고 있었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비자림 숲길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 동안 세상의 짐과 근심이 사라지고 마음속에 행복감이 깃들었다.


제주에서 마지막으로 걸었던 길은 섬의 머리라고 불리는 도두봉 공원이다. 제주공항 뒤 해변을 끼고 있는 도두봉은 동네 산책코스 정도의 뒷동산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곳에 오르면 제주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착륙하는 비행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륙을 위해 줄 서있는 비행기 중 하나가 활주로 위를 달려 이륙을 하면, 곧바로 저편 낮은 하늘에서 반짝이던 물체가 서서히 제주공항에 내려앉는다. 거의 30초 간격으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봐서는 제주공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이라는 말이 헛말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비행기의 이착륙 모습을 바라다보았다. 코로나 상황이 빨리 끝나고, 버킷 리스트로 꼽아둔 여행지를 방문하고 싶어 하는 희망을 비행기에 실어 날리는지도 모르겠다.


도두봉 공원은 집으로 돌아가는 항공시간을 맞춰, 제주도에서의 여행을 정리하는 곳으로 들려 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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