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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09. 2021

플라멩고의 도시, 세비야를 향하여

2018년 스페인 + 포르투갈 + 모로코, 다섯 번째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스페인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탄저 항구로 향했다. 세계 2차 대전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루스벨트와 처어칠 등이 회담을 열기도 한 역사적인 도시인 탄저는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교두보이다. 항구에는 포르투갈 등 적의 침입에 대비해 만든 견고한 성벽이 있다.


아프리카 하면 흑인이 떠오르는데, 아프리카 땅에 속한 모로코는 모슬림이 사는 백인 나라이다. 율법상 아랍인들은 능력만 된다면 4명의 처를 둘 수 있다. 4명 처의 좋은 조화는 첫째 처는 관용을, 둘째는 회계와 재정관리를, 셋째는 요리 솜씨가, 넷째는 인물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일처만 허용하니 이 4가지 조건을 다 갖춘 여인을 찾을 수 있다면 최상일 것이다. 모두는 못 갖출 것 같다.


오늘은 다행히도 지브랄타 해협이 선명히 잡혔다. 영국은 본토와 수 천 km나 떨어진 이곳에 군대를 파견하고, 본토와 지브랄타를 연결해 주는 직항 비행기를 운항 중이다. 영국은 수 백 년 전에 점유한 이 땅을 스페인에게 되돌려 주지 않고 여전히 자기들의 영토로 관리하고 있다.

구름 밑 바위산이 지브랄타


스페인은 한반도의 2.5배 크기에 인구 4,500만 명, 2016년 국민소득 2.7만 달러로 과거의 영광이 사라졌다. 광활한 평원과 기름진 옥토를 기반으로 다시 한번 과거의 영화를 꿈꿀 만도 하다. 그러나 나라를 상실했거나 배고파 본 나라들만이 지닌 근성과 끈기가 없는 이들이 다시 일어나기는 소원할 것 같다.

교육, 의료, 노후보장 등 복지혜택은 EU와 동일하게 적용받아, EU 국가 중 저렴한 비용으로 인간답게 살기에는 스페인이 최적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에 사는 교민과 상사원들을 합쳐 겨우 4.6천 명에 불과하다. 최근 스페인 관광을 위해 한국인이 수없이 밀려들고 있어서 관광 가이드가 부족한 모양이다. 그래서 심지어 동남아에서 가이드하는 젊은 이들까지도 스페인 가이드로 넘어오고 있는 실정에, 유럽에 한번 살아 보려고 한다면 스페인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월 800유로 이상을 수입으로 신고하게 되면 그중 40%를 세금과 복지기금으로 납부하게 된다. 그 혜택으로 짧은 기간에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된다. 12년을 성실하게 수입 신고하고 세금을 내면 연금 수령이 가능하다. 일손이 많이 부족한 관광 가이드도 해 볼만 하단다. 물론 한국 관광객이 스페인을 외면하게 되면 손가락을 빨아야 되고, 지금 코로나 상황에서는 빨던 손가락이 다 녹아 없어질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처해 있을 수도 있다. 센디에고 순례길, 에스파냐 4국의 왕국과 성당의 고대 유적지와 이야기 등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북 스페인을 비롯하여 향후 30 년간은 관광객을 끌어 모을 매력 있는 곳들이 충분하단다. 한국의 젊은 엄마들이 스페인에 학생 신분으로 등록하여 자녀 학비 무료와 양육비를 지급받는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고 한다. 또는 800유로 정도의 수입이 있는 것으로 신고해서 영주권을 받기도 한단다. 몇 해전 관광학과 교수인 친구로부터 스페인을 추천, 취업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빈말이 아니다.

몇 시간을 달려 안달루시아의 주도인 세비야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수년 전에 민박을 하며 두발로 돌아다닌 적이 있어 한편으로는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지루한 시간이 될 것 같다. 세비야는 대서양에 접한 과달키비르 강어귀에서 78km 떨어진 중세 무역의 거점지였다. 대부분의 남미, 아시아로의 항해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을 받아 스페인의 대항해 시대를 연 콜롬비아가 첫 항해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식민지로부터 약탈한 막대한 금은보화를 저장했던 황금탑이 지금도 남아있다. 남미가 주산지인 감자 토마토와 담배를 가져와 전 유럽에 유통시켜 거대 부를 축척한 도시였다.
    

시내에 우뚝 서있는 세계 3대 성당에 속하는 세비야 대성당은 크기와 화려함에서 놀란다. 내부에는 세비야를 아랍인으로부터 탈환한 왕을 비롯하여 중세 여러 왕들이 안치되어 있고, 콜럼버스의 묘가 있다. 7세기에 침입한 아랍인에게 스페인의 남부지역을 빼앗기고 북으로 밀려서 세운 에스파냐 4 왕국.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콜럼버스의 관을 떠받들고 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만지면 복이 온다고 해서 다들 조각상의 발을 만져 반들반들하더니만, 지금은 만지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 외에도 우리에게는 김태희가 광고를 찍어서 김태희 광장으로 잘 알려진 곳으로, 1929년 세비야 무역박람회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스페인 광장, 히랄다 탑, 마리아 루이사 공원  등 많은 관광지가 있다. 4년 전에 남미에 가기 전 Stop over로 5일 머물면서 세비야를 기록한 것이 있어 상세한 것들은 생략하고 몇 장 사진만 올린다.

에스파냐 4 왕국.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콜럼버스의 관을 떠받들고 있다.


 4년 전 스페인 광장에서 찍은 사진을 반추하듯 돌려 보았다. 그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담긴 나의 모습은 젊고 더 샤프해 보인다. 세월을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몸을 닦고 젊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흐르는 시간을 느리게 할 수 있는 방법 임을 다시 확인한다.

1929년 세비야 무역박람회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스페인 광장. 우리에겐 김태희 광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16세기경 인도로부터 안달루시아와 세비야에 전파되어 발전해 온 플라멩고를 보러 갔다. 1시간 반 동안 이어지는 공연에서 빠른 탭 댄서와 현란한 발놀림, 손놀림 그리고 손 사위에 현혹되었다. 특히 절규하는 듯한 노래는 서럽고 애잔하다. 하지만 내겐 모두 하나의 동작으로만 보였다. 절도와 열정은 느껴지나 별다른 느낌이 없다. 여가수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애절하게 노래를 부르며, 무희는 열정적으로 춤을 추지만 뜻과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몰입이 되지 않아 감동이 없다. 타 문화를 이해하기는 원래 어려운 법이다.

플라멩고는 안달루시아의 마을 모임이나 축제에 등장하여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 불의, 사랑 등을 노래하는 것이다. 먼저 노래가 시작되고 이어 손뼉과 기타 연주가 따르고 마지막에 가서는 춤이 나오는데, 발에서 시작해 몸을 통해  팔과 손에 이르기까지 조화를 이룬다. 내가 아는 플라멩고는 이렇다. 그러나 같은 동작이 내내 반복되는 것 같아 조금 지루함 조차 느낄 정도다. 언어가 달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막으로 노래 가사를 띄워 보게 한다면 호응도가 더 크지지 않을까? 춤이 끝날 때마다 환호하는 많은 한국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가슴을 울리는 무엇이 있었을까? 아니면 춤추는 댄서들이 너무 멋있고 예쁜 탓은 아니었을까, 또 아니면 그들의 어마에 흐르는 땀에 호응하는 것은 아닐지?


플라멩고의 음악만 떼어 보면 노래와 기타 연주로 포르투갈인의 영혼을 표현하는 파두와 비슷하다. 슬픈 노래로 알려진 파두는 우리의 한과 비슷한 정서인 싸우다드가 깔려 있다. 슬픔이란 뜻이다. 16세기 세계 식민지화로 눈을 돌린 해양국가가 된 포르투갈은 왕족과 귀족에게는 막대한 부가 집중되는 기회가 되었지만 서민들에게는 기약 없는 항해와 그늘진 삶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떼거리가 없어 굶어 죽을 판인데도 황금을 찾아 나선 남편은 돌아오지 않아 절망하는 아내와 자녀들. 정치적 혼란과 철권 독재통치 등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포르투갈인에게 슬픔은 숙명적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파두로 이어졌다.
     

플라멩고의 춤은 아르헨티나의 탱고와 비슷하다. 구두로 소리를 내고 폭넓은 차마를 손을 이용하여 몸을 휘감고 펼치는 여성들은 몸이 굉장히 유연하다. 대체로 집시들의 춤은 비슷한 점이 많다. 아무래도 집시 생활이 정착하지 못하고 침략당하고... 그런 특성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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