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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04. 2021

모로코의 상징적인 고대 수도, 페스를 향해

2018년 스페인 + 포르투갈 + 모로코, 네 번째

어둠이 걷히기도 전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서둘러 호텔을 출발했다. 시청, 법원, 중앙우체국이 모여 있는 광장에서 잠시 버스를 내렸다. 비교적 건물 규모가 적었는데 이는 모로코의 경제적 규모에 적당하다고 느껴졌다. 카사블랑카 시민들은 여전히 1930, 40년대 번성하던 때에 프랑스인들이 세운 4, 5 층 밀집 건물들은 사용하고 있다. 수리되지 않고 오랜 시간의 때가 묻어 색이 바래고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있어 퇴색하고 음침해 보였고 규모 면에서는 웬만한 유럽 도시들을 능가해 보이지만, 가난한 모로코인에게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카사블랑카 영화에 나왔던 카페를 이 도시에 그대로 재현해서 대박을 낸 사람, 왕족, 귀족, 지주와 일부 자본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가난을 벗지 못하고 있다. 똑똑하더라도 신분을 뛰어넘어 부자가 되는 것이 어렵고도 힘들단다. 기득권자들의 견제가 너무 심하다.

카사블랑카 시청과 법원 건물

버스 안에 설치된 TV를 통해 오 남매를 두고 손아래 시누이와 살고 있는 한 모로코 과부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녀는 배운 것이 없고 자신의 나이조차 몰랐다. 자고 일어나면 기도하고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일하는 반복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는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냐?'라고 되물었다. 자식들을 사랑해서 열심히 일한다고. 시누이가 제 짝을 찾아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이 결혼해서 모두 떠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 과부는 대답했다. '그것이 자연적이다'. 주어진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철학적 대답이다.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도시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모로코를 상징하는 도시가 페스이다. 7세기경 모로코를 점령한 왕이 원주민 베르베르  여인을 취해 탄생한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808년에 이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도시내  왕궁 앞 부지에 일반인의 접근이 가능하여  관광객이 기념사진 찍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성지인 엘발리는 성벽과 큰 문으로 둘러싸여 웅장함을 더하고 있다. 거주민은 서남쪽 구릉지대에 모여 성벽과 문에 기대어 중세의 삶을 살고 있다. 9,500여 개의 거리와 골목으로 이루어진 옛 도시에 살면서 아라베스크 문양의 각종 장식물, 카펫, 여성 손발 염색제, 의류와 신발, 은세공품, 황동 장식물, 채소, 염소 발과 소발 등 중세시대를 연상시키는 모든 것들을 팔고 있다. 우리에겐 아득한 추억이 되어 버린 엿도 팔고 있는데, 파리가 잔뜩 꼬여든 불결함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잘 먹고 탈없이 잘 산다.

참깨와 땅콩을 함께 버물린 엿 위에 파리들이 까맣게 몰려들었다. 불결하기 짝이 없지만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엿을 팔고 산다.
9,500여 개의 거리와 좁은 골목골목에서 온갖 종류의 물건을 팔고 있다.


페스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다. 대신 당나귀가 지나다닌다. 수많은 좁고 어두운 거리를 사람들은 잘도 헤쳐 다닌다.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용하다. 이 옛 도심지 한편에는 1,350 경년에 세워진 메데르사 부 이나니아라는 신학대학이 있는데, 지금은 회교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침 기도시간이 되어 뭇 주민들의 바삐 들어가서 손발을 씻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다 고개를 돌려 보면, 좁은 공간에서 즉석으로 가죽을 재단하거나 은세공품을 두드리고 아라베스크 문양의 받침대 등을 만드는 장인들의 바쁜 손놀림을 볼 수 있었다. 한 좁은 골목길에서 창살 대문을 세워 출입을 통제하는 식당에 들어갔다. 외부에서 보기와 다르게 건물 내부는 마당에 해당하는 넓은 소통의 공간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세 벽면을 잇는 또 다른 공간에는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더욱 화려하게 치장이 되어 있어 손님을 받는 식당 홀로 사용되고 있었다. 전통적 회교권 가구 구조로 규모 화려한 장식으로 볼 때 옛 귀족의 집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곳에서 무슬림 전통 음식을 제대로 먹었다. 주식인 쿠스쿠스는 좁쌀같이 보이는 세모리나를 곱게 간 것으로 여러 야채와 닭고기가 함께 익혀 나왔다. 과일을 먹은 후 꿀을 섞은 민트차를 마셨다. 일부는 맥주를 시켜 마셨다. 모로코에는 금주령이 없다.

천정이 높고 장식은 화려했다.  높은 구조는 실내의 더운 공기를 외부로 환기하는 역할을 해서, 내부는 시원했다.   
모슬림의 전통식 상차림


식사를 마치고 세계적 명소가 있는 곳으로 갔다.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제로 등록된 페스의 명물은 가죽 무두질이다. 축산의 분뇨를 섞은 물에 가죽을 담가 수작업으로 여러 번 뒤척여 가죽이 부드러워지면 그제사야 빨갛고 파란 원하는 색을 들인다. 그래서 모로코의 가죽을 최고로 친다. 가죽제품을 파는 건물 3층에서 이 풍경을 내려다보는데 가축의 분뇨 냄새가 얼마나 심하던지 허브잎을 코에 꼽고 있어도 격한 냄새가 진동했다. 이들 장인의 삶은 고되지만 보통 사람들의 3배에 가까운 수입을 얻어  자부심 속에서 일하고 있다.

천년을 이어온 페스의 가죽 무두질 광경


페스에서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숙소로 가는 길로 리프 산맥을 넘는 국도를 선택했다. 평원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보리밭이 광활히 펼쳐졌다. 군데군데 시골의 궁핍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대자연으로부터 나오는 풍부한 먹거리는 모로코인들에게 가난하지만 배고픔을 모르는 행복한 삶을 살게 한다.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잠시 들린 휴게소 옆에서 농부들이 수레로 포도를 싣고 와서 팔고 있었다. 씨알이 굵고 송이가 탐스러운 포도 1kg가 3유로이다. 아프리카의 강렬한 햇볕을 받아 포도는 달고도 달았다. 국도와 고속도로를 달려 아실라라는 소도시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다. 대서양을 접하고 있어 밤경치가 그만 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쁜 내일 일정을 위해 새벽 배로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해변을 즐길 기회를 접기로 했다.



저녁식사로 양념이 들지 않은 갈비찜과 과일을 먹은 뒤, 영부인이 꿈이었다는 다이애나와 짧은 담소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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