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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pr 05. 2022

다시 제주 거문오름

예전에 태국 파타야에 다시 찾아갔더니 그전에 보고 먹고 즐기던 것이 그대로 반복되어서 재미가 없었다. 김태희가 광고를 찍어 국내에 알려진 세비야 소재 스페인 광장과 역사적 대홍수의 기록을 표시한 독일 프랑크푸루트 라인 강둑을 다시 방문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은 처음 방문할 때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내 나이가 조금 더 들었을 뿐이었다. 우리의 인생이 일회성이듯 세상은 넓고 볼 것도 많은데 무엇하려고 다시 가고 다시 되돌아볼 것인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거문오름을 찾아왔다. 지난번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거문오름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코스를 탐방했다. 약 30만 년 전부터 10만 년 사이에 수차례에 걸쳐 분출된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여러 용암동굴계를 형성한 모체로 알려진 거문오름의 분화구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이곳을 찾아오게 만들었다.


거문오름 트래킹 코스. 붉은색이 정상 제1코스, 청색이 분화구 제2코스, 황색이 태극길 제3코스


지난번에 가보지 못했던 분화구 내의 알오름과 역사유적지를 볼 수 있는 분화구 제2코스를 탐방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은 제주도 전역에 수많은 군사시설을 만들었고, 거문오름의 10여 곳의 갱도 중 하나를 눈으로 확인했다. 분화구 한쪽에는 현무암을 둥글게 쌓아 올려 아치형 숯가마를 만들고 가마 뒤쪽에 타원형의 통풍구 놓여 있는 숯가마터가 있었다. 숯을 만들어 팔아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제주민의 애환이 녹아있는 애잔한 삶의 터다. 일반적인 용암동굴은 수평적으로 발달하는 것과 달리 독특하게 수직으로 발달한 거문오름 수직동굴이 있었는데, 그 깊이가 35m다. 뜨거운 용암이 흐르면서 표면이 굳어지고 용암의 공급이 중단되어 내부통로가 비어 동굴이 만들었고, 그 아래로 다시 용암이 흐르면서 동굴이 형성되고 아래층 동굴의 천정이 무너져 수직동굴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위에서 왼쪽부터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 일본 지하갱도, 숯가마터, 수직동굴.

분화구를 중심으로 사방에는 잎새를 모두 떨어뜨린 앙상한 겨울의 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고, 맞은편에는 침엽수가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고, 그 왼편에는 무성한 침엽수가 자라고 있었다. 거문오름 분화구는 4계절이 공존하는 불가사의한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화구를 지나 아홉 마리 용이 굽이친다는 제3코스를 둘러보았다. 이름에서 알려 주듯이 9개의 작은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숨이 거칠어지고 허벅지가 아려왔다.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면서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 지대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거문오름 곶자왈의 원시림을 걸었다.


 황색실선이 실내 트래킹 한 흔적으로, 거문오름은 북동쪽 산사면이 터진 말굽형 분석구 형태를 띠고 있다.


이번 방문으로 거문오름 전체 10km를 약 3시간에 거쳐 완주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가이더의 전문 숲해설이 곁들여지지 않아 아쉬웠지만, 이곳에서 나는 가슴속에 겹겹이 쌓인 도시의 오염들을 털어내고 청량한 자연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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