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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재영
Jul 26. 2024
한 우주가 열리고
비 오는 날, 내원사에서(2)
비 오는 날
산사는 고적했다.
장맛비로 계곡물이 폭포를 이루고 있지만
비 오는 날 나들이는 성가시고 귀찮은 법.
덕분에 계곡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내원사
대웅전 안 부처님도 사람들의 아우성을 피해
빙그레 옅은 미소를 지으시며 한가로운 여유를 즐기고 계셨다.
화려한 단청을 한 대웅전 처마밑에 펼쳐놓은
조약돌은 빗물에 씻겨 예쁘게 단장을 하고 있었다.
조약돌들이 한 곳에 모여 제 모양을 자랑하는 듯해서
자연스럽게 조약돌에 눈길이 쏠렸다.
허리를 굽혀 찬찬히 조약돌을 살폈다.
색상도, 석질도, 모양도 제각기 다 달랐다.
조약돌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의 장단에 귀기우리며
돌 위에 그려진 문양을 감상하다가
작은 생명체를 발견하였다.
엄지손가락만 한 조약돌 위에 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오랫동안 지켜보기에 지쳐 시선을 돌리기까지 꼼짝이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움직이지 않을까?
산사의 너른 마당 한 편에 자리 잡고 앉아
늘 듣던 불경소리가 아닌 보슬비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에 빠져 있는 것인가?
그리고 두 발자국 앞에는
달팽이 한 마리가 느린 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뜨거운 여름날에 내리는 시원한 보슬비를 즐기는 듯
등에 진 무거운 집은 내려놓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느릿느릿 걸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목적지에 닿는 법.
조약돌밭을 건너고 넓은 절 마당을 건너야 머물 곳이 있을 듯한데
달팽이는 끊임없이 앞으로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언제 저 먼 길을 건너 갈거나?
포기하지 않는 달팽이가 대견하다.
인간은 제각기 자신만의 우주를 탄생시키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자기가 창조한
우주에서
장엄한
서사와 궤적을 남기려고 애쓰고
우주의 모든 것인 것처럼, 최고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전 우주 관점에서 인간은 의미 없는
티끌보다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수많은 조약돌 중 엄지손가락만큼 작은 돌 가운데 앉아있는 개구리와 진배없이
누군가 주목하고 바라다 봐주면 겨우 눈에 띠일
우리
인생의
삶을
아등바등거리며
악착같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저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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