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설날 맞이하기

차이나 타운과 인도 거리 방문기

by 이재영

설날.

오전 내 비가 축축이 내린다.


조상을 모시는 제사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스럽다.

가족과 모여 덕담도 나누고 음식도 먹으며

올 한 해 무사태평을 기원하면 좋았는데.


어쨌거나 해외에서 맞이하는 설날이라도

아침 한 끼는 특별한 음식을 먹을 수 있길 바랐다.

이틀 전 싱가포르 지인이 선물로 주고 간 적포도주에

삼겹살과 닭 가슴살을 넣고

알룰로스(미림 대신 사용)와 간장을 추가해서 조렸다.


고기들이 잠길 정도의 양념장이 팬 바닥에 깔릴 정도로

오래 조렸는데도 양념장이 걸쭉해지지 않고

포도주의 산미와 탄닌의 떫은 맛은 그대로 남았다.

알코올은 날아가고 포도주의 달콤한 맛이 고기에 진하게 스며들어

풍미를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너졌다.

산미와 단맛을 구별하는 포도주가 있는 것을 잊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 재료를 사용할 때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겠다.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도 구정 때 이틀간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인들은 설날을 맞이하여 조상을 기리고

폭죽을 터트리며 자기들 방식으로 명절을 맞이하지만

다른 외국인들은 그냥 이틀간 휴일을 즐길 뿐이다.


오후에 아이온 쇼핑몰에서 사자춤 공연이 있다고 해서 보러 갔다.

사자춤은 악귀를 쫒고 행운과 복을 부르고

새해의 번영을 기원한다.

북, 징, 심블즈의 요란한 소리에 맞춰

사자탈을 쓴 2명의 춤꾼이 한 몸이 되어

몸을 떨고 엉덩이와 꼬리를 흔들며

눈을 꺼벅이고 귀를 펄럭이며 힘차게 춤을 춘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선전의 수단이었겠지만

중국인뿐 아니라 많은 서양인들도 모여들었다.

싱가포르의 상징물인 머라이언도 사자 모형이니

모두가 사자춤에 관심이 높을 테지.


내친김에 차이나 타운과 인도계가 많이 찾는 술탄 모스크 거리를 가보기로 했다.


19세기말까지 중국 남부지역에서 이주해 온 중국인들이 현지 여자와 결혼해서

큰 공동체를 이루며 번성해 나갔던 집단을

페라나칸이라고 호칭한다.

차이나 타운에는 페라나칸이 살았던 거리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보통 1층은 상가와 2,3층은 주거목적으로 사용된다.

언어는 중국어를 사용하며 토착 생활방식으로 따랐던

모습이 지금도 그대로 남았다.

페라나칸 음식이 현지 식문화로 남아서 여러 번 먹었다.


티안 호크 켕 절은 차이나 타운에 위치한 도교사원이다.

중국 푸젠성 이주민들이 해상무역의 안전을 위해

바다의 여신 마조를 모시고 기원하는 곳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도교사원은 처음 방문이다.


도교사원은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의미로

붉은색과 금색으로 장식한 건축물로

지붕에는 용과 봉황이 마주 보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내부에는 다단식 제단이 설치되어 위패, 향로, 종 등과 옥황상제의 상이 놓여있다.

벽면에는 도교의 창시자인 노자, 무당파의 장상풍, 팔선(8명의 신선)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향의 연기로 내부가 아득해 보인다.

여느 불교 절과 비슷해 보여서 도교의 사상인 인간과 자연,

우주의 조화를 형상화한 공간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설날을 쇠는 중국인들이 문을 닫은 상가도 많았지만

차이나 타운은 관광객과 연휴 이틀을 즐기려는 현지인들로 북적되었다.


대표적 열대과일인 두리안은 맛은 좋지만

냄새 때문에 공용 교통수단과 호텔 안으로 들고 갈 수는 없어

두리안을 즐기기에는 제약이 따른다.

나는 두리안을 쌓아두고 팔면서 테이블에 앉아 먹을 수 있는 가게에서

1kg에 2만 원 하는 두리안을 주문해 먹었다.

특히 진노랑색에 부드럽고 당도가 높고 마지막에 쓴 맛이 비치는 무상킹 두리안이 인기가 높다.


복숭아 모양 만두는 봤어도 토끼, 곰, 사과 모양 만두는 처음 보았다.

마그네틱 등 관광객을 노리는 기념품 가게와

파라나칸 음식과 중식을 파는 식당들과

포장 음식을 파는 길거리 포장마차들이 즐비했다.

그중 만두를 파는 포장마차에서 튀김과 찐만두

두 종류를 사서 술탄 모스크 거리로 옮겨갔다.

싱가포르에서는 공용 차량 안에서 음식을 먹으면

500 달러 벌금을 내야 하므로

버스를 기다리는 간이 정류장에 앉아 만두를 먹었다.



모스크 주변에 페라나칸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아

이곳이 초기 중국인들이 살던 주요 거점지임을 말해 준다.


2월의 연휴기간과 무슬림의 라마단 기간이 겹쳐 야시장이 펼쳐졌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페라나칸 거리 골목에서 서양인들이 맥주를 마셨다.

사원 옆에서 다양한 무슬림과 틔르키예 음식들과 음료들이 팔리고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성경에는 여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배들을

성전을 더럽힌다고 하시며 내치셨다는 하는데

모스크 사원이 상술의 무대 배경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이미 싱가포르식 마라탕으로 배가 부른 상태이지만

튀르키예의 유명 후식을 먹어 볼 작정을 했다.

밀가루 반죽 수십 겹을 녹인 정제버터를 뿌려 가면서 쌓아 올려 만든 페이스트리의 일종으로

설탕이나 대추야자 시럽을 끼얹어서 완성한 바클라바를 주문해 먹었다.

단맛이 너무 강했지만 다시 시도해 볼 만한 간식이다.


호기심에 다른 후식도 시도했다.

가늘게 뽑아낸 카다이프(중동식 가는 면) 사이에 염소젖 치즈를 넣고 구운 뒤

달콤한 시럽을 흠뻑 적셔 잘게 부순 피스타치오를 뿌려 완성한 쿠나파를 주문해 먹어 보았다.

생각보다는 달지 않았고 식감은 요즘 유행하는

두바이 쵸코렛을 씹는 것과 비슷하다.


싱가포르는 문화와 음식이 참으로 다양하다.

싱가포르 자체 역사는 60여 년 밖에 되지 않고

오랫동안 중국, 영국,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아오다

마침내 말레시아와 통합되었다가 독립된 나라인 만큼

다민족의 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


마운자로의 도움을 받아가며 감소시킨 몸무게가

이번 여행으로 망가질까 겁나지만

하루 만보를 넘는 강행군 여행지 탐방으로

제 무게를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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