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국립미술관 특별 전시회
보스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특별 전시한다는
싱가포르의 국립미술관을 방문했다.
아침부터 꿀꿀이 비가 내리고 있어서
최적의 실내활동을 선택했다.
인상파는 전통적인 회화기법을 거부하고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물의 순간적인 인상을 그대로 묘사하려는 화풍이다.
1870대 프랑스 화가들은 찰나의 색과 공기, 물 위에 반사된 빛의 인상을 찾고
빛에 의해 변하는 색채의 마법을 강조했다.
1874년 프랑스에서 그룹 전시회를 기획했던
모네, 드가, 르누아르, 세잔느, 피사로 등 유명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인상파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게 화려한 멋을 보인다는
르누아르의 그림 속 여성들은 풍만하고 우아하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채롭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의 뛰어난 풍경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르누아르는 자연의 화려함을 묘사하기에 자신의 예술적 재능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 예술가는 망각의 고통 속에서 자신감을 가져야 하며
오직 그의 진정한 주인인 자연의 말에만 귀를 기울여야 한다 '라고 말했다.
모네는 직접 설계하고 가꾼 지베르니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물의 변화와 빛을 관찰하여
화폭에 담았다.
지베르니 정원에서 그린 수련 연작 중 하나가 다음 작품이다.
19세기 시대적 화풍이 사실주의에서 인상파로 전환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마네는 인상파 전시회에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지만
드가, 모네 등 당시의 인상파 화가들의 절친이자 멘토의 역할을 했다.
마네는 자신의 모델 뫼렌트로 하여금
파리 바티뇰 지역에서 만난 여성처럼
기타를 들고 있는 거리의 악사 모습을 재현토록 해서
대표적 작품인 '거리의 악사'를 완성했다.
마네는 당시 파리 살롱에서
여체를 풍만하고 아름답게 그리던 전통의 고전적
누드가 아닌 현실적인 나체의 여인을 직접 묘사하여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1850년대, 1860년대 대대적인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파리도 광활한 대로, 건물과 아파트가 건축되고
카페와 극장 등 새로운 문화공간이 생겨나면서 사회적 교류가 촉진되면서
파리는 더 개방이 되었고 공적 사적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지만
여전히 여성 예술가들의 활동에는 제한이 있었다.
빅토리에 뫼렌트는 1860년대 마네가 가장 좋아했던
모델이자 뮤즈였다.
타원형 얼굴, 붉은 머리와 회색 눈은 당시
야심 찬 화가들의 그림에 자주 등장했던 그녀는
1876년 파리 살롱에서 화가로 데뷔하기도 했다.
발레리나에 집착한 화가 드가는
야외풍경 중심의 인상주의를 거부하며
실내장면과 구조적인 구성을 선호했다.
1917년 그가 사망한 후 스튜디오에서 발견된 다음 미완성 그림은
윤곽을 스케치한 다음 색채와 톤으로 질량과 형태를 구축하는 그의 방법을 보여준다.
고갱은 젊은 주식중개인이자 전직 프랑스 해군장교로
1873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879년에 인상파 화가들과 함께 첫 전시회를 열었고
같은 해에 퐁투아즈의 피사로를 만나 함께 그림을 그렸다.
1882년에 주말마다 피사로를 만나기 위해
퐁투아즈를 가서 마을의 풍경을 그렸는데
다음 그림은 그중 하나이다.
세잔은 1861년 피사로를 처음 만났을 때 젊은 미술학도였다.
1872년 말부터 1874년 중반까지 세잔은
멘토인 피사로와 더 가까이 있기 위해
퐁투아즈 인근으로 이사해서 살았다.
1881년 세잔과 피사로가 함께 그림을 그렸던
작품 중 하나가 다음 그림이다.
인상주의 작가들의 핵심인물이었던 피사로는
마네, 르누아르, 드가, 시슬레, 세잔, 모리조와 인상파 전시회를 결성하였고
전설이 된 총 8회의 인상파 전시회에 모두 참여했다.
마네, 세잔, 고갱 등 젊은 작가들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그는
일생동안 색채와 형태의 표현적 기법에 대해 연구해 왔으며
다양한 기법을 적용해 왔다.
대조적인 새체의 물감을 화폭에 점점이 찍는 신인상주의 화가 쇠라의 점묘화 기법을 수용했다.
각 색의 점들은 멀리서 보면 한 가지 색채로 어우러지도록 선택되었다.
이런 색의 점들만으로 뒤덮인 화폭은
선을 사용하지 않고도 형태를 뚜렷이 나타내고
묘사된 모든 대상은 강력한 빛을 받아 빛나게 된다.
피사로는 판화제작을 그 자체로 표현의 한 수단으로 취급해서
자신의 판화를 예술품으로 간주하려고 했다.
그는 동일한 사물에 대해 다른 대기조건에서 변하는
찰나를 포착하는데 관심을 가져
동일한 기본 에칭판에 여러 변화를 준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러한 시도는 인쇄술의 발전에 기여했다.
물 위에서 끊임없는 변화하는 빛에 매료된
인상파 화가들은 자주 센강과 같은 강을 작품에 담았다.
유럽 미술사에서 정물화는 오랫동안 사소한 장르로 여겨져 왔다.
역사나 고전신화의 극적인 장면보다는 덜 권위적이었기 때문이다.
정물화는 19세기 살롱 전시회에 자주 등장하고
인상파 화가들의 공통된 주제가 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모리조는 `어떤 것이든, 아무리 작은 것이든,
미소, 꽃, 과일이든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야망이다.'라고 표현했다.
본 내용의 대부분은 싱가포르 특별 전시회에서 보고 이해하면서 정리한 것이며
관련 사이트를 통해 습득한 인상파 화가들과 화풍에 대한 설명을 추가했다.
인상파 화풍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학생시절 교과를 통해 배운 것이 전부이고
교재에서 나오는 몇 점의 그림을 보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았던 드가의 발레리나,
마네의 수련, 르느아르의 실제 작품 몇 점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박물관에서 본
세잔의 과일 정물화와 칸딘스키의 작품 몇 점을
본 것이 고작이다.
이번 특별 전시회는 인상화 화가들의 화풍, 기법, 새로운 시도와
화가들 간의 교류와 친분, 멘토 역할과 상호 간의
역할을 이해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여행 중이라 자료 수집과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미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미천한 자가
관련 글을 적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주저하였으나
현장에서의 느낀 감흥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개인적인 소감 차원에서 정리했다.
함께 감상했던 아내는
순간적 찰나를 중요시했던 인상파 화가들로부터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만남과 생각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고
나는 빛의 조각들은 우리의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찬란하다는 것을 알려 준다라고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