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시아 말라카에서 서양인들의 수탈의 역사를 확인하다

말라카의 역사, 문화, 음식 탐방

by 이재영

3주가 넘는 기간은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에만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루하게 느껴질 때

또 다른 여행지로 말레시아 말라카를 선택했다.


말라카 역사는 1400년 초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파라메스와라 왕자가

건국한 말라카 술탄국의 수도로부터 시작된다.

명나라와 수교한 말라카는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로

인도, 중국, 이슬람 상인들이 모여드는

국제 무역항으로 발전하였고

술탄이 이슬람의 공주와 결혼을 함으로써

동남아시아 최초로 이슬람 왕국으로 성장했다.


그 후 향신료 무역의 이권을 노린 유럽의 여러 나라가

차례로 말라카를 점령하여

독특한 건축양식과 문화를 남겼다.

먼저 포르투갈이 무력으로 말라카를 정복하고

바닷가 언덕에 에이파모사 요새를 지어 방어권을 강화했다.

포르투갈은 1511년부터 약 130년 동안 말라카를 지배했으며

지금도 산티아고 요새라고 불리는 작은 성문과

언덕 제일 높은 곳에 세운 세인트 폴 교회 흔적이 남아있다.

과거 묘지로도 사용된 교회 내에 당시에 세운

여러 개의 비석들이 나열되어 있다.


1641년 네덜란드가 조호루 술탄국과 연합하여

포르투갈을 물리치고 말라카를 점령했다.

말라카의 상징인 붉은 스타더이스 광장과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시기의 유산이다.

1824년 네덜란드와 영국의 조약으로

말라카가 영국으로 이양되었다.


1957년 말레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마침내 말라카는 말레시아 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중국식 전통과 말레이의 식습관, 서구의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음식(뇨냐 음식)과 문화가

말라카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역사적 유적을 찾아 말라카를 방문한다.


역사적 유적지가 잘 보존된 구시가지에는

연휴를 잇는 주말인지라 각처에서 모여드는 중국인과 현지인으로 넘쳐났다.


과거 식민지 시기에 축조된 구도심지 길가

2, 3층 건물이 현재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기념품, 골동품을 파는 가게로, 식당으로 사용된다.

허름해 보이는 가게라 할지라도

오래된 골동품과 작업으로 만든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들어가서 둘러볼 만한 아기자기한 것들이 많다.


한 골동품점에서 중국인 여성들이 멀리 도망가지 못하게 신체적 자유를 제한하고

남성에게 종속시키려는 남존여비 사상이 담긴

전족의 흔적을 발견했다.

전족은 10세기 송나라 때부터 20세기초까지

지속된 중국의 풍속으로

어린 소녀의 발을 꺾어 부러뜨린 뒤

천으로 단단히 묶어 성장을 억제하고 변형시켜 발크기를 극단적으로 작게 만들었다.

이상적인 전족의 크기는 10Cm 내외였다고 한다.

전족의 여성들은 제대로 걷기가 힘들어 노동을 할 수 없으므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의 딸이라는 신분의 상징이기도 하다.

당시 전족은 중국 상류층 여인들의 필수적인 미적 조건으로 여겼다.



개인 박물관으로 칭하는 한 건물에 들어갔다.

건물 복원이 아니라 보전상태도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당시의 건물 형태와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지 않았다.

앞면은 4m 정도의 좁은 건물이었는데

옆면은 마지막 마구간을 포함하여 80m에 이르는

대형 건물이었다.

상당한 부를 가진 사람들이 살았던 거리였다는 것과

당시 말라카는 향신료 무역으로 크게 번성했을 것으로 능히 짐작된다.

위 그림은 도로변에 따라 당시 지어진 건물 형태이며, 우측 하단 그림의 왼쪽이 건물 입구이고 옆면이 길게 이어지는 전통적 가옥의 구조를 설명한다.


식민지 시절에 준설된 길고 구불구불한 수로에

배를 띄워 관광객을 태우는데

불행하게도 라마단 기간 중이라 배를 탈 수 없었다.

대신 수로를 따라 호텔에서 구도심지 중심까지 걸었다.

수로 주위는 잘 가꾸어져 있고

말라카 유명지로 알려진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수로에 따라 배치된 카페와 음식점들이 손님을 부른다.


수로를 따라 걷는 동안 음식을 싸들고 와서

밴치에 앉아 있는 가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라마단의 금식이 끝나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7시 반 아랍어 방송이 들리자 음식을 펼쳐놓고 먹기 시작했다.

라마단은 이슬람 신자의 5대 의무 중 하나로

한 달간 이루어지는 금식행사이다.

해가 떠있는 동안은 음식물을 취하지 않고

해가 지고 나서야 금식을 끝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절박한 기아를 체험하고 가난한 삶을 이해하며

절약한 음식으로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


늦은 오후 해안 인공섬 위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다.

사원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무슬림 원칙에 따라

반바지를 입은 나는 무릎을 가릴 수 있는 긴바지와

아내는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감쌀 수 있도록

붉은색 차도르를 빌려 입고 입장했다.

중동과 말레시아 건축 양식이 융합된 모스크의 내외부를 살펴보았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아치형 아름다웠다.

특히 해 질 녘에 해양 모스크는 아름다운 석양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찬란했다.



중국과 말레이 음식과 문화가 융합된

페라나칸 요냐 음식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말라카에서

다양한 음식을 찾아먹고 여러 맛집을 순방했다.

어묵과 야채로 맑고 깊은 맛을 낸 쌀국수,

얼음에 삶은 팥과 녹색국수를 얹고

코코넛 밀크와 원당을 넣어 만든 챈돌,

던킨도너츠보다 맛있다는 쫄깃쫄깃한 도넛,

야시장의 만두와 꼬지.

꼬지에 꿴 돼지, 닭고기와 각종 야채를 진한 땅콩소스 국물에 익혀 먹는 사태 츨룹 전문식당과

길거리 음식인 숯불에 굽는 꼬지만을 파는

유명 식당에서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맛집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풍습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열대지방이지만 가격이 비싼 무산킹 두리안,

예전 가족 전체가 한 달 동안 마닐라에 머물 때

한 통으로 며칠 내내 먹었던 추억이 담긴 잭프룻,

우리나라에서는 한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복숭아 등

열대과일도 챙겨 먹었다.




미지의 말라카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정리되지 않은 낡고 지저분한 작은 소도시쯤으로 생각되었다.

옛 도심지 거리와 수로를 걸으면서 서양인들의 야만을 확인하고

사의 흔적과 혼합된 문화의 계승,

수작업으로 상품을 제작하고 음식을 만들어 내는 모습과

친절한 그랩 기사들로부터 흥겨움과 정겨움을 함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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