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랑 Nov 12. 2019

돈과 관계

가장 어려운 거라 하지만 애초에 쉬운 건 하나도 없찌이

요즘 내 수입의 목표를 잃었다. 써야하는 가 모아야하는 가. 여행도, 맛집도, 일상의 기념품(=명품이나 등등)도, 집도, 아무 것도 원하는 게 없으니 모으는 것은 물론, 쓰는 것도 재미 없다. 어쩌면 쓸 수록 고통 받는다. 그래도 어플에서 알려주는 몇 자리의 숫자에 자신감만 넘치다 보니 그냥 그렇게 영혼없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걸어다니는 시체라는 말이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닌가보다. 여행을 가는 것보다 일상이 더 소중해졌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긴 하지만 여행에서의 새로움에 더이상 큰 자극을 받지 못한다. 그냥 다른 나라가서 한달 정도 살거나 그런 거는 해보겠지만 딱히 목표를 잡고 그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상태는 아니다.
한동안 먹는 거에 아낌없이 쓰면서 찾아다녔다. 근데 눈 앞의 짧은 행복은 어찌나 짧게 끝나던지, 그리고 찾아온 반 강제적 식욕 저하로 인한 간헐적 단식에 stuffed되는 느낌에 더욱 스트레스 받는 요즘이라 이것도 끝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 엄청나게 실망시키는 뉴욕의 오버프라이스된 식당들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미슐랭들까지도.
원래부터가 물욕은 없었다. 내 강렬한 물욕은 어릴 적 피아노학원다닐 때 다섯개의 사과나 포도를 색칠하는 그 수첩이 언제나 새 것이었으면 하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비싼 돈 주고 사는 명품은 아직 가지고 다닐 자리도 없고 20살 선물로 받은 지방시 백이 생각만큼의 환상적이진 않고 그냥 가죽과 지퍼의 조합인 ‘가방’인 걸 안 이후론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이젠 눈에 들어오는 옷들도 막 딱히 없다.
내집마련도 원래 내 취향과 안맞았달까. 떠돌이 생활을 좋아하지만 비행기와 숙소에 돈 쓰는 게 그렇게나 아까울 수가 없고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요즘 욜로 세대의 표본인 나이기에 ‘어차피 100원 200원 아껴가며 모아도 집 못사요~’다. 죽을 때 집을 가져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경험에 더 투자하겠다. 지금 룸메이트 생활도 가끔 혼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350불을 뛰어 넘을 정도는 아니다. 지금도 충분히 혼자의 생활인 걸
결론적으로 돈도 돈인데 내가 원하는 게 아니어서. 백만장자가 되고 싶진 않다. 돈은 그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는 수단이며 생존하게 해주는 것, 새로운 곳에 갔을 때의 보호장치에 불과하니까. 경험과 흔히 말하는 ‘클라스’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본질은 챙기는. 정말 불가능한 걸까. Sustainable Development, Resilience 같이 이상에 불과한 것일까.



요즘 관계에 대해 방황 중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것도 맞긴하지만, 관계가 사람과의 것만이더냐. 동네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반 년 동안 충성한 레스토랑이 있는데 변했더라. 그 레스토랑 인스타그램 언팔하는 게 전남친 언팔하는 것 보다 더 힘들다니. 반 년 중의 반은 미련이었던 게지. 못 먹는 게 많고 식욕이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집한채라도 아꼈을텐데, 합법적인 몰리와 뭐가 다른가.
다들 유학생으로써의 나와의 관계에 벽이 보인다.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으로써의 벽이겠지. 그런데도 평생을 같이 하겠다며 결혼한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 그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나만의 쿠션인 마음의 벽이 요만큼도 없을 거라 생각이 들진 않으면서도 에이 그러겠지 하는 중. 여전히 나는 소비되어지있고 앞으로도 소비되겠지. 남들보다 방어막이 낮은 데 뭐 후회는 없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훌훌 털어낸다면. 포스트 말론에서 샘 스미스로 거듭나는 지점이랄까.
작년에도 이맘 때였지. 일년에 한 번 정도는 그 힘듦이 찾아오는 것 같다. 근데 갈수록 짧아지는 중. 작년에는 그만하기 싫은 데 포기해야하나로 고민해서 더 힘들었다면, 올해는 그래도 포기각은 애초에 치워버렸으니 조금 빠르게 회복한 것 같다. 분명 좋은 것 같은데 씁쓸한 건뭐지.
딱 정확히 작년 이맘 때의 포스팅을 보니 ‘현타를 걷어내니 사람들이 찾아오더라.’가 있다. 작년엔 무슨 현타였으며 무슨 사람들이 찾아왔을까. 한국 나오기 두달 전에 그 소비하는 관계의 사람들을 다 끊어 낼 때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권태에 오랫동안 있다보니 이젠 뭘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모르겠고 예전엔 뭘 그렇게 열심이었나 싶다. 너무 인생의 진리를 빨리 깨달은 걸까, 너무 빠르게 나이가 든 걸까. 고것이 다 고것이고 허영 따윈 원래 없었으며 열렬하던 해외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라는 마음이 든다. 되감기 하긴 싫고 빨리감기 하기엔 너무 게을러져버렸고.
유럽여행이후로 이런 게 커져버렸으니 유럽여행이 문제인 것인가. 내 환상이 깨졌기도 하고 100% 나만의 여행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나 혼자였다면 못했을 경험들을 많이 했다.



에잇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 _ /)

작가의 이전글 유일하게 있는 손재주라곤 글자를 쓰는 걸 좋아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