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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Nov 29. 2023

매일 그리운 그 곳 '부킷라왕'

Dedi, we miss you so much. 

Dedi는 부킷라왕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난 이였다. 메단에서 부킷라왕으로 이동하는 쉐어택시를 예약했던 여행사의 직원이었던 그는 우리를 픽업해 사무실로 데려가는 임무를 맡은 사람으로 보였다. 인도네시아의 첫 도시였고 진짜 여행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시점이었기에 그를 따라가면서도 긴장을 늦출수가 없었다. 그는 작은 사무실에서 부킷라왕의 필수 일정인 '정글투어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줬다. 나는 그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좀 더 고민해보고 결정하겠다며 어정쩡하게 일어섰다. 쉽게 결정하기보단(쉽게 속지않겠다) 좀 더 알아보고 합리적으로(좀 더 싼 가격에) 결정하고 싶어 그의 말을 빨리 마무리짓고 이 사무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앗 그런데 이 아저씨. 우리를 따라 나선다? 내 배낭을 들더니 꼬꼬마의 손을 잡고 숙소로 데려다주겠다며 앞서간다. 부킷라왕은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마을이 형성되어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말도 안되게 허술하게 만들어져있어 코웃음이 날 정도였다. 데디가 아이의 손을잡고 강 건너편 호텔까지 우리를 데려다 줬다. 그리고는 자신의 왓츠앱 번호를 남기고 떠났다.


짐을 풀고 간단히 밥을 챙겨먹은 뒤 아이들과 마을 산책을 나섰다. 경계심과 긴장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조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을 다 걸어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만큼 작은 마을은 온통 초록이었다. 정글은 아직 가지도 않았지만 마을 자체가 자연 그 자체였다. '부킷라왕' 이라는 도시는 인도네시아 여행을 결심하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고 여행 일정을 짜면서도 이름이 입에 익지않아 몇번이나 이름을 검색 했던 곳인데 단 몇시간만에 나는 알게되었다. 내가 이 곳을 오래도록 그리워하게 될 거란 걸.

     

부킷라왕은 길에서 원숭이를 쉽게 만난다.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게 문제라면 문제. 다리 위에, 호텔 레스토랑 주변에, 심지어 호텔 방문앞에도 앉아있어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첫날 저 다리위에서 원숭이를 처음 만났을 때 아이들은 소리를 질러대고 나도 겁을 잔뜩 먹었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고 급한 마음에 데디에서 왓츠앱으로 챗을 했다. 우리가 다리를 건너도 되는건지, 혹시 저 원숭이가 우리를 해치진 않을지. 어디든 물어볼데가 필요했으니까. "It's okay. Just don't make eye contact." 정글투어 예약도 거절했는데 빠르고 친절하게 답해주는 데디에게 마음이 조금 열린 순간이었다. 그래서 또 물었다. 혹시 런더리가 마을 어디쯤 있는지 알려줄 수 있냐고. 그랬더니 거기까지 데려다줄테니 호텔 앞에서 만나자는거다. 이내 또 경계심이 발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그렇게 경계했을까 싶은데 아이들과 여행하는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이었다. 특히나 동남아 여행에서는 흥정을 해야 할 상황들이 많은데 그게 나의 경계심을 더욱 발동시키는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혹시나 사기를 당하거나 바가지를 쓰지 않을까, 이 사람을 쉽게 믿으면 내가 손해를 보게 되는게 아닐까 의심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여행 초반이라 특히나 의심레이더가 심하게 돌아갔고 그게 내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있었다. 


데디는 호텔앞에서 우리를 만나 자신의 바이크에 우리를 태워 세탁소에 데려다 줬다. 처음 바이크를 타본 아이들은 신이나 소리를 질러대는데 나는 이 사람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 지금 생각하면 호의를 의심했던 것이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이 정도 도움을 받았으면 정글 투어는 그와 함께 해야하는거라는 생각이 들어 데디와 함께 다음날 정글투어를 하기로 했다.


정글투어는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라 간단히 반나절 투어를 진행했다. 아침에 일찍 오르기 시작해 3~4시간 가량 정글을 탐험하고 강에서 튜브를 타고 마을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아무리 간단한 루트라 하더라도 아이들에겐 덥고 습한 숲에서 걷는 게 쉽진 않지. 꼬꼬마는 내내 가이드인 데디에게 안겨있거나 목마에 타고있거나 업혀있었다. 정글에서 오랑우탄과 여러종류의 원숭이, 정글에 사는 산거북이도 만났다. 데디는 부킷라왕에서 정글 가이드 일을 하면서 일이 없을땐 드라이버로, 그리고 마을에서 작은 레스토랑과 숙소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투어가 끝나면 투어 가이드의 임무도, 내가 가이드로 고용했던 계약관계도 끝이 나는게 일반적인데 데디는 계속 우리를 도와줬다. 세탁소에 맡겨둔 빨래를 찾아다 주고, 마을을 산책하다가 길을 잃은 우리를 데리러 와주고, 정글투어 다음날은 뭘 할건지 여행의 전체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줬다. 부킷라왕에 머무는 내내 우리셋 모두 건강한지 문제없이 잘 지내는지 체크를 했다. 데디는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인도네시아에서 처음으로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  


건기 시즌이었지만 매일 밤 폭우가 쏟아졌고 매일 아침 또 언제 그랬냐는듯 맑게 개인 하루가 시작됐다. 부킷라왕은 '정글투어' 말고는 할게 아무것도 없는 도시라고 말하는 여행자들의 후기를 많이 봤었다. 그래서 나도 가기도 나오기도 힘든 그곳에 굳이 가야할까 하고 고민했었고. 그런데 부킷라왕과 우리 셋은 사랑에 빠졌다. 작은 마을 곳곳을 알아가는 재미에 아이들도 나도 푹 젖었다. 레스토랑 이곳저곳 번갈아 가며 밥을 먹고 툭툭을 타고 로컬 시장 구경도 가고 현지인들과 함께 강에서 수영도 했다. 심지어 일정을 하루 늘려 나흘간 머물며 부킷라왕을 만끽했다. 


부킷라왕에서의 마지막 날,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데디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날은 낮부터 비가 내렸는데 저녁이 되면서 점점 더 많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식사를 시작하면서 이 빗속에 그 허술한 다리를 건너 무사히 호텔에 갈 수 있을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비는 점점 폭우가 되어 쏟아졌고 나는 울고 싶어졌다. 가로등도 제대로 없는 길과 안전바도 없이 흔들리는 나무 다리를 아이들과 건널 자신이 없었다. 걱정 속에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데 데디가 호텔에 데려다 주겠다며 유안이 손을 잡는다. 만약 데디가 먼저 도와주겠다 하지 않았다면 내가 같이 가달라고 부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했을 것 같다. 혼자서 두려움속에 그 길을 어떻게든 건너왔겠지. 먼저 헤아리고 도와준 데디의 다정함과 배려심이 더 고마웠다. 우리는 비를 맞아 다 젖은 채 호텔앞에 다다랐다. 데디는 아이들과 각각 악수하며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말했다. '미나, 여행 중에 언제든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연락해. 나는 인도네시아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도와줄 방법이 있을거야' 


나는 부킷라왕, 그곳에서 그야말로 엔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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