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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Mar 25. 2024

사모시르섬의 뚜벅이 셋

페리를 타고 토바호수 사모시르 섬에 도착했다.

토바호수는 세계 4대 호수 중 하나다. 바다같은 호수 한 가운데 떠있는 사모시르 섬은 그 크기가 싱가포르 보다는 조금 작고 서울보다 크다고 한다. 분명 숙소 선착장에 바로 내려준다더니 소통이 잘못되었는지 내린곳에서 숙소까지 거리를 찍어보니 30분이나 걸어가야 했다. 배낭을 각자 메고 숙소까지 그늘 하나 없는 길을 걷는다. 섬은 논과 밭이 넓게 펼쳐진 조용한 시골이었다. 토바호수는 여행자가 많은 곳이랬는데 어쩐일인지 여행자는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국인 여행자의 후기를 보고 미리 예약해두었던 숙소는 아주 관리가 잘되어 깨끗하고 조용했다. 숙소는 편의시설이 모여있는 여행자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이들과 오후에 천천히 걸어 마을 중심가로 나가 피자를 사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들의 성화에  베짝을 타려고 흥정을 했으나 너무 비싸 결국 또 셋이서 걸어서 돌아왔네. 섬 안은 대중교통이 많이 없다보니 너무 비싸다.(며칠간의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생겨버린 교통비의 기준에 비해..) 앙꼿은 아예 없고 베짝만 몇대 있었는데 독과점인셈이라 값을 높게 불렀다. 보통의 여행자들은 1day tour를 하거나 바이크를 빌려 섬을 다니는 것 같았다. 여행중에 어떤 경우에도 직접 바이크를 운행하지는 않겠다는 약속을 한 나는 결국 비싼값에 베짝을 타거나 투어를 해야하는데 어느쪽도 탐탁지 않은데다 숙소는 또 좀 동떨어진 곳인거 같아 잘못구했나 싶고.. 혼란스러웠던 토바호수의 첫날. 그래도 어쨋든 호수는 아름답구나.


배낭여행 11일차, 사모시르섬 이틀째날

날씨는 좋고 호수는 예쁘고 풍경을 보며 앉아만 있어도 행복해졌다. 내가 여기 이곳, 토바호수에 있다.


아침에 숙소 근처에 있다는 산속 까페을 찾았다가 주인이 없었던 탓에 모기에만 잔뜩 물린채 내려와 걸었다. 아이들은 더운데 걷느라 짜증이 났고 나도 그런 아이들 때문에 화가 났다. 여행중에는 아이들의 힘듬이 이해가 되다가 둘의 투정에 나도 지치다가를 반복한다. 그럴때의 해결책은 간식이지. 셋이 투덜대며 걷다 발견한 작은 로컬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고 모두 해피해졌다는 이야기.


밥을 먹고 힘을 내 조금 더 걸어 Huta siallagan 이라는 박물관에 갔다. 사모시르 섬에 살던 민족인 바탁족의 의식주에 대해서 아주 짧게나마 살펴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바탁족의 역사적인 의미 따위 아이들은 관심이 없었고 그저 포토존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고 놀았네.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니 걸어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싶어졌다. 베짝을 흥정하려고 해봤지만 역시나 높은 값에 망설이다 자꾸만 더 걸었더니 어느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왕 이렇게 된거 베짝 흥정을 포기하고 일단 ferry 터미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고 기다렸다. 터미널 이니까 베짝이 언젠가 들어오겠지 싶었던 것도 있고, 아이스크림 사먹고 충전된 애들을 어르고 달래서 다시 걸어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 모먼트에서 우리 진짜 여행 잘하고 있구나 느낌) 그렇게 앉아있다 베짝을 적당히 흥정해 호텔로 돌아왔다.


"뚜벅이 여행자의 용기로 만난 부킷베타"

이른 점심겸 저녁을 먹은 우리는(아니, 나는) 걸어서 부킷베타를 가보기로 했다. 후기에는 여행자들이 바이크로 많이들 가던데, 뚜벅이인 우리는 걸어가 보기로 한다. 그런데 부킷베타는 내 생각보다 너무 멀었고 내 예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얼마나 더 가야해?' '언제 도착해?' '제대로 가고 있는 건 맞아?' '길 잃어버린 거 아니야?' 하는 말을 서른번쯤 듣고서야 부킷베타에 도착했는데 아이들이 생각하기에도 그곳에서 보는 토바호수의 풍경이 말도 안되게 멋졌는지 한참을 앉아 토바 호수를 내려다봤다. 셋이서 타이머를 맞추고 점프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웃겼던지 제대로 나온 사진은 없고 깔깔 웃었던 기억만 남았다. 여행의 진짜 소중한 순간은 이런 순간이지 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내려오니 이미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 아침부터 종일 걸어 지친데다 어두워지니 가로등 없는 시골길은 잘 보이지도 않고 나부터 겁이 조금 난 상태였다. 이걸 어쩌나 싶었지만 아이들이 있으니 겉으론 씩씩한 척, 도저히 안됨 히치하이킹이라도 해봐야하나 머리를 굴리며 걷는다.


그렇게 걷는중에 짜잔! 천사처럼 나타난 Nangkok!!

이 섬에서 뚜벅이로 아이 둘과 걸어다니다 보니 의도치 않게 여러 드라이버들에게 "너네 투어 갈 생각없어?" 하는 제안을 받는데 그냥 대충 웃고 무시하며 걷는데 익숙해진 참이었다. Nangkok도 오늘 낮에 걷다가 길에서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오토바이 드라이버였다. "야! 너네 어두운데 어딜 가는거야?!!!" 하며 알은체를 하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태워준다는 말에 우리셋은 얼른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종일 베짝 가격을 흥정하며 다닌 나였지만 그 순간만은 이 드라이버가 얼마를 달라고 해도 상관없다 라고 생각했었다. Nangkok은 우리 셋을 숙소에 내려주고는 페이를 하려는 나에게 "내가 태워주고 싶어서 태워준거야. 돈을 받으려고 한게 아니니까 괜찮아" 라고 하더니 떠났다. 아, 이렇게 또 한명의 Angel을 토바에서 만났다. 여행은 이런 맛에 다니는거지. 좋은 우연과 인연을 많이 만난다. 우리 셋, 토바에서의 또 하루를 꽉 채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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