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게 된 얼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 하나를 다녔다. 오랜 기간이지만 도서관에 대한 기억은 몇 가지 뭉텅이로 요약될 수 있다. 시골 깊숙이 그러니까 사람이라곤 할머니, 할아버지들 뿐인 골짜기에서 아빠는 얼마간 목회를 했었다. 한 대여섯 살이던 나와 오빠 그리고 언니도 얼마간은 그 교회를 함께 다녔다. 오전시간의 예배를 다 드리고 나면 우리는 그다지 입맛에 맞지 않는, 나물반찬이 가득한 점심을 먹었고 오후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작고 조촐한, 할머니 냄새가 나는 방에서 올망졸망 모여 전국 노래자랑 같은 것을 계속 봤다. 반들반들한 장판이 깔린 옅은 회색빛의 방바닥과 꽃그림이 그려진 철 쟁반들,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끝없는 지루함… 할머니집의 분위기는 친할머니가 함께 사는 우리 집이 아니라 그 낡고 하얀 교회에서 체득한 것일 것이다. 이끼가 가득 자란 오래된 교회 냄새는 거기서 말고는 맡아본 적이 없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부모님은 어울릴 또래 없이 교회에 다니는 우리가 불쌍했던 모양인지 우리를 시내에 있는 한 교회로 보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대한 기억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이 우리를 위해 정해준 교회는 도서관과 걸어서 10분 거리였고, 시내 교회에 우리를 내려다 주고 시골교회로 먼 길을 떠나는 부모님의 차 꽁무니가 작아지는 게 보이면 우리는 때때로 교회를 땡땡이치고 도서관의 어린이 열람실에서 오싱, 그리스로마 신화, 짱뚱이 같은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니 도서관은 말 그대로 우리의 아지트이자 놀이터, 그리고 약소한 일탈의 공간이었다.
어느 날은 교회에서 하는 달란트 잔치에서 사 온 닭꼬치 같은 것을 포일로 겹겹이 싸서 가방에 잘 싸매고 와 도서관의 구석진 한 모퉁이에서 고양이처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그 교회와 시내는 아주 편하지는 않았고, 나는 머리 둘 곳이 별로 없는 거리의 떠돌이 개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이 그나마, 어설프고 어수선한 노인 쉼터처럼 일시적인 거처가 되어주고 있었다. 특유의 어수선함은 책을 피고 책장 사이의 아늑한 어둠에 앉아 키득거리는 순간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나이 든 사람들이 드나드는, 어린이 도서관에서 한 10걸음 되는 일반 열람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높은 글자들을 선망하고 탐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후로 기억은 잠시 끊긴다.
해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로 같은 도서관에서 대학 입학 준비와 어학 과외를 시작했다. 이 기억은 한 사나이에 대한 이미지를 동반한다. 그 사나이는 도서관 3층에 머문다. 책을 읽을 여유와 함께 꿈과 희망이 있는 도서관 1층을 지나면 주로 돋보기를 낀 할아버지들이 가득한 2층이 있다. 1층에 어린이, 젊은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때때로 젊은 이삼십 대들이 있다면 2층에는 꼬장꼬장해 보이거나 너그러워 보이거나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노인들, 그러니까 신문을 읽는다던지 잡지를 본다던지 컴퓨터를 이용하는 나이 든 사람들이 주로 있었다. 2층의 분위기는 낮잠 그 자체였다. 그래서 화장실이 급하다던지, 책을 읽을 것이지만 낮잠에 들어도 좋겠다던지 할 때는 여김 없이 2층으로 향하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 3층에는 대충 반팔티에 후드집업을 껴입고 편한 바지를 골라 입은듯한, 눈 마주치기를 꺼려하는 고시생 및 공시생들이 주로 있었다. 3층 한편에는 독서실 책상이 빼곡히 들어선 열람실이, 다른 한편에는 북카페로 갓 개조한 공간이 있었는데 공시생들은 하이얀 책상들이 있는 열람실을 드나들었고, 친구들과 히히덕거리며 공부를 하는 중고등학생들 몇몇, 은퇴하고 제2의 삶을 개척해 보려는 듯 문제집을 펼쳐든 중년 몇몇, 벙거지 모자를 쓰고 시집이나 에세이집을 읽는 나른한 아주머니들, 무슨 공부를 하는지 의뭉스러운, 날 포함한 떨거지 몇몇은 북카페를 드나들었다. 3층의 분위기는 열람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험의 분위기에 삭막함을 숨길 수 없었다. 20대가 되고 나서는 나도 이 3층을 주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3층 개중에는 낯이 익을 수밖에 없는 얼굴도 있었다. 바로 기름에 찌든 것인지 푸석한 것인지 모를 아주 새까만 머리에 비슷하게 새까만 뿔테 안경을 끼고 도서관을 다니는 한 남자의 얼굴이다.
마른 몸집을 가진 그를 도서관에서 본지는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니 그는 족히 40대 후반 또는 50대 정도일 것이다. 왠지 몸의 일부처럼 보이는 누런 금색 시계를 차고 어두침침한 밤색 외투와 바지, 빛이 바래서 그런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를 상아색의 상의들을 입고 다니는 그는 누가 봐도 독특한 인상을 준다. 언젠가는 그의 정체가 궁금해 열람실 통로를 지나며 흘깃 쳐다봤는데 그는 정체 모를 한자로 된 책을 읽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젊었을 때 눈이 반짝거렸을 것 같고, 지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잘 생긴 얼굴이었을 것 같은 사람이다. 그런 그와 단 한번 말을 섞어 본 적이 있는데 한창 도서관 밖 벤치에서 과외를 하고 있을 때였다. 기억을 짚어보면, 그는 나와 내 앞의 성인 학생에게 반가운 기색을 하고 말을 걸어왔는데 무슨 언어를 배우냐는 것이었다. 내심 그와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반색했다.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것은 그가 서울대 불문과를 다녔다는 것.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이 애석하지만 그는 적극적인 뉘앙스를 띈 몇 마디 말을 더 했고 경계심을 가진 과외학생은 그에게 얼른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대화를 중단했다.
그는 커피 자판기 앞에서 동전을 세고 종이컵에 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얼이빠진 사람처럼 들고 창밖을 응시하곤 했다. 그러나 언젠가 커피 자판기는 사라졌고 도서관 앞에 있던 매점마저 파란색 편의점으로 대체됐다. 3백원하던 커피가 거의 2천 원이 됐으니 커피는 비싸도 너무 비싸졌다. 아저씨와 항상 함께 담소를 나누곤 했던, 한자 선생님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다른 아저씨도 한 명 있었다. 포트폴리오 가방을 들고는 시원해 보이는 반팔의 셔츠를 입고, 날이 추워지면 항상 같은 회색 블루종을 입는 아저씨다. 눈은 살짝 매섭지만 소심하거나 수줍어 보이기도 하고… 안경을 낀 아저씨가 서구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면 포트폴리오를 든 아저씨는 완전히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두 사람은 종종 만나 담소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언젠가부터 따로 있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인다.
이후로 형제들과 나는 추측해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나리오를 종종 얘기해 보곤 했다. “오랫동안 고시를 준비하다가 계속 낙방한 고시 낭인이 아닐까” “고시를 준비하다 정신을 살짝 잃어버린 게 아닐까” 등등… 우리가 이야기하는 불행들은 너무나도 전형적인 것이라 사나이의 인생이 이 단순한 분류에 속하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내가 무엇을 바라고 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또 순진한 생각을 아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10년 동안 간간히 목격한 그의 행적은, 좋게만 생각하기엔 어떤 확실한 몰락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도서관 앞에서 서서 담배를 피던 아저씨는 최근 들어 비석 같은 것 앞에 쪼그려서 담배를 피운다. 그 연기는 더 푸석거려지는 것만 같다. 오빠는 아저씨가 사르트르를 닮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사르트르도 도서관 같은 곳을 자주 들락거렸으려나…이 오랜 타인을 보는 감정은 복잡하다. 왠지 모를 민망함에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겠다. 나는 할 수 없이 그를 지나쳐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