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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Nov 29. 2020

내 탓을 멈춰 주세요

세상엔 그냥 일어나는 일도 있습니다

이사를 했다. 약 한 달 간의 인테리어 공사를 잘 마치고, 꼼꼼히 마감 검수를 한 다음 날 바로 이삿짐이 들어왔다. 잘 고쳐놓은 집에 상처 내는 것이 싫고 가구가 상하는 것이 싫어 돈을 조금 더 주고도 평이 좋은 업체를 선택해 이사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엉망이었다. 바로 며칠 전 새로 바른 도배지가 군데군데 찢어지고, 공들여 고른 마루가 상했다. 심지어 화장대는 다리가 동강, 부러졌다. 맙소사. 어째서 이런 일이. 망연자실했지만 별 수 없었다. 인테리어 업체에 이야기해서 보수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겠다고, 화장대 다리는 비싼 게 아니니 일단 가시라고 이사 업체 직원들을 보냈다. 어떻게든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은근히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순간적으로 이명이 돌아왔다. 지끈지끈한 머리를 싸매고 소파에 길게 누워 있다가, 저녁 즈음 제주에서 걸려온 남편의 전화에 상황을 설명했다. 업체를 좀 더 잘 알아볼 걸 그랬어, 감독을 좀 더 꼼꼼히 할 걸 그랬어, 하는 아쉬움의 말도 덧붙였는데 남편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 네 잘못이 아닌데 왜 네 탓을 해. 덤덤하게 던진 말이 수화기 너머로 날아와 내 마음에 콕 박혔다. 그러게. 내 잘못도 아닌데, 난 왜 내 탓을 하고 있을까.


인생의 곡선에 굴곡을 남길만한 일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온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때에 불쑥 찾아오는 건 행운이든 불행이든, 기회든 실패든 모두 마찬가지인데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땐 이 좋아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 이유를 찾는다. 왜 실패했을까, 왜 이렇게 됐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도대체 왜. 사실 대부분의 경우 한참 고민해봤자 그럴싸한 답을 찾긴 어렵다. 인생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의 대부분이 그냥, 어쩌다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 찾을 수 없는 마땅한 이유를 찾고, 찾고 또 찾다 보면 결국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간다. 다른 사람들에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문제인가? 내가 잘못했나? 깊이 파고들수록 내 자신에 대한 신뢰는 불안정해다.


남편을 만나기 전 만났던 남자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는 나를 만나면서도 도우미가 나오는 노래방에 갔었고, 그걸 들켰다. 처음엔 화가 났다. 미친 거 아닐까.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나고 배신감에 미칠 것 같았지만 며칠을 두고 그 일을 곱씹으니, 내가 상처 받은 건 모두 내 잘못이고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사람을 잘못 보고, 잘못 고른 나의 잘못. 나쁜 놈인 걸 일찍 알아채지 못한 나의 탓. 나는 이미 헤어진 그를 증오하는 대신 앞으로는 누군가를 만날 때 오랫동안 지켜보고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 확인한 뒤에 관계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는 없는 법이고,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도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나를 지킨 것이라 생각했다.


내게 생긴 나쁜 일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나를 바꾸기로 결심하는 것이 걱정이 많고 쉽게 상처 받는 나 같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예방책인 줄 알았다. 내가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나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 너무너무 속상하고 아프니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바뀌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조금쯤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미워해도 별 수 없고 내 마음만 괴로운 사람을 더는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내가 더 조심하면 되는 거구나. 그게 더 편하구나. 이후로 나는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했다. 더 이상 상처 받지 않도록, 나를 지킬 수 있도록 나는 더 자주 나를 들여다봤다. 이런 일은 왜 생겼지? 내가 부주의했구나. 저 일은 왜 생겼지? 내가 호구처럼 굴었구나. 어떤 때는 주변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도 그다지 힘들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네. 이게 그렇게 힘들 일도 아닌 건가? 아무렇지 않게 털고 넘겨도 될 일인데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가? 내가 나약한가? 그러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해서 불평하고 징징대고 있는 걸까? 유난을 떨고 있는 걸까? 툭툭 털고 내 갈 길을 가면 되는 건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바보 같은 걸까? 그렇게 내게 일어난 일들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고, 나를 들여다보고 고칠 부분을 찾아내는 동안 나는 내 감정에 대한 확신을 잃었다. 나는 스스로를 검열하고, 행동에 제한을 두었다.


나를 혼자만의 생각에 가둔 덴 다른 사람에게 힘든 일을 쉽게 털어놓지 않는 내 성격도 한몫을 했다. 다들 살기 힘들고 팍팍한데 우는 소리를 해서 뭐해. 주변인들에게 마음의 짐을 지우지 않으려 혼자서 내게 일어난 일들을 곱씹었고, 옳지 않은 방향으로 생각의 굴을 파고 들어갔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며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깨달았다. 내가 판 굴은 방향이 틀렸다. 그 굴은 파면 팔수록 나를 고립시키고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하나 같이 목소리가 커져 지나간 사람을 욕하는 친구들을 보며 알았다.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전 남자친구가 노래방에 드나들었을 때, 나는 충분히 화를 내고 그를 미워해도 됐다. 그런 노래방에 드나드는 것이 별 것 아니라 생각되는 사회 분위기를 탓해야 했다. 시간을 두고 내 마음이 풀릴 만큼 분개해도 좋았다. 나를 괴롭게 했던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분노해도 괜찮았다. 내 탓만 하고 있을 일들이 아니었다.


어난 모든 기분 나쁜, 상처가 되는 일들에 대해서 타인에게 화를 내거나 분노를 표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친절이 세상의 모든 나쁜 것을 이긴다고 생각하니까. 다만 나는 나 자신에게도 좀 더 친절할 필요가 있었다. 골똘히 생각해도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저 그냥 일어나는 일도 있으려니 넘길 줄도 알아야 했다. 그런 일이 다시 반복되는 걸 막으려면, 더는 상처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골몰하고 고민하고 방법을 찾지 못해 내 생각과 행동을 옥죄기보단 있는 힘껏 슬퍼하고 화내고 우는 편이 나을 때도 있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인정하고 그럴 수도 있다고 다독이는 건 내게 베푸는 친절이었다. 그 친절이 끝내 상처와 후회를 이길 거라는 확신을 가져야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사를 마치고 난 뒤, 나는 또 제대로 감독을 하지 못했던 나를 탓했다. 그러나 내가 감독을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졌을까? 내가 크고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에 대해서 뭘 안다고. 분해해서 들고 올 수밖에 없었던 시스템 장을 재설치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뭘 안다고. 그러니 그냥 큰 일을 치르다 보니 이런 사고가 생겼구나, 하고 생각하면 됐다. 내 잘못이 아니라 생각해도 괜찮았다. 정말 속상하네, 마음껏 심난해 한 뒤 해결책을 찾아 차근차근 해나가면 됐다. 인테리어 업체에 보수가 가능한지 묻고,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확인하고, 이삿짐 업체와 협의를 한 뒤에도 조금 더 아까워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음엔 다른 이사 업체를 이용해야겠다는 배움과 좀 더 꼼꼼히 이사 현장을 지켜봐야겠다는 결심은 조금 나중으로 미뤄둬도 괜찮았다. 내 탓 같았던 건 내 머릿속의 생각일 뿐이었고, 이게 진짜 현실이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내 탓을 멈추기로 결심했다. 어느 순간 또 삽을 들고 굴 속으로 기어들어가 깊게, 더 깊게 내 탓의 굴을 파고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걸 깨달은 순간 얼른 그 굴에서 뛰쳐나오기로 했다. 애초에 삽을 드는 그 순간을 방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니,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지?'라는 의구심이 찾아오는 순간 그 모든 생각의 회로를 멈추기로 했다. 거기서 멈춰. 세상엔 그냥 일어나는 일도 있어. 내 잘못이 아니야. 거기서부터 내게 베푸는 친절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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