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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Nov 27. 2020

유기견이란 단어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당신의 삶을 조금쯤 내어줄 수 있을 때, 입양하세요

보리는 올해로 아홉 살에 돌입한 갈색 푸들이다. 그녀는 독립적이고 도도한 강아지로,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 이곳저곳에 동그랗게 누워 혼자 낮잠을 자는 데 쓰며 누군가 자기를 귀찮게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가족들은 그런 그녀의 매력에 홀려 그녀 앞에서 구애의 춤까지 춰 가며 그녀의 관심과 사랑을 구걸하곤 하는데, 하도 까불어대서인지 이제 그녀는 재롱을 떠는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녀를 웃게 하는 것은 오로지 산책과 간식, 우다다 타임, 그리고 오랜만에 본 사람뿐. 강아지는 사람보다 체온이 높아 그녀가 몸을 기댈 때면 맞닿은 부분이 따뜻해지고 그 온기에 기분까지 스르르 녹아내리는데, 이마저도 한겨울, 그녀가 원할 때만 누릴 수 있는 한정적인 행복이다. 그녀 큰 맘 먹고 누군가에게 엉덩이를 붙이고 온기를 나누어 줄 때면, 선택을 받은 사람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녀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성인이었다. 막내까지 스무 살에 접어들어 대학 생활과, 취업과, 돈과, 미래와 그 엇비슷한 부류의 어두운 것들에 각자 골몰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나타났다. 빨간 담요에 쌓여 우리 집에 들어선 그녀는 아주 작았다. 약 1.2kg의 보들보들한 털뭉치. 태어나 처음 본 그토록 작고 보드랍고 약한 존재. 다리에 힘이 없어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주욱, 뒤로 밀리는 그 바보 같음이 사랑스러웠다. 


여름에 태어난 그녀가 처음으로 눈을 밟은 날 우리는 환호했다. 털이 잔뜩 길어 설인 예티처럼 되었을 때나, 배냇 털을 밀고 도비처럼 변했을  깔깔대며 웃었다. 아침마다 온 방을 돌아다니며 행복을 흩뿌리고 다니는 그녀의 뒷모습 너무 귀여워 매일 아침 끙끙 앓으며 찬사를 보냈다. 그녀의 뽀뽀에 걱정과 불안과 그 엇비슷한 부류의 무거운 것들을 잊었다. 아기보다 더 아기 같은 그녀에게 혀 짧은 소리를 내고, 공주보다 더 공주 같은 그녀에게 뭐든 갖다 바쳤다. 녀는 우리 가족에게 주는 사랑의 기쁨을 가르쳐주기 위해 우리에게 온 것 같았다. 너희는 서로 더 사랑해야 해. 나를 돌보듯 서로를 돌봐야 해. 바깥에서 묻어온 서로의 상처를 호호, 불어줘야 해. 그게 가족이고 사랑이야. 그녀와 함께하는 매일, 그녀는 가족들에게 그간 잊고 살았던 사랑을 가르쳐 일깨우는 듯했다.


그런 그녀와 함께하면서 자연스레 유기견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2년, 처음 보리가 우리 집에 올 때쯤엔 유기견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그다지 큰 이슈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이라 내가 반려견 문제에 깊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체감으로는 내 주변 지인들이 강아지를 키운다는 소식이 많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유기견 문제도 점점 더 뜨거운 화두가 되어 갔다. 보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보리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나는 강아지를 버리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무뚝뚝했던 내 아버지가 보리를 '사랑아'라고 불렀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딸들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 없는 중년의 그도 강아지 앞에서는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우리 공주님, 사랑해요, 하며 사랑의 언어를 세상 가장 다정하게 속삭였다. 내가 직접 경험한 강아지란 존재는 내 세계에서 가장 딱딱하고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아빠까지 막내딸바보로 바꿔놓는 신비의 존재였다. 세상의 그 어떤 나쁜 이도 어떨 땐 보물 같고, 어떨 땐 천사 같고, 또 어떨 땐 아기 같은 강아지들을 소중히 대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존재를 버릴 수가 있나? 미워할 수가 있나? 괴롭힐 수가 있나? 아무리 마음이 곱지 못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약하고 사랑이 고픈 아이들을 늙고 병들었다 하여 저버릴 수가 있을까?


반려견과 가족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강아지를 함부로 대하는  물론 이해할 수 없지만, 한 순간이라도 그들과 살을 비며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을 내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책임을 지기로 결심해 데려온 생명을, 내가 지켜주지 않으면 무수한 위험에 노출되는 작은 영혼을 어떻게 가정 밖으로 내몰아버릴 수 있는 것일까? 돈이 많이 든다고, 이제 더 이상 예쁘지 않다고 버릴 거라면 도대체 왜 그들을 데려가 키우기 시작했던 걸까.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는데,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말도 안 되는 일에 분노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스로 보호소로 갈 수 있었던 아이들에겐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뜬창에 갇혀 생활하다가 입양 공고 시기가 지나면 안락사로 사라지게 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그들 중 몇이라도 보다 나은 환경에서 새로운 가족을 기다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적은 금액이라도 매달 후원을 했다. 가끔 사료와 담요, 물을 배송시키기도 하고, 일 년에 한두 번쯤 보호소로 봉사를 갔다. 그러나 여전히 길 위를 떠돌고 있는 아이들에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아이들에게 집이 되어주고 싶고, 밥을 주고 싶고, 멋진 곳에 함께 가고 싶은데 그럴 방법이 없었다. 위험에 노출된 채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을 아이들.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불안하게 떨고 있을 아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나는 미안해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쁜 인간들과 꼭 같은 종인, 아무 쓸모도 없는 인간일 뿐이라 미안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기견 캠페인은 봉사자들의 후원과 노력만으로 지속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버려지는 순간을 묘사한 마음 아픈 동영상과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SNS에 공유되지만, 그런 콘텐츠는 보는 사람에게 아주 잠깐 속상함과 미안함을 환기시킬 뿐이다. 사람들은 잠깐 슬픔을 소비한 뒤 얼른 그 끔찍한 장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프지만 마음에 불편함을 남기는 건 더 힘들기에 조금 울다가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른다. 아이들이 자신을 버리고 간 가족들의 차를 뒤따라 뛰어 오다가 이내 포기하고 마는 그런 동영상들은 절대로 반려견을 위험으로 내몰지 않을 사람들에게만 굳은 다짐을 하게 한다. 그런 이들이 나처럼 봉사를 하고 후원을 하게 되기도 하니 나름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애초에 책임감 없이 아이들을 키우다가 버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매체에서 반려견을 다루는 방식이 변했으면 좋겠다. 지금이야 강형욱 훈련사가 '세나개', '개훌륭' 등의 방송을 진행하며 반려견과 함께하는 생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나가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엽고 똑똑한 강아지들이 나와 이런저런 개인기를 하며 깜찍한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이 대부분이었다. 유튜브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반려견 관련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거의 예쁘게 미용을 하는 강아지들, 잔망스럽거나 기특한 재주를 가진 강아지들의 동영상만이 올라온다. 강아지의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는 건 책임감 없는 입양을 부추기는 동시에 그 모습을 강아지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각인시킨다. 키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강아지는 당연히 사랑스럽고 예쁜 동시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고를 치기도 한다. 절대 자라지 않는 아이 같아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동시에 빠르게 나이 들어 생기를 잃고 예민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나게 아름고 끝날까 두려운 것이 반려견과 함께하는 생활인데, 매체에서 본 강아지의 모습만으로 입양을 결정한 사람들이 꿈꾸는 강아지와의 삶은 실제와 큰 거리가 있다. 내 강아지가 늙거나 병들어 더 이상 귀엽지 않을 때 그들은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를 유기한다.


예쁘고 귀여운 모습만을 보고 입양을 결정하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가족이 되고 유기 같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정상적이겠지만, 어찌 됐건 행복한 생활만을 상상하며 강아지를 입양했다가 파양하고 마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콘텐츠들이 제작되었으면 좋겠다. 강형욱 훈련사가 출연하는 방송들에서는 대부분 공격성 있는 강아지의 행동 교정을 다루지만, 실제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사소한 문제들에 부딪히는 경우가 더 많다. 강아지마다 다른 활동량을 알맞게 채워주어야 하고, 대소변 교육과 뒤처리도 해야 하며, 오랜 시간 집을 비우거나 강아지를 혼자 두는 일이 없도록 개인의 생활을 조금쯤 포기해야 하고, 위험한 물건을 삼키지 않도록 집도 깔끔히 유지해야 한다. 매달 병원을 데려가 간단한 검진을 하고 예방 주사를 맞혀야 하며, 장모종의 경우 생활하기 편하도록 미용을 해주어야 하고 단모종의 경우 자주 털을 빗어 관리를 해줘야 한다. 공격성을 가진 대형견이 아니라도 강아지와 함께 살며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은 많고 다양하다. 우리 아이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을지는 키우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는다는 건 행복만 얻는 일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책임을 지는 일이며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인생의 일부분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콘텐츠들이 많이 제작되었으면 좋겠다.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은 사람들이 행복을 먼저 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만 해도 보리를 생각하면 그녀가 저지르는 만행들보다 내게 준 사랑들이 훨씬 많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강아지 한 마리 데려올까 봐, 말하는 친구들에게는 항상 반려견과 함께하는 일상의 어려운 점을 이야기해준다. 강아지를 키우는 건 아이를 키우는 거랑 똑같아. 네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네 노동을 들여야 하고, 네 사랑을 쏟아야 해. 우리는 가족이 다섯 명인데도 각자의 삶을 조금씩 포기했어. 요일마다 당번을 정해서 일찍 집에 들어가곤 할 정도라니까. 그러니 네가 내어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잘 생각해 봐. 네가 소중한 존재를 위해 귀찮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인간인지, 그 존재의 행복을 위해 네 삶을 조금쯤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인지. 가볍게 뱉은 말에 진지한 충고를 들은 지인들은 떨떠름한 표정이 되지만 나는 언제나 현실을 알려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아이들을 입양하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하고, 결국엔 유기견이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내 삶에 불쑥, 마법처럼 나타난 보리는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친구가 되어 주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고 싶은 동생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내 품 안에 행복을 가득 안겨줌과 동시에 내 인생 처음으로 나보다 연약한 존재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워주었다. 그마저도 즐거운, 더없이 소중한 배움이지만, 충동적으로 반려견을 들이려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기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가족이었던 반려견을 유기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이 얻은 기쁨과 행복을 기억하라고, 그건 모두 당신의 아름다운 강아지가 준 것이라고, 그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과 영원한 사랑으로 보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제발, 깨달아 주세요. 아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하고, 훨씬 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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