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내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내 Nov 23. 2020

슬기로운 주말부부 생활

서로의 비밀 일기장이 되어주는 기쁨

결혼 직후부터 지금까지, 결혼 이후의 모든 삶을 주말부부의 형태로 살오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의 일상은 결혼식을 올렸고 혼인 신고를 했다 뿐이지, 사실 대부분 1인분의 삶으로 채워져 있다. 평일엔 각자 먹을 양의 식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고 각자 쓸 만큼의 생필품을 사서 집을 채우며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엔 각자의 취미 생활을 영위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때그때 내가 필요한 것만으로 삶을 꾸려가는 게 생각보다 편해서 결혼 전엔 공감하지 못했던 '주말부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말이 이해되기도 한다. 물질적으로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평일엔 대부분 1인분의 삶만을 책임진다. 해가 떠있는 동안 밖에서 묻혀 온 괴로움과 고단함은 각자의 집에서 씻어낸다. 각자가 입은 상처는 스스로 치료하고, 며칠 꾸준히 돌봐도 나아지지 않는 깊은 흉터들은 주말에 공유한다. 잠들기 전 짧은 통화를 통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주말에 저녁을 먹으며 일주일간 모아둔 고난 보따리를 터뜨린다.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 통화를 하며 서로의 일상 이야기를 들을 땐 집중해서 공감해 주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한계 때문에, 누군가는 상처 입게 된다.


'감정의 쓰레기통'이라는 말이 인터넷을 휩쓸었던 때가 있었다. 까운 관계의 대상 중 하나를 정해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듯 토로하고, 그가 자신의 감정을 받아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행위를 말하거나 그 행위의 대상이 되는 정서적 폭력의 피해자를 일컫는 말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옮아오기 쉽고, 계속 전이되면 마음이 건강한 사람도 지치고 병들기 때문에 누군가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감정의 쓰레기통'들이 어느 순간 그 고통이 부담이 된다는 걸 느끼고 발을 빼려고 하면, 감정 전가의 주체들은 '우리는 친하니까 이 정도는 들어줘야지' 또는 '너는 내 딸이니까 엄마의 푸념 정도는 받아줘야지'와 같은 이유로 그들을 다시 주저앉힌다. 피해자들은 건강한 관계를 위해 마음이 다치지 않는 적당한 거리를 지켜내려 하다가도, 네가 아니면 누가 들어주냐는 말에 마음이 약해져 긴 시간 한 사람의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하게 된다. 어떨 땐 내가 받아야 할 상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찌르는 고통 속에서도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버틸 때도 있다. 사실 관계를 망치는 주범은 그들인데도.


장녀로 자라며 엄마의 푸념을 들으며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었다고 느낀 적이 부지기수였고,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는 친구의 쓰레기통이 되기도 했다. 내 마음이 망가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들의 부정적 감정을 받아주는 쉬운 일조차 잘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하고 마음 아프기도 했다. 엄마와의 관계는 작은 일은 적당히 공감한 뒤 잊어버리기를 실천하며 좀 괜찮아졌고, 친구와는 관계가 멀어지며 서서히 감정적인 짐을 지는 데서 벗어났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건 어떤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서로가 상처 받지 않는 거리를 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미주알고주알, 무엇이든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남편은 내게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나 친구를 만나면서 겪은 별의별 이야기를 다 전했다. 반면 나는 굳이 공유할 필요가 없다면 바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라 우리의 평일 통화는 대체로 남편이 말하면 내가 들어주는 식으로 이어졌다. 남편의 수다 중엔 친구가 겪은 나나 남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정말이지 시시콜콜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남편은 직장 선배가 에어팟을 샀다는 이야기, 사수가 부부싸움을 한 이야기, 점심 먹으며 업체 사장님께 들은 이야기까지 모조리 내게 전했다. 처음에는 남편의 모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누가 누구인지도 구분할 수 없지만 열과 성을 다해 자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남편이 신기했고, 그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일상의 많은 부분을 나와 공유하고 싶었던 그와 최대한 그의 주변을 살피고 싶었던 나의 노력에도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큰 장애물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바로 '주말부부'라는 거였다.


남편은 예전 직장을 다니면서 굉장히 힘들어했다. 답답한 시스템과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 그가 저지른 실수에 대한 뒤치다꺼리, 그리고 거래 업체의 협박까지 남편을 힘들게 할 요소는 많고 많았다. 소한 이야기야 듣고 넘기면 그만이라 해도 어제는 그래서, 오늘은 이래서, 내일은 저래서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말은 가볍게 들을 수가 없었다. 지치고, 어렵고, 힘들고, 어떨 땐 죽고만 싶다는 남편에게 나는 얼른 직장을 옮기자는 말 밖에는 해줄 수가 없었다. 내가 일하고 있으니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는 이야기도 반복해서 해줬다. 타지에 혼자 있으니 더 힘든 게 아니겠냐며 그만두고 올라오라고, 힘들어서 죽고 싶은 정도면 그건 그만둬야 맞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 마음엔 부담이라는 것이 쌓였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다를지도 몰랐다. 그러나 전화로는 남편이 도대체 어느 정도로 힘들어하는 건지,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바닥이 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손이라도 잡고, 얼굴이라도 부비며 위로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할 수 있는 건 언제나 말뿐이었다. 등조차 쓸어줄 수 없이, 침대에 누워 하루 마무리로 남편의 투정을 듣고 잠드는 매일이 버거웠다. 나도 회사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날엔, '오늘은 진짜 너무 힘들었어. 죽겠네' 하고 걸려올 남편의 전화를 피하고 싶다. 몇 번이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지냈던 기억이 떠올라 본능적으로 회피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남편의 부정적인 감정이 옮아오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내가 밉고 한심스러웠다. 내게 정말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이 힘들다고 이야기하는데, 왜 나는 그걸 다 받아줄 수가 없지? 너는 힘들 때 의지하고 싶으면서 왜 다른 사람이 힘들다고 하는 말은 듣고 싶지 않 거야?


나는 타인의 고통에 과민했다. 핑계 같겠지만 진짜 그랬다.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쉽게 옮았다. 주변에서 행복해하면 나도 행복했고, 가까운 이들이 괴로워하면 나도 괴로웠다. 주변의 감정에 촉각을 곤두세우느라 정작 내가 힘든 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힘듦을 모으고 모아 1인분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만큼의 고통보다 더 많은 고통에 공감하고 힘들어했다. 휘발되지 않고 쌓인 감정들이 케케묵어 남아있어 괴로울 때도 있었고 그래서 우울증까지 앓기도 했지만 그걸 핑계로 삼아 남편이 겪는 괴로움을 나 몰라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혼을 하며 벗어난 엄마와의 관계와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멀어진 친구와의 관계는 이제는 어찌 되어도 괜찮은, 또는 아무래도 좋은 관계였지만 남편과 나 사이엔 펼쳐질 내일이 너무 많았다. 이번엔 대충 얼버무리거나 끊어내 버리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며칠을 고민하는 와중에도 저녁이면 매일 어김없이 남편에게 전화가 왔고, 하루 동안 자신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 마음의 용량이 꽉 찼다는 걸 느끼자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도 듣기가 어려웠다. 아예 전화를 받고 싶지 않은 날도 생겼다. 이건 아닌데. 정말 아닌데. 마음이 불편해 며칠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결국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아내던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오빠가 힘들다고 하는 게 버거워. 오빠가 힘들고 지치다고 하면 너무 속상하고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 괴로워." 여기까지만 했으면 참 좋았을 걸. 정말 좋았을 걸. 나는 싸움을 일으키는 한 마디를 덧붙이고 말았다. "서로 지치고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어."


모진 말임을 알지만 그때의 내 마음은 정말 그랬다. 그리고 칼 같은 내 말에 남편은 당연히 상처를 받았다. 부부 사이에 힘든 걸 공유도 못 하냐, 그럼 나는 힘들다고 어디에 말하냐, 어떻게 서로 좋은 이야기만 하고 살 수가 있냐. 남편이 줄줄 쏟아내는 서운함은 일전에 어디선가 들어본 말들과 비슷했다. 엄청나게 고민한 끝에 꺼낸 이야기도 결국은 이렇게 귀결되는구나. 이건 해결할 수가 없는 거구나. 나는 그럼 계속 오빠의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살아야 하는 건가? 막막하고 답답했다. 나는 나대로 크게 상처를 입었다. 일하고 돌아와서 한 시간 씩 오빠 이야기 들어주는 거 힘들어. 난 이것도 노동 같아. 그렇게 모난 말을 덧붙이자 남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오랜 침묵 끝에 남편이 먼저 이제 자야겠다고 말했고, 서로 잘 자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래도 이야기를 수면에 올렸으니, 어떻게든 해결될 거야. 서로 조금씩 바뀌면 될 거야. 스스로를 위로했다.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수시로 연락을 하지 않으면 아픈지, 어떤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주말부부는 다퉈도 각자 무얼 하는지 꼬박꼬박 로그를 남기는 습관을 들여왔다. 나와 남편은 그 날부터 며칠 일과를 보고하듯 카톡만 했다. 일어났어요, 출근해요, 점심 먹어요, 운동 갑니다, 퇴근해요, 잡니다, 와 같은 카톡들이 뜨문뜨문 오갔다. 나의 모진 말에 분명히 상처 받았을 남편이 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틈틈이 연락해주는 걸 보며 기분이 조금씩 풀렸다. 며칠 통화를 하지 않고 저녁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니 용량이 꽉 차 무엇도 더 들어갈 공간이 없던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남편의 입장을 헤아려 봤다. 매일 나에게 종알종알, 있었던 일 모두를 고하곤 했던 그는 어땠을까.


타지에 있는 남편은 아마 몹시 외로웠을 것이다. 똑같이 주말부부 생활을 하면서, 퇴근을 해서 친정 가족들과 잠깐이라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와는 달랐다. 남편에겐 퇴근하고 마주칠 일이나 직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씻고 잘 준비를 한 뒤 내게 전화를 걸어 종알거리는 건 낮 동안의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일종의 비밀일기 같은 지도 몰랐다. 진짜로 매일이 힘들고 지쳐서 당장 그만두고 싶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그래도 되는 비밀 일기장. 내게는 그게 엄마도, 동생도, 친구들도 될 수 있었지만 남편은 아니었다. 나는 남편에게 필요할 때 찾아와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놓고 뒤돌아선 까맣게 잊어버릴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라 늦은 시간 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일기장이었을 것이다. 그 일기장이 이젠 힘들다는 말은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해,라고 얘기했을 때 얼마나 속상했을지 이해가 됐다.


휴대폰을 열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좁아터진 내 속이 창피해서 죽을 것 같은 마음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진짜 힘든 거 아는데, 얘기하지 말라고 해서 미안해. 혼자 있어서 더 힘들고 이야기하고 풀 곳도 없었을 텐데 그걸 내가 몰라줘서 미안해. 오빠 힘든 얘기 조금 들어줬다고 부담스럽다고 생색내서 미안해.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이 왔다. [회의 중. 잠시만.] 사과해도 바로 기분이 풀리지는 않겠지. 이해는 됐지만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 시무룩하게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혼자서 반성의 시간을 보내며 조금 훌쩍거리고 있으니 곧 여러 통의 문자가 왔다. [내가 더 미안하지. 똑같이 힘든데 나만 계속 힘들다고 해서 미안해. 이제 의미 없는 투정은 안 하도록 노력할게. 늦게 사과해서 미안.] 이 얼마나 완벽한 답장인지. 다정한 남편의 문자에 찔끔거리는 걸로 겨우 참아내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아니야, 내가 백배는 미안해요, 내가 더 미안해요, 몇 번이나 서로 사과의 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점심은 뭐 먹었어요, 짜장면 먹었어요, 역시 여보네 회사 밥이 최고네 등등. 별 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엄청난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점심 메뉴를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거지. 그런 사람과는 당연히 힘든 일도 공유해야 할 수 있는 건데. 난 왜 그게 잘 안 됐을까. 미안한 마음은 더 커졌다.


다툼 이후 나는 남편의 이야기를 더 주의 깊게 듣기 위해 노력했다. 힘들다는 말에는 '고생하네요 우리 여보' 하며 맞장구도 잘 쳤다. 별것 아닌 일에도 내가 먼저 힘들겠다, 고생이네, 공감하고 말하니 남편도 씩씩하게 '괜찮아, 금방 하고 올게요!' 하고 답장했다. 저녁 무렵 전화해 힘들었다고 이야기할 때도 톤이 조금 가벼워졌다. 투덜대긴 하지만 진짜로 죽을 정도는 아니에요, 하는 느낌이었다. 남편이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내 마음의 용량도 늘어났다. 내 마음 무거울 것을 걱정해 일기장 사용을 적당히 조절하고 있는 남편을 생각할 때면, 남편이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빈 종이를 넉넉히 채워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에게 부담이 될까, 힘들다는 말을 잘하지 않았던 나도 언젠가부터는 슬쩍 요새 겪는 고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은 진지하게 들어주고 고생한다며 다독여줬다. 남이 내 힘듦을 알아주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부부 사이의 거리 조절이 시작된 것이었다.


어찌어찌 흘러온 주말부부 생활이 벌써 2년을 꽉 채워 간다. 딱 1인분의 삶을 책임지고 싶었던 나는 내 삶 0.7 정도, 남편의 삶 0.3 정도의, 여전히 도합 1인분인 삶을 잘 책임지고 있다. 변한 것은 타인의 삶을 적당히 끌어들일 수 있는 거리를 알게 되었다는 것. 누군가에게 내 삶의 무게를 조금 내주어도 괜찮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슬기로운 부부 생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힘듦을 서로 나누어 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1인분의 삶을 살아내도 괜찮은 주말부부란 정말 복 받은 일이다. 어느샌가 또 내 마음이 좁아질 때면 행복한 주말부부 생활을 이루는 데 다정하고 지혜로운 남편의 혁혁한 공이 있었다는 걸 잘 기억하고, 비밀 일기장의 역할을 잘 해내어야지.


언제든지 쓰세요. 빈 종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늘 채워둘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작가라고 모든 면이 다 좋을 순 없으니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