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무턱대고 종알거리는 건 좀 없어 보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애정을 가진 대상에 대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이 아닌 진짜 내 생각과 내 감상을 남겨두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적합한 소재들을 고민하면서 자연스레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도 내 피부 바깥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내면의 북적임에 관심이 많았던 나였지만, 내 안의 것들을 잘 정리 정돈한 후 뭔가 써 내려가는 것이 꼭 지켜야 할 순서처럼 느껴져 온 힘을 다해서 나를 들여다봤다.내가 좋아하는 것, 들 중에 글로 쓸만한 것. 그중에 또, 좀 멋들어진 것. 드문드문 떠오르는 몇 단어가 있었지만 꾸준함보다는 다양함이, 끈기보다는 도전이 쉬운 사람으로 살아오는 동안 겉핥기 식으로 좋아했던 것들이라 대부분 몇 백자 쓰고 나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아 시작하기가 망설여졌다.쓰고 싶은 마음이 꽤 컸기에포기하지 않고다시 각 잡고 앉아 내 속을 뒤졌다. 아이돌과, 드라마와, 예능과, 음악과, 책과, 영화와, 또 아이돌과.. 멋들어진 건 찾아볼래도 찾을 수가 없구만. 아무렇게나대충 널려있는 내 취향들을 주섬주섬 그러모으고 차곡차곡 정리하다 보니, 대충 큰 결이 보였다. '대중문화'였다.
대중문화덕후. 마니아만이 풍길 수 있는 키치하고 니치한 아우라를 가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 취향은 무척 대중적이었다. 소수 취향이라 불리는 것들에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그중 몇몇을 좋아하기도 했다. 다만 그것들을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내 곁에 두지는 못했다. 반면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것들에 대한 내 애정은 달랐다. 해외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xx company presents'라는 문구가 너무 좋았다. 그 말만 붙으면 나는 유명한 말장난처럼 그게 내게 주어진 선물(present)인 양 꼼꼼하게 뜯어보고 구석구석 애정을 줬다. 그것들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에 무한한 사랑을 쏟았다. 90년대생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며 대중적으로 인기 있었던 것들은 아주 착실하게 따르며 시간과 공을 들여 좋아했다. 그건 곧나라는 사람, 즉 내 아이덴티티이기도 했다.
'대중문화 덕후'로서의 나는 놀라웠다. 안 본 게 없고, 안 들은 게 없다. 동방신기를 15년 동안 좋아했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나이 어린 오빠들을 마음속에 품었지만), 일상생활 중 마주치는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에 어울리는 무한도전의 짤을 떠올릴 수 있는 찐 팬이기도 했고, 한국 드라마 전성기와 함께 20대를 보내서 행복했던 드덕이기도 했으며, 억지 감동과 신파 코드를 제외하고는 꽤 많은 영화를 감상한 무비 헌터이기도 했다. 그중딱 하나만을 정해 책을 낼 수 있는 분량의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겠지만, 그걸 다 이야기하자면 꽤 많은 꼭지를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하나 진득하게 좋아한 적이 없어서 쓸거리가 없다는 핑계 대신,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그만큼 다채로운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품고 나니 기운이 솟았다. 대중문화에 대해서라면 할 말, 진짜 많지.
파편화된 내 취향을 한 단어로 묶자니 '대중문화'라는 큰 개념까지 빌려오게 됐지만, 그 안에도 많은 결이 있다는 걸 안다. 내가 아끼는 아이돌은 대부분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이고, 연출이 촌스러운 드라마는 좋아하지 않고, 유재석을 사랑하지만 런닝맨은 즐겨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취향이 그렇다 뿐이지 그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유치하기로 소문난 드라마도 욕을 욕을 하면서 끝까지 보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돌의 리얼리티도 굳이 굳이 찾아보는 집요함을 가지고 있다. OTT 서비스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서 홈쇼핑이나 정보성 채널이 아닌 이상 어떤 채널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지도 대충 안다. 대부분의 것에 관용적이지만 소부분 엄격한 면도 있어 '선을 넘었다'싶은 콘텐츠는 소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을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 판단하는 것도 관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 이 정도 관심이면 대중문화의 덕후 중의 덕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의 취향 (1) : SM 계보를 쭉 따라 내려온 아이돌 취향
개인의 취향 (2) : 이건 쓰고자 하면 너무 많아서..
개인의 취향 (3) : 영화도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많아서..
비평 같이 거창한 말을 붙이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면 온갖 걸 덕질한 짬이 좀 되었다 뿐이지, 아는 게 많은 건 아니라서 앞으로 브런치에 게재될 글들은 비평보다는 '개인적인 감상평'이라고 이름 붙임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남들이 바라보는 내 글의 장르야 어떻게 되었든, 글을 쓰는 나로서는 단순히 '감상'이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못내 아쉽다. 내가 써 내려갈 것들은 모두 내가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들일 테니까. 마음 한편에 저장해 두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것들일 테니까. 그런 사랑으로 글을 쓸 테니까. 그래서 나 혼자서는, 지금부터 쓸 글들에 '대중문화에 부치는 연애편지'라는 장르 딱지를 붙여주고 싶다. 사랑해요, 대중문화. 당신 없인 못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