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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Oct 20. 2020

'2 KIDS', 태민을 새로이 기억하게 하는 작품

태민의 서툶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견이 가지는 힘은 어마어마하다. 태어나 지금까지 일평생 슴덕(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들의 덕후)으로 살아온 나는 당연히, 태민의 데뷔 무대를 봤다. 새 그룹이 데뷔하면 습관처럼 티저 영상부터 뮤직비디오, 데뷔 무대까지 날짜를 챙겨가며 감상하곤 하는데, SM이 배출한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총망라하여 생각해봐도 그날 나를 치고 간 것만큼 강한 충격을 준 데뷔 무대는 없었던 것 같다. 2008년 5월 25일,  단 한 소절의 노래 파트도 맡지 않고 오로지 춤만 추던 태민의 데뷔 무대를 보았던 사람이라면 내가 왜 편견이라는 단어를 꺼냈는지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질 것처럼 어리고 가벼운 몸짓, 충격적으로 예쁘장한 얼굴과 작은 몸, 전혀 들리지 않는 목소리. SM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아예 노래를 하지 않는 멤버를 넣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샤이니라는 그룹이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좋은 노래와 독특한 콘셉트를 받쳐주는 탄탄한 보컬과 춤.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그룹이었다. 팬으로서 내 아이돌을 보는 것이 아닌 순수한 타자의 시선으로, 샤이니의 노래와 무대를 정말 좋아했다. 그들이 루시퍼와 셜록, View를 지나 1 of 1까지 오는 동안 줄곧 그들의 무대를 챙겨 봤다. 그 안의 태민은 역시 예뻤고, 가벼웠. 어느 순간 태민이 아티스트로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솔로로 데뷔했던 시기 태민은 이미 샤이니 노래의 많은 소절을 소화하고 있었는데,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슴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태민에 대한 내 감상은 여전했다. 그의 실력이나 성장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내게 이상적인 퍼포머(Performer)였다. 누구보다 가벼운 몸과 스펀지 같은 콘셉트 소화력. 하지만 이상형과 실제 연인 사이엔 어느 정도의 간극이 있듯, 나는 그에게 이상한 거리감을 느꼈다. 그가 아무리 완벽한 퍼포머라고 해도 쉽게 빠질 수가 없었다. 멀게만 느껴지는, 엄청 좋아하진 않지만  실력 있는 아티스트. 그게 내가 며칠 전까지 태민에 대해 느낄 수 있었던 전부였다.


내가 오랫동안 누군가의 팬이었기 때문에, 팬이 아니라면 꺼내지 말아야 하는 말이 몇 가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성장했다'는 말도 뉘앙스야 나쁘진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하지 않아야 할 말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꾸준히,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 사람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모른 채 떠드는 말은 가벼운 평가질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가 가졌던 태민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꺼내보인 건, 아티스트로서의 태민을 이야기하며 편견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피해 가는 것이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내가 가졌던 그 편견이 '2 KIDS'를 감상하는데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We were just two kids, two young and dum,
어리고 멍청한, 서툴렀던 맘



지금까지 발매된 샤이니와 태민의 곡 중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노래는 단 한 곡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앨범이 나오면 그날로 달려가 전곡을 통째로 다 들었기 때문에 수록곡도 빼놓지 않고 다 감상했다. 솔직히 말해, 샤이니의 노래 중엔 수록곡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사랑하는 몇 곡이 있는 반면 태민의 솔로곡들은 내 마음에 쏙 드는 편은 아니었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비주얼에 감탄하고, 춤을 보고 경탄하는 일은 있었어도 그의 노래를 몇십 번 돌려 듣는 일은 없었다. 전 국민이 'MOVE'병에 걸려 몸을 흔들 때도 나는 그저 그랬다. 그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안개 낀 듯 습하고 묘한, 센슈얼한 음악들이 내 취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2 KIDS'와 부딪히고 나서, 태민의 음악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표현하는 후회가 차가운 가을바람과 함께 내 폐부를 훅 찔러 들어왔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랬다. 나는 차가운 청량함에 가슴을 찔린 기분이었다.



어쩌다 들은 음악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기대가 없었다. 태민의 실력에 대해 기대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내 취향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유튜브의 SM 채널에 올라온 뮤직비디오를 재생한 건 슴덕으로서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태민의 노래를 며칠 째 한 곡 반복 재생해 듣게 된 건 전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게, 왜 이렇게 좋지? 유난히 POP 스러운 노래를 되감고, 또 되감아 들으며 생각했다. 지금껏 몰랐던 태민이 여기 있구나.


태민은 얼마 전 그의 절친한 친구인 라비의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 곡을 언급했다. 그는 이 곡이 자신의 정체성과 잘 맞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추천하는 걸 해보고, 배워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그간 보여주었던 곡들과 느낌이 달랐던 이유가 단번에 이해되었지만, 동시에 나는 이 곡이 진짜 태민의 정체성이라고 느꼈다. 내가 보아왔던 무대 아래의 태민은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던 반면 그간 그가 꾸며온 무대 위에서의 모습은 지나치게 극적이고 화려했다. 그 역시도 어울렸고 멋졌지만 '태민이라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그의 포부를 생각하면 '2 KIDS'는 대중성을 향한 '타협'이라기보다 '맞춤'이 아닐까 싶다.*


'2 KIDS'를 듣기 전엔 태민의 보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샤이니에는 종현과 온유라는 독특한 색을 가진 보컬들이 있었고, 그 목소리가 샤이니가 가진 음악 색의 큰 부분을 결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민의 보컬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리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곡에서 보여준 매력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태민의 목소리는 분명 지금껏 보여주었던 솔로 곡들처럼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가사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그러나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부딪힐 후회에 대한 가사가 태민의 맑은 목소리를 만나 더욱 진솔하게 느껴졌던 적 역시 많았다. 샤이니의 '재연'이나 '투명 우산'이 꼭 그랬던 것처럼, 서툴렀던 과거를 노래하는 '2 KIDS'의 태민의 맑은 목소리는 거짓 따위는 조금도 담기지 않은 것처럼 뒤끝이 없이 솔직하다. 겹겹이 쌓은 화음이 아무렇게나 쌓아둔 추억처럼 들리고, 살짝 뭉그러진 후렴 라인이 지지직거리는 옛 비디오 테이프를 재생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태민의 목소리가 너무 깨끗해서 어리고 멍청했던 과거를 인정하고, 모순적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사조차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노래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내가 그의 'young'하고 '서툴렀던' 시절의 목격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벌써 십수 년도 전,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던 그를 보았다. 모든 게 제 맘 같지 않아 힘들어하던 때의 그 역시 보았고, 그가 사랑하는 어떤 것들과 이별하고 그 아픔을 견뎌내는 것도 지켜봤다. 서툴렀지만 진심이었고, 거쳐온 모든 것을 결국 사랑으로 남긴 그를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이 길을 걸어온 그의 모든 순간을 목격한 내게는 그가 부르는 이 노래가 다른 어떤 곡들보다 더더욱 '태민' 같다. 그래서일까. 한 소절 한 소절, 그가 이 곡을 쌓아갈 때마다 그의 과거를 자꾸자꾸 떠올리게 된다.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가림막을 두고 그를 보았던 기억들을 다시금 꺼내 깨끗이 닦아 바로 본다. 거기엔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태민이 있다.**


보이는 것과 하나 되는 작품성 있는 음악을 하고자 하는 태민의 욕심을 잘 알기에, 또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정체성이 '2 KIDS'를 두고 표현했던 것처럼 '듣기 쉬운' 음악들로 표현되기는 쉽지 않기에 그가 금방 다시 이 정도로 대중성 있는 음악을 들고 오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의 질릴 구석 없는 깨끗하고 깔끔한 목소리를 오래오래 들으며, 언젠가 또 만나게 될 '2 KIDS' 같은 곡을 기다리기로 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태민을 새롭게 기억하게 되기를 바라며.




*: 라비의 Close up - 태민 편에 나온 내용을 기반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 태민 - 2 KIDS 가사를 부분부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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