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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Nov 10. 2020

이제 그만 졸혼해, 엄마.

이제야 조금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미안해

본가와 도보로 5분 거리인 같은 아파트 단지에 신혼집을 구했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도 친정을 떠나 혼자가 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주말부부라는 결혼 생활의 형태도 내가 본가에서 분리되지 못한 데 꽤 큰 역할을 했다. 어차피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으니, 주중엔 퇴근길에 본가에 들러 강아지에게 뽀뽀를 퍼부은 뒤 엄마와 동생과 함께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잠만 신혼집에 가서 자는 식의 생활을 했다. 덕분에 결혼을 하고 남편이 생겼지만 아직도 본가의 일원인 것 같아 깊은 유대감과 안정을 느꼈다. 신혼집을 떠나 둥지를 틀게 된 두 번째 집이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했기에, 갈 곳이 없는 두 부부가 한 달간 각자의 본가에 머무르기로 결정했을 때도 왠지 기뻤다. 엄마를 맨날 볼 수 있고, 강아지랑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어! 가족관계 증명서만 약간 달라진 상태로 다시 시작한 본가에서의 기생은 즐겁고 편안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가끔 차를 타고 강아지와 함께 먼 곳까지 산책을 나갔다. 오랜만에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는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다. 엄마와 아빠가 다투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본가에 와서 지내기로 결정하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수많은 행복의 장면들 중에 아빠는 전혀 없었다. 아빠가 가족들을 특별히 못 살게 군다거나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하는 나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었고, 단순히 다른 가족들과는 결이 좀 다른 인격체였기 때문이었다. 경상도 출신, 1남 3녀 중 유일한 아들이자 맏이, 50대 후반의 옛날 사람. 몇 가지 조건을 나열했을 때 떠오르는 중년 남성의 모습 그대로에 가까운 우리 아빠는 하나에 오백 원 하는 아이스크림을 이만 원어치나 사 오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담아오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기도 했고, 내가 잘못한 남동생을 꾸짖을 때 여자가 큰 소리를 내는 게 화가 난다며 되려 나를 혼내기도 하는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엄마가 주말에 전구를 갈거나 화장실 배수관을 고칠 때도 꼼짝 않고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거나 당구를 치러 나가버리는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는 것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었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열심이라 무려 5개 국어를 할 줄 알며, 2-30대도 합격하기 어렵다는 전문직 자격증에 50대에 도전해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낸 능력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누구나 그렇듯 아빠에게도 빛나는 면과 가급적 마주하고 싶지 않은 면이 동시에 존재했고, 몇십 년에 걸쳐 그의 면면에 적응한 다른 가족들은 아빠를 그저 가정에 별달리 애착이 없는 사람 정도로 여기고 그의 무신경함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 그를 그다지 환영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와 대화를 하지 않거나 그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도 주말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대신 친구들과 당구를 치거나 등산을 가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소비했으므로 우리는 차라리 이 편이 균형을 아주 잘 맞춘 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와서 본 나의 아빠는 내가 알아온 그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발단은 체중계였다. 안방에 체중계를 두고 사용하고 싶다는 아빠의 말에 엄마는 창고에 보관하던 체중계를 꺼내 주었다. 오래되어서 작동하지 않을까 봐 건전지도 갈아주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아빠에게 내주었는데, 그 체중계가 동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빠의 주장이었다. 체중계는 끄트머리를 살짝 밟아서 전원을 켠 뒤 체중계에 올라가는 아주 보편적인 제품이었다. 체중계가 고장이 난 것 같다는 이야기에 엄마는 아빠가 출근하고 없는 낮에 몇 번 체중계를 테스트해보았고,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기 때문에 혹시나 아빠가 작동법을 잘 모르거나 전원을 켜는 순서를 넘어가고 그냥 체중계에 오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주말 저녁, 가족 모두가 모여 있는 자리에서 엄마는 아빠에게 "여보, 체중계를 한 번 살짝 누르고 그다음에 올라가야 돼."라고 딱 한 마디를 꺼냈는데 갑자기 아빠가 화를 버럭 냈다. "안 된다고! 그게 아니라 안 된다고!" 뜬금 없는 큰 소리를 듣고 내가 다 기분이 상했다. 요즘 진짜 왜 저러시지?


나 어렸을 땐 선비처럼 얌전한 성격이었던 아빠가 최근 들어 갑자기 욱하거나 크게 소리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정말 가끔, 아주 가끔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삼남매는 아빠가 나이가 들어서, 몸이 힘들어서 그러시나 보다고 억지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던 터였다. 분위기 좋게 밥을 먹고는 성질을 내는 걸 보니까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다. 엄마는 혹시 모를까 봐 알려준 것뿐인데?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씩씩거리는 아빠의 얼굴이 꼴도 보기 싫어서 여동생과 함께 방으로 들어와 빔프로젝터를 켰다. 한참 깔깔대며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건너편 안방에서 마와 아빠, 두 사람이 언성을 높여 싸우기 시작했다.


아빠는 엄마의 말 아빠를 초적인 체중계 사용법도 모르는 사람처럼 무시하는 말로 들렸다고 한다. 엄마는 아빠가 버럭, 짜증을 낸 것이 싫었다고 했다. 백 번 양보해 두 사람의 입장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남편이 있으니 부부끼리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티격태격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에게 큰 소리를 낸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람이 실수로 신경질을 낼 수도 있으니까. 그러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 있었다. 아이고, 두 분이 싸우시나 보다, 집안 분위기 안 좋아지겠네, 하고 동생과 조그마한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데시벨점점 더 높아지며 쿵쿵쿵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운 소리에 깜짝 놀란 동생과 눈빛을 교환했다. 이거, 말려야 되나. 개입해도 되는 건가. 어떡해야 하지?


두 분이 서로 같은 말하며 벽처럼 답답하게 대화를 이어가다가, 아빠가 "이걸 내가 모르겠냐고!" 하면서 체중계를 몇 번 세게 밟아 소리를 낸 모양이었. 아빠가 엄마랑 감정이 상해 다투더라도 언성이 높아질지언정 물건을 함부로 다루며 위협적인 행동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동생과 나는 긴장했다. 두어 번 그런 소리가 계속되자 나는 엄마가 걱정되어 참을 수가 없었다. 나처럼 남편한테 까부는 아내한테도 남편이 저렇게 위협적으로 행동하진 않는데, 아빠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엄마한테 왜 그래? 나는 엄마를 구하고 싶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동생도 말려야겠다며 안방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체중계 근처에 서서 마주 보고 다투고 있었다. 동생이 지친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보는 엄마를 다독이며 안방에서 데리고 나왔고, 나는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선을 넘었다는 표현이 어떤 감정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빠의 장점이 당신의 결함을 채워줄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가정 밖에서만 빛나는 그의 장점들이 무척 아쉽긴 했으나 어쨌든 그래도 아빠니까, 그동안 그를 '엄마를 괴롭게 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면이 있는 사람'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한 벌은 다른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스함을 나누는 안채와는 한참 떨어진 별채에 그를 혼자 버려두는 상상으로 대신했다. 가끔은 아빠만 빼놓고 우리끼리 여행을 가며, 그에게 느낀 서운함을 은근한 외로움으로 갚아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누군가에게는 싸우다 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가족들에겐 아니었다. 우리끼린 말로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얼마나 배려하고 사는데, 큰 소리를 내다 못해 체중계를 막 짓밟았다고? 이건 말이 안 됐다. 게다가  사람이 다툴 당시 안방에는 강아지도 함께 있었다. 동생과 내가 안방에 들어섰을 땐 위아래 없이 경솔하게 발랄한 게 매력인 우리 강아지가 완전히 굳어서 고개를 다리에 파묻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강아지가 저렇게 무서워했는데도 자기 기분대로 소리를 지르고 함부로 몸을 썼다고? 폭력적인 모습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빠를 내 마음속에 그린 우리집의 울타리 바깥으로 완전히 밀어냈다.


서른이 넘은 나와 서른이 가까워진 동생은 처음으로 아빠에게서 엄마를 구했다. 눈물을 흘리는 엄마에게 드라이브나 갈래, 물었지만 엄마는 사양했다. 도대체 그 방에서 어떻게 다시 잠들겠다는 거야. 걱정이 많았지만 예순이 가까운 엄마는 다 그렇게 사는 거라며 안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오히려 아빠가 씩씩거리며 옷을 챙겨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동생은 풀이 죽은 강아지를 자기 방에 데리고 가 잠들었다. 나도 방에 들어와서 누웠는데, 도저히 잠이 들지 않았다. 상상 속에서 아빠를 붙잡고 뭐라고 쏘아붙여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아니지! 다시 또 그러면 내가 아빠를 내쫓을 거야!' 언젠가 아빠에게 확실하게 말해야겠다, 아빠랑 싸우는 일이 있어도 할 말은 해야겠다, 생각을 하면서 겨우 잠에 들었다. 당연히 잠은 설쳤다.


다음날 아침, 모두가 출근한 집에 엄마와 나, 강아지만 남아 밥을 먹다가 엄마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졸혼해, 엄마." 이혼이 복잡하고 어려우면, 혹시나 동생들 결혼이 신경 쓰여서 그러는 거면 졸혼이라도 택해 따로 살라는 말이었다. 평소에도 무슨 일이든 극단적으로 생각해버리고 마는 편이라 내 생각이 너무 갔나 싶다가도, 동생들도 모두 떠나고 나면 저 난리를 치는 아빠랑 엄마랑 둘이 살아야 하는데 그건 절대 안 되지 싶기도 했다. 내 속이 다 답답했다. 진심을 70%쯤 담아서 한 말이었는데, 엄마의 대답은 진심보다 몇 배는 더 현실적이게 무거웠다. "엄마가 돈이 어딨어."


아빠는 대기업 전무까지 달았었고,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전문직 자격증을 땄으니 표면적으로는 가장의 역할을 충분히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직장 스트레스를 잘 견디시지 못해 이직도 자주 했고, 무직 상태로 집에 계셨던 시간도 꽤 길었다. 엄마는 삼남매를 키우려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전공을 살려 과외 선생님으로 서울 여기저기를 누비면서 어쩔 땐 아빠의 월급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겐 남은 돈이 없었다. 집을 마련하느라, 삼남매를 키우느라, 아빠 연금을 붓느라 그 돈이 다 없어졌다고 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엄마의 입을 통해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철렁했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 엄마에게 남은 게 없구나. 혼자 사는 걸 생각하면, 앞날이 깜깜하고 아득하겠구나. 엄마의 모든 불안이 내 속으로 밀려와 메꺼웠다.


어릴 땐 자신의 처지를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는 엄마가 참 싫었다. 누구네는 아빠가 무슨 일을 한다더라, 돈을 얼마나 번다더라, 그 아줌마는 이번에 어디에 별장을 샀다더라, 맨날 골프만 치러 다니더라. 그런 말 끝에는 항상 너네 아빠는 능력이 없어서 엄마는 그렇게 못 살아, 라는 말이 붙었다. 엄마의 모든 이야기가 푸념으로 마무리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걸까. 아빠가 돈을 한 푼도 못 벌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도 자격증 딴다고 매일 공부하고 있는데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돌림노래 같은 불평을 듣고 있으면 엄마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화를 내는 아빠가 이해되기도 했다. 있는 대로, 그냥 적당히 살면 되는데. 더 잘 살려고 욕심내지 말고 지금처럼만 살면 되는데 자꾸 욕심을 내는 엄마가 밉기도 했다. 엄마가 쏟아내는 질투나 불안, 속상함과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 받아주는 것도 힘들었다. 아빠 탓만 하지 말고 엄마가 많이 벌면 되잖아,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아빠가 자격증을 따고 나서는 '그래도 이제 엄마아빠 죽을 때까지 먹고살 순 있겠네', '노후는 준비됐네' 하는 말로 선수를 쳐 엄마가 불안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가 원했던 건 별장도 골프장 회원권도 아닌 여유였을 것이다.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여유. 얼마를 더 벌어야 할지 계산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여유. 그리고, 언젠가 혼자가 되어도 괜찮을 정도의 여유.


엄마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음에도 평생 그런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입이 텁텁하고 썼다. 나는 가만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애들한테 월에 30만 원씩 받아. 다행히 자식들이 셋이나 있어서 이것만 해도 얼추 돈 백은 되네." 하고 말했다. 엄마는 평생 양가에 용돈을 부치며 살아봤더니 삶이 고단하고 팍팍했다며, 니들한테 돈 받아서 쓸 생각은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하긴. 나도 치 안 보고 엄마한테 용돈 부치려면 다시 일을 해야 되나, 시가에도 똑같이 용돈을 드리겠다고 해야 하나, 결혼할 때 노후는 준비되어 있는 집이라고 말했던 건 어떻게 책임지지, 같은 생각을 잠깐 했으니까. 엄마는 내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뭐든 스스로 해서 다달이 얼마라도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가만히 고민하다가 펜을 들었다.

 

엄마는 나이도 있고,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니까 몸 쓰는 일은 쉽지 않을 거였다. "강아지도 있는데 시간을 저당 잡혀서 일을 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고, 콘텐츠를 만들어서 돈을 버는 건 어때?" 내가 묻자 엄마는 뭘 그렇게까지 진지하냐며 웃었다. 그러나 곧 웃음을 거두고 뭔가에 골몰했다. 나는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지식을 총동원해 필기를 시작했다. "일단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돼. 그러고 나면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걸 찾고, 그다음엔.." 엄마는 꽤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동그라미를 세 개 그렸다. "엄마를 나타내는 키워드 세 개를 꼽자면. 뭐야?" 질문을 던지며 엄마와 시선을 마주침과 동시에 내가 엄마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우리 엄마를 나타내는 적당한 키워드 세 가지를 떠올릴 수 있을까? 내가 떠올린 키워드 중 엄마가 맞는 것 같다고 수긍할 수 있을만한 게 하나라도 있을까?


엄마에 대한 나의 무지를 들킬까 두려웠다. 나는 괜히 "내일까지 잘 생각해 와." 하면서 빈칸 세 개가 뚫린 종이를 엄마 앞으로 내밀었다. 엄마는 가만히 종이를 내려다보다가, 뒤늦게 그래,라고 대답했다. 차분한 그 대답에 엄마의 불안으로 뒤집어질 것 같았던 속이 좀 가라앉았다. 대신 마음이 무거웠다. 엄마. 내가 미안해.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어서 미안해. 내가 엄마를 몰랐어서 미안해. 그러니까 졸혼을 하지 않더라도 엄마를 찾자. 늦었지만, 여유가 없어서 돌보지 못했던 엄마를 이제라도 잘 대해주자. 내가 도와줄게.


방으로 돌아와 혼자 다짐했다. 내일도, 모레도 엄마의 콘텐츠를 찾는 걸 도와줘야지. 엄마가 됐다고, 그만두자고 할 때도 계속하자고 졸라야지. 평소처럼 아빠와 흐지부지 화해하고 홀로 서려는 노력이 필요 없어졌을 때도 나랑 같이 엄마가 좋아하는 팟캐스트라도 하자며 엄마 속의 엄마를 계속 깨워야지. 남은 시간은 엄마가 재밌어하는 걸 하며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내가 도와야지. 엄마가 나의 모든 불안을 함께 해준 것처럼, 나도 이제 엄마의 불안을 품고 엄마의 등을 힘껏 밀어줘야지. 그리고 내가 있으니까 언제든 원할 때는 졸혼하라고,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꼭, 이야기해줘야지.







너무 솔직한 글이라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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