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갈 집의 인테리어 공사 관계로 나는 내내 본가에서, 남편은 주중엔 근무지, 주말엔 시가에서 지내고 있어 주말부부임을 감안하고도 얼굴을 자주 못 보고 있다. 휴직한 내가 남편의 근무지에 내려가서 지내면 좋으련만 나는 일주일에 몇 번씩 병원을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소소하게나마 나름의 일정과 할 일도 있으므로 쉽게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 길어봤자 4주인데 뭐 어때, 연애 시절 생각나고 좋지, 하고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고작 2번의 주말이 지나고 나는 실의에 빠졌다. 흑흑. 남편이, 내 남편이 어디 갔누.
주말 간 밥 한 끼를 겨우 함께 먹으면서도 인테리어 관련된 이야기만 했다. 원하는 사이즈의 식탁을 찾기가 힘든데 주문 제작을 해야 하나, 그냥 기성품을 주문할까, 직구로 구매한 아일랜드 후드는 어디까지 왔나, 공사하며 실측 수치가 달라진 신발장은 달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같은 것들. 주중에 서로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얘기도 나누지 못하고, 가구를 좀 보러 돌아다니다가 지친 표정으로 집에 왔다. 헤어질 땐 괜히 애틋한 기분이 들어서 집 앞에서 연애할 때처럼 들어가, 네가 먼저 가, 장난을 치다가 올라왔는데 씻고 침대에 누우니 허전함이 몰려왔다. 외로웠다. 남편의 빈자리였다.
가족들이 좋고 반려견이 너무 소중하지만 남편이 주는 안정감은 따로 있다. 남편은 함께 잠들 수 있는 주말 밤이면 나의 강력한 전기주먹*을 맞아주며 고슴도치처럼 돋아난 내 마음의 가시를 쏙쏙 뽑아주고 가시가 빠져나간 자리에 생긴 구멍마저 꾹꾹 메워주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그럴 사람이 없으니 내 마음이 날로 뾰족뾰족해진다. 좋은 분들이지만 가끔은 대중 없이 들쑥날쑥한 기준으로 나를 꾸짖거나 내게 실망했던 부모님들과는 달리 남편은 언제나 일관적이어서 말이나 행동을 예측하기 쉽고, 그래서 남편과 있을 때는 단 1g의 긴장도 섞이지 않은 나른한 마음의 내가 된다. 이랬다 저랬다 요동치는 주파수 같은 내 감정 기복도 무던한 사람에게 가 부딪히면 그저 그의 온건함에 스르르 흡수되는 듯하다.** 고통스러운 삶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떠오른 K-장녀로 살아오며, 원치 않게 마음속에 품어버린 야트막한 책임감과 그 때문에 억지로 어른이 되려고 애써온 노력들도 남편 앞에서는 다 벗어던질 수 있다. 무방비. 그게 이렇게 달콤한 단어였는지 몰랐다. 남편과 함께인 주말이면 필요 없어진 가시를 다 뽑아내어도 괜찮다. 삐죽하게 돋친 가시를 모조리 뽑아낸, 약해빠진 맨 몸이 남편을 만나고 처음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약 다섯 달 전부터 남편과 하루에 한 번씩, 정해진 시간에 날아오는 질문에 각자 답을 쓰면 상대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연인용 어플을 쓰고 있다. 상대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냐는 질문이 자주, 형태만 바꾸어 등장하는데 남편은 그때마다 한결같이 나의 섬세함을 장점으로 꼽는다. 좋게 말해 섬세함이지, 이 고약한 성격적 특성이 어떻게 매력이 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파동 같은 내 성격이 좋다는 거야? 그럼 지금처럼 오르락내리락해도 돼? 내가 종종 그에게 이야기하곤 하는 것처럼, 남편이 나에게 내 섬세함을 왜 좋아하는지, 그 근간엔 어떤 욕망이 작용하는지 고민하고 이야기해주면 확신이 생기겠지만, 성격상 절대 그럴리는 없으므로 일단 그가 하는 말의 표면적인 뜻만을 믿고 감사히 여기기로 했다. 대신 아무리 애를 써도 따라잡을 수 없는 남편의 너른 마음을 어림짐작으로 헤아려 본다. 타지에서 홀로 고생하면서 내가 혼자 병원에 다니는 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 사람의 나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밑바탕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게 닳아 없어지고 바닥을 보이지 않게 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남편과 살면서 착하게 살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이 거짓이 아닐까 의심하게 됐다. 난 별로 착하게 살아온 것 같지 않은데, 어떤 행운으로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하게 된 것일까? 말썽 부린 적이 없다 뿐이지, 잘한 것 하나 없이 살았는데 부족한 내가 무슨 복으로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을 배우자로 맞게 되었는지. 대충 아무렇게나 살았는데도 지금의 배우자를 만날 수 있었던 걸 보면 착하게 살아야 복이 온다는 말은 아마 거짓말이 맞을 것이다. 남편은 아마 '난 평생 착하게 살아왔는데, 신이시여,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하며 슬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그에게 이제는 어쩔 수 없으니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일러주고 싶다. 굳은, 변하지 않는, 단단한 사랑에 대한 결핍과 갈망으로 살아온 탓에 매일 당신을 시험에 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함께. 그리고 매일의 시험에서 늘 100점을 맞아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가끔 90점일 때에도, 어쩌면 50점일 때에도 그간의 영광스러운 무수한 100점을 생각하며 알게 모르게 나를 미워한다고 떼쓰지 않는 아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마지막으로 그 믿음으로 모쪼록, 시험의 날들을 점차 줄여가겠다는 약속도 함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으으- 소리를 내며 남편의 배에 내 주먹을 대고 진동시킨다(?). 나름의 효과가 있다.
**과학을 잘 모르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 않아서 당연히 틀린 비유겠지만 대충 문학적 메타포로 여기고 넘겨주시길. 달미를 만나고 혈액형을 믿게 된 <스타트업>의 도산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