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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아이고 두야

by KOOOONG

글쓰기가 문득 두려워질 때가 있다.


그건 감기 같기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기도 하다. 종종, 꽤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점에서 그렇고, 돌연 피할 수 없는 내면의 장벽에 부딪혔을 때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를 꾸역꾸역 되새김질하는데, 그것이 그렇게까지 영양가 있는 고민은 아니라는 것을 앎에도, 어느 순간 다시 그 고민으로 돌아가 껌뻑이는 커서를 빤히 보고만 있게 되는 것이 증상이다. 글쓰기가 두렵다는, 형용 못할 그 질병의.


생각 없이, 오류에 대한 경각심 없이, 품어온 고민과 의견들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글이 얼마나 큰 해방감을 주는 것인지는, 한 번이라도 필자가 되어본 이라면 알 수밖에 없다. 그 오묘한 힘 빠짐에 매료되어 글을 계속 쓰다가 활자에 중독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목소리를 담은 글이 한층 더 유려하고 강력해지길, 모두가 두 번 이상 읽고 싶을 만큼 흡입력 있게 전달되길 바라는 순간, 딜레마는 시작된다.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지만, 글쓰기의 발전을 위한답시고 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글을 늘려 보기도 하고, 줄여 보기도 하고. 작성 툴을 바꿔 보기도 하고, 쓰기를 잠시 멈춰 보기도 하고. 남을 따라 해도 보고, 내 글만 파 보기도 하고. 쓰는 장소를 옮겨 보기도 하고, 방구석에 틀어박혀도 보고. 아침에 써 보기도 하고, 밤에 써 보기도 하고. 잠을 늘려 보기도 하고, 줄여 보기도 하고. 알코올의 도움을 받아 보기도 하고, 카페인의 도움을 받아 보기도 하고 …

천차만별인 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은 시도하는 이들 모두가 알 것이다.


요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인데, 직면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막 나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극도로 신중해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언젠가부터 데스노트로 전락해 버린) 일기장에 넋두리를 할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글을 읽을 사람의 존재를 상정해야 하는데, 거기서 오는 막연한 부담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일단 어떻게든 꾸역꾸역 글을 쓰긴 써야겠는데, 내 글의 부족함은 언제쯤 내 눈에 안 보일까? 이런 의문조차 오만일 수 있다는 내면의 속삭임은 무시한다고 치자.


글을 완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문장일까, 문맥일까? 쓰는 이의 손일까, 보는 이의 눈일까? 구조일까, 내용일까?


이 글은 내가 썼던 글을 보며 한탄하고 있는 2025년 3월 초의 개강한 석사생이 쓴다. 개강해서, 개 강하기 때문에 쓸 수 있다. 좀만 있으면 영혼을 제거하고 글을 찍어낼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학기 초의 개 강한 연구생이 한탄하고 있겠지. 그 또한 발전의 결과겠지..



.. 아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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