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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eniemo Jun 27. 2020

임원 퇴직성공기(2)

이해 편

"경영진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감당할 수 있겠어? 그분들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들이야. 일면 까다롭고... 합리적이고 명확한 옵션이 필요하고... 또 좋은 경험도 이미 많이 하신 분들이지."


사회생활 초기에 만난 20년 지기 지인의 걱정 어린 조언에 마음이 잠시 달그락거렸다.


"알지... 그런데 있잖아, 선배. 나는 그분들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사실 관심이 없어. 그 성공 뒤에 이루지 못한 일상과 작은 마음, 그리고 앞으로의 새로운 성공에 관심이 있지. 나는 대한민국의 퇴직라이프가 창의적으로 바뀌었으면 해. 그리고 사회를 바꾸는 일, 그분들이 시작해 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엄청 두렵지만 해 보는 거야."



여태 한 번도 니즈를 드러내지 않은 고객층


‘고소득층’을 위한 시장은 세상 어디든 존재한다. 소득으로 매겨진 1%의 시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고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 것이다. 명품 소비, 최고급 컨시어지 서비스, 6성급 호텔, 그들만의 private 한 세상 속 이야기는 상상의 저편에 남겨두고, 나는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모두가 바란 꿈을 멋지게 이루어 낸 1%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 길이 가장 안전한 삶이라고 믿은 99% 중 하나였기 때문에.


학력고사 시대, 매년 겨울이면 수석한 학생의 집으로 기자들이 몰려가 장사진을 쳤다. 당사자와 부모님은 물론,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까지 인터뷰를 하곤 했는데, 기억하건대 대략의 내용은 ‘비결이 뭐냐’, ‘잠은 얼마나 잤냐’, ‘한 문제는 왜 틀렸냐’, ‘착한 아들/딸이었냐’ 등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비슷한 길을 찾아 미래를 경쟁적으로 선택해 갔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교과서에 충실했습니다.’
‘4당 5락’


해마다 이런 명언들이 쏟아지던 때였고, 수많은 학생들을 동네 오락실에서 책상 앞으로 제 발로 끌어 온, 그야말로 ‘시대의 인플루언서들’이었다. 25~30년이 지난 지금, 그 세대가 퇴직을 준비한다. 성적이라는 단편적인 성공 방식에 기대어, 부모님, 사회, 국가의 기대를 당연한 책임으로 인식하며 살던 우리가,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퇴직 이후의 성공 방식을 어떻게 스스로 풀어갈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윗 세대와는 다르게 ‘정년퇴직’이라는 안전판도 유명무실한 현실에서.


혹시 궁금하시다면? ☞  학력고사 수석입학자들은 그 이후 무엇을 하고 있을까?


퇴직 후 재취업 니즈 30%, 재취업 가능성은 그중 1/10


과거에는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하는 경우, 계열사 및 관계사 등으로의 전환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그룹사마다 상이하지만, 여전히 1년에서 길게는 3년까지 그룹의 고문역할을 하면서 연봉의 50~80%를 받고 직급에 따라 비서와 차량 혜택을 제공받는다. 그래서 당장 새로운 곳으로의 전직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약 30% 정도로 나타났다. ***


혜택을 받는 기간 동안 중견기업으로 이직을 하면, 전 직장 고문자격을 잃는 것과 동시에 그 보다 적은 중견기업의 월급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금전적인 실리만을 따질 때 고문 자격 기간 동안의 이직은 좋은 옵션이 아니다. 전직 임원들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중견기업으로의 재취업이 ‘선뜻 내키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기술과 역량의 진부화가 빠르고 앞으로 나를 찾아 주는 곳이 많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전 직장으로부터 예우를 받는 1~2년의 기간은 오히려 불안감이 극대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에도 좋은 때다!)


퇴직 후 자기계발비 500만 원 VS. Outplacement 교육, 당신의 선택은?


즉시적 현금과 미래를 위한 교육. 예기치 않은 퇴직을 앞 두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두 가지 옵션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전문가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현금 선택 비율이 월등히 높다. 왜 일까?


소비자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그 세대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의 소비행태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겠다. 직무, 직업 교육은 물론, 취미 등 자기계발을 위해 자비로 소비한 경험이 매우 적은 세대이다. 20대 말에서 30대 초반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회사에서 받은 직무교육이나 해외 연수는 모두 '공짜'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를 위한 교육 비용’을 소비해 본 경험이 있는지…. 취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 중년 남성들이 유일무이하게 열광하며 기꺼이 소비하는 취미가 ‘골프’ 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자체 분석 자료로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취미에 대한 선호는 의외로 다양하다. 놀라울만큼! 니즈 편)


또 다른 이유로 그들은 도움을 청하는 것에 거부감이 큰 사회적 포지션에 있었다는 것이다. ‘최고의 의사결정을 해온 사람’으로서 선뜻 타인의 도움을 받기가 꺼려진다. 본인의 의사결정이 가장 합리적이고 타인을 이끌어야 한다는 강박은 정작 자신을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퇴직과 같은 인생의 큰 변화에서도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고 다음을 위한 도움을 청하기보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최상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빌 조지 교수가 제안하는 CEO 퇴직 가이드에서도 최소한 퇴직 1년 전에 커리어 코치나 상담 전문가를 만나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빌 조지 교수가 제안하는 은퇴 가이드;  <화담,하다> 사업 계획서(2020)에서 발췌


공급자 측면에서, 현재 국내 Outplacement 서비스는 주요 4개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대부분 회사의 HR 부서와의 계약에 의한 B2B 서비스이며, 재취업, 경력관리, 심리 안정화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Outplacement 프로그램이 재취업에만 머물러 있는 한, 퇴직임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기업들도 다양한 퇴직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뚜렷한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고, Outplacement 회사는 비용과 프로그램 운영 효율성을 위해 대부분 집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임원 직급 이상에게 targeting 한 개인화된 서비스는 현재 많지 않으며, 일반 재취업 서비스 내에 포함되어 운영되고 있다. 퇴직자들, 특히 퇴직임원의 경우 집체교육은 매우 불편한 시간일 뿐만 아니라, 사용하고 있는 해외 은퇴 심리진단 툴이 한국의 산업심리학적 맥락에서 적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에 어떤 나라에도 우리와 같은 ‘대기업 중심 산업 구조’는 찾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대기업 임원들의 퇴직 후 심리에 적합한 툴과 프로그램 개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


여기까지 대상 고객들을 ‘이해’해 보니, 퇴직 이후의 계획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에 가깝다. 현직에 있을 때는 겨를이 없고, 퇴직 후에는 그동안 ‘나에게 맞는 방향’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퇴직 임원들이 최소한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의 기간을 스스로 겪으면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단계를 거친다. 마음에 갈등이 넘치는 그 시간을 조급하지 않게, 사색하면서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감당할 수 있겠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한 분 한 분 만날 때마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행할 때마다, 내가 배우는 것이 더 많은데, 그게 왜 감당하는 거야? 다양한 분야 최고의 경영진들에게 항상 자문을 얻는다고 생각해봐, 선배!”


대한민국의 임원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며, 그 1%의 경험과 영감은 나를 어떤 방식이든 성장하게 하니, 그게 뭐든 피할 옵션이 아니다.

(그렇다고 매 순간, 안쫄리는 것은 아니지만...)



임원 퇴직성공기(3) – 니즈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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