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게 아니다
세상에 정해진 답은 많다.
하지만 답을 정할 수 없는 부분 역시 많다.
답이 정해진 부분에 대해서는
대화가 명확하게 끝난다.
틀린 대답을 말하는 사람에게
정답을 아는 사람이 설명하고,
틀린 대답을 말한 사람은 수긍한다.
답을 정할 수 없는 부분에는 많은 의견이 오간다.
많은 의견 속에는 자신의 의견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마치 정해진 답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이럴 때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정해진 답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할 때,
지치고 대화는 멈췄다.
이 때, 나는 느꼈다.
답을 정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건
정답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잠시 멈춰 듣고,
그 사람의 생각을 한 발자국 들어가 보는 일.
그렇게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같은 답을 가지지 않아도
같은 자리에 머물 수 있다.
세상에 정해진 답은 많다.
하지만 답을 정할 수 없는 부분에는 이해가 필요하다.
이 글은 ‘다름’에 대한 나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나는 일상 속 대화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히는 순간마다 한 가지 질문을 품곤 했다.
“왜 우리는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제 앞에서도 정답을 말하려 할까?”
시험 문제처럼 명확한 답이 있는 상황에는 비교적 쉽게 소통한다. 하지만 실제 살아갈 때 마주하는 많은 문제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그 안에는 수많은 ‘다름’이 함께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자신의 생각이 마치 정답인 양 말하고, 다른 생각을 틀린 것처럼 몰아간다. 그 순간 대화는 막히고, 이해는 멀어진다.
나는 그런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며 깨달았다.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는, ‘맞고 틀림’보다 ‘이해하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이 글을 썼다.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건 정답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잠시 멈춰 상대의 생각을 들어보는 일’이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