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뿌리의 크기
나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땅에 자리했다.
연약한 나의 뿌리는 거친 흙을 뚫고
힘겹게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뿌리는
점점 굵어지고 단단해졌다.
땅 위에 자리잡은 나의 모습도
함께 굵어지고 단단해졌다.
굵어진 나의 뿌리는
점차 땅속을 더 깊게 파고들었고
어느새 이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뿌리가 되었다.
내가 뻗은 뿌리가 다른 식물의
뿌리의 영역을 침범할 때가 있었지만
그들은 내 뿌리에서 흘러 나오는 영영분과
내가 단단히 잡고 있는 흙 덕분에
건강히 자라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단단한 뿌리를 가진 나는
거센 비바람에 날라가지 않도록,
그리고 나의 뿌리를 잡고 있는
다른 식물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버텼다.
내가 쓰러지면
그들도 함께 무너질 것 같았다.
그 두려움이 나를 버티게 만들었다.
하지만 비바람이 너무 거세었고,
내 힘은 점점 빠져나갔다.
힘이 빠져나가고 있는 나는 겁이 났다.
뿌리에 더 이상 보낼 힘이 남지 않았다.
나는 희망을 잃었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때, 나의 뿌리에 의지하던 한 작은 식물이 말했다.
“괜찮아, 이제 우리가 버텨볼게”
그 말과 동시에 내 뿌리에 의지하던
모든 작은 식물들이
나의 뿌리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식물들 덕분에 나는,
거센 비바람을 버틸 수 있었다.
처음에 나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땅에 자리했다.
이제 나는 모두와 함께 만든 숲에 자리하고 있다.
이 글은 ‘책임감’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됐다.
친구 한 명이 시간이 지나며 커져 가는 책임감 때문에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대화를 계기로 나 역시 책임감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됐다.
책임감은 누구나 다르게 느낀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책임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고, 무겁고, 단단해진다. 사회 경험이 쌓일수록 맡게 되는 역할이 많아지고,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임감은 한편으론 성장의 증거지만, 동시에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내가 친구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다.
책임감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무게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주변의 상황과 나를 지탱해 주는 존재들을 보지 못할 때가 있다. 혼자 버텨야 한다고 생각해 더 단단해지려 애쓰지만, 사실 우리 곁에는 함께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글 속 굵어지고 깊어지는 뿌리는 바로 그런 책임감을 상징한다. 한 사람의 뿌리가 커질수록 주변을 지탱하고, 다른 이들을 성장하게 한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칠 때, 그 뿌리 역시 흔들린다. 그럴 때 우리는 잊기 쉽다. 나에게도 다른 이들의 뿌리에 기대어 쉴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은 그 친구에게, 그리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책임감은 혼자만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 내가 쌓아온 단단함은 누군가에게 힘이 되지만, 나도 언제든 다른 이들의 힘에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