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을 틔우는 씨앗
나는 씨앗을 가지고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작고 소중한 씨앗을 내 품에 끌어 안은채
내 앞에 놓여진 길을 걸어갔다.
길의 특정 구간을 지날 때마다
나는 누군가에게 다른 모양의
씨앗을 한 개씩 건네받았다.
길을 걷던 도중, 나는 내 주머니를 살펴봤다.
몇개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반대로 이미 썩어서 말라버린 씨앗도 있었다.
말라버린 씨앗을 꺼내
그 씨앗을 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나는 당시에 길을 걷기 싫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억지로 걸었다.
다음은 싹을 틔운 씨앗을 꺼내
그 씨앗을 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나는 길을 걷다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그 사람과 대화하며 걸을 때 나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경험을 했다.
말라버린 씨앗과 싹을 틔운 씨앗을 보며 깨달았다.
처음에는 씨앗을 받을 때 별 생각이 없었다.
시간은 늘 흐르고, 씨앗은 언젠가 자라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싹이 난 씨앗과
썩어버린 씨앗을 나란히 두고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떤 씨앗은 자라 있었고
어떤 씨앗은 없어지고 있었다.
차이는 씨앗이 아니라
씨앗을 받았을 때의 나였다.
억지로 견디던 날의 씨앗은 썩었고
제대로 웃고 제대로 고민했던 날의 씨앗은 자랐다.
이 글은 ‘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살다 보면 누가 몇 살인지보다,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가 더 중요한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떤 사람은 나이에 맞는 깊이를 가진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은 나이가 무색할 만큼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아직 어린데도 놀라울 만큼 단단한 사람들도 있다. 그때마다 깨닫게 된다. 나이는 그냥 시간이 흘렀다는 표시일 뿐, 그 시간이 나를 자라게 했는지, 아니면 흘려보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그래서 씨앗이라는 비유를 떠올렸다.
길을 걸어가다 씨앗을 하나씩 건네받는다는 건, 매년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는 의미다. 중요한 건 그 씨앗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는 시간을 내가 어떻게 보냈느냐다. 억지로 견디기만 했던 날에 받은 씨앗은 결국 썩고, 마음이 움직이고 배웠던 날에 받은 씨앗은 싹을 틔운다.
나도 지금까지 씨앗을 받아왔다.
어떤 씨앗은 선명한 기억과 성장을 남겼고, 어떤 씨앗은 돌이켜보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매번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걷고 있는 시간들이 쌓였을 때, 자란 씨앗이 조금이라도 더 많으면 좋겠다고.
이 글은 그렇게 나를 다시 바라보기 위한 작은 기록이다.
지나가는 순간들이 그냥 흘러가지 않도록, 씨앗을 잘 기르고 있는지 가끔 확인하기 위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