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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지 Jul 05. 2019

2-16. 경쟁 서핑

죽도 3



1.

몇 세트*의 파도와

넘실거리길 반복.

젠틀하다곤 했지만

나름 역대 최고 높이의 파도였다.


슬슬 떠오르는 불안감.

'이 큰 파도를 잡아야 한다.'


나는 파도도 겨우 보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제야 밀어타기를 하던 나로선

참 부담스러운 높이의 파도였다.


파도 보는 척하며

한동안 라인업에서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었던 것 같다.


라인업에 합류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도

사람이 많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에 그치지 않고

서퍼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계속 늘어나는 사람들과

파도를 잡아야 한다는 압박감 사이에서

내가 여기서 파도를 잡아도 되는 건지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세트: 큰 파도가 연속으로 오는 걸 말한다. 라인업에서 기다리는 파도가 바로 이 세트로 오는 파도다.



죽도해변/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2.

나는 이 날 처음 바다에 들어올 때,

나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라인업으로 잡고 갔다.

그쪽으로 사람들이 오는 걸 보면,

라인업은 잘 잡은 것 같았다.


문제는

라인업으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퍼들 간의 간격은

계속해서 좁아지고

결국엔 라인업에서도

서로의 보드가 닿을 정도로

좁아지는 지경이 되었다.


파도를 바라보고 있다가

보드를 회전하면

보드끼리 부딪힐 것만 같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라인업은

경험이 없었던지라

처음 경험하는 상황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당시까지만 해도

'내 보드'도 없이

스펀지 보드만 탔기 때문에

보드끼리 부딪힌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잘 몰랐다.


그저

사람으로 가득 찬

목욕탕 같은 라인업에서

파도도 못 잡고,

사람들끼리 엉켜 다칠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죽도해변/ 2016년 8월/ 출처: 김은지



3.

어릴 때의 즐거움이나 회상하기엔

이젠 너무 사람이 많았다.


'어떻게든 파도 하나 잡아 보자.'


세트가 보이고

그 많은 사람들이 패들을 시작했다.

그 속의 나도

그들을 따라 패들을 시작했다.


파도는 나를 잠시 들었다 놓고

지나가 버렸다.


파도가 시켜주는

'서울 구경'만 몇 차례.

'울렁'하는 느낌에

'팝업'을 하려고 해 봤지만

그러면 나보다 한 발 앞서

파도를 잡은 다른 서퍼가 나타났다.


한 사람, 두 사람...

내 옆에 있던 서퍼들은

모두 파도 하나씩 잡아타고 나갔다.


'내 실력으론 안 되는 걸까?'


'딱 하나만 잡아보자.'는 생각을 붙잡고

라인업에 다시 앉았다.


'울렁'


이번엔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다시 한번 팝업!


검은 피부에(흑인 아님)

어깨 기장의 머리를 휘날리며

웃통을 노출한 채

숏보드**를 탄 서퍼가

내 보드의 노즈를 들어 치우며 내 앞을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숏보드 Shortboard: 빠른 속도와 서핑의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날렵하고 짧게 디자인된 서프보드. 부력은 상대적으로 낮으며 평균 5'5"~6'4"(5피트 5인치[오오]~6피트 4인치[육사])길이로 디자인된다.



4.

드랍***은 드랍이니까...


내가 드랍 한것도 알겠고,

인정하겠다.

하지만 뭔가 억울했다.


피크를 잡은 사람이

파도를 갖는다는 룰.


파도 좋다는

국내 서핑스팟의 컨디션이 이런데,

이런 와중에 그 룰대로 하자면

나 같은 '왕초밥****'은 

중상급자들에게 항상 파도를 내어주어야 하며,

그로 인해 실력 향상은 꿈도 꿀 수 없다.


그 룰은 나에게 '저주'로 느껴졌다.


***드롭인Drop in: '6. 서핑학 개론' 7번 글의 설명 참고.

****왕초밥: 초심자, 비기너Beginner, 초보, 왕초보.... 그들을 가리키는 말. 다른 스포츠에서도 쓰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서핑 커뮤니티에선 초밥, 왕초밥이라고 많이 한다.ㅠ




1. 다음 글, 2019년 7월 11일(목) 발행 예정.

2. Cover photo by Sander Brenem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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