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일찍 결혼할거야. 아빠같은 사람이랑"
어릴 때부터 입에 달고 살아온 이야기.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스물 여섯의 겨울,
요즘 시대에 비교적 일찍,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선택을 했다.
"로망은 꿈,결혼은 현실"
작은 투룸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신혼 생활은 현실이었다.
5년 정도 혼자 살다가 처음 같이 살아보는 사람과는
맞춰야 할 부분이 많았다.
나와 남편의 제일 큰 차이는
밖순이와 집돌이라는 것.
연애 시절 늘 나에게 맞춰 데이트를 하던 남자는
사실 알고보니 완벽한 집돌이였다.
주말이면 어디든 나가야 하는 집에서 20여년 살았는데
이 남자는 회사 집 헬스장 밖에 모르는 남자였던 것이다.
사소하게 집안일 하는 방식부터
주말 외출하는 일까지 일일이 손발을 맞춰가야 했으니
달달하기만 할 것 같았던 신혼 초에
오히려 서로 서운한 감정이 자주 들었었다.
왜 그렇게 싸우고 토라지고 그랬는지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감정이었다.
"그래도,얼굴만 보면 웃음이 나오는 사람"
남편에게 서운할 때면
항상 내가 토라지고 남편은 달래는 역할이다.
참 억울하게도, 정말 기분이 많이 상했는데
남편 얼굴만 보면 웃겨서 웃음이 났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싸움은
남편의 장난으로 결국 코평수 넓어지며 웃고마는,
그런 칼로 물베기가 되었다.
"결혼하니 좋아?"
결혼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물었고 요즘도 묻는다.
솔직히 사람들 앞에선 왜인지 가끔 부끄러워서
별로 좋지 않은 척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결혼은 좋은 거라고 늘 말한다.
아무리 비혼시대고 1인가구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나.
긴 시간은 아니지만 5년정도 짧지 않은 시간동안
타지에서 혼자 자취를 하면서
정말 혼자서는 어렵고 위험하기도 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내 옆에 보호자를 해줄 수 있는 동반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 날의 썰을 풀자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모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평범해서 쉬워보였던 건지..)
길거리에서 번호를 물어보는 남자들이 종종 있었다.
그 날은 한 남자가 지하철에서부터 쫓아와
자취하고 있는 빌라 문앞까지 찾아와 번호를 물었다.
평소 이어폰을 착용하고 걷는 탓에
누가 쫓아오는지도 모르고
집앞에 도착해서야 알아차리게 되었다.
번호를 묻는 그 남자에게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정중히 거절하여 돌려보냈었다.
문제는 그날 밤이었다.
올 사람도 없는데
모르는 남자가 원룸 공동현관에서
갑자기 초인종을 눌러 대는 것이다.
인상착의를 보니
까만 모자를 눌러쓴 채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초인종만 계속 누르며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이
느낌이 이상해 그냥 돌아가길 바라며 무시했다.
하지만 띵동 초인종 소리는 몆분째 계속 되었고
누군가 들어올 때 건물 안으로 들어왔는지
이제는 바로 문앞에서 초인종을 계속 눌러대는 것이다.
내가 반응이 없자 그 남자는 문을 철컥철컥 하기도 하고
1시간째 자취방 문앞을 서성였다.
너무 무서웠던 나는 결국 남자친구(현 남편)를 불렀다.
서울 끝과 끝에 살아서 지하철로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인데 비오는 그날 밤 남자친구는 급하게 택시를 타고
30분만에 내게 달려와줬다.
남자친구가 올때까지 초인종을 계속 눌러대던 그 남자는
돌아가지도 않고 문앞에 서성이고 있었다고 한다.
남자친구가 303호 초인종 누른 거 맞냐고 묻자
그 남자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왜 그렇게 계속 눌러대냐 안에서 여자친구 무서워하는데
얘기하니 그 남자의 변명은 이러했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 돈을 빌려갔는데 갚지 않고 있어서
혹시 본적 있는지 물어보려고 초인종을 눌렀다" 라고 했다.
정말 황당무게한 변명이었다.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로 남의집 초인종을 그렇게 눌러댈 일인가...
남자친구가 나타나고 나서야
그 남자는 저 변명과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가버렸다고 한다.
잊지 못할 공포적인 날이었고
그날 들어야 했던 초인종 소리 덕분에
현재까지도 혼자 있는 집에 초인종이 울리면
심장이 두근두근 떨린다.
초인종을 누른 남자의 얼굴은 모르지만
그날 번호를 물어봤던 그 남자이지 않을까
아닐수도 있지만 그렇게 예상이 된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 이후
결혼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진 게 사실이다.
그치만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결혼은 했을 것이다.
나이차이가 큰 커플이라
혼기가 찬 남자친구와 결혼하지 않을 거라면
헤어져줘야 할 것만 같았고,
하지만 난 이 남자랑 헤어질 자신이 없었고
절대 헤어지고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어린 나이지만 결혼을 결심했다.
이렇게 나는 스물여섯에 결혼을 해서
만 4년이 지난 지금은 한 아이를 낳고
둘이었을 때보다 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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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주의'가 가득한 현 시점의 대한민국.
아무리 사회가 비혼주의라 외쳐도 솔직히 결혼 할 사람은 하는 것 같다.
주말마다 결혼식 소식은 꽤 많이 들려오니까.
결혼은 '선택'인 만큼
나에게 혼자의 행복, 가족이 주는 안정감의 행복
어떤 것이 더 큰 행복인지 생각해본다면
결혼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답이 내려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결혼을 해서 나의 가정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 이 삶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