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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 Jan 20. 2019

로마를 보고(스포주의)

버려졌지만 버림받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홍대근처에 볼일이 있어 상상마당에서 보고싶었던 로마를 보았다.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이 익숙해진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게 더 불편할 정도다.

오랜만에 예술영화관에 오니 다시 서울사람이 된 것 같고 혼자 커피를 마시며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한참 씨네큐브니 아트하우스 모모니 다니며 영화를 보던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상영관이 작기도 했지만 관객이 꽤 많아서 조금 더 기대가 되었다.

영화는 흑백이었고 중반부에 이르도록 큰 사건이 없었다.  주인공 클레오가 임신을 하고 클레오가 가정부로 일하는 집 부부의 남편이 외도를 하는 정도가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다.

내내 궁금했던 것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왜 이영화를 흑백으로 만들었는가였다. 내가 내린 결론은 관계와 소리이다. 클레오와 주인집 부부 그리고 아이들은 언뜻 상하관계인듯 보이지만 함께 TV를 보고 여행을 가는 유사가족이다. 클레오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아이들도 클레오에게 더없이 친밀하다. 주인집 부인과 그의 어머니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클레오가 임신한 사실을 안 남자친구가 도망가 버리자 두모녀는 클레오를 위해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산부인과에 데리고 간다. 무채색의 영화는 인종이나 계급이 그들 가족안에서 무의미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멕시코 혁명 당시 유혈시위 장면이 나오긴하지만 대부분은 이 가족들의 일상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사들고 들어간 커피의 도움이 없었다면 졸았을 지도 모른다. 그 일상의 소리들은 색이 없는 화면을 통해 더 크고 생생하게 들린다. 아이들의 목소리, 비행기 소리 그리고 행상인의 피리소리 등은 정치적 격랑이나 남자들의 배신과 같은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서도 다시금 일상을 살아나가는 여성들과 아이들의 연대와 힘을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한다면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가 아이들이 익사할 뻔한 순간 클레오가 극적으로 아이들을 구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 장면이 바로 포스터로 쓰였다.

이장면에서 내내 억누르고 있었던 클레오의 감정이 폭발하는데 아이들과 부인(이름이 당췌 기억이안남)이 해를 등지고 서로 부둥켜안고 울때 클레오가 말했다.

“그애를 낳고 싶지 않았어.” 클레오는 그녀의 임신사실을 알고 도망쳐버린 남자의 아이를 끝내 낳았지만 사산아였다. 죽은 아이를 안고 우는 클레오를 보면서 나도 울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여자분도 울었다.

클레오는 왜 그 순간 그 말을 토해내듯 했을까? 거센 파도에 쓸려나가던 아이들을 물밖으로 꺼내자마자 정작 살려내지 못한 자신의 아이, 낳고 싶지 않았지만 죽이고 싶지 않았던 아기가 떠올랐을 것이다.

지금껏 그들을 묵묵히 보살피고 헌신하며 심지어 목숨마저 구해주던 그녀가 처음으로 그들에게 위로를 구하는 순간이었다. 부둥켜안은 그들에게 쏟아지던 태양처럼 눈부시게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어린시절을 키워낸 여성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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