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닮은 강을 걸으며.
2019년 2월 18일
강물은 만물을 품은 비단처럼 묵직하게 흘러간다. 강둑의 나무들은 듬성듬성 간격을 두고 가만히 서 있다. 도로를 달리는 온갖 종류의 차들과 다리를 건너 사람을 나르는 열차만이 바쁘다. 흐르는 것, 가만히 서 있는 것, 목적을 두고 달리는 것. 우리는 모두 닮았고 또 달랐다.
모든 존재가 세상에 던져졌다. 내가 살아 온 짧은 생을 되돌아보면, 정말이지 강물처럼 쓸려왔다. 기억하는 것들과 잊어버린 것들 모두가 내가 되었다.
온 몸을 녹여 어린 나를 키워주었던 외할아버지와 내 얌전한 개가 노쇠하여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둘 모두 흰 털을 가진 채로 잠들었다. 그들은 나에게 생명을 다하기 직전의, 너무나 가엾고도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한동안 나는 마주치는 모든 것에서 그들을 느꼈다.
개는 무료한 삶을 살다가 죽었다. 그 작은 온기에 대한 그리움, 내버려 둔 것에 대한 죄책감, 내 부모의 남은 인생이 개와 닮아 드는 괴로운 마음이 힘들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새의 표정은 늙은 개의 표정과 닮았다. 한참동안 강물을 응시하기만 하는 큰 새의 뒷모습은 나를 등지고 앉아 허공을 바라보는 내 늙은 개를 떠올리게 했다. 쓰다듬고 싶지만 그러지 말아야겠다 싶은 정적. 꾸밈 없는 그 모습 그대로가 하나의 완벽한 작품인 새들이, 강이, 나무가 부러웠다.
강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기쁨과 좌절, 사랑과 외로움, 과거와 미래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상 속에서,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만 훔쳐보곤 했다.
불꽃 같은 성미라서 불꽃 같은 시절을 보낼 것이다. 감히 예견할 수 없는 삶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삶의 모든 조각들을 하나하나 잘 마무리 하고싶다는 것. 그리고 담백한 죽음을 맞이하고 내 개 처럼 땅 속에 잠겨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강을 볼 수 있다. 새를 보며 그리운 존재들을 기억할 수 있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녹차 한 잔으로 손을 녹일 수 있다. 나는 강물처럼 여태껏 나를 스쳐간 모든 것들의 흔적을 끌어안고 제 속도로 흘러갈 것이다. 어느 하나 버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