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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기 Jun 21. 2019

순간의 무게

흰 개와의 이별 이야기 - 1


2018년 6월 20일




며칠 새 강변의 풍경이 눈에 띄게 변했다. 담장을 따라 붉게 피었던 장미는 모습을 감췄고, 푸른빛을 뗬던 크고 작은 나무들은 뜨거운 햇빛에 시들어 붉게 메마르거나 더 울창해졌다.


‘순간'이라는 말을 마음 속 깊이 느꼈던 때가 떠올랐다. 참 선명한 색으로 단정함을 뽐내던 꽃들과 천천히 죽어가는 개. 강바람이 몸을 스치는 촉감이 좋았다. 두 손에 담기는 것만 같아 중간중간 손을 둥그렇게 만들고 내려다보았다.


5킬로를 걷고 돌아오는 길. 적어도 열 마리의 개가 지나갔다. ‘저 작은 친구가 조금 더 오래 기둥의 냄새를 들이마실 수 있도록 주인이 기다려주었으면.’


오공은 열정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이 몇 없는 친구였다. 나와, 우리 가족과 정말 꼭 닮은 점이었다. 돌이켜보니, 노견이 되어서 유일하게 격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산책. 오공이와의 마지막 산책은 노랗고 빨갰다.


아직 바람이 차가웠던 이른 봄, 그 산책로는 샛노란 금잔화가 가득했다. 촌스러운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오공이 그 길을 누볐다. 구석구석 냄새를 맡고 마킹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끝없이 직진하는 하얀 개. 바쁜 개를 잡아 벤치에 올려두고 찍은 사진이 있다. 아버지의 어설픈 미용 솜씨로 들쭉날쭉한 털, 언젠가 털이 다 빠져버려 분홍 나뭇가지 같은 꼬리까지. 나는 한동안 이 모습을 보고 ‘들쥐 오공’이라고 불렀다.


분명 개에게도 나에게도 참 좋았던 순간이었는데, 회상하는 때에는 아프다. 내가 너의 시간을 조금 더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네가 덜 보고 싶을까. 내 가슴팍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던 네가 생각나, 하루에 한 번씩은 눈물이 난다. 내 두 손엔 너의 따뜻한 양감이 그대로 남아있고, 네 털에 얼굴을 묻었을 때의 텁텁한 숨과 냄새도 그대로 기억이 난다.


소중한 마음들을 가르쳐주어 너무나도 고맙다 애기야. 미안해. 정말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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