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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기 Jan 01. 2024

백팔 번의 아사나

반복과 고통, 백팔 개의 동전

백팔 번이라는 숫자는 왠지 마음을 먹게 하지 않습니까?


열한 번째에 눈치를 보고 팔을 좀 더 주욱 펴 올립니다. 스물한 번째에 백팔십 번이 아니라 백팔 번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서른한 번째에는 할 만한 일이라 생각하다가, 마흔한 번째에 왼쪽 어깨가 버거워진 것을 느낍니다. 쉰한 번째에 반을 왔다는 안도를 느끼고, 금세 여든 한 번째가 되어 끝에 도달할 조급함을 느낍니다. 아흔한 번 째에는 지친 몸으로 오히려 더 기운을 내보고, 백한 번째에 자세를 다잡습니다. 백여덟 번째엔 동작을 멈추고, 백아홉 번째는 없어서 느낄 것이 없습니다.


지난가을 왓 포 사원에서 백팔 개의 항아리에 차례차례 동전을 넣으면서, 나는 점점 속으로 울먹거렸습니다. 고통이 주는 쾌락을 놓아주고, 행복을 받아들이게 해주세요. 아니, 받아들일 힘을 주세요.


마사지사의 손길은 아찔하게 강했습니다. 특히 종아리를 오르내리는 엄지와 검지는, 한시도 힘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두 손은 마치 장치 같았고, 고통을 참아보고 싶어진 나는 두 다리를 멀찌감치 두고 보았습니다.


신체의 아픔은 생각을 끊고, 마음 놓고 생각을 끊어도 될 이유가 되어줍니다. 울긋불긋 멍이 들고 근육 줄기가 아픕니다. 높은 열이 나고 살갗이 춥습니다. 몸덩이를 가만히 내려 두고, 숨과 열을 듣고 눈물과 신음을 맛봅니다. 몸살은 수없이 치러보았으나, 이렇게 상쾌한 아픔은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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