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옆 사진관
시를 짓는 데 걸린 시간 : 2019.10.17~2020.09.13
-설명-
시는 형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시는 마음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가장 순수하고 곧고 고운 마음이요.
사사로운 욕심과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덜어내고 덜어내고 또 덜어낸
마음입니다.
제 평생의 다정한 벗인 앤은 오래 전 시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line and verses are only the outward garments of the poem and are no more really it than your ruffles and flounces are you. The real poem is the soul within them... and that beautiful bit is the soul of an unwritten poem. It is not every day one sees a soul... even of a poem.(행과 연은 시가 걸친 의상에 불과해. 네 옷에 달린 주름 장식이 네 자신이 아닌 것처럼 말야. 진정한 시는 행과 연에 깃들인 영혼이고, 그 아름다운 단편들이 바로 아직 쓰여지지 않은 시의 영혼이야. 영혼이 깃들인 시를 보는 건 날마다 오는 일이 아니지." (원문 : Anne of Avonlea p.110, 해석은 '에이번리의 앤(시공주니어 출판, 김경미 옮김) p159'을 참고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를 발견하는 일은
앤의 말처럼 무척이나 드물기에
그 발견을 각별히 여깁니다.
또,
무척 소중하고 귀중하기에
그 발견에 행과 연을 함부로 입히지 않으려고 해요.
글로 무엇이든 하고 싶고
글의 종류에 구애받고 싶지 않지만,
그 모든 걸 하기 가장 앞서
글에 대한 존중과 선진 작가들에 대한 존경, 그리고 한글에 대한 사랑에
겸허한 태도를 갖춰야 함이 옳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시를 잘 못 씁니다.
다른 글들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쓰지만
시에 있어선 그 자유를 스스로 허용치 아니합니다.
1년 전, 길을 걷다가
아주 우연히
차가운 벽의 단면 위로
혼자서 키를 늘리려는 쓸쓸하고도 기특한 덩굴에게
인정 많은 햇살이 그림자의 세례를 드리워
풍성한 나무의 모습으로 매무시해주는 것도 모자라
그 자신도 온화한 손길을 뻗어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햇볕이 내리는 호기로운 폭포수처럼 보였습니다.
공작새를 닮은 도시에서 그토록 소박한 장관이
참으로 달가워
그 자리에 잠시 서서 영원 같은 시간을 맛보았습니다.
그 마음을 행과 연으로 표현할 길이 없네요,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래서, 애써 얄팍한 재주를 부리지 않고
차라리
보는 분들로 하여금
그 시를 맡길까 하여
이 <물줄기>의 시를 저리 마무리 짓습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어떤 시가 보이나요?
저어기,
시가 보이나요?
시를 지을 수 있도록
먼저 그 시를 발견하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