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그걸 왜 해?”
“안될 걸.”
“글쎄, 그게 될까?”
매사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들으며 자라서
세상이 원래 그런 줄 알았습니다.
나는 매번 안되는 것에 도전하고,
또 그 결과가 고스란히 그 사람들 말처럼 실패로 드러나는 것 같아
잘 싸웠지만 결국 지고만 패배자가 된 기분을
떨쳐내기 어려웠습니다.
실패에 도전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해서
스스로 상처를 자초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도 그랬죠,
당연히 안될 걸 알고
창피를 무릅쓰고 면접 장소에 그분을 뵈러 갔습니다.
궁금한 게 몹시 많아
부끄러워도 질문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의 시간에서만큼은,
하고 싶은 걸 하는 순간이 언제나 그랬듯이,
그 어떤 민망함도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언제까지나 그 대담의 마지막 대화를 기억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게 많아서요.”
“다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그 감독님은
‘할 수 없다’ 대신 ‘할 수 있다’고 말해 준
첫 번째 어른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그걸 왜 해?”
“안될 걸.”
“글쎄, 그게 될까?”
이런 말들을 아직도 듣습니다. 어쩌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이
더 적합하겠지요.
하기만 하고, 매번 잘 안되는 것도 여전합니다.
결국 졌어도 잘 싸웠지만,
도전이 실패해서
상처되는 말을 듣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하고 싶은 걸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하는 이유는,
난 나에게 ‘안된다’고 말했던 어른들처럼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난 나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해 준 감독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다 해 봐.”
“안될 게 뭐 있어?”
“당연하지, 하면 다 돼.”
그리하여, 이 <발칙>이란 작품을 내놓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 읽은 동화,
널리 알려진 우화,
유명한 설화를
제가 겪은 경험과 사고를 기반으로
새로 씁니다.
전통을 뒤집고, 관습을 비틀고, 관성에 도전하는
작품이 되겠습니다.
어린이 친구들이 읽을 수 있고,
나의 친구들이 읽으면 좋겠고,
특히 어른들이 읽길 바라는
이야기로 채웁니다.
당신에게 낯익지만 낯설고,
따뜻하지만 번뜩이는
작품으로 남길 소망합니다.
이렇게 기존에 나와있는 이야기를
새롭게 바꾸는 각색은
제가 언제나 해 보고 싶은
작업이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또 합니다.
못 할 줄 알았는데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오며 제가 느낀 바는 바로 이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웃을 때
어떤 사람들은 해냅니다.
“그걸 왜 해?” vs “다 해 봐.”
“안될 걸.” vs “안될 게 뭐 있어.”
“글쎄, 그게 될까?” vs “당연하지, 하면 다 돼.”
저는 함으로써 해내는 쪽에 서겠습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서겠습니까?
당신은
어떤 어른입니까?
발칙해서
알리는(發) 새로운 본보기(則),
<발칙>,
즐겨 주세요.
감사합니다.
뭐든 하고
뭐든 해서
해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