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line 2021 SS 컬렉션 감상문
봄이 오는 건 상식이다. 그게 퍽 위로가 된다고 믿었건만 지금 와서 보니 아무래도 기대감이 좋았던 듯싶다. 하기야, 아무리 기대한들 막상 봄이 와도 별건 없다. 기대감이 주는 실망감은 매번 버겁기만 하다. 이럴 바엔 봄이 오지 않아도 괜찮을 것도 같다. 어차피 혼자만 화사했으니, 마음을 온통 달궈 놓고는, 봄은 치사했다.
마음이 충격과 공포에 너절해지면 하도 오래 써먹어 이젠 별 효과도 없는 무마책에 또 손을 뻗는다. 때가 되면 열리는 4대 컬렉션을 꼬박꼬박 챙겨 보는 이 개인적 관습은 비단 패션을 더 잘 알고 싶고 원체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니라 하나하나의 쇼에서 느껴지는 자생력에서 비롯된다. 온 세상이 힘들다 하소연해도 내일의 태양은 좌우지간 개근하듯이 시즌, 리조트, 프리폴, 오트 쿠뛰르 중 무엇이 되었든 매번 창의성으로 응집되어 진행하는 컬렉션의 성실함과 체력에 반한 이후 나는 자의로 사적 전통을 만들었더랬다. 다만 갈수록 그들의 과속도와 물량 공세에 물리고 허황기와 이기심에 질리던 차에 코로나가 얹혔다. 브랜드가 컬렉션을 통해 늘 먼저 절반의 계절을 앞서 가서 선구적 제안을 하면 시장이 반년 뒤에 받아들여 경제를 창조했는데, 이 코로나 사태는 패션계의 예언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도 지나도 코로나의 한복판이고, 마스크는 스타일을 망쳤고, 어디 갈 수도 없어 옷을 산다면 그건 필요가 아니라 허영이었다. 그러니 어떤 패션 브랜드는 콧대가 꺾였고, 일부는 거품을 들켰고, 또 다른 일부는 몸을 한껏 굽혔다. 욕망과 지갑이 반비례하다 속이 다 상해버린 나로서는 솔직히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어수선이 어찌나 꼬수웠는지 당신은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구경한 건 환경도 나 몰라라 품질도 나 몰라라 하면서 (잠재적) 소비자의 애타는 마음을 비웃듯 가격을 늘려 책정하는 모습이었으니, 처음 맞는 사태에 안절부절하다가 종내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는 광경이 너무 어색하고 기가 막혔다. (물론 그렇지 않은 브랜드들이 훨씬 많긴 하지만, 어쨌든.) 그리고 허무했다. 난 나의 일그러진 영웅을 이렇게 일찍 찾을 줄 상상도 못했다. 차라리 일장춘몽이 낫지, 이마저도 환몽(幻夢)이었다 확인하니 허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미우나 고우나 보았던 컬렉션 안의 모든 것들이 다 우습고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옷 따위가 무슨 소용이야? 6개월 뒤에 뭐가 달라질지 자기들이 뭘 어떻게 알고 옷을 만들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옷을 만드는 건 사람임을, 역시 옷보다 사람이 우선이란 너무도 당연한 진실을 깨달은 건, 겪어도 되지 않을 상처를 다 알고 난 뒤였다.
그러나 습관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환상은 실질적인 힘이 되지 않음을 알고도 또 자행한다. 그런데 뺑뺑이도 타는 요령만 있다면 어지럽지 않게 탈 수 있는 법이다. 이번엔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의 셀린느(Celine) 2021 SS 컬렉션이다. 현(現) 셀린느는 좋은 면에서도 나쁜 면에서도 문제적이다. 20세기엔 코코 샤넬이 있듯 21세기엔 피비 파일로(Phoebe Philo)가 있으니, 에디 슬리먼의 바로 직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그 피비 파일로다. 피비 파일로가 셀린느를 떠나자 그녀의 재임 시절 제품들의 가치가 더 뛰었다는 건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당연지사고 그녀의 후예들, 그중에서도 다니엘 리(Daniel Lee)가 주가를 계속 올리고 있다는 것도 말하기 입 아플 만큼 피비 파일로가 여성 의복사에 기여한 공적과 셀린느가 보인 여성 패션의 본보기는 차마 글로 풀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했다. 누가 후임을 맡아도 피비 파일로가 세운 업적을 계승하기만 해도 세속적 성공쯤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판단하기 쉬웠다. 혹여 독이 든 성배를 들이키거나 왕관의 무게를 버티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렴, 셀린느 이사진들이 어련히 잘 선택하겠거니 했는데 후임이 에디 슬리먼이 되었다는 소식에 상당히 의아했다. 결과는 ‘도 아니면 모’겠구나 짐작하는 와중에 그가 연 첫 셀린느 컬렉션을 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많은 분들이 전해 들었다시피 쇼에서 반응은 2가지였다. 에디 슬리먼의 재림에 박수를 보내거나, 초대장을 던지고 나가거나. 나는 그 감 좋은 천재가 다른 것도 아니고 에고(ego) 때문에 미끄러지기도 하는구나 하며 머리를 갸우뚱했다. 전승은 무슨, 에디 슬리먼은 피비 파일로가 쌓아 올린 금자탑을 ‘쿨’하게 부쉈다. 내 기억으론 당시 셀린느는 애매한 칭찬과 날선 원망을 동시에 받았는데, 그게 새로운 디렉터께 얼마나 타격이었을런지는 가늠하기도 부질없다. 배짱인지 독단인지 모를 소신은 주변 반응에 개의치 않고 불도저처럼 셀린느의 기반을 밀고 나가는데, 결국 옳든 그르든 그의 감각은 놓쳐선 안 되는 것으로 판명나는 분위기다. 2019 SS 컬렉션이란 폭탄을 던져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에 대한 대중의 기억을 몽땅 지워 머리 속을 원상 복구하더니만 그해 FW부터 셀린느의 창조기적 유산과 제인 버킨 시절 파리지엔느 스타일을 조금씩 적용시키더니 오늘날 관람자로 하여금 이런 말을 단호하게 토해내게 하기 이르렀다:”새로운 건 잘 모르겠는데… 그냥… 예뻐. 거두절미하고 일단 갖고 싶어.” 에디 슬리먼은 천재다. 사람이 저리 영리할 순 없다.
난 셀린느 2021 SS 컬렉션 영상을 감상하고 미운데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실은, 모자건 상의건 바지건 신발이건 선글라스건 곳곳에 Celine이란 글자가 죄다 붙여 있는 것도 싫고, 재탕과 자가 복제를 태연하게 행하는 것도 싫고, 자기가 하면 다 예쁜 줄 알고 체크에 시퀸에 카모플라주까지 현재 유행하는 스타일에 접목시키는 자신감도 싫고, 또 이런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를 사랑하게 된 내가 싫다. 요모조모 뜯어보면 어울리면 안 어울릴 만한 것들로 뒤죽박죽 섞여 있어 그 차림차림이 흥미롭다. 뻔한 건 없고 뻔뻔한 태가 얄밉지가 않다. 할머니 옷장에서 꺼낸 것 같은 색 바란 가디건에, 엄마가 입었을 법한 나풀거리는 러플이 달린 블라우스를 입고, 청바지는 활동성을 고려해 발목이 보이는 길이로 자른 다음 무릎에 컷까지 내고, 캡 모자와 선글라스를 무심하게 쓴 다음 신발로 발레리나 슈즈를 깜찍하게 신고 마지막으로 튼튼한 퀼팅 숄더백 하나를 어깨에 걸은 모델이 걸어갈 때 난 내가 알고 있던 패션 공식을 집어 치워야 했다. 하이탑 운동화에 저지 운동복 위에 레이스 탑과 크롭 가죽 자켓을 입을 수 있다는 걸, 그렇게 입어도 이상하긴 커녕 우아하고 섹시했다. 에디 슬리먼이 죽 고수하던 퇴폐미에 마침내 화기가 돌다니, 가히 기념비적이었다. 쇼가 고조될수록 어떤 옷이 나올지 예측하는 건 무의미했다. 이렇게 집중해서 보고 싶은 중구난방은 처음이었다. 장화에 긴 치마, 줄무늬 5부 티셔츠까진 무난하다가 갑자기 등장한 카모플라주 베스트로 독특해지거나, 야생적인 판초를 입었는데 사랑스러운 털 슬리퍼를 신는다거나, 은빛 시퀸 드레스 위에 다갈색 체크 남방 셔츠를 입고 카모플라주 모자를 쓴 후 연분홍색 가방을 드는 제멋이 당황스럽고 재미있었다. 무늬가 무늬끼리, 소재가 소재끼리 부딪치는 불협화음에 몸이 들썩였다. 절제나 단순미라는 얌전은 개나 줘버리라는 듯 콜라주가 범람했다. 입기엔 의외로 너무 까다로운 오버사이즈 베스트, 다시 유행하는 가죽 블레이저, 한시도 쉬지 않고 반짝거려 일상에서 선뜻 입기 부담스러운 시퀸 드레스, 지갑 없이 스마트폰만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에게 특화된 마이크로 미니 백, 보는 사람도 입는 사람도 뭔가 어색해 오랜 시간 금기 아닌 금기였던 카모플라주와 흰 양말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보자니 컬렉션이 저렇게까지 부자연스럽고 부조화스러워도 괜찮은 건가, 보는 내 마음이 다 조마조마하고 또 짜릿했다. 보다 보면 시도하고 싶은 도전 의식이 절로 든다: 이번 봄엔 저 스타일로 입는 거다! 특히, 이질과 이질의 조합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포멀과 스포티의 혼합에 환호성을 질렀다. 새틴 소재의 하이라이즈 트렁크 쇼츠, 크롭 티셔츠에 라인이 없는 정장식 자켓을 더하는 식과 가죽 블레이저, 청 반바지의 조합이 시시하지 않도록 스포츠 브라탑을 선택하는 식은 새로운 스타일을 향한 용기가 실로 얼마나 간단한 것인지 깨닫게 하는 가장 쉬운 수식이었다. 모든 스타일이 탐이 났지만 단연 최고는 크롭 턱시도 블레이저, 나일론처럼 보이는 소재에 고무줄이 장착된 트랙 팬츠, 발레리나 플랫 슈즈에 비키니 탑을 입은 차림새였다. 그렇지 않아도 감각적인데 올블랙으로 갖춰 놓으니 더없이 황홀했다. 어떤 익스트림 스포츠를 해도 이 2021 SS 컬렉션을 감상하는 것보다 신이 날 순 없을 거라 장담한다. 하지만 내가 이 컬렉션을 흔쾌히 숭배하는 건 산만하고 탁월한 믹스앤매치때문만이 아니다.
셀린느가 워낙 대단했던 것만큼 그 다음을 둘러싼 기대를 에디 슬리먼이 아예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기대에 부응하지도 않고 기대를 뛰어넘지도 않고 기대를 갈아 엎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므로 2019 SS 컬렉션의 감상에서 느껴지는 실망감은 기대에 반해서 생겨난 것이지 컬렉션 그 자체만으론 무조건적 실망감을 품기엔 약간 부당한 감이 있다. 셀린느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포문에서 에고이스트는 개성을 굳이 양보하지 않고 기꺼이 방황한다. 에디 슬리먼이 디올 옴므(Dior Homme), 생 로랑(Saint Laurent)을 지휘하던 시절에서 우리가 숱하게 본 디자인적 개인기의 일부, 심지어는 전부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셀린느를 진두지휘하는 자는 이제 자신이라는 선언식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계승자라고 해서 피비 파일로가 남긴 족적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식보단 나았다. 한편으론, 본인은 성공과 실패에 개의치 않고 다르게 해낼 거라는 친절한 예고편이었다. 그렇게 그때부터 지금까지 셀린느 컬렉션에서 나는 재능을 뒷받침하는 건 끼, 용기, ‘똘끼’임을 배우고 있다. 예뻤던 걸 다시 예쁘게 탄생시키는 능력과 예뻤던 걸 다시 예쁘다고 설득하는 안목이 새삼 굉장하다. 냉정히 말해,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 컬렉션에서 감촉되는 복고주의는 그만의 것은 아니긴 하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처럼 ‘뉴트로(newtro)’라는 시류의 한 물결이며, 기여하는 바도 크다. 뚜렷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신들이 겪어 보지 못한 시대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90년대의 TV 드라마나 영화를 넷플릭스로 본 다음 인스타그램과 텀블러로 장면의 일부, 소위 ‘짤(meme)’을 양산하며 그 시대 사람들이 입고 들고 신었던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된 걸로 짐작된다. 거기에다가 벨라 하디드, 켄달 제너, 헤일리 비버, 릴리 로즈 뎁, 카이아 거버, 블랙핑크 제니 등 밀레니얼 세대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는 셀럽들이 샤넬 빈티지와 같은 그 시대의 귀한 유물이나 곱창 밴드처럼 그 시대에 흔했던 산물을 애용하며 레트로는 대중적 일상으로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디올에선 새들백이, 펜디에선 바게트백이, 프라다에선 호보백이 소재와 디테일 면에서 21세기화(化)되어 재탄생었다. 모노그램이 위세를 떨쳤고, 숄더백의 수가 급증했다. 가죽과 진주 목걸이에 대한 시선은 관대해졌고, 20세기 미국 하이틴 드라마 패션에 관한 열망이 들끓었다. 청바지의 폭은 넓어졌고, 선글라스의 렌즈는 작아졌다. 그런데 다들 스타일을 완전히 수용하기보단 어느 정도 차용하는 데 그쳤다. 한눈에 판별하긴 어려워도 셀린느는 조금 달랐다. 당시 스타일에 쓰였던 특정 아이템을 소환하지 않고 스타일 자체를 통째로 들고 왔다. 그리고 그 스타일은 우리에게 잊혔거나, 유행이 지났다고 등한시되거나, 앨범을 들추지 않으면 아예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즉, 셀린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마주친 모습은 프랑스 감독의 프랑스 영화 속에서 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스타일은 부르주아적이되 독점적이진 않았다. 세련되면서 실용적이었다. 그게 참 특별하지 않고 일상적이었다. 게다가 프랑스 파리에 제인 버킨, 프랑수아즈 아르디처럼 그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바람과도 같은 예술가가 나타나 ‘파리지엔느’란 상징이 탄생하며 파리 특유의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까지 스타일에 깃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험한 세월에 대한 믿음으로 변화를 워낙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멋은 강단 있게 고수할 줄 아는 정신이라는 진리까지 깨우친 덕에 비로소 완성된 시간 초월적 스타일은 여러 문화가 오고 감에도 도도하게 고답적이더니 그 진가가 신세기를 열려는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에 의해 일약 부상했다. 새로운 걸 만들려고 머리를 싸매다 종국엔 이미 시중에 존재하는 남의 것을 재해석하고 재조립하느니 그럴 바엔 1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들을 그대로 꺼내고 말겠다는 포부랄까. 쇼를 보면 무릎이 살짝 드러날 정도의 체크무늬 치마 안에 어깨와 소매의 시작이 딱 들어 맞는 무늬 셔츠를 넣어 입은 70년대 프랑스인들이 과거 캠페인 사진 속에서 그냥 튀어나온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살면서 웨이스트코트, 망토, 버뮤다 울 팬츠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나팔 바지의 경우, 어렸을 때 입고 싶다고 입고 싶다고 그렇게 애원해도 엄마는 금방 지날 유행이라며 사주지 않았는데 역시 엄마라고 다 아는 건 아닌가 보다. 여하튼 한때 익숙하게 입었던 옷들을 낡은 옷장에서 다시금 꺼내게 만든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는 셀린느 비피아나(Céline Vipiana)가 남편과 함께 품질에 초점을 두며 브랜드를 창립하고 확장하였다는 연혁의 연장선상에 속하기도 한다. 설명하자면, 셀린느의 옷을 살 정도의 재력을 갖춘 소비자 측에선 쇼를 보고 옷장에서 오래 묵혀 두어 삭거나 오래 입어 낡았을 옷을 꺼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완전히 똑같진 않겠지만 오래 전부터 입었던 옷이 셀린느에서 다시 혹은 새로 나왔으니 말이다. 20대에 입었던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는 제인 버킨이 자연스레 상기되었다. 일부 소비자층에 한정되고 또, 의도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재생산에 비견되는 클래식 아이템의 생산이 공교롭게도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역사를 미묘하게 연장한 형국이다. 따라서 로고 변화를 필두로 한 리뉴얼로 인해 하우스의 역사를 무너뜨렸다고 치부되던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 컬렉션은 거듭될수록 창조적이며 현대적 디자인의 향연이었던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보다 되려 브랜드 성립 시절 고전적 분위기와 고유의 정체성에 상응하는 쪽으로 파악 가능해지고 있다. 우아하며 건축적이었던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 시절의 팬들에겐 용서가 안 되겠지만, 우린 피비 파일로의 개인 레이블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셀린느라는 역사가 공고해져 가는 브랜드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시선을 조금 더 넓고 길게 잡는다면 이해가 아예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브랜드의 기조는 굳건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인간의 변덕과 선입견에 휩쓸려 버릴 유행 대신 혼동에 초연하며 변화엔 유연하게 시간을 통과할 스타일을 제안하는 셀린느는 여전하다. 그러니까 셀린느가 처음부터, 또 언제나 노렸던 건 동시대성이었고 곧 ‘모두를 위한 패션(fashion for everyone)’이었다. 피비 파일로가 셀린느를 통해 미니멀리즘이란 고결성, 실루엣이란 자신감, 쉐입이란 견고성으로 패션의 현대를 건설하여 오늘날 여성이 입고 있는 의복의 토대를 제공하였다면, 에디 슬리먼은 과감하게 토양부터 다시 살펴 새로운 터전을 일구고 있다. 그 터에 무얼 하려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셀린느 컬렉션에서 영광이 느껴진다. 한때 성행했다가 조용히 묻힌 스타일을 무대에 올리며 에디 슬리먼이 끌어오는 건 과거의 영광이 아니다. 영광의 과거도 아니다. 영광이라는 속성을 깊이 파악하며 그저 영광 그 자체를 구현하고 있다. 2021년 SS 컬렉션에서 그 영광이 찬란하게 빛을 낸다. 그 영광은 이리 말한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즐김으로써 사랑받아 마땅하며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누릴 권리가 있다.
에디 슬리먼은 각양각색이 존재하는 패션계 속에서도 낭중지추(囊中之錐)다. 변화에 민감한 패션계에서 그의 자의식만은 유독 곧고 날카롭다. 그러한 에디 슬리먼의 스타일은 (극도로) 마른 체형에 대한 추구로 대표된다. 가냘픈 골격의 모델을 밀어붙이는 집념은 일찍이 디올 옴므, 생 로랑을 거쳐 셀린느까지 누그러질 기세도 없이 꾸준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이상은 그냥 깡마른 체구가 아니다. 미(美)다. 기본적인 뼈대는 얇지만 길쭉해 찬찬한 인상을 주며 날선 팔다리를 휘적이는 형상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도록 에디 슬리먼은 몸과 천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줄이고 전체적인 몸통을 아주 가늘고 팔다리의 기장은 훤칠한 옷을 디자인 아니, 선사하면서 두꺼운 근육질 몸매로 대표되던 남성성의 전통을 깨뜨렸다. 혁명이었다. 살은 늘리거나 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뼈대는 에디 슬리먼의 ‘스키니(Skinny)’ 스타일을 만나 비정상이라 비난하는 눈길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섬세함을 넘어 섬완함의 경지에 든 새로운 상(像)은 성별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에디 슬리먼의 옷은 마른 남자 말고도 여자도 가뿐하게 입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모두에게 부합하는 옷을 만들겠답시고 체형에 대한 이해 일절 없이 다짜고짜 통짜 오버사이즈로 일관하는 지엽적 패션 브랜드가 얼마나 많던가. 그런 자세는 그 누구에게도 배려가 될 수 없다. 반면, 에디 슬리먼은 오히려 체격 자체에 의의를 둬 남성과 여성이란 뚜렷한 구별을 뛰어 넘어 스타일에 대한 보편성의 지평선을 텄다. 에디 슬리먼이 표본으로 여리여리한 사람을 내세우며 남긴 거보는 이러하다: 디올 옴므에서 흡사 영화 ‘굿 셰퍼드’ 속 에디 레드메인(Eddie Redmayne)이 연상될 정도로 유약한 한 떨기 꽃이 송이송이 달린 강인한 나무줄기와 같은 아름다움을 피웠고, 생 로랑에서는 피트 도허티(Pete Doherty)의 시큰둥한 반항미와 시적 예리함에서 시작해 강동원의 농후한 자기 주관성에서 귀결하는 디오니소스를 낳았고, 셀린느에선 남성 라인과 여성 라인을 동시에 근사하게 소화하는 배두나로 아울리는 진취를 선보이고 있다. 한편, 어떤 이들은 에디 슬리먼이 제시한 모델을 기형이라 본다. 글쎄, 다양한 체형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세상이라면 선천적으로 마르게 태어난 이들도 그 세상의 일원이어야 하지 않을까? 선천적으로 뼈대가 얇고 몸통이 좁으며 살이 잘 붙지 않는 체형은 통상정으로 인간 체형의 또 다른 표준으로 영 인정받지 못했고, 그 자신 또한 타고난 마른 체형인 에디 슬리먼에게 ‘자켓은 언제나 너무 컸다(always a little too big)’. 유년 시절, 근육질이 아니라 호리호리한 남자란 이유로 고등학교와 가족들 사이에서 ‘반쪽짜리 남자(half a man)’란 취급과 심지어는 따돌림까지 당했던 에디 슬리먼은 과하게 먹고 지나치게 운동하며 마른 사람에 대한 세간의 편협한 편견과 폭력적 눈총에 갇혀 살아남아야 했다. 그 속에서 에디 슬리먼을 구원한 건 음악이었다. 뮤지션 데이빗 보위(David Bowie), 키스 리처즈(Keith Richards), 믹 재거(Mick Jagger), 믹 존스(Mick Jones), 폴 웰러(Paul Weller)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 패션 면으로도 지대한 매력을 뽐냈다. 선이 고운 블레이저와 다리에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거나 화려한 화장을 너끈히 소화하는 그들을 영웅처럼 받들며 유대감을 감지한 에디 슬리먼에겐 공격을 피하기 위해 헐렁한 바지 안에 숨을 이유가 없어졌다. 이는 겨우 에디 슬리먼의 어린 시절 시련과 추억거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에디 슬리먼의 스타일 즉, 타고난 본인을 사랑하고 또 본인답게 살아갈 권리인 것이다. 그 권리가 훌륭히 이행되는 컬렉션의 온라인 관객인 나는 더불어 나의 권리까지 신장됨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도 교복 자켓과 교복 치마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나는 교복 하복(夏服) 상의 안에 브래지어만 입는다고 남자 선생님께 등짝을 맞고, 의자 위로 올라가 학생 주임 선생님께 치마 길이가 무릎을 충분히 덮는지 검사 받는 시절을 거쳤다. 그 헐거운 교복 자켓과 펑퍼짐한 교복 치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언제나 차가웠고, 라인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교복 자켓과 무릎을 무지막지하게 가리는 교복 치마 바깥으로 삐져나온 나의 팔다리는 어울리지 못하니 흉할 수밖에 없었다. 타고나길 마르게 타고난 나는 교복을 입기 전까지 나에게 맞는 옷을 입었고 그 자체로 주목을 받는 일이 잦았다. 덕분에 나는 옷이 날개라는 사실을 실감했고 스타일의 정의를 머리가 아닌 몸소 체득했다. 한철이 아니라 오래 입을 수 있는 옷과 키가 클 걸 대비해 큰 옷을 사도 마른 체형을 돋보일 옷을 사 준 엄마가 나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너는 교복 입기 전까진 원이 없지?” 그 정도로 입어보지 않은 옷이 없었고 시도하지 않은 스타일이 없었다. 그런 내가 교복을 입고 나서부터 지옥에 갇혔다. 지옥의 벽과 지붕은 ‘보기 싫다’, ‘말라서 비린내 난다’, ‘살 좀 쪄’와 같은 말과 질색하는 추임새, 찌푸린 눈살이었다. 교복을 입으면 어딜 가도 따가운 시선과 여과되지 않는 언어적 세례를 고스란히 맞았다. 태만 마른 것뿐이지 그 속은 너와 같은 장기가 들어있는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남보다 하나 더 먹고 이를 악물고 한라산을 오르는 퍼포먼스를 펼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단 한 번도 억지로 살을 찌운 적은 없었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될 부정적 언변을 친절하게 날리는 사람들이 나도 마찬가지로 싫어 살을 찌워야겠다는 생각은 추호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얼 해도 그 속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뚫었다. 나는 이렇게 태어난 내가 좋은데 세상은 왜 자꾸 날 못 바꿔 안달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아의 형성기에 자아의 공백기를 살아서 나에게 어떤 옷이,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렇게, 내가 나로 살지 못한다는 것, 겪어본 자는 에디 슬리먼의 컬렉션을 사랑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 컬렉션을 사랑하게 된 경위는 타고난 마른 몸매에 관한 동질감에만 국한되지 않으니 그전에 먼저 내가 패션을 사랑하며 자초한 상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에디 슬리먼이란 디자이너를 알게 된 건 비교적 한참 뒤다. 그보다 앞서 나는 쇼를 끝내고 일체의 꾸밈도 없이 오직 가벼운 차림으로 거리로 우수수 빠져나오는 모델들의 ‘오프 듀티(Model Off Duty Look)’와 김민희, 공효진에 흠뻑 빠져 (비록 그들의 미모와 키에 비해 나는 너무 비루하고 아담하지만) 자존을 겨우 건져내곤 하였다. 에디 슬리먼이 데이빗 보위에게 느꼈을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유가 바로 같은 경험에 있다. 그들의 체형을 보며 혼자가 아님을 알고 그들의 스타일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나를 숨길 필요가 없구나, 사람은 태어난 모습 자체로 아름답구나, 누구든지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긍정해야 하는 구나. 모델들로부터 흰 티와 청바지를 입는 법을 익혔고, 김민희로부터 자긍심을 느꼈고, 공효진으로부터 강화책을 배웠다. 그때부터 패션은 위안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집에 오면 사촌 언니에게 물려 받은 아이폰4로 잡지 기사를 읽고 주말엔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를 외울 정도로 보았다. 패션이 재미있었다. 위험한 사랑이었다. 이 점에서 에디 슬리먼이 참 똑똑하고 나는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에디 슬리먼은 본인에 대해 잘 알고 그러한 바를 디자인과 예술 면에서 표현하며 무엇을 고집하고 무엇을 변화에 맡겨야 하는지 알았다. 나아가 남이 아무리 위대해도 본인에게 대입하지 않고 그 속성을 파악하고 분별해 수용할 정도로 명석했다. 반면, 나는 자중할 줄 몰랐다. ‘그들’처럼 입고 싶다는 욕심에 나를 몰랐다. 패션이 주는 환상에 눈이 멀었다. 애정과 시도라는 명목 하에 패션의 세계 속으로 조심조심 한 발자국 내딛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작아졌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사랑을 지켜내려는 마음이 살면서 더 요긴하다는 걸 또 구태여 몸을 움직이고 시간을 투자해가며 어리석게 깨우쳤다. 나는 그냥 좋아하는 것뿐인데, 언감생심 가지진 못해도 입어만 보고 싶었는데도 가격표 앞에서 번번이 쪼그라들었고, 유행하는 옷과 브랜드가 무엇인지 알아서 내가 가진 옷이 너무 부족하다고 여겼다. 가난과 안목이 미웠다. 마음에 드는 옷만 발견해도 상상으로 코디를 끝마쳤지만 가질 수 없어 마음이 분하기를 쉴 새 없이 반복했다. 게다가 옷에 대한 욕구와 패션계에 거부당했다는 좌절감에 하루에도 열두 번씩 서글펐다. 그 지겹고 차마 놓을 수 없는 나날들은 결국 코로나로 인해 종식되었다.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집에 머무르며 살림살이 곳곳에 배어 있는 못난 나를 마주하며 마침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결여감과 허영심을 찾아내고 나의 어리석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패션계의 갑옷이 허세, 과장, 위선임을, 그걸 알고도 묵과했던 내가 비로소 한심했다. 옷이 전부가 아닌데. 그럼에도 내가 위로 받고 사랑한 패션이 이렇게 허상이었던가 자문하면 할 말이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 옷과 스타일이 아니라면 무엇이 된단 말인가. 답이 없었다. 이 멈출 기미가 없는 혼란 속에서 모든 건 달라졌고 앞으로 그 무엇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입고 싶은 옷도 없고 시도하고픈 스타일도 없게 되었다. 각종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접속을 멈췄고, 패션 화보에 거리를 두고, 패션 관련 기사를 멀리 했다. 어차피 미래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들도 그저 인간에 불과하니까. 그렇게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을 때 별의별 요란이 빠져나가고 그 안에 희망만이 남았다. 환상과 기대가 없어진 난 이제야 그토록 바랬던 패션에 관한 글을 쓸 수 있겠구나 기뻤다. 다시 보그 코리아의 2021 SS 컬렉션 북을 손에 넣었고, 책이 내민 맨 첫 타자는 셀린느였다. 몰랐던 스타일이었지만 내가 아는 옷들이었다. 너무 놀라 책에 미처 실리지 않은 나머지를 살피러 컬렉션 영상을 보았다. 나와 같은 체구의 모델들이 내가 아는 옷들을 입고 걸어 나올 때마다 이런 말 한 마디가 들리는 듯했다.
“너도 이런 옷 있잖아. 입고 나와!”
나도 저런 야상이 있고, 오래 된 청바지도 있고, 비슷한 가방도 있는데. 나는 쇼를 다 보고 울었다. 패션을 좋아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공부한 이래 처음으로 나 자신이 초라하지 않았다.
셀린느 2021년 SS 컬렉션은 에디 슬리먼적(的)인 동시에 셀린느만이 표방할 수 있는 뉴클래식(New Classic)이다. 에디 슬리먼은 특정 연령대와 같은 구체적 대상을 잡지 않고 특정 성질을 쇼의 본질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바로 젊음이란 성질이다. 영글지 않지만 시들지도 않으며 관행을 거부하고 실패를 즐기며 꿈을 향해 내달릴 줄 아는 젊음을 찬란히 빛냈다. 에디 슬리먼은 그 젊음의 살을 스키니로, 피는 락 음악으로 빚어 패션계에 또 하나의 클래식을 남겼다. 클래식이 된 그의 스타일은 특별하지 않았던 것을 특별하게, 일반적이지 않았던 것을 일반적으로 창출하는 데 젖줄을 댄다. 에디 슬리먼의 스타일을 이루는 옷들은 일상에서 이미 존재했던 것이나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소외된 이를 위한 옷은 세상에 소외된 옷이었다. 기득권, 상류층, 주류가 입지 않은 얄쌍한 바지, 목 늘어난 티셔츠, 찢어진 바지를 왜곡이나 과장 없이 기본기 자체로 쇼에 올림으로써 에디 슬리먼은 근사하지 않고 특이하며 상처 받은 삶도 평범한 삶으로 인정 받아야 할 삶이라고 대중을 일깨웠다. 그러므로 2019년 FW부터 2020 FW까지 에디 슬리먼이 보인 셀린느는 과거의 단조로운 복구라기보단 2021 SS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할 역사고, 영원불멸하여 삶을 안정시키는 클래식이고, 평탄했던 시간 속 없는 건 많아도 마음은 풍요로웠던 그때 우리다. 그렇게 2021년 SS에서 할머니가 입던 가디건, 엄마가 입던 치마, 내가 신던 신발, 아빠가 입던 베스트, 오빠가 쓰던 모자가 하나의 스타일로 모여 마침내 과거와 현재가 정제되지 않은 채 조화된다. 쇼의 모든 차림새를 만드는 의복은 골격에서 시작과 끝이 지켜지는 기본을 완비하여 변화가 더더욱 눈에 띈다. 에디 슬리먼만의 결함이 아니긴 하지만, 남자 디자이너가 만드는 여성복에서 노상 아쉬웠던 불편함이 개선되었다. 가슴이 너무 깊이 파인 의상, 무방비하게 짧은 치마는 일상에서 제약이 너무 클 뿐이었다. 그런데 21년에 들어서 어느 정도 쓰임새 있게 짧기와 파임 정도가 조율되었으니, 클래식이란 역시 완성된 자체가 아니라 완성되어가는 미완이다. 옷 가지가지마다 에디 슬리먼에겐 곧잘 보이지 않던 편안함이 깊숙이 가미되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옷의 통은 한결 여유로워졌고 게다가 품이 넉넉한 후드까지 등장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으면서도 조이고 싶지는 않은 밀레니얼 세대가 에디 슬리먼의 컬렉션에 젊음의 주인공으로 본격적으로 등판한 셈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클래식 아이템을 입고 쓰고 걸친 모습은 곧 과거와 현재의 혼합인 지금이었다. 아울러, 다양한 삶도 포착된다. 현대인의 삶은 각양각색으로 알록달록 혼재되어 있으니 운동할 때 입는 옷과 일하러 갈 때 입는 옷이 하나의 스타일을 이루는 건 십분 마땅한 일이었으리라. 각오에 차서 헌신하는 한 가지 삶 대신 운명이 주는 여러 가능성에 기꺼이 울고 웃을 다채로운 삶에 대한 야망이 발레리나 슈즈, 장화, 스포츠 브라, 트랙탑으로 대변되고 있다. 그리고 이 옷들은 전부 원래부터 옷장을 채웠던 소중한 일상의 한 단면이며, 이 옷들을 우리가 입어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아득한 미래로 질주하기 전 출발선에 서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행해야 할 준비운동과 다름없다. 내가 패션계에 대한 애정과 공부에 몰두할수록 스스로를 볼품없다고 여기게 된 건 패션을 일군 브랜드들을 이해하고 알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의 옷을 입어보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뭐든 해봐야 알게 되는 건 어떤 일에도 적용되니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내가 가진 한계 앞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한편으론, 패션이 그저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격의 옷만 파는 브랜드가 전부는 아니라는 현실 또한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명심해야 할 진실이었다. 다양한 스타일을 섭렵했던 어린 시절 난 브랜드 옷을 입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난 패션을 즐겼다. 그 경험도 경험이었다. 고로, 브랜드나 가격에 관계없이 오로지 옷을 입는 즐거움, 그러니까 스타일이란 관점에 중심을 잡는다면 도리어 나만이 쓸 수 있는 패션 에세이를 쓸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모순적이게도 모든 환상과 기대를 삼킨 팬데믹 시대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이름을 알기는커녕 도저히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특정 브랜드 아이템을 입지 못한다고 기가 죽을 필요가 없었다. 지금 누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치 않고 길거리를 배회한다고. 옷은 누구나 다 입는다. 다들 옷장에 바지도 있고, 현관에 신발을 둔다. 그러니 비싼 옷이나 재력이 없어도 난 초등학생 때 입던 청치마와 한물 간 로우 라이즈 청바지를 아직도 입는 충성심, 가끔은 세인트 제임스 줄무늬 7부 티셔츠처럼 시간을 견뎌낼 튼튼한 옷에 투자하는 과단성, 세일을 기다리는 인내심, 그리고 그럴싸한 옷이 없어 흰색 스키니 진 안에 자수 스타킹을 입고 10년 된 컨버스를 신어 발목을 드러내고 릭 오웬스를 만나러 갔던 열정과 능력을 바탕으로 패션 에세이를 써도 된다고 믿는다. 스타일을 만드는 건 자본보다는 자기 자신임을, 그것도 스스로를 이해하고 긍정하고 사랑하는 자기 자신임을 에디 슬리먼의 컬렉션으로 배웠으니까 그 배움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한다. 이참에 옷장에 어떤 옷이 있는지 살핀다: 데이빗 보위 사진이 있는 티셔츠, 여행지에서 산 호피무늬 니트, 나의 체형이 옮겨 붙은 청바지, 색이 바란 점프 슈트, 접어 입고 묶어 입어 끝단이란 끝단은 쭈글쭈글 구겨진 셔츠. 또 앞으로 어떤 옷이 옷장에 들어올까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가진 옷을 어떻게 입고 다가올 봄을 즐길까 기대된다. 그 봄을 에디 슬리먼은 한 운동 경기장에서 그렸다. 언제나처럼 본연의 모습을 당당하게 부각시킨 에디 슬리먼의 모델들은 핏감이 한결같고 여유가 생긴 옷을 입고 평탄한 트랙 위를 달리지 않는다. 점수와 등수를 매기는 하얀 선을 의식하지 않고 천천히 또 힘 있게 걷는다. 그 위로 태양의 빛이 축복처럼 쏟아진다. 미래는 어떨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껏 잘 살아왔고 지금이란 시간에 감사한다면야, 우린, 망가지지 않았다. 얼마든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내일 앞에 살아있다는 영광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저, 그 순간을 살 뿐. 2021년 봄의 셀린느는 찬란했다. 정말 예뻤다. 그래서 난 이번 봄, 뭘 입을지 몰라도 에디 슬리먼처럼 입을 것이다. 당신이 밉다고 보는 건 숨기지 않고, 내가 예쁘다고 보는 건 표출하는 그 방식이 가장 나다운 길이기 때문이다.
봄은 온다. 봄이 와도 별 거 없으리란 것도 잘 안다. 맞다. 봄이 와도 별 거 없다. 그래도 봄을 기다린다. 좋으니까, 그냥 내가 좋아서 기다린다.
봄이 온다.
글을 끝까지 읽은 분들은 충분히 이해하시겠지만, 혹여나 하는 마음에 단문의 글을 남깁니다.
에디 슬리먼이 제안하는 모델 체형에 대한 저의 호의적인 입장은 글에도 분명히 밝혔다시피
‘타고난’ 체형을 그대로 긍정하는 자세에 해당될 뿐입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난 모습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며, 특정 모습으로 강요받아선 안 됩니다.
또한, 지향하는 체형이 있더라도 오직 지각과 자의(自意)로써 결정하고 추구해야 하지
타의가 관여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아울러, 그 누구도 가해(加害)의 여지가 다분한 말을 할 권리도, 또 들을 권리도 없다는 것도
많은 분들께서 유념하시길, ‘말라서 보기 싫다’와 ‘마르고 싶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은 사람으로서 간곡히 당부 드리는 바입니다.
우린 상냥하고 다정한 말만 듣고 살기에도 삶이 너무 짧잖아요.
마지막으로, 본연의 본인을 사랑하고 가꾸는 세상이 오늘이었길 오늘도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