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로젝트:나,영수> 소개글

꼭 읽어 주세요

by 전해리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세상이죠.

저도 그래요.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은 남과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더더욱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좀처럼 본인을 우선하지 않으세요.

손주들이 이미 먹고 있는데도 먹으라고 권유하시는 건 예사고,

남편인 할아버지부터 챙기시는 일이 다반사죠.

또, 우리 할머니는 예쁜 옷을 사다 드려도

언제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알록달록한 옷만 입으세요.

나와 엄마에겐 계절 날 코트, 맛있는 거 사라고

몰래 가방에 돈까지 넣으시면서 말이죠.

우리 할머니는 박막례 할머니나 심방골 주부 님, 밀라논나 님과 같은 분이 아니에요.

말씀을 재치있게 하지도 않으시고요,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본인만의 특별한 레시피도 없으시고요,

뛰어난 공적을 남기지도 않으셨어요.

게다가, 우리 할머니는 고생을 그렇게 하셨는데도 아직도 그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세요.

나의 능력이 인정받으면 좋겠고, 그 능력으로 사랑받고 싶은

나로서는 그런 할머니가

불편하고 참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가 그런 할머니라서

내가 지금까지 오고, 버티고, 나아갈 수 있는 거라고 믿고 있어요.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우리 할머니,

손주들이 맛있는 것만 먹었으면 바라는 우리 할머니,

남편을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자신은 헤진 옷을 입더라도 딸과 손녀는 따뜻한 옷을 입히고 싶은 우리 할머니,

손주들에게 용돈 주려고 한 푼 두 푼 돈을 버는 우리 할머니,

‘괜찮다’고 손녀를 토닥이는 우리 할머니,

소박해도 만드는 음식마다 다 맛있게 만드는 솜씨를 지닌 우리 할머니,

늦깎이 공부로 한 줄 한 줄 시를 쓰는 우리 할머니는

그 자신이 꽃이 되기보다

다른 이를 꽃피워 낼 줄 아는 분이십니다.


사실 보통 사람을 상대로 인터뷰집을 내는 건 저의 다른 꿈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꿈입니다.

저도 코로나로 인해 많은 꿈을 포기하거나 중단해야 했는데, 그 꿈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인터뷰집을 내겠다고 다짐하고,

벌써 3년 전인 멜번 여행에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초석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친해지고 작은 인터뷰를 부탁드린 경험도 있습니다.

더 큰 곳에서, 더 큰 여행을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작지만 소중하고, 평범하지만 예상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어서 작게는 낯가림, 소심함부터 크게는 두려움, 공포까지 짓누를 수 있었습니다.

평소엔 인터뷰를 그렇게 읽었죠. 존경하는 인터뷰 기자님께 이메일로

인터뷰어로서 필요한 자질에 대해 여쭤 보기도 하고요.

그랬는데,

코로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겠고, 코로나가 끝나도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더군다나 탈고한 작품들조차도 출판이 막연해서

이 꿈은 불가능으로 남는 구나

단념할 뻔했습니다. 할머니를 이해하고자 결심하기 전까지요.


인터뷰의 본질은 유명세나 화제,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대화입니다.

대화란 사람 간의 예의를 갖추고 마음을 주고받는 것,

진심과 진심을 나누는 것, 깊이 들어주고 깊이 받아들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야말로 사람과의 대화가 긴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대화야말로 마음 속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지면 인터뷰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간을 들여 자신이 할 말을 결정하는 건 음성 대화에선 아무래도 무리였죠.

활자가 부여하는 장고(長考)의 시간을 마음껏 활용하며 스스로를 직면할 수 있는 건

지면 인터뷰만이 선사하는 매력이자 기회입니다.

이와 같은 차분한 대화의 힘을 느낀 동기는 멜번 여행에 있습니다.

저로서는 짧은 영어 실력으로 힘겹게 대화를 한다고 여겼지만

그 상대방은 나와의 대화 끝에 결국 눈물을 보였을 때,

다른 기자님들의 인터뷰를 읽거나 이메일로 여쭤보면서는

차마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건 바로,

대화는 말의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삶을 궁금해하고 견해와 심상을 헤아리는

마음이라는 겁니다.

저에겐 그때의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이 준 용기가 아직도 있어요.

사회가 인정하는 작가가 아닌 상태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어

사실 약간 막막합니다. 사회에선 직업과 타이틀이 너무 중요하잖아요.

그렇지만 작가란 비단 책을 출판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기에,

이 인터뷰 프로젝트를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바입니다.

작가의 자질은 전공이나 출판 경력이 아니라

글을 쓰는 성실함, 글에 관한 존경심,

알맞은 문장과 좋은 이야기를 발견하려는 우직함에서 출발하며,

제대로 된 글 한 줄에 대한 고민과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심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때 비로소 충족됩니다.

그러므로 매일 글을 쓰는 부단함과 선대 문인들에 관한 공경심,

적합한 문장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하려는 열정과 함께,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꾸미지 않아 예쁘고, 평범해서 특별하고, 처절해서 아름다운 당신의 삶을

당신은 말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저는 번지르르한 말도 못하고, 뭔가 드릴 수 있는 것도 없고, 고민 해결도 못 해드려요.

그러나 이 인터뷰에서만큼은 당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게요.

당신이 당신의 삶과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나는 당신에게 힘이 되어줄 말을 선물할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고,

당신 스스로 고민을 해결할 힘을 일깨워 줄 수 있어요.

이 인터뷰가 당신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장담해요.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요.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글을 쓰며 자부심을 느끼는 곳은 판매 부수나 수입과 같은 숫자가 아니라

나의 글쓰기 능력으로 다른 이들의 삶을 빛나게 해주었다는 데 있길 소망합니다.

이 인터뷰 프로젝트 <나, 영수>가 할머니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해서

할머니에 대한 저의 사랑으로 끝나길 염원합니다.

할머니가 저에게 준 사랑을 증명하고 보답하고 싶어요.


저는 이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함으로써

할머니가 피워낸 꽃들 중

가장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꽃이 되려고 합니다.

제 마음에 동감하시는 분들,

제 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세요.

그렇다면 내가 이 인터뷰에서만큼은 당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게요.

세상에서 주인공인 적이 없던 분들,

꿈을 이루려다 상처 입은 분들,

소소한 성취가 있지만 기쁨을 나누기엔 외톨이인 분들

제가 당신의 인터뷰어가 되길 허락해 주세요.


왜 인터뷰집의 이름을 <나, 영수>로 삼았냐 하면,

글쎄요. 지금으로서 말할 수 있는 건, 농반진반으로,

‘철수’ 다음으로 흔한 이름이 ‘영수’ 아닌가요.

이 인터뷰집의 끝에서 이름의 발원에 대해 말할 수 있겠지요.

그 끝이 나기 전까지 대화를 나눌

‘영수’ 님’들’이 기다려집니다. 어떤 분일까요?



글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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