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즐겨

My Life but better: 외국어 공부가 이끈 삶의 변화

by 전해리

제발 즐겨

_ 외국어 공부가 이끈 삶의 변화

__ My Life but Better

___ 둥글게 둥글게


나는 이국의 언어로 이방인 신세를 탈피하고 싶었다. 내가 속한 세계는 나를 인정한 적 없고, 마찬가지로 나도 이 세계를 사랑한 적 없어서 내가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세계로 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세계의 언어를 잘해야 했다. 그런데 그 입문에서 나는 늘 주저앉아 울었다. 너무 무서웠다. 혼자서 너무 무서웠다. 보이지 않는 앞길을 가는 방법은 그냥 가는 것뿐인데, 그 안은 몹시 깜깜했고 내 손에는 손전등 하나 없었다. 나는 못 하겠는데, 해야 했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환해도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나를 사랑하는 곳도 아니다. 저 컴컴한 곳만 건너면, 나만 잘하면, 내가 원하는 세계로 갈 수 있다. 그러니까 무서워도 앞으로 가라. 나는 흐느끼면서 손전등 없는 손으로 바닥을 짚어가며 엉금엉금 기어 갔다.

11살 즈음인가, 영어 학원에서 까다로운 숙제를 내줬다. 원어민의 대사를 듣는 즉시 타자를 치는 숙제였다. 문제는, 영문 타자를 쳐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영어 숙제를 쉽게 해결한 적도 없고, 영어 수업을 쉽게 따라간 적도 없었다. 더군다나 평소에도 듣기 부문이 가장 자신 없어서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설상가상인 셈이었다. 숙제를 안 할 수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재생 버튼을 누른 순간,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한글 타자만 연습해 봤지 영문 타자는 처음이었고, 학원에서는 타자 연습을 할 여유를 주지 않은 채 숙제를 내준 사정이 있긴 했다. 한글 타자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연습을 그렇게 시켰는데, 영문 타자는 연습 시간이 거의 없었으니 걸음마를 막 뗀 수준도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시간을 좀 줬다고 해도, 무리였을 것이다. 타자 연습과 듣는 족족 받아 적는 것의 차이는 마치 걸음마와 달리기 경주의 차이와 같기 때문이다. 귀에 들리는 건 못 알아듣겠고, 그나마 하나 들리는 걸 잡아 타자로 치려고 하면 키보드 글자가 한눈에 보이지 않았다. 매몰차게 영어를 읽는 목소리는 어리바리하다가 덜덜 떨며 굳는 나의 손가락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는 키보드에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부지불식(不知不識)이 주는 공포를 견뎌야 했다. 듣기평가가 끝나고 결과를 확인했을 때, 내 눈에 보이는 건 빈칸과 빨간 줄뿐이었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견딜 수 없었다. 이런 과정 아니, 숙제가 앞으로 계속 있을 텐데 눈앞이 깜깜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무서워야 이 숙제가 끝날까 알 길이 없었다. 그 뒤로, 그 숙제를 정확하게 몇 번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할 때마다 열등과 불능이 속상해 울었다는 것, 또 할 때마다 타자를 익혔다는 것, 그리고 학원에서 그 숙제를 내주지 않을 즈음 손놀림에 영문 타자가 자리 잡혔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영문 타자를 치는 건 한글 타자를 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워졌다. 그때 엉엉 울면서 해서, 훗날 일본어와 중국어를 타자로 치는 과제를 주어졌을 때는 겁도 안 났다. 짜증이 났지.

영어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다. 영어를 잘하는 애들은 이미 너무 많아서 차별화가 필요했다. 배워서 나쁠 것도 없기도 하고. 마침 학교에서는 제2외국어 수업으로 일본어를 가르쳤고, 난 일본어도 배우기로 결심했다. 내가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만난 선생님은 문제 풀기를 가르치지 않으셨다. 히라가나, 가타카나, 그리고 기초적인 문법을 가르친 후 바로 소설책 해석에 돌입하셨다. 소설책은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첫 숙제는 첫 장을 해석하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영어 원서도 읽은 적이 없는 나였으며, 더군다나 일본어는 이제 막 기초를 떼지 않았나! 문장에서 명사와 동사, 전치사 구분도 잘하지 못해 책을 편 순간 ‘외계어’라는 단어를 체감하였다. 글자가 그림처럼 보였다. 요미가나의 개념도 그다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숙제를 시작하려는데, 첫 문장의 첫 단어부터 못 알아보았다. 히라가나만 겨우 읽었는데 이 단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할지 암담했다.

‘후지이 이츠키가 죽은 지 이 년이 지났다.

3월 3일은 그의 삼 주기이다. 히나마쓰리이기도 한 그날, 고베에는 드물게 눈이 내렸다. 고지대에 위치한 공동 묘지도 눈 속에 파묻혔고, 검은 상복에는 하얀 얼룩이 군데군데 붙었다.

히로코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색깔 없는 하늘에서 끝을 모르고 내리는 새하얀 눈은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눈 덮인 산 속에서 죽은 그가 마지막으로 본 하늘도 분명 이러하지 않았을까.

“그 애가 내려주고 있는 건가 봐.”

그렇게 말한 사람은 이츠키의 엄마 야스요였다. 원래대로라면 히로코의 시어머니가 될 사람이었다.

향을 피우는 순서가 왔다.

묘 앞에서 손을 모으고 다시 그를 마주본 히로코는 묘하게 차분한 스스로에게 깜짝 놀랐다. 세월이라는 게 이런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히로코는 조금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지금은 채 오 분도 걸리지 않는 이 몇 문장을 해석하는 데 세 시간이 족히 들었다. 그 세 시간만 생각하면 아직도 숨이 턱 막힌다. 겨우 숙제를 끝냈지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감도 잡을 수 없는 걸로도 모자라 제대로 단어를 찾은 건지도 도무지 확신이 없었다. 10년 전인 당시에는 요즘처럼 신조어나 줄임말에 대한 결과가 턱턱 나오는 인터넷 사전 환경이 아니었다. 심지어 상대는 영어도 아닌 일본어다. 마우스로 획을 찍찍 그어 한자를 그리는 데 시간과 수고로움도 상당했다. 나는 종이 사전과 전자사전을 활용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시간과 수고가 단축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일일이 한자의 획순을 세거나 한자 부수를 찾아야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게다가 사람 이름의 경우, 이게 훈독인지 음독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나는 또 한 번 엉엉 울었다. 너무 막막했다. 이건 영문 타자를 처음 칠 때보다 너무했다. 이 짧은 글이 세 시간이 걸리면 앞으로 이 소설 한 권을 어느 세월에 해석한담? 외국어 공부라는 게 그런 것이다, 하세월(何歲月). 그럼 뭐하나, 읽어도 읽어도 처음 보는 것처럼 이해를 못 하겠는데. 나는 이것말고도 할 게 널리고 널렸는데 실력이 늘려면 시간을 얼마나 들여야 하는 걸까 헤아릴 수 없었다. 기약 없는 아득함에 나는 눈이 멀었다. 히라가나 쓰기도 서툴렀던 시절, 오로지 신세계를 향하겠다는 일념 하에 울음을 꾸역꾸역 삼켜가며 사전 한 장 한 장을 들췄다. 그 순간마다, 뭘 어떻게 해도 모르겠는 심정을 들키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껏 추연하게 배운 언어의 나라에 처음 도달했을 때, 나는 기쁘기는커녕 또 얼마나 울었나. 내가 기대했던 친숙한 신세계는 없고, 웬 처음 보는 세계만 있었다. 그곳은 처음 보는 단어처럼 낯설고 무서웠다.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는데 하필 그 단어를 모르면 굶거나 길을 잃었다. 귀에 들리는 건 일본어임을 알지만 들리지 않아 갑갑했다. 내가 모르는 언어로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수군거리는 캄캄한 방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일본어를 배운 지 1년 만에 간 세계가 그랬다. 어른 없이 간 여행이자 첫 해외 여행에서 집에 왔을 때, 나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내가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를 잘하고 싶고, 스페인어에 프랑스어까지 배우고 싶다고 하자 누군가는 비웃거나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난 내가 원하는 그림은 아니어도 원하는 계획대로는 되고 있다고, 필시 그러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 줄 알아서 학기 초반에는 중국어를 배우는 게 재미있었다. 내가 갈 수 있는 신세계, 그것도 아주 드넓은 세계가 하나 더 생겨서 아주 신이 났었다. 그런데 이런 열성은 영어, 일본어를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얼마 못 갔다. 어딜 가나 내가 배우는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사람은 꼭 있었고, 나는 또 갈 길이 먼데 걸음마부터 떼야 하는 신세였다. 성조 하나, 단어 하나 틀리면 곧이곧대로 점수에 반영되는 세계에서 나는 더럭 겁이 났다. 여기서 뒤쳐지면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 그럴 순 없다. 곧 죽어도 그럴 순 없어서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무식하게 들이댔다. 종이에 수도 없이 단어를 써 댔고, 이해를 못하면 외워 버렸다. 그랬더니 항상 그랬던 것처럼 성적 향상이라는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기억력과 정신 상태에 문제도 같이 나타났다. 어찌어찌 겨우 학업은 끝마쳤지만, 내 입에서는 중국어가 한 마디조차 나오지 않고, 넷 사(四), 서쪽 서(西), 술 주(酒)를 구별해서 쓰지도 못한다. 덩달아, 중국어를 머릿속에 구겨 넣은 대가로 일본어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고 없었다. 황당하게도, 중국어를 쓰려고 하면 일본어가 나왔고, 일본어를 읽으려고 하면 중국어를 읽었다. 영어라도 가뿐하게 말하고 싶었으나, 일본어와 중국어가 뒤죽박죽 뒤섞인 머릿속에서 함께 엉켜 있어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세 개의 외국어를 배웠지만 나는 그 세계의 일원이 되지 못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내 앞에는 신세계를 향하는 안개 낀 길이나 동굴이 아니라 그냥 새까만 벽이 서 있었다. 나는 착각한 거다. 나는 그동안 눈을 감고 벽에 머리를 박아댄 것과 다름없었다. 내 욕심과 무지로 내가 모든 걸 망쳤다. 내가 날 망쳐 버렸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 곳도 가지 못했다. 나는 여기 그대로 있다. 내가 그토록 증오하는 못난 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어두컴컴한 곳에 등을 지고 원래부터 불이 잘 들어왔던 나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멀리 가고 싶었는데 다시 못난 나로 되돌아 왔다니,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학창시절에 익힌 외국어로는 밥 벌어먹고 살 수 없다고 하니, 나는 이왕 나 자신으로 돌아온 김에 본연의 내가 하는 일을 했다. 못 읽었던 책을 읽었다. 역시 책은 밝은 곳에서 읽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읽고 싶었지만 시간이 나지 않아 미뤄둔 글을 읽었다. 그 글은 한국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언어를 가리지 않고 읽고 싶으면 읽었다. 영어든, 일본어든, 중국어든 어떤 글을 읽어도 한눈에 알아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 사실은 영어든, 일본어든, 중국어든 원어민처럼 소화하는 것이 본래 목표였다. 그런데 이젠 다 틀렸으니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읽는다는 두근거림과 외국어로 된 글을 읽는다는 콩닥거림이 함께 나타났다. 내가 읽고 싶으면서도 외국어로 된 글을 읽는 방법은 별 관심도 없는 외국어 독해 공부를 할 때와 같았다. 전체적으로 훑어본 다음, 한 문장마다 동사, 명사, 전치사를 구별하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본 후 해석에 들어섰다. 숙제처럼 기한을 지킬 필요도 없고, 시험처럼 점수를 매기지도 않으니 부담감이 덜했다.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타나면 마음이 덜컹했지만 넘어갔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돌다리 건너듯 읽었다. 그렇게 한 편의 외국어 원문, 한 권의 원서를 마칠 때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희열을 느꼈다. 꼭 이해가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번역된 글이나 책을 읽다 보면 본래는 어떤 표현을 썼는지 궁금하기 일쑤였는데 그걸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원문 표현을 보고 스스로 번역을 해보는 경우가 자연스레 늘어났다. 손에 닿는 글과 책의 범위가 점점 광활해지는 건 뜻밖의 덤이었다. 그러니까, 재미있었다. 새로 배우는 단어가 징그럽지 않고 신기하고, 외국어 문장은 읽을수록 설레고,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하는 과정이 흥겨웠다. 나는 외국어로 된 글과 책을 읽을 때면 글 쓰는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한계를 밀어내는 심정이었다. 그 어떤 고생도 이보다 달가울 수는 없었다. 나는 글 쓰는 일에 있어 그토록 원망스러웠던 외국어 공부의 쓸모를 이제야 알아보았다. 외국어 공부는 내 밖의 미지(未知)로 나아가는 것 이상으로 내 안의 무지(無知)를 깨우치는 과업이었던 것이다. 즉 어두운 곳을 밝히는 것보다도 밝은 곳을 넓히는 일이었다. 태양이 닿는 곳을 넓히는 일이었다. 이렇게 가꾸고 일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일단은, 외국어 원문을 읽는 자체가 몹시 즐겁다. 내 주위에는 일찍이 유학을 가서 내가 지금 공들여 읽는 원서를 십대 때 학교 수업에서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들은 그 독서를 즐기지 못하고 지겨워했다. 이렇게 엄청난 책을! 이 원서 읽기의 소중함과 중요함을 나는 지금이라서 아는 것이다. 이 즐거움을 끝내 깨우친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그때 힘을 들여가며 힘들지 말 걸 그랬다. 영어가 됐든, 일본어가 됐든, 중국어가 됐든. 힘을 들이지 않아도 어차피 힘든 일에 나는 두려움과 앞서 가고 싶은 마음으로 너무 힘을 줬다. 결과에 마음 쓰지 말고 그 순수한 재미를 만끽했어야 했다, 지금처럼. 내가 즐긴다고 해서 결과가 변하지 않았을 텐데, 일어날 일은 일어났을 텐데, 나는 괴로워만 했다. 순수해야 하는 시절, 모르는 것을 보면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것을 보면 흥미를 느끼는 웃음이 없다. 그 좋은 시절, 그 소중한 순간들이 압박감과 긴장감으로 문드러져 그저 새까맣다. 겨우 추억해도 그곳은 형체 하나 없이 덩어리째 컴컴하다.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다.

나는 또 맡은 업무와 업무 틈 사이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내 할일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쓰다 막히면 글쓰기에 보탬이 되는 일을 했다. 어제는 숙원 사업이었던 영어 원서 읽기를 하나 마쳤으니, 오늘은 밀린 일본어 번역을 할 차례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뷰를 내 손으로 직접 번역해 보고 싶었고, 나는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뷰의 일본어 원문 첫 단어부터 차근차근 해석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두려움이 몰려 들었다. 겁이 덜컥 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또, 못 알아보면 어떡해?”

알아보았다. 내가 알거나 어디서 본 단어였다. 나는 설마 싶어 모든 단어마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내가 맞았다. 두려움은 버릇이었다. 공포는 습관이고. 즉각적인 감각이 아니었다. 즉각적인 감각은 오로지 이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흥뿐임을 다시 한번 자각했다. 안도하며 나는 여러 번이고 인터뷰를 읽었다. 읽어도 읽어도 색달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언구구를 홀로 흥얼거리면서 다시금 깨우쳤다, 나는 조금 더 즐겨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바다만큼 이로운 글

언제까지고

당신을 맞이합니다



<둥글게 둥글게>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마지막 편지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천 냥 빛

-하농

-My Life but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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