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음식 : 집에서 찐 밤, 맥도날드 카페라떼
노래 : async 앨범 (류이치 사카모토)
글 : 여행지 TMI (오충환 에디터 글)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42476
뭉툭하게 잘린 언덕에 또 언덕이 있는 행성이었다. 행성은 포근하게 익어 얼루룩얼루룩한 연갈색을 띠었다. 그곳은 촉촉한 황무지였고, 그곳에서 나는 건 맛이었다. 단맛이 나지만 하도 은은하여, 맛을 볼수록 알 수 없는 신비에 빠지는 듯했다. 그 맛은 입 안에서 살풋하게 으츠러졌다. 나는 이 연한 부스러기의 온기를 느끼자마자 같은 공기를 품은 추억의 길을 찾았다. 그 길을 따라 가면 마찬가지로 같은 공기와 또 같은 빛깔의 오아시스가 있었다. 뜻밖의 오아시스는 따스하고 보드라웠다. 나는 목이 특별히 마르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오아시스에 입을 갖다 대었다. 오아시스를 연거푸 들이킬수록 거품은 그 속으로 잦아들었다. 나는 사람들의 심정을 완전하게 가늠할 수 있었다. 다소 통속적인 모험 소설 속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사막을 걷는 이들의 신기루 속에 왜 오아시스가 위치하는지 납득이 된 것이다. 오아시스는 그 자체로 희망이었다. 퍽퍽한 삶을 매끄럽게 했다. 더군다나 나의 오아시스에는 은하수(the Milky Way)가 있어 퍽 풍요로웠다. 나는 별을 본 김에 어린 왕자를 회상했다. 나에게 어린 왕자는 소설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분명 살아 있다는 마음을 다 커서도 지울 수 없었다.
햇살이 박살났다. 조그마한 사막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올라섰을 때 나의 머리 위로 햇살 조각이 쏟아졌다. 그 날카로운 조각은 질긴 뇌의 껍질을 뚫고 찢어버렸다. 불볕 아래 피부에 바른 두터운 선크림은 불 앞의 얼음처럼 속수무책으로 녹아 땀과 뒤섞여 줄줄 흘렀다. 볕이 내리친 뜨거운 따귀에 정신이 다 얼얼했다. 마주하는 둔덕마다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을 실은 자동차가 호기롭게 넘어 대는 바람에 괜히 애꿎은 우리만 넘실거렸다. 시원하진 않지만 나는 투명하고 거친 바람이 된 것만 같았다. 혹은, 바람이 내 몸을 그대로 통과하는 느낌이었다. 오리소리한 와중에 자동차는 다행히 어딘가에 정착하여 질풍노도를 멈췄다. 모험은 이미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빙빙 도는 눈 앞에는 한 고비가 서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를 오르렷다! 산이 눈 앞에 있으니 산에 올랐다는 이야기처럼 도전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휘청거리며 자동차 밖으로 다리를 꺼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햇기에 다리가 닿는 순간 따끔거렸기 때문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태양 아래 순진하게 반짝이는 모래판은 악독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어, 발을 딛은 순간 우스꽝스럽게 팔팔 뛰어야 했다. 기름 위에서 튀겨지는 콩의 마음에 일순 동의되었다. 이 더위에서는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겠으니 태양 좀 가리고 비구름 좀 달라고 누구에게라도 빌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에서 불이 나지 않을까 정수리를 수도 없이 만져대는 참이었다. 그러나 공기는 영원히 훗훗거리고 태양은 이글거릴 것처럼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보폭이라도 넓혀 어떻게든 고비 위로 빨리 오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한 발자국 오를 때마다 신발에 들어가는 수북한 모래가 문제였다. 내 발이 모래인지 모래가 내 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제자리 걸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신발을 벗었다. 그 순간, 발에 불이 붙었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제자리에서 벗어나려다 팔딱팔딱 춤을 추었다. 설상가상이 따로 없었다. 내 얼굴에서 흐르는 건 땀인가 눈물인가 긴가민가했다. 오를 만하면 내려와 있기를 반복하며 마침내 고비에 올라섰을 때 나는 속수무책으로 망연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 윤기가 나는 황금색 모래 바닥, 그리고 저 너머 푸르르고 반짝이는 바다가 보였다. 나는 그 단순한 광경에 쉽게 압도당했다. 시야에 꽉 차는 풍경만큼 청야(聽野)도 온갖 소리로 빽빽하였다. 누가 사막을 적요의 공간이라 했던가? 사막은 도시에서, 심지어 시골에서조차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모아둔 듯했다. 그건 태양의 무자비한 창살에 만고불변의 만물과 관념이 동등하게 부서지는 소리였다. 대기의 파편, 변덕의 파편, 방심의 파편, 또 희미하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의 파편까지. 나는 그 파편 위를 사박사박 걸었고, 어린 왕자의 발자국은 일분일초마다 쌓이는 파편의 파편에 그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린 왕자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자니 모래바람의 소리가 울음 소리처럼 들렸다. 옆으로는 모래가 뱀처럼 사르르 움직이고.
갓 찐 햇밤을 먹을 때면 홀로 절경을 발견한 모험가의 심정이다. 갓 찐 햇밤을 먹을 때면 나는 순식간에 멀리 간다. 언제 머리 위로 가시 뭉텅이가 떨어질지 몰라 조마조마하며 밤송이를 주우러 다녔던 그 시간 속 마음이 생생하다. 밤송이를 벌리면 포대기에 싸인 아기처럼 곱게 누워 있는 밤톨은 무시무시한 가시의 공포를 잊게 하였다. 그 튼튼한 밤 껍질은 미리 깐 다음 삶으면 편하겠지만 운치는 없다. 그러니 고대로 삶은 후 반을 갈라 아기 수저로 조심조심 파먹어야 한다. 그래야 모험의 여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밤알은 색이 하나지만 그 부스러기에는 색 말고도 모양까지 다양하다. 어떤 것은 푸르스름하고, 어떤 것은 거뭇하고, 어떤 것은 회갈색이었다. 또, 어떤 것은 선이고, 어떤 것은 점이며, 어떤 것은 층이었다. 꼭 사막을 닮았다. 사막은 한 가지 색이지만 그 세세한 알갱이마다 색과 모양이 달랐다. 가만히 서 있어도 화염에 휩싸인 듯했던, 그 아찔한 추억에 몸이 떨렸다. 나는 추억을 다 곱씹고 나서, ‘여행지 TMI’를 찾아 읽었다. ‘여행지 TMI’는 그 이름 빼고 모든 것이 완벽하다. 글만 두고 보면 진부하고 고루한 유행어로 된 이름을 받아들일 수 없다. 부제마저도 근사하게 지어 놓고서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지 넘어가려고 해도 매번 마음에 걸린다. 굳이 유행어로 이름을 지은 이유를 글에서 찾느라 덕분에 모험가가 되는 기분이 든다. 또 사실, 글의 길이가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그 글 속에 있는 스타일리쉬한 모험기가 좋아 불만을 잠재우려고 한다. 여하튼 그 글에는 살면서 처음 보는 이름이 많다. 아그리젠토, 무스카트 등 그 이름마다 거친 감촉과 바람의 향기, 낯선 풍경이 가득해서 질투가 난다. 소금기와 붉은 노을은 그 글 앞에서 시무룩해진다. 밤 골목과 하얀 절벽, 우아한 호수는 상상조차 안 된다. 넓은 모험의 짧은 글 앞에 상상력이 짧아지고 마음만 울렁댄다. 맥도날드에서 부리나케 사온 애꿎은 카페라떼만 한번 더 홀짝인다. 아무도 나에게 삶은 밤과 카페라떼가 어울린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정성 가득한 고소함과 합리적인 고소함이 어우러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겠지만. 그것보다도 색깔과 색깔의 조합이 마음에 들어온다. 익숙하니까 그렇다. 그리우니까 그렇다. 보고 싶으니까 그렇다. 나는 밤과 카페라떼에서 사막을 펼쳤다. 지금은 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가장 간절한 건 가장 이상했던 경험이라고. 언젠가는 갈 줄 알았지만 뜻밖에 갈 줄은 몰랐던 조그마한 사막 위에서 별의별 감상이 용솟음쳤고, 온갖 감정이 튀어나왔다. 그 속에 사로잡혀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단어와 문장을 생각해냈다. 그 순간이 지금 가장 절실하다. 그래서 ‘여행지 TMI’를 읽는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자유와 경외심이 있다. 어쩌면 글이 짧아서 차라리 다행이다. 글이 길어서 더 읽다간 나의 모험과 감상력, 그리고 표현력이 배부를 테니까 말이다. 감질난 정도가 지금으로선 가장 족하다. 오른쪽 어깻죽지에 작게 ‘몰타(Malta)’라고 새겼다는 글쓴이의 말에 나는 찬란한 태양빛에 그을릴 뺨과 바닷바람에 헝클어질 색바란 단발머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방랑자가 쓸 글을 기대하며 한입에 밤 하나를 쏙 밀어 넣고 카페라떼를 씩씩하게 마신다.
방랑자가 되기 전까지 내 사막은 샘이 마르지 않는다.
:: 맛있게 먹는 법
햇밤은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지 말길. 그리고 감사하게도 삶기에 요령이나 묘수가 없다.
<둥글게 둥글게>
-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 마지막 편지
-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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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농
- My Life but B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