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반장이어서 미안해, 어차피 너흰 신경 안 썼겠지만

My Life but Better: 반장 경험이 이끈 삶의 변화

by 전해리

못난 반장이어서 미안해, 어차피 너희는 신경도 안 썼겠지만.

_ 반장 경험이 이끈 삶의 변화

__ My Life but Better

___ 둥글게 둥글게


누구든 멋있어 보이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누군가가 무엇을 하는 모습이 ‘멋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라. 뭐라고? 멋있는 그 모습에 빠져 그 사람이 하는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이런,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을 환영한다. 당신의 추락을 축복한다.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눈에 씐 콩깍지를 가차없이 떼 버릴 거다. 살면서 콩깍지가 씐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 한 번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피아노를 치던 어떤 언니를 보고 엄마에게 피아노를 치겠다고 선언했던 때다. 또 한 번은,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 반장이란 걸 알게 된 때다. 반장을 맡은 아이가 조례와 종례 시간마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그 아이가 아니라 학급에 무슨 일만 있으면 앞장서야 하는 반장의 역할이 몹시 멋있어 보였다. 이 두 번의 콩깍지 사태로 인생이 무거워도 너무 무거워졌다. 그나마 피아노는 인생에 필요한 예술인 음악이기라도 하지, 반장이 된 경험은 인생에 있어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 감정을 내 인생으로 가져왔다. 피아노를 친 덕분에 삶에 음악적 감각을 더할 수 있었지만, 반장이 되고 난 뒤부터 나는 무얼 해도 과도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 반장을 단 한 번이라도 아니, 아예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난 매사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첫 반장은 초등학교 3학년 2학기에 맡았다고 기억한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3학년부터 학생 스스로 반장 선거에 나갈 수 있는 방침이 있었다. 소심한 성격에 차마 3학년 첫 학기부터 반장 선거에 나가지는 못 하겠더라. 출마한 반 동료들(classmate)이 먼저 어떻게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라고 웅변하는지부터 보고 싶던 마음도 있었다. 잘 참고해서, 다음 학기 반장 선거는 내가 이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내가 반장을 하니까. 일단은 서기가 되어 임원단의 곁에 있으면서, 2학기 반장 선거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글솜씨가 빼어난 엄마의 도움을 받아 연설문을 작성했는데, 정확한 내용까지 당연히 생각나지 않지만 구조 정도는 기억난다. 이제 보니 그 글이 초등학생 반장 연설에 쓰기에는 참 논리정연하고 그럴 듯했던 것 같다. 나는 허무맹랑한 공약을 내뱉거나, 간식 같은 걸로 회유하지 않았다. ‘내가 반장이 된다면’과 같은 뻔한 문구도 쓰지 않았다. 그저 먼저 인사를 한 다음, 자기 소개를 하고, 나의 어떠한 면모가 이 학급에 도움이 될 것인지 담백하게 주장하며 깔끔한 한 마디로 연설을 끝마쳤다. 나는 3학년 2학기부터 시작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해 거르지 않고 반장을 했는데, 반장 선거 연설마다 내용만 약간 다를 뿐 첫 연설문의 구성을 내내 써먹었다. 연설문도 머지않아 혼자서 해결했다. 다만 나에게 문제는 연설문이 아니었다. 발표였다. 도대체 남 앞에만 서면 덜덜 떠는 사람이 반장 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한 건지, 쯧쯧! 가만 두어도 고달플 인생 내가 더 고달프게 만든 것 같아 헛웃음이 난다. 반장 선거 며칠 전부터 일찌감치 연설문을 작성해 놓고 집에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연습할수록 연설문 암기는 되었는데, 긴장과 떨림은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늘 연습한 그대로 선거 당일 연설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사실 아직도 궁금하다, 반 동료들이 내가 연설할 동안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리는 다리와 손을 보았는지, 그들도 내가 애써 감추려는 목소리의 진동을 느꼈는지. 그리고 하나 더 궁금하다, 도대체 나를 왜 반장을 뽑았는지. 간절해 보였으려나?

단 한 번도 반장으로 선출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적이 없었다. 반장이 간절히 되고 싶었음에도, (콩닥콩닥한) 개표 후 ‘이번 학기 반장은 전해리’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질겁하다시피 했다. 이토록 야망과 본연의 그릇 크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게다가 본연의 그릇은 물러도 너무 물렀다. 겉으로 본 것과 달리 반장은 ‘차렷, 선생님께 경례’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사소하게는 가정 통신문을 돌리고, 특별하게는 체육 대회에 선보일 무용을 단상에 올라가 직접 시연해야 한다거나, 반장을 맡은 학기에 열리는 학예회에는 사회를 봐야 했다. 그럴 때마다 지금은 책임감이라 부를 어떤 감정들이 내 마음을 휘감고 주물렀다. 또한, 나는 무릇 반장이라면 모든 방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단단히 믿었다. 수행 평가나 성적, 온갖 대회는 차라리 쉬운 쪽이었다. 초등학생 공부가 아무리 어려워 봤자다. 성심만 다하면 점수를 잘 받는 것이 수행 평가였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느는 건 성적이었으며, 만족할 수 없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 대회였다. 그러니 내가 속을 썩은 건 반 동료들을 대하는 일이었다. 가장 기본적으로, 반 동료들이 시끄러우면 반장 탓, 반 동료들이 줄을 제대로 안 서도 반장 탓이었다. 반장은 떠들면 안 되고, 간혹 가다 떠들면 다른 동료들보다 두 배로 혼났다. 그때마다 서러워서 눈에 눈물이 고였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진 않지만, 3학년과 4학년 때는 참지 못해 울면서 반을 뛰쳐나가 보건실에서 양호 선생님께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애들이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며 말이다. 그 어린 나이에 ‘아이들이 왜 조용히 하라는 말, 줄 좀 똑바로 서라는 말을 듣지 않는 걸까’ 고민하며 리더십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다. 혼자서 ‘으흠, 이런 것이 문제였구나’, ‘이래야 좋은 리더구나’ 북 치고 장구를 쳤다. 그만큼 나는 좋은 반장, 실력 좋은 반장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반 동료들이 날 기억했을 때 못난 반장, 실력 없는 반장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따랐고, 숙제를 안 한 적이 없었다. 11월 11일에는 반 동료들 모두에게 빼빼로를 돌리고,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반 동료에게 빌려주기 위해서 여분으로 준비물을 챙겨 가기도 했다. 그토록 간절하게 나는 완벽한 반장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런데 도대체 나에 대한 남의 평가가 왜 그리도 중요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고작 그 당시 연설문은 고사하고 학창 시절 기억조차 희미한데, 남의 기억에 어떤 반장으로 남는지가 어째서 그렇게 중요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왜 애들이 반장인 내 말을 듣지를 않았는지 이제야 안다. 내가 반장으로서 카리스마가 없어서? 그런 가능성을 차마 배제할 수 없기는 하다. 그럼 혹시 내가 반장으로서 시원찮아서? 저들 손으로 날 뽑았을 텐데, 과연 당당하게 나를 시원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장 확실한 답은 이거다: 초등학생 애들이 반장 말을 들어봤자 얼마나 듣겠나. 선생님 말씀도 잘 안 듣는데. 그 나이대 어린이들이 얌전히 앉아서 공부를 한다거나, 단정하게 급식 줄을 설 수 있나? 그러나 그때는 이런 정상적 생각이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반장이란 역할은 내 완벽주의 성향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반장은 반 아이들을 가뿐하게 통솔하고, 각종 시험과 대회는 척척 처리하고, 선생님이 무어라 말씀하시기 전에 딱 알아들어야 했다. 정작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나의 이상에 맞추려는 무리를 감행했으며,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이상과 달랐다. 나는 항상 아이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해 애와 기를 썼고, 각종 시험과 대회에는 서툴렀고, 선생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나는 내 이상에만 급급하느라 현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지만 잠시 그 시절 어린아이의 마음에 들어가 보자면,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반장이라는 이름표는 헛것이 되고 만다. 수업 시간에 떠들면 안 되고, 숙제는 다 학생 좋으라고 하는 것이고, 선생님 지도는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이니까, 나는 어쩌면 당연해야 할 것을 존중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그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벗어나자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알고 그 밖의 것들에 조금이라도 의연했어야 했다. 조용히 하라고 해도 떠드는 아이들, 나는 노력했는데 알아주지 않는 선생님의 호통, 대회나 시험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담감에 관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무던했다면 지금의 나는 아무래도 달랐을 것 같다.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생활기록부에 남긴 문장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지금도 너무 잘 해나가고 있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목표치에 도달하는 동안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적당한 긴장감은 추진력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경우에는 해리를 많이 힘들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얼마나 한결같은지. 한편, 이왕의 회한을 끝까지라도 할 수 없는 게, 나는 이 문장을 읽은 기억이 없다. 즉 그때의 나는 성적표를 보고 상장 수를 세어 보느라 바빴다. 그래서 초등학생 이후에 반장을 맡은 적은 없어도, 조장이나 단장은 놓치지 않았다. 덩달아, 감투를 안 써도 대표로 나설 수 있는 일에는 솔선수범이었다. 미쳤지. 대표하는 역할에 대한 애착(혹은 집착)은 나의 ‘사서 고생하는’ 기질에 불을 지른 셈이다. 덕분에 나의 학창 시절이 그렇게 까만가 보다. ‘반장 증후군’으로 무사태평의 가능성을 불사르고 잿더미밖에 남지 않아서.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나는 어떤 대표직을 맡아도 압박감에 시달렸다. 잘 해야 돼. 특히, 방일 연수단장을 잊을 수 없다. 전국적으로 선발되고 나를 잘 모르는 청소년들이 날 대표로 뽑아줬다는 사실은 아직도 뿌듯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단장 선거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연수가 되었지만 다른 단원들에게는 그저 신나는 여행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즐겨야 맞았다. 단장이 아니었다면 나도 다른 보통 단원들처럼 일상을 벗어나 모처럼 만에 새로운 경험을 한껏 즐겼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애써 봤자 고등학생일 뿐인데 말이다. 대표로서 책임감을 평소보다 막중하게 느낀 건 부단장은 일본어를 원어민처럼 잘했지만 나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어를 매끄럽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이 단장으로서 부끄러웠다. 따라서 일본어 구사 외적인 것에 더더욱 신경써야 한다고, 다른 건 내가 더 잘해야 한다고 믿었다. 자격 없는 단장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연수를 떠나기 한 달 전부터인가, 연수단 선생님들께 이메일로 일일이 연락 드리고, 40명가량 되었던 연수단원 전화 번호를 알아내어 단체 문자를 돌려 인사하고 연수에 필요한 사항을 전달했다. 연수 기간에는 내내 긴장 상태였다. 단상 위로 올라가 연설을 하고, 윗사람과 식사를 하고, 연수단원들을 앞에서나 뒤에서나 챙겼다. 다른 말로 하면, 떨리고 불편하고 어색했다. 다른 단원들처럼 신기하고 새로운 것들을 마냥 구경하고 먹고 웃으면 지나갈 연수였을 텐데, 나는 단장이어서 아니었다. 단순한 수학여행이 아니라 나라 간 교류였기 때문에 품행이 단정해야 했다. 항상 조신하게 굴고, 단원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주의를 주고, 학생이라면 할 법한 아슬아슬한 재미는 꿈도 안 꿨다. 그랬으니, 이 일본 연수는 두고두고 아쉽다. 아무리 내가 소심한 인간이라 한들, 단장이라는 굴레에 갇혀 아무래도 만끽의 기회를 스스로 놓은 것 같다. 그러나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단장 선거에 나간 순간부터 임원이 아닌 일원의 입장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어째서 대표를 뽑는 자리를 모른 척하기가 어려웠을까?

반면, 왕관을 쓰겠다고 한 적 없는데 왕관의 무게를 느낀 적이 허다하기도 했다. 대표라는 이름표가 굳이 없어도, 사람들이 모이면 저들을 대표해서 일을 처리하는 역할이 생기길 마련이다. 누군가는 그 군집을 대표해야 하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대표를 맡고 그 역할에 충실한 사람, 대표는 맡고 싶지 않지만 대표라는 수식어가 필요한 사람, 대표를 맡았지만 대표의 일을 하지 않는 사람, 대표는 아니지만 대표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 등 말이다. 나는 그 많고 많은 사람 중 주로 ‘대표는 아니지만 대표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이었다. 대표가 되려는 의도가 있건 없건 그랬다. 과제를 보기 좋게 정리해야 하는데 그걸 할 사람이 없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대표했고, 다들 발표를 기피해서 내가 선뜻 대표했으며, 적극적으로 낸 의견에 책임을 져야 해서 내가 자연스레 대표했다. 하지만 대표가 내팽개친 일을 내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디어를 내거나, 중간 과정을 처리하거나, 뒷마무리를 했다. 문제는, 내가 낸 아이디어로 본인이 생색을 낸다거나, 중간 과정이 저절로 해결된 줄 알거나, 가장 최악은 무임승차와 결석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그럼 나 혼자만 아연실색하면서도 붉으락푸르락하여 대표 대신 일지를 적고, 대표가 담당하는 아이를 대신 돌보거나 커리큘럼을 짰다. 그렇게 내가 저 대신 (수습)한 모든 일들을 그 사람이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중요한 문서에 적은 것을 우연히 읽게 되고, 나는 허망하여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증거가 없어. 걔 대신 내가 했다는 증거가 없어. 다른 애들이나 사람들의 기억에는 있는데 증거로 내밀 기록이 없어.”

혹시나 해서 말인데, 나나 그 사람이나 봉사 활동 내력으로 혜택을 얻은 일은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대표를 맡는다고 해서 콩고물은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은 것보다도 곰이 재주도 부리고 청소까지 했는데 되놈커녕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간단히 안 나간다고 통보하면 그만인 일이 아니라, 직접 나와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귀찮아야 하는 일이었다. 반장이라는 이름표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대표라는 이름표도 없게 되고 나서야 대표의 존재 이유를 깨달았다.

그렇다. 보상은 고사하고 뿌듯한 적은 드물다. 대표로 나선 일만 상기하면 괴롭고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만 떠오른다. 최선을 다해야 하고,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원했던 만큼 결과와 박수, 지지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사소한 단체의 대표라도 느껴야 할 고뇌와 노력은 늘 혼자만의 것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세상이 대표를 무어라 정의하든, 대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매달 정해진 월요일 전교 조례 시간에 학교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애국가에 맞춰 지휘하는 건 무척이나 즐거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전교 회장이 지휘를 하는 학교 방송을 보고 나는 그 지휘가 하고 싶었다. 그 지휘를 하려면 반장을 해야 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반장을 해야 했다. 얼마나 전문적인 지휘고,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그 지휘에 맞춰 애국가를 불렀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에 더없이 만족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마다 대표가 할 법한 일이라는 조건이 붙었을 뿐이다. 고로, 내가 반장이 되어 조례 시간에 지휘를 하는 기쁨을 타인에게 어떻게도 형용할 수 없듯, 내가 지휘를 하기 위해 반장이 되어 겪은 고군분투를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마땅히 무리이리라.

못난 사람이 반장이 되었기에 못난 반장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반장처럼 ‘분위기 메이커’가 아니고, 맛있는 간식을 돌리지도 못하고, 똑똑하지도 못했다. 미안하다, 너희들이 원하는 반장이 되어주지 못해서. 나는 너희들 줄 한 번 제대로 세우기도 힘들고, 조용히 시키기도 벅찼으며, 반장이 아닌 학생 자체로도 고달팠다. 그래서 외면적으로 좋아 보이는 일은 못해도 빗자루 한 번을 더 쓸었고, 눈에 띄는 반장은 못 되어도 눈에 거슬리는 반장은 되지 않도록 몸가짐을 더 단정히 하고 선생님 말씀에 대답 한 번 더 했다. 나는 성실했고, 또 노력했다. 조원들의 수고가 드러나도록 발표 연습을 철저하게 했고, 내가 조장인 조에 속한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인터넷을 늘 샅샅이 뒤지고 남들은 모르는 ppt 기술을 익혔다. 그럼에도 미안하다, 너희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나는 당연히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못하는 반장일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배웠다.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서 내 할말을 하는 법, 작은 목소리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법, 세심성의 가치, 과문한 분야의 기술을 접하고 익히는 법 등 너희의 반장이 될 수 없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거야. 반장이 되지 않았다면 숙제를 안 해 가거나, 누가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는지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겠지. 너희의 반장이 될 수 있어서 세상이 얼마나 꼼꼼한지 알 수 있었어. 반장을 하려는 노력, 좋은 반장이 되려는 노력, ‘무슨 반장이 그래’라는 너희의 장난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무 발전이 없었을 게 분명해.

그러니 고마워. 너희의 반장이 될 수 있어 영광이었어, 너희는 내가 반장이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너희의 반장을 할 기회는 앞으로 없겠지만, 만약 하게 되어도 너희가 알아주지 않는 반장이 될게.



추신.

‘생각이나 느낌을 말할 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잘 활용하여 말하며, 주제를 파악해 이야기를 듣는 능력이 우수함’,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일에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실천함’이라고 기록해주신 담임 선생님께도 이 지면을 빌려 감사 인사를 남긴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제가 중학교 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작성해주셨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제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 볼게요. 제가 생각하는 목표치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할게요. 애정 어린 조언, 감사합니다.


바다만큼 이로운 글

언제까지고

당신을 맞이합니다



<둥글게 둥글게>

-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 마지막 편지

-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 천 냥 빛

- 하농

- My Life but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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