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Aesop, 마치 연어처럼

브랜드 르포르타주 Brand Reportage

by 전해리

이솝 Aesop, 마치 연어처럼 _ 브랜드 르포르타주 Reportage


느리게 걷는 이솝 Aesop


과잉생산과 소란스러운 마케팅이 일상화된 현재, 이솝은 그 흐름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세찬 물길에 휩쓸리지 않고 아주 힘차게 말이다.


이솝은 떠들썩한 마케팅이나 각양각색의 패키지 디자인을 이용해 소비자에게 구매를 강요하는 대신 차분한 분위기와 정갈한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심중으로 자연스레 다가가는 편이다. 매장 밖의 벽에 핸드크림이나 바디크림을 배치해 놓음으로써 소비자가 자연스레 이솝으로 들어오거나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굳이 샘플을 일일이 배포하지 않고 제품을 그저 벽에 툭 걸어 놓아서 소비자는 부담스럽지 않게 제품 체험을 할 수 있다. 매장 인테리어는 언제나 다채롭다. 화려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숯을 배치해 놓는 수수한 디자인도 있고, 채도가 낮고 탁한 빛깔의 분홍색의 벽지처럼 개성 있는 면모도 존재하고, 책을 우당탕 떨어뜨린 듯한 자연스러운 장식도 재미있다. 하지만 소비자는 이렇게 제각각의 매장 디자인의 이솝 매장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이솝 매장의 통일되지 않는 인테리어에 연관성과 일련성을 부여하는 건 바로 이솝의 제품 디자인과 스태프다. 하늘 아래 ‘같은’ 인테리어의 이솝 매장이 없는 반면, 제품 디자인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갈색 유리병과 베이지 톤의 라벨, 그 위에 정갈하게 쓰여진 글씨들은 브랜드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느 게 어떤 유형의 화장품인지 구별이 가지 않으니 오히려 소비자로 하여금 직접 라벨의 제품 설명을 꼼꼼하게 읽도록 한다. 알고 보니 피부과로부터의 정의가 아니라 화장품 기업의 마케팅이었던 지성, 건성, 복합성 피부타입은 이솝에서 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피부 타입을 세가지로 정해 놓고 소비자에게 어떤 피부 타입이냐고 물어보는 대신 소비자 본인의 피부 고민에 대해 질문한다. 토너, 에센스, 세럼, 앰풀, 로션, 크림, 오일 등 이렇게 복잡다단한 제품군을 늘어놓는 대신 제품군은 토너, 세럼, 하이드레이터, 크림, 오일 이렇게 주로 5가지로 구비하고 그 가짓수를 일절 변화시키지 않는 편이다. 제품 전체를 쓰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화장품 업계 키워드인 화이트닝, 브라이트닝, 안티 에이징을 쉽게 약속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유해 요소로부터의 항산화 기능과 피부 본연 상태의 보존을 다짐한다. 따라서 소비자가 기존에 알고 있는 ‘토너-에센스-로션-아이크림-크림’ 단계가 아니라 토너를 바른 다음 세럼 하나로도 충분히 여름을 날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파슬리 씨드 세럼은 스포이드의 처음부터 끝까지 담아 다 써야 건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며, 겨울에는 이 세럼에 피부 고민에 걸맞는 오일 제품을 섞어 바르면 되는 식이다. 그런데 이 과정도 스태프의 추천일 뿐이고 스태프는 도리어 얼굴에 맞지 않는 느낌이 들면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이솝의 제품은 어렵다. 스태프의 안내 없이는 내가 이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절차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마치 이솝 전체 디자인의 일부인 것 같은 옷차림을 하고 깨끗한 피부를 갖고 있는 스태프가 ‘이 제품 한번 써보세요’, ‘저 제품은 어떠세요’식이 아니라 ‘이 세럼은 이 크림과 성분이 맞지 않고 저 크림과 성분이 맞아 같이 쓰면 효과가 더 좋아요’, ‘토너는 굳이 자사 제품이 아니라 타사 제품이어도 쓰는 걸 권장해요’식으로 나긋나긋 설명하는 걸 듣고 있자면 ‘고객과 가장 많이 마주하는 건 호텔 사장이 아니라 호텔 벨보이’라고 말했던 어느 호텔업계 거성의 말이 떠오른다. 이솝은 갖고 있는 패가 많지 않지만 승부수를 던질 만한 패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공간과 사람은 필연적으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사람이 공간을 바꾸고 공간도 사람을 바꾼다는 논리이다. 이솝은 그러한 생리(生理)가 잘 반영되어 있다. 이솝은 멜번에서 태어났고 멜번의 성질이 녹아 들어간 브랜드다. 굉장히 ‘멜번’다운 브랜드다. 멜번은 세계의 어느 도시에 가도 터줏대감처럼 자리잡는 스타벅스가 그 도시에서 영 맥을 못 출 만큼 로컬 Local 문화가 탄탄한 도시이다. 멜번의 도심을 돌아다니면 종종 일본 교토가 연상되곤 하는데, 도시와 관광지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마을과 같은 정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게의 역사와 가치관을 적은 인쇄물을 매장 밖에 걸어두거나 책으로 만들어 고객에게 보여주는 다수의 상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거기서 거기’인 기성품에서 겪을 만한 피로감을 감지하는 게 좀처럼 어려울 정도다. 인테리어 혹은 분위기, 음식, 선별한 제품에서 가게 주인의 고심과 열정이 돋보여 그들의 진정성이 저절로 눈에 담기는 것만 같다. 정겨움을 더하는 건 직원의 커스터머 서비스 Customer Service다. 그들의 커스터머 서비스가 익숙하지 않을 때는 매번 안부와 선호도를 묻는 그들이 부담스러웠지만 이는 곧 상투적인 친절함보다는 고객을 향한 정성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됐다. 알고 지냈던 멜번 어느 카페의 바리스타는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선사하기 위한 커스터머 서비스 교육이 가장 우선적으로 시행되며 좋은 커피를 함께 나누고 싶은 주체 의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이솝 스태프의 자세에서도 이 바리스타가 언급한 커스터머 서비스가 적용된다. 이솝의 스태프는 고객에게 차 한잔을 권하며 여유롭게 대화하듯 상담하고 필요한 제품을 추천한다. 또한 신제품이 나왔다고 샘플을 무작정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피부 고민에 걸맞는 샘플을 살뜰히 챙겨주며 훗날 다른 스태프가 접대할 때도 참고할 수 있도록 프로필에 기록해두는 서비스는 고객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선 모든 존재가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간다. 강아지를 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대부분의 식당에 채식주의자를 위한 옵션이 갖춰진 배려와 여러 국적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다양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게다가 호주의 도시답게 환경 보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문구가 도처마다 있다. 이는 재생지를 활용한 카탈로그, 페이퍼 백, 에코 백과 맞춤형 샘플을 제공하는 이솝 태도에 반영되었으며 어느 것도 쉽게 낭비하지 않겠다는 정신이 도드라져 보인다. 또한 인간 화장품 브랜드이지만 애완동물을 위해 마련한 제품군을 통해 공존의식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멀리서 바라봤을 때는 이솝을 그저 독특한 브랜드 정도로 인지했지만, 알고 보니 이솝은 애초에 이 소박한 로컬 가게들의 일원으로서 솔직하고 차분한 결을 함께 유지하는 쪽에 가까웠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도심이 재생되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자 기존의 원주민이 쫓겨나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데, 공생과 공존의 반대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처음엔 다 같이 잘 살자고 다짐했지만 욕심이 낙오자를 쫓아내고 결국 모두의 해피엔딩을 그르친다는 현실은 곧 누군가의 행복에는 책임감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삶의 수식어가 경쟁이 되었다는 걸 나타낸다. 수많은 업종의 프랜차이즈점이 골목 상권까지 압박하는 것도 모자라 개성 넘치는 현지 가게들이 안타깝게 사라지는 모습은 사실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다. 그리하여 이른바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총성 없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벽처럼 보이기 위해 튀어나온 못을 때리거나 거대 자본을 내세워 작은 가치까지도 쉽게 무시해버리는 현실 아래 이솝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발휘해 진가를 드러내며 주변 상권과도 사이 좋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이 그저 허울 좋은 공상이 아닌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론이라는 걸 지금도 고향인 멜번에서 충분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구찌나 디올 같은 패션하우스가 즐비한 거리에서도, 빈티지 레코드 샵과 로컬 아이스크림 가게가 지키고 있는 그래피티의 거리에도 이솝은 그들과 어울리며 현지인과 관광객을 동시에 반긴다. 이솝이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는 세계로 뻗어나가도 전세계인의 눈에 들어오게 된 건 바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일을 기꺼이 해냄으로써 생태계의 다양성에 손을 보태는 이치에 가깝다. 따라서 이솝은 지금도 자신이 잘 할 수 있으며 희소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발전시키거나 자신의 가게로 낼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실로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자기정체성을 지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판에 박힌 프랜차이즈 가게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사이 좋게 내는 로컬 브랜드가 가득한 길거리가 세계 곳곳으로 뿌리 내려 건강한 경제가 유지되길 바래본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건강한 연어 같은 이솝처럼.

모든 사진은 제가

호주 멜번의 이솝 매장에서

촬영했습니다.


2018년 10월 씀


위 글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해당 브랜드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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