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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해리 May 11. 2022

추구해요, 가득 채워지게

스타트업인 인터뷰

인터뷰어(관점 교환 제안자) 전해리

인터뷰이(관점 교환 응답자) 임현구 


임현구는 ‘추구하다’라는 말을 자주 꺼냈다. 긍정적인 목적어에는 ‘추구하다’, 부정적인 목적어에서는 ‘좇지 않다’는 동사를 썼다. 임현구는 이제껏 자신이 추구하지 않은 삶을 산 적이 없었다. 가족이 포도 농업에 종사한다고 해서 포도와 농업을 자신의 운명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직접 연구와 실험에 나서며 인생으로 결정하였다. 또한 농사는 추구하는 대로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분야고, 스타트업은 제 뜻만을 추구할 수 없는 분야지만 임현구는 자신이 추구해야 하는 바를 실행한다. 임현구는 스마트팜으로 포도의 수확 환경과 시기를 조정하여 포도의 맛과 양을 균일하게 내기 위해 연구하며, 이와 함께 가족으로부터 전수받은 포도 재배 내공과 대학 시절 창업 동아리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을 설립해 앞장서 이끈다. 임현구는 포도의 재배 조건을 혁신하고, 수확 시기를 앞당기고, 맛을 높이려고 스마트팜 스타트업을 추구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임현구가 단순히 ‘추구하다’라는 말만 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임현구는 이미 추구하고 있음을 나에게 보여준 것이다. 즉 임현구의 삶은 추구해서 가득 찼다. 그러니 당신도 추구해요, 가득 채워지게. 



*해당 인터뷰는 아시아헤럴드에 게재된 스타트업인 인터뷰 <노희준이 가는 길이 곧 준스웨이다>의 확장판입니다. 아시아헤럴드에 게재된 인터뷰 본판은 오로지 스타트업인에 관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인터뷰어인 필자의 의견과 이야기를 생략하였습니다.이 확장판은 그러한 생략을 복원하여 인터뷰의 본래 목적인 인간 대 인간의 담화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따라서 스타트업에만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읽고 싶은 분은 http://www.asiaherald.co.kr/news/26562에 방문하길 바랍니다. 또한, 본판과 확장판의 차이는 인터뷰어의 의견과 이야기 존재 유무일 뿐, 인터뷰이인 스타트업인의 의견과 이야기는 어떤 변함도 없이 그대로이니 불필요한 오해는 삼가 주시길 바랍니다. 


사진, 글씨 = 전해리


전해리(이하 전): 풍천임가는 조부, 숙부, 그리고 지금 임현구 대표님까지 3대가 포도 농업에 몸담고 있습니다. 가족의 농업 종사가 지금의 스타트업 설립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봐도 무방할까요? 대표님께서도 스타트업 설립 이전에 대학과 대학원의 전공이 농업과 관련되어 있더라고요. 


임현구(이하 임): 저는 대가족 아래에서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포도밭에서 지냈어요. 조부님과 숙부님께서 농사를 지으셨고 부모님께서는 맞벌이를 하셨으니깐요. 사실 포도가 싫었죠. 재미도 없고, 밭에는 친구도 없고요. 어쩔 수 없이 저는 포도밭에서 성장하게 되었는데, 진로를 결정할 시기 아버지께서 농대를 가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드라마 작가나 영화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아버지는 방목하다시피 저를 키우셨는데 말이에요. 아들의 인생에 전혀 관여하지 않던 분이 갑자기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로 찾아오시더니 밥을 먹자고 하셨어요.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뺄 수 있다는 생각에 저는 기분이 좋았죠. 저는 순대국밥을 신나게 먹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갑자기 농대를 가라는 말을 꺼내는 거에요. 저는 숙부님이 힘들어 하신 모습을 알면서도 왜 하필 농대를 가라고 말씀하시냐고 되물었는데, 아버지께서는 ‘네가 농대를 가면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이제까지 집안이 포도 농업에서 일군 가치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하시더군요. 단순히 자본의 상속이 아니라 무형 가치의 대물림을 의미하신 거죠. 숙부님(임낙균 분)은 포도 농업계에서 선구자이시거든요. 아버지께서는 꼭 농사가 아니어도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겠다고도 덧붙이셨으니, 어쨌거나 선경지명이 있으셨던 거죠. 단 한 번도 인생의 방향을 직접 지도하지 않으셨던 분이 단도직입적으로 농대에 가라고 말씀하셔서 저로서는 충격(impact)이 컸어요. 숙부님의 경우 반대를 많이 하셨고요. 이해는 돼요. 당신이 힘든 길을 조카가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겠죠. 어쨌든 처음에 한농대를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시련이었죠. 결국 공주대학교 식물자원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원예학과, 농산업창업을 복수 전공하였고요.   


전: 농사를 학업으로 배우니 어떻던가요?


임: 저는 그저 학교를 다니는 것이 좋았습니다. (웃음) 공부에는 적성이 없었는데 연구에는 적성이 있었어요. 공부는 누군가의 이론을 답습하는 것이지만, 연구는 제가 탐색하고 아무도 모르는 지식을 갖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농업 교육을 전공하고 박사가 되었습니다. 결혼식이 12월 25일이었는데 박사 심사 과정을 12월 25일 당일 새벽까지 했습니다. (웃음) 혹독한 심사 과정 때문에 눈물이 다 나는 바람에 그에 대한 감정의 여파로 울면서 신부에게 남기는 영상 편지를 찍었던 에피소드가 있네요. 되돌아보면, 지도 교수님께서 퇴직하시기 전 마지막 제자가 향후 더 크게 성장하기 바라는 마음에 유독 엄격하게 지도하겠다는 큰 뜻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전: 그렇게 요절복통 끝에 졸업하시고 다음 진로를 어떻게 결정하신 건가요?


임: 사실 제 인생의 목표는 딱 박사까지, 그 이후는 결정해 놓은 것이 전혀 없었어요. 박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제 군대 시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제가 헌병대 출신이거든요. 스물한 살 때, 근무를 서다가 제 고참이 ‘너는 무엇을 할 거냐’고 묻길래 그제서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전: 지금까지 말씀하시는 걸 듣자면, 평탄하게 살다가 굉장히 예기치 않은 순간에 대표님 인생에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임: 네,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어쨌든 고심 끝에, 학력으로 신분 상승을 좀 이뤄보자는 판단을 내렸어요. 그 21살 때 꾸었던 꿈을 35살에 이룬 거에요. 15년 걸린 거죠. 학위를 받고 나서 무엇을 해서 먹고 살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포도를 쉽게 재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거에요.


전: 그 전부터 포도를 학업상 중점적으로 연구하셨나요? 


임: 아뇨, 그렇지는 않았어요. 저는 간척지 작물 재배 및 사업화나 기능성 물질 분석에 관련해서 연구했어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제가 전공한 것으로는 큰 수입을 얻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가족이 포도 농업에 종사하니까, 그쪽으로 방향을 틀면 어떨까 생각이 든 거죠.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나니깐요. 


전: 부모님께서 별다른 말씀 없으셨나요?


임: 제가 항상 말하는 거지만, 부모님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에요. 


전: 그럼 진로를 결정할 때는 왜 받아들이셨어요?


임: 그때 딱 한 번이에요. 처음으로 의견을 관철하신 거니깐요. 그 이후로는 아무런 참견도 안 하세요. 저도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나이는 지났죠. 제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은 제가 내린 후 부모님께 알려드리는 편이고, 부모님도 그걸 별 말씀 없이 받아들시는 편이고요.


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쿨’한 부모님 아래 ‘쿨’한 아드님이 나셨군요. 그래도 가업을 잇는 형태가 되니 숙부님, 조부님께서는 별다른 반응 없으셨나요?


임: 아버지께서는 카이스트에서 근무하시기 때문에 박사가 되면 다 교수가 되는 줄 아시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아버지께서 ‘왜 교수를 안 하냐’고 하시면 제가 ‘나는 교수가 못 돼’라고 말씀드리는 식이에요. (웃음) 사업상 이야기는 부모님께 잘 안 드리고, 숙부님께 조언을 많이 구합니다. 


전: 대표님께서 농산업창업을 복수 전공하셨으니 그에 관련한 정보는 풍부한 편이셨을까요?


임: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하긴 했어요. 사업 계획서 쓸 정도의 기본은 되어 있었어요. 저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창업을 한 건 아니에요. 항상 추구하는 자세가 ‘인생 어떻게 될 줄 아무도 모르니 많은 것들을 배워 두자’이거든요. 자랑은 아니지만, 동아리 활동으로 장관상도 몇 개 수상했어요. 


전: 그런 경험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사업 잠재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길 마련일 텐데요. 


임: 그게 진짜 무서운 거라고 느껴요. 제가 대학교 3,4학년 그러니까, 2012,13년도에는 청년 농업인이라는 존재가 크게 부각이 되지 않았거든요. 


전: 딱 10년 전이네요. 


임: 전국 공모전에 출전하여 상을 거의 휩쓸 듯했어요. 거기에서 탄력을 받아서 ‘농사 짓자!’고 나섰죠. (웃음) 대학 선배, 후배 다섯 명이 모여 3천 평을 빌려서 아마란스 농사를 지었어요. 그때가 2012년이에요. 기대 수익이 1억 원이었는데, 딱 13만 원 벌었습니다. 태풍이 와서 그렇게 되었죠. 


전: 그렇게 호기로운 농사가 거덜나니 숙부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임: 숙부님은 ‘네가 그렇지, 뭐’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던데요. (웃음)


전: 경제적 타격도 무시할 수 없었겠죠?


임: 임대료, 기계비, 마케팅 때문에 천만 원 정도의 타격이 있었어요. 그래도 상금 받은 걸로 충당했어요. 다만 같이 일한 4명에게는 인건비도 못 줬죠. 


전: 그분들이 원망하지는 않았나요? 


임: 그래서 보충을 해주려고 지금 사업을 열심히 하는 거죠. 다 데리고 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 실패가 있어서 농사로 다시 돌아올 줄 몰랐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네요. 


전: 지금 사업은 어떤 식으로 열심히 하고 계신 걸까요?


임: 나름... 혁신적인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 포도를 상자 안에서 재배하는 방법을 고안해냈죠. 

전: 기존의 포도 재배 방식과 어떻게 다른 건가요?


임: 더 편하죠. 제가 물을 주지 않아도 되니깐요. 연구에 기인한 발상은 ‘손이 최대한 덜 가는 방법을 찾자’는 거에요. 청년들이 농사를 지으려고 하지 않잖아요. 귀찮고요. 포도를 상자에서 재배하면 다양한 장점이 있어요. 촘촘하게 심을 수 있는 밀식이 가능해요. 기존에는 100평에 나무 40주가 들어가는데, 상자로 재배하면 300,400주가 들어가요. 그렇게 생산량이 늘어나는 거에요. 노동력도 감소되겠죠. 포도밭은 기계화가 잘 안 돼요. 나무가 낮아서요. 사람 키가 170cm라면 작업하기 편하도록 나무 높이를 150cm로 맞춰요. 만약 1000평 정도 포도 농사를 짓는다면, 기계가 못 들어가서 사람이 직접 비료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거에요. 힘들겠죠? 


전: 수작업이네요. 


임: 이런 번거로움을 개선하기 위해서 상자재배방식을 고려하게 된 거죠. 화분에 재배하면 토양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필요한 영양분은 스마트팜 기계를 활용하면 되니 손이 크게 가지 않을 거에요. 버튼 하나면 물을 줄 수 있으니 깔끔하죠. 


전: 이런 시스템이나 기기 관련해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계신 건가요?


임: 이해는 하지만 만들지는 못하죠. 기계는 외주로 맡겨요. 사실 숙부님의 아들이 스마트팜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조만간 발탁하려고요. (웃음)


전: 진정한 풍천 임가가 되겠네요. (웃음) 그런데 어째서 꼭 초밀식상자양액재배여야만 했나요? 


임: 15년 전 포도를 상자에 재배하는 발상을 가진 몇몇 농업인 분들이 계셨어요. 그때는 상용화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포도 값이 쌌고, 스마트팜 기술이 크게 발전하지 못한 상태여서 상자 재배에 ‘굳이?’라는 의문이 들어갔죠. 지금은 포도 값이 비싸죠. 지금에야 생산성이 나겠다 싶어서 도입한 거에요.


전: 그렇게 도입하고 2021년 3월에 100평 남짓의 시설을 구축하셨죠. 농장이자 연구 시설에서 포도 조기가온 상자재배 시스템 구동 실험, 포도 LED 실증 실험, 포도 재배 빅데이터 확보, 자동 비 가림 측정 제어 시스템 구축 등 여러가지 일들을 해오고 계신데, 이와 관련하여 설명 부탁드립니다. 


임: 일단 양액 재배와 관련하여 특허 출원을 하였고요. 또 포도 LED 실험 같은 경우 대전은 일조량이 적어 일몰 후 두 시간 정도 LED를 쏘여 주는 건데 실패했어요. 이런 실험의 실패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어요. 저희 같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 ‘50%만 되어도 성공한 거다.’ 상자 재배는 어느 정도 성공해서 올 7월에 출하될 거에요. (포도 사진을 보여 주며)


전: 포도 출하 시기가 원래 언제인가요?


임: 노지 재배 시(시설 없이) 10, 11월이고 저희처럼 난방으로 조절하면 6, 7월에 나오죠. 저희 재배에 숙부님의 원천 기술을 활용하려고 해요. 델라웨어 포도라고 씨 없는 빨간색 포도가 있는데 원래는 9월에 출하되거든요. 그런데 조기가온으로 4월로 출하를 앞당겼어요. 이 기술을 30년 전부터 갖고 계신 거에요. 그래서 신지식인 상도 받으신 거죠. 그런 기술을 샤인머스캣에 적용하려고 해요. 


전: 다양한 포도 품종 중 왜 하필 샤인머스캣인가요?


임: 샤인머스캣은 일단 비싸고요. (웃음) 그보다도 강점이 많아요. 환경 적응도가 좋아요. 겨울에 얼어 죽지 않거든요. 다른 농업인들은 샤인머스캣 다음 세대들, 블랙사파이어나 하트골드도 심는데 그 품종들은 내한성이 떨어져요. 또 샤인머스캣은 기본적으로 달고, 껍질이 안 생기고요. 제가 샤인머스캣을 2014년도에 처음 먹었어요. 저는 포도가 질려서 잘 안 먹는 편이에요. 저는 오렌지, 수박, 바나나를 좋아합니다. (웃음) 그런데 샤인머스캣은 그 자리에서 한 송이를 다 먹고 ‘이건 격변이 좀 일어날 수 있겠구나’ 생각한 거죠. 경제력을 본 거에요. 지금이 아니라 그때 심었어야 했는데. (웃음)


전: 빅데이터와 관련해서도 설명해 주시죠.


임: 100평을 아홉 분할로 나누어서 최적의 재배 방법을 찾아 내는 거에요. 


전: 그럼 연구는 누구와 하세요?


임: 연구는 혼자서 합니다. 


전: 이상 기후가 심해지는 시점이죠. 농작물의 맛과 출하 시기의 균일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스마트팜이 점점 각광받고 있는데요. 스마트팜에 대한 대표님의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임: 말씀하신 부분은 거시적인 관점입니다. 저희 생산자끼리 하는 이야기로는 스마트팜의 큰 장점은 균일한 맛을 내는 농산물을 균일한 수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비료를 줘도 일정량이 아니었거든요. 재래식이니깐요. 


전: 그래도 할머니가 손맛으로 맛을 내는 것처럼 꼭 그렇게 계량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임: 우리는 맛있지만 농산물은 다르죠. (웃음) 우리는 특등품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래도 새로운 관점이네요. 그쵸, 포도는 어차피 맛있으니깐요. (웃음) 어쨌든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양분의 정확한 양과 정확한 시기를 찾아내서 변수 없는 고품질의 포도를 양산하는 겁니다. 


전: 회사 소개서에서 ‘옥상에서 포도를 키운다면?’이라는 문구가 있던데요. 최근 집에서 작물을 생산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세간의 관심도도 커지고요. 이케아에서 ‘스페이스10(Space 10)’이라는 연구소를 운영해서 마이크로그린(microgreen, 잎사귀가 매우 작은 녹색 채소)을 일반인들이 쉽게 재배할 수 있도록 실험 중이죠. LG에서도 ‘틔운’이라는 식물생활가전을 판매하고 있고요. 그래서 대표님께서도 개인이 포도를 쉽게 재배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 중이신 걸까 궁금했습니다. 


임: 가정용 재배기를 목표하지만 아직은 일러요. 저희가 다 계획이 있어요. 설명을 드리자면, 테스트베드(실증화)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기 위해 농지를 구매하고 있어요. 하나의 전시실 같은 개념이에요. 협력인, 투자자, 고객이 와서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거에요. 세종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지원하는 자금을 통해 큰 규모의 테스트베드를 만들 계획이고요. 그 다음 계획이 직영 공장을 만드는 거에요. 


전: 저는 내내 궁금했던 게, ‘대전이 땅값이 비싼데 어디서 농사를 지으신다는 거지?’


임: 대전에는 원래 땅이 많으니까 (웃음) 숙부님도 대전에서 농사를 지으셨어요. 


전: 또 궁금했던 게, ‘과연 대전 땅이 농업에 적합할까?’


임: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니에요. 생산에 있어서는 확장이 어려워요. 대전은 교육에 있어서 적당할 것 같고요. 직영 공장 부지로 쓸 논밭을 예산이나 공주에서 찾은 후 대량으로 양산할 계획입니다. 세번째 계획이 가정용 재배기에요. 더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전에 말씀드려야 하는 건, 사실 포도는 아파트 같은 집에서 키우기 어려워요. LED가 포도 생장에 효율적으로 발달하거나 혹은, 다른 방법이 나오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인공광만으로는 식용 포도를 생산하기는 아직 어렵습니다. 상추나 깻잎은 영양 생장의 산물이고 과일은 생식 생장의 산물이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추구하는 건 가정마다 포도 나무를 갖는 것이에요. 베란다가 없어지는 추세이기도 하니깐요. 


전: 그래도 요즘 블루베리를 키우는 집은 많던데요.


임: 블루베리는 가능하죠. 포도는 언제 가능하려나...


전: 기술적으로 극복해야 할 조건이 많군요. 스마트팜에 관한 질문이 하나 더 있는데요. 이제는 딸기를 겨울에 먹고, 참외나 수박도 여름이 아닌 봄에 먹잖아요. 제철 과일이 무색해지고 있는 시대죠. 다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스마트팜이든 아니든 내가 산 과일이 맛있느냐는 논점이 존재하거든요. 봄이 아니어도 딸기를 먹을 수 있지만 그전처럼 맛이 있을 확률이 그전보다 확연히 높아졌다는 건 체감하기 어려운 듯합니다.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일정한 맛과 양을 유지하기 위해 스마트팜이 존재하지만 소비자는 스마트팜의 효과를 느낄 수 있을까요? 내가 먹는 포도가 노지에서 재배했든 스마트팜에서 재배했든 간에 내 입에 들어가는 포도는 제철 과일과 같이 맛을 낼까요?


임: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해요. 물론 제철 과일이 제일 맛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다만 자연의 환경을 활용해서 출하 시기를 앞당기는 건 농업인의 경제적인 선택이에요. 


전: 시대가 변했죠.


임: 농업인의 자성도 필요하죠. 맛있는 포도를 출하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아야 할 의무가 있죠. 그렇지만 강요할 수 없는 문제고 비난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농사는 생업이니깐요. 과일이 비싼 시기에 비싼 값에 출하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죠. 


전: 대표님은 농업인과 경영인, 농업 전문가로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나요?


임: 생각을 크게 해보지는 않았는데...


전: 그 모든 관점을 경험하신 거잖아요. 이토록 복합적인 상황에서 어떤 가치관을 도출하셨을까 궁금합니다. 이 스타트업은 이 복잡한 이해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자기 길을 개척하려고 하는 걸까?


임: 거대한 사명은 없어요. 다만, 너무 경제적인 것만 좇지 않으려고 합니다. 농업은 특히 수익만 좇으면 안 돼요. 


전: 왜요?


임: 우리가 5월에 포도를 수확했다고 칩시다. 비싸겠죠? 7,8만 원 정도 되겠지만 당도가 그만큼 올라가겠냐고 따지면 그렇지는 않아요. 5월에 수확을 하되 맛있는 포도를 만들기 위한 연구는 계속 해야 하는 거에요. 그나마 저희는 18브릭스(brix) 이상의 포도를 출하하기 위해서 현장에 주문하고 있어요. 우리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포도는 다 익혀서 내보내요. 가치관, 신념이에요. 소비자가 외면하는 농산물이 만들어지는 순간 다 같이 망하니 최소한 지켜야 할 지점은 지켜야 하는 거에요. 경영인으로서 수익성을 저버릴 수는 없으니 다른 농가와 경쟁력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되 경영적으로 쏠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돈을 벌겠다고 맛을 외면해서 소비자에게 외면당하는 사례를 우리는 비일비재하게 보았으니깐요. 그런 관점도 있는 한편, 야망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농업인이 되는 거에요.


전: 포도 하면 풍천임가?


임: 포도 하면 임현구. (웃음) 


전: 창업 자본금에 대해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임: 시설 하우스 100평 만드는 데 자부담이 들어갔어요. 


전: 처음 창업했을 때 ‘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나요?


임: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스타트업의 숙명이죠. 인생도 그렇잖아요. 


전: 다른 대기업에 연구원으로 취직해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임: 아침잠이 많아서 어렵습니다. (웃음) 농담이고요. 얽매이는 것이 싫고 자율적인 것을 추구해요. 행정 처리도 해야 하고요. 학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관료제, 조직 생활이 잘 맞지 않음을 느꼈고 결국 스타트업으로 빠졌네요. 


전: 스릴을 즐기는 것 같아요.


임: 스릴을 즐겨요. 그보다도 별 생각 없어요. (웃음) 고민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요. 고민 한 번 더 할 시간에 사업 계획서를 다듬어요. 과거의 실패에 속상해하기보다는 전진하자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기도 하고요. 


전: 이 세종청년창업사관학교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임: 전략이에요. 세종시에 농림부 같은 농정 기관이 있어요. 스타트업이기도 하니 전략이 필요하죠. 그런 공공 기관과 많은 업무를 진행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교육받는 날을 제외하면 대전 농장에 있어요. 


전: 여기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이 가장 유익하던가요?


임: 코칭이 좋아요. 제가 추구하는 교육의 방향성은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거에요. 교육학을 전공하기도 했으니까요. 코치가 1:1로 붙어요. 강의는 맞춤형이 아니잖아요. 1:1 코칭은 맞춤형이죠. ‘언더독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깔끔하고요.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추천하는 편이에요. 토지 매입 때문에 자금 압박을 느끼고 있거든요. 농신보(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다른 프로그램을 많이 알려주시더라고요. 막혀 있는 혈을 한 번에 뚫어주는 느낌이었어요. 


전: 이런 스마트팜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는 액셀러레이터와 접촉한 적은 없으신가요?


임: 아직 없어요. 고민은 해요. 투자를 받아서 영위할 것인가. 사업이 조금 더 확장되면 액셀러레이터 투입을 고려할 수 있겠죠. 스타트업에도 각자 방법과 목표가 있는 거니깐요. 


전: 지금 풍천임가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임: 대한민국에서 대체불가능한 농가가 되는 것. 서장훈 씨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1등의 농구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무후무한 선수가 되는 것이라는 점이거든요. 저에 대한 설명에 넣고 싶은 것이 많아요. 일단 박사 학위는 있고, 향후 마이스터(명장) 지위, 품목에 대한 인정, 특허 출허 같은 것들이 절 설명하게 될 거에요. 퍼스널 브랜드가 중요해지잖아요. 제가 잘 되면 풍천임가도 잘 되겠죠. (웃음)


전: 요즘은 단순하게 1등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추세죠. 혹시 대중에게 풍천임가를 소개한다면요?


임: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포도를 생산하는 지성을 가진 농가.


전: 그 근거는?


임: 대한민국에서 포도 농사를 가장 오래 지었습니다. 가장 잘 지었고요. 이에 대한 근거는 숙부님이고요. 그리고 저는 3세대로서 이러한 역사와 기술을 이어받아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농업을 발전시키는 거죠. 할 수 있을 거에요. 출발선이 다르니깐요. 


전: 요즘 농사 짓겠다고 무작정 농촌 가는 젊은이들도 있으니까 대표님께서는 출발선이 다르긴 하죠.


임: 그런 시도들이 많이 있어야죠.


전: 그래요?


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농촌은 곧 붕괴될 테니깐요. 지금이 마지노선이에요. 


전: 지금이 창업의 초기죠. 지금 갖고 있는 마음가짐을 초심이라 한다면, 아주 먼 미래까지 갖고 가고 싶은 초심이 있을까요?


임: 초심 딱 하나 있죠. 항상 잃지 않은 초심은 ‘직원보다 일을 많이 하자.’ 워낙 워커홀릭이기도 하지만요. 대학원 시절 헤드 연구원이 되었을 때도 가장 나중에 퇴근했죠. 가장 일찍 출근은 못 하더라도. 가장 많은 일을 도맡아 했어요. 후배들도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전: 대표님은 노력의 투입량(input)과 산출량(output)이 같은 편인가요?


임: 아니요. 항상 산출량이 조금 더 적죠. 100 넣으면 10만 나와도 감사하죠. 그래서 120을 넣어요. 50이 나와야 하니깐요. 직원들을 몇 명 뽑게 될지 모르지만 강한 대표가 되고 싶어요. 직원들보다 많이 학습하고 많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전: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꼭 하고 싶었던 말이나, 이런 질문은 받고 싶었는데 제가 하지 않았다면 대표님께서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건 어떨지?


임: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긴 해요. (오래 망설이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어요. 사람들이 점점 농사를 지으려고 하지 않아요. 


전: 주말 농장을 보면 농사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는 것 같은데요.


임: 주말 농장은 생업이 아니잖아요. 정책 결정자들이 농업을 다른 시각으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전: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농업은 노력의 투입량과 산출량이 동일하긴 커녕 격차가 크니깐요.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노동력이 소요되는데도 당장 경제적이거나 생산적이지 않잖아요. 


임: 농업이 가지는 가치 중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가치는 몇 안 된다고 생각해요. 힐링? 생업이 된다면 힐링을 할 수 없어요. 스트레스가 되죠. 부족한 매력만큼 농업에 뛰어들 만한 메리트가 있어야 농촌으로 인구가 유입되겠죠. 농촌에 인구가 유입되지 않으면 자연스레 생산량이 줄어들고 더 큰 악재가 초래될 수 있어요. 현재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면 다음 세대가 없어요. 식량 안보가 중요하다고 다들 생각하지만 막상 하려고 나서는 사람들이 없죠. 


전: 혹시 풍천임가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할 수 있을까요?


임: 풍천임가의 농법이 청년 농업인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농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스타트업 관점 전용)은 아시아헤럴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asiaherald.co.kr/news/26581

해당 확장판을 네이버 포스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3775536&memberNo=55088636



*위 인터뷰와 사진은 아시아헤럴드에 귀속되며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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