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아, 홍식이야

대중의 예술화에 기여하는 브랜드에 관하여

by 전해리

“예술이 뭔가요?”

한 관객이 이 순수한 질문을 던지자 채준 큐레이터와 홍성준, 정하눅, 유수진, 강지형 이 4명의 화가는 곧바로 미묘한 표정부터 지었다. 그들은 차마 답하지 못할 것처럼 난감한 기색을 표하였지만 이내 모두에게 각자만의 답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는 그들의 대답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인상 깊은 해답이 아니어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질문은 정답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쉽지만 질문만 기억한다.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않았던 화가와 큐레이터도, 진심으로 궁금해서 여쭈어 본다던 그 질문자의 순수한 마음도, 그리고 그 예술적 담론이 활발히 오고 갔던 그 자리, 그 공간도 함께.

일반적으로 사람들끼리 예술을 논할 일이 없다. 현대 사회 대화라는 게 아침에 일어나기 싫다는 혼잣말로 시작해, 점심으로 뭐가 좋을지 꽤 진지한 상의를 나누고, 세상을 향한 불평과 불만을 이곳저곳 무심하게 터뜨리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며 잠에 드는 걸로 끝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데 예술은 무슨. 여기 일상과 생계에 예술은 결여되어 있다. 너무 바쁜 우리는 예술을 아예 인지 못하거나, 어색하게 여기거나, 더러는 괄시하는데, 심지어 이조차도 모른다. 예술의 존재감은 갈수록 미미해진다. 그래서 오늘날 예술은 크게 두 가지 길에서 살길을 도모하고 있다. 예술계에 일찍이 소속되어 있거나 종사하는 자들에 한정되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하나는 매우 전통적인 방식인데, 권력가의 손에 예술의 생존권은 물론 흥망성쇠의 열쇠까지 쥐어 주는 것이다. 이 방식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 아니니 오해는 금물이다. 몰랐다 하더라도 알고 보면, 육체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없지만 작품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상당수의 유명 예술가들의 뒤엔 후원자가 존재했다. 사회인은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고 기업인은 투자자가 필요하듯이, 예술가도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치기 위한 물감을 살 돈과 생활비가 긴요할 뿐이다. 예술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다. 아무튼 그 후원의 형태가 현대로 넘어오면서 종교 시설과 궁전, 대저택을 지나 경매장, 학교, 화랑, 미술관, 그리고 갤러리 카페로 옮겨졌고, 예술가는 여전히 특정 인물에 작품을 팔거나 특정 공간에 작품이 걸리는 대가로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맹점이 있다. 이 경우에 해당되는 예술가의 수가 한정적인 것처럼 그 예술가들의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관람자의 범주도 제한적이다. 예술가의 활동 범위가 아무리 절대권력자와 재력가의 수중에서 벗어나 공공사회에 속하게 됐다한들, 미술관에 가지 않는 현대인이라면 미술이 어디까지 진보했는지 따위가 알게 뭔가. 그러므로 보완이 요하다. 보강책이자 몹시 대중친화적이자 현대적인 방식으로, 예술에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일상적 예시로 신문에 실린 사진, 영화관에 걸린 영화, 아이폰으로 듣는 음악을 들 수 있다. 구체적이자 심화적으로, 갤럭시의 광고에서 이날치 밴드가 노래를 불렀고, 록시땅 핸드크림에 나난 윈도우 페인터의 일러스트가 실렸고, 로에베의 가방에 애니메이션 토토로가 입혔다는 용례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미술관에서 작가의 작품이 축소되어 담긴 엽서나 에코백을 구매하는 행위는 상시적이라고 논할 수 있을까? 더불어, 나는 조금 다른 사례를 제시한다. 이를 테면, 2011년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과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공공임대주택엔 미술작품 설치에 대한 법적 의무가 면제를 받았다는 뉴스나, ‘작품의 2차 창작물이나 파생 상품을 만들어 아트 마켓이나 쇼룸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방법이 옳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는 노상호 현대미술 작가의 입장은 어떤가? 이렇게, 대중성과 대량화에도 어느 정도 허점이 존재했다는 현실이 드러난다. 또한 예술이 아무리 일상에 끼어들 수 있다 해도 그건 부차적인 역할에 불과했다. 즉, 두 예술 생존 방식에서 예술은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지 않다. 종래의 예술의 활로라는 앞선 두 가지 방안에서 파악할 수 있는 건 격차, 한계,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론이다: 예술은 항상 너무 높거나 너무 낮았다. 그런데 이 간극을 채우려는 아주 단단하고 가변적인 이들과 공간이 있다. 바로 ‘스튜디오 콘크리트(Studio Concrete)’다.

처음엔 나도, 유아인 배우를 좋아해서 알게 되었다. 유아인 배우를 좋아하다가 한 소식을 접했다: 유아인 카페가 있대. 나는 그 소식을 수많은 연예인들이 부수입을 위해 사업을 하는 차원처럼 여겼다: 나도 가보고 싶다, 전시 같은 것도 한다는데, 유아인의 숨결이 아주 조금은 배어 있을 것 아냐.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서울에 갈 일이라는 게 생겨서 혼자 서울에 간 동시에 한남동에 처음 가 보았다. 카페는 산꼭대기 같은 언덕배기에 위치했고, 찾아가고 올라가느라 은근히 힘겨웠다. 게다가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여기가 카페인가? 카페 안엔 테이블과 의자라는 궁합이 드물었다. 카페에 들어가면 보통 들리는 우렁찬 ‘어서오세요’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떤 전시를 한다고 들었는데, 벽엔 액자 대신 A4용지가 그대로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벽을 스크린 삼아 투영되는 사진이 있었다.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만든 결과물들이 탄생하기까지 과정과 내막을 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전시인가? 조금 진정하기 위해 커피를 시키고 싶었지만 시키질 못하고 2층에 우선 조용히 올라가 구경하고 있었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아무 카페를 들어가도 다 그 가격이라는 걸 알지만, 적어도 그때는 커피 가격이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나는 고생스레 왔는데 커피도 못 마시고 전시도 실속이 없는 것 같아 억울해 벽에 달려 있는 것이라면 무조건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을 살펴보니 내가 이곳에 왔다는 증거물은 되는데 결과물 면에 있어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B-Cut이나 촬영 시안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더라. 1부터 10까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의 여러 포즈가 담긴 사진들, 그게 어쩌라고. 여기까지 온 수고가 아직도 충당이 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결국 전시물을 하나부터 열까지 요모조모 들여다보았고, 그제야 전시를 구경할 수 있었다. B-Cut을 보며 A-Cut과 다른 점을 생각하고, 촬영 시안에서 창작자의 고뇌를 읽었다. 티셔츠를 입은 사진 속 사람들의 미소가 참 부러웠다. 하나의 결과물이 탄생하기까지 고민하고 틀리고 맞는 과정이 주는 감동이 얼마나 소중한지, 본인들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는 모습이 얼마나 즐겁고 어여쁜지 보노라니 분통이 자연스레 사그라들었다. 또한, 전시물이 액자에 고이 들어있지 않고 외부에 고스란히 노출된 자체는 사소하지만 센세이션이었다. 덕분에 마구잡이로 차곡차곡 포개진 종이들을 직접 손으로 들추어 보았는데 흡사 사람의 마음을 들추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생경하면서 애틋했다. 그러다 내 마음은 자성에 젖고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이 전시를 보기 전까지 나는 얼마나 편협했던가, 내가 그동안 전시를 진정 감상했다고 할 수 있나? 그 와중에 층층이 쌓인 지면의 사이에서 한 편지를 발견했고 난 그 편지를 읽으며 마찬가지로 세상만사에 떠밀린 진실도 함께 찾아냈더랬다. 그게 진짜 보물이었다.

나에게 예술은 항상 가깝고도 멀었다. 예술적으로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건 아니었으나 내가 아이였을 시절엔 언제나 책을 읽고, 읽던 책을 또 읽다 심심하면 그림을 그렸고,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피아노를 치게 되었다. 책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빨간 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를 읽다 보니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과 같은 존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어 혼자 자라도 심심할 줄 모르면서 자랐다. 초등학생이 되어서 가족 여행을 갈 땐 부모님은 그 지역의 박물관이나 문화 유적지로 날 꼭 데려 가셨고, 친구와 그의 가족들과 서울에 놀러 가면 미술 전시회를 필수로 관람했고, 학교 숙제로 우리 지역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감상문을 썼다. 넉넉한 형편에서 자랄 수 없었으나 엄마는 고전 문학책과 세계 명작을 딸에게 사주기를 단 한 번도 아까워하지 않았고, 아빠는 딸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미술과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하니 그만두라고 하지 않으셨다. 나는 예술이 그렇게 깊숙이 자리잡은 삶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러나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면서, 정확히 따지면 현실을 이기지 못하면서 예술이 멀어졌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처음 방문한 이후 관심의 성질은 배우에 대한 애정에서 예술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뀌었다. 대학에선 중국어를 배우고 집에 와선 영어와 브랜딩을 공부하며, 인스타그램으론 잡지 화보와 패션 위크를 구경하고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계정을 팔로우했다.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올리는 게시물을 주시하던 어느 날, 권철화 화가와의 대담을 갖는데 게시물의 댓글에 예술가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올린 몇몇을 뽑아 그 자리에 초대하겠다는 소식을 보았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심중에서 질문을 고르고 골라 댓글에 달았고, 놀랍고도 감사하게도 관객으로 뽑혀 다시 스튜디오 콘크리트로 향할 수 있었다. 당일,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천장 없는 옥상에 모인 관객은 그 공간이 꽉 찰 정도로 많았고 나는 ‘이 추운 겨울에 설마 이 관객들의 질문을 다 받겠어?’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큐레이터와 화가는 관객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했다. 그렇게 첫 번째로, 그들의 성의에 감동했다. 둘째로, 내가 마음이 동한 계기는 미술을 전공했다는 한 관객이 던진 질문의 요지와 그에 대한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의견에 있다. 말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 정리하자면, 관객의 입장은 ‘예술계의 관례에 의하면 한 명의 미술 전공자, 즉 자격인이 단독 전시회를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적기도 할 뿐더러 매우 어려운데 이 전시회의 화가는 그에 반대되지 않나’,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입장은 ‘전시회를 열 자격에 관한 예술계의 보편적 경향에 대해 모르지 않다, 하지만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그에 여실히 따르는 대신 보다 유연하게 전시회와 예술가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며, 이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예술가 본인이나 대중과 함께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난제에 그만 마음이 뺏겨 그날 도대체 화가 분께 무슨 질문을 하였는지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두세 시간 가까이 걸린 대담이 끝나고 난 아랫층으로 내려가 작품들을 다시 감상하며 회의감에 휩싸였다. 첫 방문 때는 전시회가 갖추어야 할 필수 요건에 의문이 들었다면, 이 ‘Body Language : 회화의 즐거움’이란 전시회에선 예술가의 조건 여부를 마음 속에서 스스로 끊임없이 반문하였다. 예술가의 성립에 있어 전형이란 것은 존재하는가? 예술가가 되려면 대학 졸업장은 불가결한가? 전시회에 걸리는 그림은 무조건 전부 유화 그림이어야 하고, 또 어려워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소묘가 꽉 찬 이 전시회를 즐긴 내가 뭐가 되는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처음 겪어 보는 류의 당혹에 정신이 나간 것이었는지, 혹은 숨겨둔 진심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 자리에 참석했던 차혜영 당시 스튜디오 콘크리트 공동 대표께 당돌하게 다가가(!) 쭈뼛쭈뼛 질문하였다. 내가 그때만 떠올리면 아직도 혼자 얼굴이 붉어진다.

“글 쓰는 사람은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모집 안 하세요?”

일순 난 잊고자 애썼던 옛 기억으로 순간 돌아간다.

중학교 3학년, 다들 본인의 진로를 정한다는 명목하에 진학할 고등학교를 정했던 시점엔 아무도 미술 시간을 중히 여기지 않았다. 반면 미술 시간은 내가 유일하게 숨통을 틀 수 있던 시간이었다. 정해진 것 없이 아무 그림만 내면 점수를 매겨 주겠다는 수행평가 시기에 나 홀로 진지하게 붓에 수채 물감을 묻혀 고군분투하였다. 그 그림은 이제 없지만 사실 여지껏 기억한다. 그리고 싶은 그림이었는데 수채 물감으론 내가 그리는 상에 따를 수 없어 속상도 했거니와, 미술 선생님이 그림을 보시곤 미소를 머금으시더니 하신 말씀 때문이다.

“소질이 있는데, 그림 해보지 않을래? 선생님이 도와줄게.”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아, 혹시 Writer세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차혜영 대표의 물음에 퍼뜩 정신이 든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상황을 대충 얼버무리고 도망쳤다. 부끄럽고, 서글펐고, 막막했다. 너무 비참해서 땅 속으로 꺼지고 싶던 그 순간, 예술은 다시 나에게 왔다. 아니, 예술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내가 기억났다. 나를 나락까지 떨어뜨리는 글쓰기를 어떤 환경에서든 결코 포기한 적 없던 내가, 일반고 진학에 앞서 피아노 과외 마지막 수업 날 선생님이 문밖을 나서자마자 그 닫힌 문 뒤에서 펑펑 울던 내가, 집안 형편 때문에 미술에 엄두도 못 낸다는 말을 꾸역꾸역 삼키고 데생을 하도 못해서 안 될 것 같다며 미술 선생님의 제안을 애써 거절해야 했던 내가 나였다. 그렇게, 예술을 느꼈다. 신을 만난 것처럼 난 비로소 예술을 느꼈다. 정확히는,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만나고 예술을 느꼈다. 그리고 반성하고, 솔직해진다.

결국 예술은 가까이 있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상주(常住)의 개념에 의거해 그 정의를 설명하는 것 또한 역부족이다. 예술이 머무를 수 있다고 한다면 매한가지로 떠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술은 우리와 상종한다. 마치 우리가 매순간 들이 마시고 내쉬는 공기와 같다. 예술은 인간에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공기를 의식하지 않고 호흡하듯 우린 예술을 의식하지 않는데, 이러한 현상과 원인을 오직 전문 용어나 관련 분야, 업계 사정을 빌려 역설해선 안 된다. 예술은 어떠한 계층에 한정된 특혜나 지식층이 누리는 특수가 아니라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재빠른 이해를 돕기엔 몇 단어로 된 의의가 동원된다면 편리하겠지만, 한 인생을 떳떳하게 산 인간으로서 난 예술을 규정할 수 없다. 예술은 그 어떤 형태로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어떤 양상으로든 존재할 수 있음이 나의 주장이자 경험이고 또 실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곧 예술이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환경이다. 우선,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장소로서 존재한다. 그 장소의 성격은 카페와 갤러리에 동시에 걸치고 있다. 카페는 현대 사회의 그 어떤 곳보다 일상적이자 대중적이고, 갤러리는 몇 차례의 취향이나 경향, 혹은 사고방식을 거쳐야만 발걸음이 미치는 장소이다. 이렇게 피차에 있어 이질적이라고 볼 수 있는 카페와 갤러리를 합쳐 놓았다 함은 일상과 비일상 혹은 탈일상을 연합하겠다는 다짐으로 보인다. 하루에도 빠짐없이 커피를 팔지 않는 카페는 없고 커피 머신의 맞은편에 원두 사진이나 낯익은 그림이 복사된 소품을 걸어 놓지 않는 카페는 드물지만, 커피와 예술을 같이 판매하는 카페는 희귀하다. 그런 의미에서,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커피도 팔고 그 옆에서 각종 예술 관련 상품도 판매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예술 공간이라 상정하기란 미온한 처사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선 늘 예술이 한 장소에서 열리고 있다. 가상의 공간이 아닌 실제 장소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다는 건 결핍되지 않고서는 모를 정신적 유익이다. 현대인이 지난하게 흘러갈 수 있는 하루를 조금 더 활기차게 살아가보자 작심의 표출을 커피로 대신하는 과정에 예술이 속해 있다. 그 예술이란 가질 수 있는 물품으로 판매되거나 상시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형식으로 나타나 있는데, 꽤나 섬세하면서 의미심장하고 또 의외다. 그리고 그 면모가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소재지와 퍽 닮았다. 지하철 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지만 절대 가깝다고 볼 수 없으며, 마음먹고 갈 정도로 까다롭게 소재하진 않지만 또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설 순 없는 곳에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있다. 누구나 올 수 있지만 아무나 오라고 손짓하지 않는다. 참 재미있다. 어떤 존재가 훌륭하건 아니건 일단 주목을 받아야 그 발전성을 평가받을 수 있으니 시선에 잘 드는 곳에 자리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 눈에 백이면 백 띄기 유리하기 때문에 샤넬 뷰티 매장이 백화점 1층 에스컬레이터 옆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 같은 논리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이를 거부하고 언덕배기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 지점은 곧 그 동네로 들어가는 하나의 길목이기도 하고 수많은 갈림길 중 일부이기도 하다. 게다가, 언덕배기라는 고처(高處)에 있어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옥상에 올라가면 그 지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떨어져 고개를 들면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정상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성이란 환경적 여건은 곧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예술 지향점을 소명한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예술은 실험성 이상으로 관객을 실험한다: “이런 것도 예술이 돼?”, “됩니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대중이 곤란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예술과 대중이 흥미롭게 알길 바라는 예술 사이에서 기조를 잡는다. 장 줄리앙(Jean Jullien)의 일러스트나 김재훈, 목정욱 사진가의 사진, 권철화 화가의 소묘는 (오락성이 아닌) 오락과 오묘함을 오가기에 관객에 따라 내적 감상과 외적 촬영이 흥겹다. 혹은 ‘1 to 10(원 투 텐)’ 티셔츠나 주황색 운동복, 조개 모양의 재떨이 판매도 재치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예술 정책을 겉핥기 식으로만 즐기기엔 그 속에 든 알맹이가 아깝다. 그들이 건 그림의 색과 선이 가볍더라도 그 속내는 꽤 진중한 것이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는 대중적 유명도나 미술계의 전통적 (혹은 관례상) 중요도의 논외가 통한다.

문: 저 예술가가 유명해?

답: 그런가?

문: 저 그림이 (혹은 사진이) 중요해?

답: 나도 오늘 처음 봐.

문: 그럼 이걸 왜 봐?

그러게, 이 유명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예술을 왜 감상해야 할까? 바로 이 의문에서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성공한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관객에게 예술을 제안하고, 제안함으로써 대중에게 적용되는 예술의 범위를 넓힌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에는 검색만 해도 수두룩한 정보와 해석이 쏟아지는 미술계상이나 역사적으로 유명한 화가와 그림이 없어서 관객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해석이 요구된다. 현대 예술가 이상으로 나와 동등하게 같은 현재에서 숨 쉬고 있는 예술가가 저 재료로 만든 저 색과 저 선으로 묘사한 저 피사체를 통해 의도하고 표현한 바가 무엇일까? 관객은 몰랐던 작품을 접하며 인식의 세계를 넓힌다. 더러는,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주최한 대담회에 참석하여 그건 무슨 의미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한편 일러스트, 소묘, 사진, 조각품, 벽에 영사된 화면은 다른 갤러리나 미술관에도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는 형식이라고 반론할 수 있긴 하다. 이름과 존재가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예술가? 작품이 예술사나 경매상 덜 중요한 작품?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또 한 번 어떻게 다른가? 난 안대까지 끼고 웬 어두컴컴한 장막 안으로 주변을 더듬거리며 들어가 공간 가운데 위치한 매트리스에 조심스레 앉았다. 안내 도우미도 이게 도대체 무슨 예술인지 모르겠다고 한 예술 속에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나 혼자 들어가 앉아 다소 겁났다. 곧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의 한 공업 단지에서 설치한 음향 장치로부터 현장 생중계식으로 ‘실려 오는’ 소리였다. 음악도 아니고 음원도 아닌 소리였다. 기계가 부딪치고 사람이 무어라 말을 하고 차가 오가는 것 같은 소리가 알알이, 뭉텅이로 가늘게, 찢어지게, 무너지듯 들려왔다. 눈을 뜨고 있어도 암흑 속에서 보이는 것이 없어 소리와 내가 하나가 된 것 같은 감명이 들었다. 현장에서 발산되는 역동성과 비반복성이 섞여 정제되지 않은 거친 소리들이 만드는 코스모스에 예술은 진정 무엇으로든 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형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그리고 이를 관객이 함께 동반하는 것. 마찬가지로, 어느 미술관이나 갤러리처럼 굿즈(기획상품)도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돈을 벌기 위해 예술을 함부로, 아무렇게나 팔지 않는다. 티셔츠의 경우, 자고로 그것만큼 메시지를 말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간단한 패션 용품이자 예술 용품은 없는데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이러한 물성을 활용하더라. ‘1 to 10’ 티셔츠는 “How do you feel 1 to 10?”이라는 인사에서 영감 받아 숫자일 뿐이었던 1부터 10까지 감정을 부여해 그날의 기분을 드러낼 수 있다. ‘Series Written(시리즈 리튼)’ 티셔츠에는 평등이란 주제 하에 촌철살인을 망설이지 않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빌 힉스(Bill Hicks)의 발언(“I believe that there is an equality to all humanity. We all Suck.”)이나 영어 숙어 ‘every Tom, Dick, and Harry(장삼이사(張三李四))’처럼 평등을 의미하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프린트된 고무 날염이 수작업으로 제작되어 제품마다 존재하는 삐뚤한 글자의 농도와 번짐 차이는 이 티셔츠에 적용된 평등에 대한 관념, 즉 각자가 느끼는 평등은 이토록 다양하며 이는 드러내고 존중받아야 마땅함을 나타낸다. 그림 ‘Dialogue’에서 파생된 ‘가리비와 석화 재떨이’는 공산품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감동을 느꼈다. 권철화 화가가 도자기 하나하나마다 다른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작품인 동시에 상품이었다. 상업의 예술화와 표현의 권리를 동시에 논하자면 역시 ‘Fragile’ 로고가 새겨진 주황색 운동복이 제격 아닐까. 경고를 나타내기도 하는 주황색을 아낌없이 사용한 운동복을 입은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이 흡사 영화 ‘가타카’의 빈센트처럼 우주를 향하는 ‘CCRT AEROSPACE’의 프롤로그 에피소드 ‘FRAGILE; HANDLE WITH CARE OR’은 2016 MAMA(Mnet Asian Music Awards)에서 상영되었다. 한편으로는, 밤길의 가로등과 같은 주황색의 빛을 내는 운동복을 입은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은 촛불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렇듯,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예술의 쓰임에 관한 지평을 넓힘으로써 덩달아 성취되는 것은 예술가의 예술 세계에 대한 보전이다.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예술에게 수익성의 부담을 끼얹지 않고 예술을 경제적 가치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예술가의 본래 신념과 세계는 훼손되거나 수익을 위한 부속물로 전락되지 않는다. 입장권을 판매하지 않고 커피를 강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누구나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방문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작가의 예술을 아무 물건에다 갖다 붙이지 않는다. 게다가 스튜디오 콘크리트라는 공간의 구석구석을 오롯이, 또 오로지 한 명의 작가나 하나의 단체에게 내어줄 줄 안다. 즉 작가의 예술관에 맞춰 공간의 내면과 외면상 변신을 거듭한다. 나는 그들의 공간 활용 능력에 번번이 감탄했다. 건물의 규모를 차치하더라도 하나의 공간에 일정한 주제가 아닌데도 여러 작가의 개인전을 밀어 넣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했던가. 한 공간 안에 담긴 예술가의 우주는 무한하며, 설사 작은 공간이 아쉽다고 해도 그 아쉬움으로 그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예술이 될 수 있는 형식의 외연을 넓힌다는 건 곧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를 펼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한계 없는 예술이 실현되는 기회이자 환경을 넓힌다. 아니, 넓히는 예술을 실험한다.

그곳은 일정한 장소도, 평가도, 해석도, 실물도, 육체도 심지어 돈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어느 예술인의 예술 소개장과 가치 교환 제안서였다. 웹사이트에서 자신의 예술을 어떠한 형태로든 선보이고 자신의 예술을 유형 혹은 무형의 가치와 교환하는 ‘Concrete 1111: 모두가 하나 되는 예술과 가치 프로젝트 1111’은 그 어떤 것들 중 예술의 존재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예술이었다. 어쩌면 가장 고착화되지 않아야 할 예술에도 굳은살과 버릇이 박여 있다. 세간에는 예술이 어렵고 비싸며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좁은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혀 있고 예술 또한 학습과 학력의 손아귀에 잡혀 있다. 그러한 예술조차 모든 인간의 것이 아닌 채 어디가 끝일지 모르는 얕은 감상과 높은 금액으로 소모되는 것이다. 반면, 인간에게는 저마다 표현 욕구가 내제되어 있으며 최선(最先)으로 창조하는 건 본인의 삶이다. 인간은 제 인생의 예술가이므로 생존하는 모든 예술은 존중받고 만끽하고 펼칠 의무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고로, ‘콘크리트 1111’은 나와 같은 우리 ‘모두’를 위한 터전이자 축제였다. 각자 자신만의 예술품을 단순히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예술과 상응하는 가치라면 무엇이든지 주고받을 수 있기에 금전적 수치와 평가의 재단에 오를 필요가 없었다. 사실 주고받자고 제언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의 예술을 게재한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예술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미술관, 갤러리, 뉴스, 교과서에서 한 번도 본 적 없고, 그 누구도 큐레이션하지 않고, 선발하지도 않고, 수상하지도 않은 획기적이고 풋풋하고 흥미로운 작품들을 고이 들여다보았다. 여긴 인위적 손길이 닿지 않은 야생이었다. 야생 바깥의 인간이 보기에는 경쟁과 먹이 사슬이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공간이겠지만, 그 속에 사는 우리는 철저하게 공생 관계다.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떤 전공을 했고, 수상 경력이 있든 없든, 경력이 어떻고 대중성이 어떻든 아예 상관없는 세계였다. 내가 예술을 선보이기 위한 조건,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한 조건이 없었다. 지금껏 예술이라는 이름을 빌리고는 경력과 학력, 돈이 요구되는 태클과 허들에 난 아예 일어서 보지도 못했으나 이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1로서 일어설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을 나의 공간이 아닌 남의 공간에서 마침내 펼쳤다. 그건 보이는 글 이면에 보이지 않는 글이었다. 글을 문학 이상의 예술로써 확장하기 위해 기존 형식인 문장과 글자, 논리와 서사에서 벗어났다. 글로 보이지 않는 목소리, 영상, 이미지, 정서와 글의 근본인 면과 선, 언어와 관념을 활용하여 글의 실재인 아이디어, 사고, 감정, 존재를 초연한 것이다. 이 정신적인 예술의 서막을 나 홀로 간직하지 않고 누군가 앞에 보였다. 늘 잘해야 한다고 압박을 느끼고, 인정받아야 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대상에서 탈피된 것은 물론이고, 이상하다는 눈초리와 손가락질, 비아냥과 코웃음을 겪지 않았다. 여기는 예술 실험대 이상으로 예술 야생이고, 여기 있는 우리 ‘모두(modu)’ 자신만의 예술을 살고 있는 예술가니까 말이다.

인터넷에서 일부 네티즌들이 배우 유아인의 일부 언변과 행실을 두고 비정상이라 입방아를 찧었다. 몇몇은 곱게 말해 난해하고, 모호하고,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태는 얼마나 정상인가. 인터넷이란 가상 현실과 그 안에서 익명으로 (비겁하게) 이러쿵 저러쿵 말을 보태거나, 반응과 의견을 헷갈려 하거나, 취직과 퇴사가 동시에 간절하거나, 그럴듯한 꾸밈새에만 마음을 빼앗기거나, 튀고는 싶은데 눈 밖에 나기는 싫거나, 문화는 사라지고 시스템만 까다로워지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이 투사가 되어야 하거나, 노력은 하고 싶은데 고생은 하기 꺼려하거나, 남을 까내리지 않으면 자신을 드높이지 못하거나, 본 적도 없는 대중의 입맛에 맞추려고 되레 본인의 색깔을 잃거나, 실수와 실패에 무자비한 패배주의를 덮어 씌우거나, 피해자의 앞에서 가해자의 인권을 챙기거나, 언성 높이기 싫어 논리적 난점을 피하는 이 세태에서 당신은 피를 한 방울이라도 본 적이 없단 말인가. 사회 곳곳에 생채기가 만연하다. 그러나 문제란 비단 논란과 말썽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문제는 당연한 관성에도 궁금증을 품는 일,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내적 탐구와 외적 대화가 필요한 일, 나아가 해답과 정의를 산출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걸 공사다망해서 함께 사는 이들에게 “왜?”라는 문제를 지치지도 않고 계속 낳는 배우 유아인과 그가 대표하는 예술 집단의 활동이 비정상적이라면 나는 적극 찬성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엔 정상이 부재하다. 또한, 만약 이런 사회가, 이런 세상도 정상이라면, 나는 차라리 비정상을 택하겠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바보 같은 믿음과 그 믿음이 이뤄낸 실체들이 비정상이라면 비정상으로 살겠다. 그 근거로, 내가 첫 스튜디오 콘크리트 방문에서 읽은 편지를 옮겨 놓겠다. 편지의 수신자는 한 명이었으나, 글의 속성에 따르면 편지에 실린 글의 수신자는 발신자의 마음이 와닿은 자, 누구나 될 수 있다. 그전에 마지막으로, “예술이 뭔가요?”라는 문제를 나에게 던져 달라. 그럼 나는 이렇게 답할 테니,

“예술이 무엇인지 아마 평생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압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예술이 아닙니다.”

그리고 난 당신에게 되물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예술을 합니까?”

-2021.01.08-

*

예술을 믿는다는 건

예외를 믿는 것입니다.

-2022.07.21-

*

혜영아, 홍식이야. 맥주 한 캔 마셨더니 너에게 주절주절하고 싶어져.

시행착오도 많았고, 아쉬움도 많지만 지금까지 참 잘해줬어. 내가 했다면 훨씬 더디고 못나고 어설펐을거야. 함께 겪었어야할 시행착오 혼자겪으며 들었을 너의 자괴감. 괜찮다고 어깨두드려주지 못했어서 마음에 많이 남네.

혜영아. 좋았던건 본질 따위 개나 줘버려도 좋은 현실 안에서 매 순간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본질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확장해 나가며 크루들 하나 하나의 행복과 꿈과 미래까지 따뜻하고 사려깊게 어루만지는 너의 마음이었어.

그게 가장 좋았어. 누구보다 프로였고, 멋지게 해냈어. 가끔 검정고무신이지만 넌 참 좋은 파트너고, 훌륭한 대표님이야!

이런 간지러움이 겸연쩍은걸 보니 따뜻한 말한마디 조차 어지간히 안해줬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하네.

미안했어요.

결과론적인것 말고 지금 이 순간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무엇 보다 중요할테니

네가 처음 그 예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간직한채 콘크리트에서의 하루 하루를 맞이하길 바랄뿐이야.

커피가 세 잔 밖에 안팔려서 어디 하소연도 못 할 만큼 쪽팔리는 날도 있을 거고

억만금짜리 계약이 줄줄이 성사되어 황동 바닥을 트위스트로 비빌 날도 있겠지.

일희일비 말고 일장일단을 충분히 이해하며 이제 식구같은 우리 아티스트들, 크루들, 또 우리의 터전 다 잘 챙기며 예쁘게 하자.

그리고 하나 더, 지금도 훌륭하지만, 아티스트들이 진짜 자기 일을, 자기 세계를 구축한채 집중적으로 작업을 해낼 수 있도록 더 많이 서포트하고,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자. 수도 없이 얘기했지만, 그 애들이 보물이야.

때로는 방목도 하고 때로는 애살맞게 챙기며 하자.

그 애들이 우리를 어떻게 여기게 될지, 어떻게 떠나갈지,

행여나 뒤통수를 후려갈길지 모를 일이지만 지금 너무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 애들, 있어야 할 자리에서 더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많이 생각하자.

그게 우리의 일이잖아^ㅣ 나보다 더 끈끈한 무언가가 너에게는 왜 없겠니.

다른 얘기할까. 친구야.

요즘은 매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의 연속이야. 내가 세상에 벌려 놓은 것들이 날 붙잡아줄거다 생각하고 시작한 일들인데 역시나 잡네. 발목을ㅎ

정말 멀리멀리 떠나서 마음껏 온 세상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속죄하듯. 하지만 욕망은 또다른 레벨에서 더 어마어마한 것들을 뻔뻔하게 좇게 되겠지.

청춘은 생각보다 멋지지도 않고 쿨하지도 않고 괴롭기 짝이 없는데 왜 그리도 이것에 집착하며 살았을까…

나는 아티스트일까, 그저 쿨한 포장지와 총알이 필요한 속물일 뿐일까.

나는 사랑받을 수 있을까, 나는 충분히 자격을 갖추었나. 나는 내가 바라는 위대한 사랑을 한번이라도 세상을 향해 보낸적이 있었던가…

흐흐,

어지러운 밤이네.

지금은 부대끼겠지만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거든 좋은 와인 한병 마시며 대화 나누자!

무슨 해답이 있어서겠니. 뭘 바라겠니. 하수구인지 배수구인지 세상 한구석, 내 마음 털어 놓을 곳 있어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다.

그거면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인거지. 최선으로 있어줘서 고마워. 너에게 이러고 있는 나를 보니 너를 참 많이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나보다.

나도 네 세계의 그런 자리쯤에 항상 있을게. 괴로울 때 고해성사해 줘^^

(아래에 글에서 거론한 이 편지가 그대로 담긴 원본을 찍은 사진을 함께 동봉합니다. 편지의 내용은 오자나 문법상 일체의 수정 없이 똑같이 옮겼음을 알립니다.)

KakaoTalk_20220731_123636167.jpg

2020.12.16 작문 시작.

2021.01.08 작문 중단.

2022.07.21 작문 완성


위 글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해당 브랜드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또한 2015년부터 2021년 1월까지의 견해이며, 그 이후의 의견이 아님을 고지합니다.

덩달아 저의 모든 글이 그러하듯이 브랜드는 저의 견해를 밝히기 위한 소재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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