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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해리 Aug 10. 2022

마음으로 있다

스타트업인 인터뷰

인터뷰어(관점 교환 제안자) 전해리 

인터뷰이(관점 교환 응답자) 김두원


*해당 인터뷰는 아시아헤럴드에 게재된 스타트업인 인터뷰 <대표 김두원은 마음을 이어 스타트업까지 왔다>의 확장판입니다. 아시아헤럴드에 게재된 인터뷰 본판은 오로지 스타트업인에 관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인터뷰어인 필자의 의견과 이야기를 생략하였습니다.이 확장판은 그러한 생략을 복원하여 인터뷰의 본래 목적인 인간 대 인간의 담화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따라서 스타트업에만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읽고 싶은 분은 http://www.asiaherald.co.kr/news/26669 에 방문하길 바랍니다. 또한, 본판과 확장판의 차이는 인터뷰어의 의견과 이야기 존재 유무일 뿐, 인터뷰이인 스타트업인의 의견과 이야기는 어떤 변함도 없이 그대로이니 불필요한 오해는 삼가 주시길 바랍니다.                   

글씨=전해리

첫 인상은 이메일 속 한 문장이었다. ‘줌 인터뷰는 다소 어색해하는 터라 걱정이 되네요.’ 이 문장으로 단번에 김두원과 설심당에 흥미를 가진 채 화면 너머의 녹화된 발표 영상을 보았는데 내가 현장에 있는 듯했다. 떨림을 애써 숨기는 스타트업 대표들은 많이 보았어도 떨림을 목소리의 심지에 고스란히 넣고 발표를 의연하게 이어 가는 대표는 처음이었다. 그 대표는 화상 인터뷰에서도 뭐든 숨기거나 과장하려는 기색 없이 솔직하였다. 성취는 인정하고, 난관은 시인하였다. 기업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들려주지 않았고, 투자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려주지 않았다. 또 겸손한 동시에 당당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김두원의 모든 행보에는 감사하는 마음과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위한 마음이 있었다. 출세가 아닌 가족을 위해 사업을 시작하고, 대외적 위기를 넘길 때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스타트업을 시작하면서도 가장 기쁜 건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불투명한 미래로 불안하여도 자신의 마음을 불투명하게 만들지 않은 김두원에게 이렇게 진솔해도 괜찮으냐고 묻자 그는 모든 건 결국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 본인이 드러내는 편이 좋다고 답하였다. 사람이 좀 다듬어져야 하고, 속마음을 좀 숨기고, 순수하면 손해 좀 볼 거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필자는 제주도를 간 지 10년이 되었지만 이 인터뷰를 끝내자 제주도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그곳은 여전히 맑고 투명하고 아름다웠다. 내 마음 속 제주는 이렇게 정해졌다. 



전해리(이하 전): 설심당은 2014년에 설립되었고, 김두원 대표님께서는 농협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제주도 출생이라 들었습니다. 대표님이 스타트업을 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김두원(이하 김): 사실 저는 스타트업 세계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어요. 저는 대학교에서 통신공학과를 전공했어요. 제가 00학번인데 PC 통신과 인터넷 붐이 일던 때였어요. 컴퓨터 관련 직종이 유망 직종이라길래 전공으로 택했는데, 군대에 다녀오고 졸업반이 되니 취업난이 심화되었어요. 대기업에서 공채를 뽑지 않았어요. 그 기업의 제주 지사도 저희 과 선배들의 과반수 이상이 이미 자리잡고 있었고요. 그런 상황이 되다 보니 차라리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취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 지원한 곳이 농협 공채였어요. 면접에 대한 경험을 쌓을 요량으로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했어요.


전: 농협에서도 특히 어떤 부서였나요?


김: 공채로 들어가면 딱히 구분 짓지 않아요. 인사이동을 하면서 여러 업무를 겪게 돼요. 만약 이 친구가 신용 분야에 특출하다 싶으면 신용 부서에만 있고, 경제 분야에 특화되었다면 경제 부서에만 있는 거죠. 저는 신용 부서에서 시작해서 예금, 대출, 보험까지 했고, 나중에는 경제 부서에 가서 하나로 마트, 주유소, 농약, 감귤 유통까지 다 해봤어요. 그리고 기획실로 발령이 나서 최종적으로 4년 정도 근무하게 되었죠. 농협에서 할 수 있는 업무는 거의 다 한 셈이에요. 그러던 중, 창업에 큰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제 둘째 아이가 아프면서 창업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아이가 생후 두 달밖에 안 되었을 때였어요. 기침이 끊이질 않았어요. 병원에 가니 폐렴 증세가 보인다고 하는데, 저는 기획실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가족을 못 챙기는 상황이 계속 생겼어요. 


전: 직급도 많이 오른 상태였을 것 같아요.


김: 대리였어요. 과장 승진 시험도 거의 통과해서 그해만 넘기면 과장이 될 수 있었어요. 조금 빨랐어요. 대학 졸업하기도 전에 입사해서 많은 일들을 거치고 기획실에 들어갔으니까요. 그런데 그 무렵 둘째 아들이 아프고, 어머니도 편찮으셨고, 아버지도 위암 판정 받으시고, 장모님도 건강이 안 좋으셨던 상황이었어요. 가족들의 건강이 좋지 않은데 직장 생활 때문에 챙기질 못하는 거죠. 저는 가족들을 챙기기 위해서 일을 하는 거였거든요. 제가 농협에서 근무하게 된 이유도 누나가 인천에서 일을 하니까 제가 부모님을 챙기기 위해 제주도에 남은 거였어요. 그렇게 제주도에서 근무하는데 결정적으로 가족들을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친한 후배가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저에게 같이 하자고 제의를 해서 창업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다른 스타트업 대표님들처럼 훌륭한 사명감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어쨌든 농협에서 진행하는 모든 사업들을 저는 다 해봤기 때문에 도움은 많이 되었죠. 처음 사업은 제주도 대학로에서 악세서리 가게로 시작해서, 포켓볼장, 옷 가게, 술 장사 등 후배와 이런저런 사업을 했어요. 그러다가 사업을 규모와 브랜드를 갖고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것이 ‘설심당’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스타트업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전: 그렇다면 스타트업이 된 설심당은 어떤 사업을 전개하고 있나요?


김: 설심당은 제주도 디저트 카페이다 보니 제주의 농산물을 활용한 메뉴가 있거든요. 콩고물을 많이 써요. 빙수 같은 디저트 때문에요. ‘우리가 제일 많이 쓰는 재료인 콩고물을 제주의 농산물로 쓰면 어떨까’ 고민해서 만든 것이 ‘보리개역’이에요. 보리개역은 미숫가루의 제주 방언이라고 하는데요. ‘그걸로 곡물을 만들고 디저트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서 제품이 나왔고요. 온라인 유통도 하고 있고, 빙수나 음료 메뉴를 개발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업을 전개하다 보니 제주 식문화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어요. 요즘은 제주 식문화를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가는 카페에서 접할 수 있도록 컨텐츠화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전: 기존 스타트업 대표님들과 다른 이력과 다른 창업 이유를 갖고 있다고 언급하신 점이 제 눈에 가장 먼저 띄었고, 저는 오히려 이 점이 다른 스타트업과 구별되어 흥미롭습니다.  


김: 저는 스타트업에 관해서 잘 알지 않았고 스타트업은 제 분야가 아니었어요. 카페가 잘 되었고 가맹 요청이 들어와서 가맹 사업까지 이어졌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오프라인(현실공간) 사업이 매우 힘들어졌죠.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고민했어요. 그러던 차, 지금은 저희 총괄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우리 카페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어요. ‘규래차’를 개발한 친구에요. 그 친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제주에 청년이 사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렇게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이런 스타트업 세계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게 불과 작년(2021년)이에요. 작년에 법인 전환을 하면서 스타트업 세계에서 같이 뛰게 되었어요. 이쪽 세계를 와서 보니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제가 도리어 특이해지는 것 같고요. 한편으로는, AC나 VC가 원하는 기업가상(像)이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물론 저희에게 투자한 와이앤아처의 고은산 상무님은 저희를 굉장히 아껴 주는데요. (웃음) 작년 청창사(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처음 만나 뵈었는데 지금은 정말 친한 형동생으로 지내고 있죠. 


전: 대표님께서 방금 스타트업 대표상(像)에 본인이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미로 말씀하셨는데, 저는 지금 대표님과 인터뷰하면서 오히려 새로운 스타트업 대표상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또 독특한 대표님들 많으세요. (웃음) 스타트업을 하는 이유가 한 가지 종류여야 하는 이유는 없잖아요. 대표님과 같이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 분들도 계셔야 이 업계의 다양성도 지켜지고, 많은 젊은이들이 대표님을 본보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을 살고 있기에 대표님의 이야기에 더더욱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되네요. (웃음) 이 업계를 취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세계에서도 원하는 혹은 굳어진 창업가상이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제가 궁금한 건 육지로 넘어와서 살아보겠다는 고민을 정말 단 한 번도 안 해보셨던 건가요?


김: 저에게는 가족이 중요해요. 


전: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을 준비할 즈음이면 다른 삶을 충분히 욕망할 수 있는 어린 나이에 속하지 않았나요?


김: 스물일곱 살 정도? 하지만 직장 생활이 시작되어 버렸으니까요. 


전: 다른 삶을 시도하기도 전에요?


김: 사실 서울에서 고시원 생활도 해보았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제주가 좋아요. 또 여유 있는 집안 형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서울을 가든 어디를 가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를 따져야 했죠. 그렇게 되면 마냥 즐겁지 않더라고요. 


전: 맞아요.


김: 그런 것들을 고려했을 때, 내가 여기서 나의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나의 가치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죠. 그러다가 31살에 결혼을 하고요. (웃음) 더더욱 제주에 있을 수밖에 없죠. 이것 또한 장단점이 있어요. 제주 안에서는 네트워킹이 굉장히 좋고 여러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수월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반면,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도 간혹 들어요. 저 스스로가요. 그런 점을 타개하기 위해서 가급적 육지 출장, 해외 여행 등 기회가 올 때마다 제주 바깥으로 나가려는 노력도 해요. 


전: 그런데 관광객들, 그러니까 외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 제주도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시야가 좁아지기보다는 도리어 다른 시각들을 접하기 유리할 것 같은데요. 외지인들로 인해 다른 문물이 적극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제주도라고 여겨져요. 일단 대전보다는 확실히 그렇다고 봅니다. 


김: 제가 대전의 성심당을 정말 좋아합니다. (웃음) 브랜딩과 지역 사회에 유익한 영향을 끼치는 면모가 참 좋더라고요. 기부도 많이 하고요. ‘성심당은 대전의 문화’라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다는 점도 존경스럽고요. 저, 성심당 책도 있어요. (웃음)


전: 대표님은 같은 업종이기도 하니 그런 의견을 충분히 가질 수 있으시겠네요. (웃음) 그러고 보면 이 설심당을 개업하기 전, 이미 농협이라는 안정적인 직장과 사업 변경이라는 불안을 겪으신 건데 그 과정에서 ‘내가 잘하고 있다’,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은 어떻게 얻으셨나요? 농협을 그만둔다니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요?


김: 제 아내는 오히려 지지를 해줬어요. 아이들, 가족들을 챙기지 못해 괴로워한다는 걸 아내는 잘 알고 있었어요. 아내에게 ‘농협 그만두고 사업을 해야겠다’고 말하니까 ‘잘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오빠는 잘 할 거야’라면서요. 우선은 가족의 반대는 없었어요. 안정적인 직장과 모험적인 사업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저는 사실 농협에 있으면서도 일을 치열하게 했어요. 농협이 안정적이라는 생각은 결코 한 적이 없어요. 


전: 정말요? 하긴, 외부로 보이는 모습과 진짜 내부는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 제가 농협에서 그렸던 것은 남들보다 나은 성과를 내는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되려면 굉장히 날 서 있어야 해요. 항상 치열해야 하고요. 그러다가 실수라도 하면 남들보다 뒤쳐질 수밖에 없어요. 어쨌든 조금 높은 성과를 바랬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안정을 생각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고생한 것만큼 따지자면, 내 사업에 몰두하는 쪽이 더 나은 성과를 낳는 것 같아요. 농협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예를 들면 10을 일하면 3 정도만 가져갈 수 있었어요. 


전: 직장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또 직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점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표이기 때문에 적극성을 발휘한 만큼의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을 대표님 스스로 알게 되신 것처럼 보입니다.  


김: 맞아요. 사업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내 시간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점이요?


김: 내가 가족을 챙길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고, 새벽이 되었든 밤이 되었든 내 시간을 써서 사업을 해 나갈 수 있어요. 불안감에 대하여 마저 말씀드리자면, 항상 불안해요. 지금도 불안하고요. 사업을 잘하는 선배님들도 만나고, 막 시작한 분들을 만나도 다 불안해해요. 인터뷰어님도 당연히 불안하실 거고요. 


전: 네. (웃음)


김: 다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현재에 충실하려고 해요. 감히 인간이 얼마나 예측을 잘할 것이며, 얼마나 전지전능하겠어요.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에요. 불안감을 그렇게 막아내고 있어요. 


전: 대표님께서 카페를 시작하셨을 2014년은 우리나라에 카페 문화가 대중적으로 정착되지 않았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예를 들면, 카페 투어가 있겠죠. 카페 열풍이 그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심화되지 않았어요. 카페 문화가 채 성립되기 전 혹은 막 성립되는 시기에 커피를 설립하여 8년 가까이 운영하면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김: 설심당 본점이 위치한 곳이 용담 해안도로에요. ‘카페 거리’라고도 이름 붙여진 곳이에요. 강릉 안목 해변처럼요. 당시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명명되었는데, 이 7~8년 동안 많은 카페들이 생겨났다 문을 닫더라고요. 대형 프랜차이즈도 불과 몇십 미터 거리에서 생겼다가 문을 닫고 그래요. 저는 버텨 나가는 것도… (잠시 고민을 하더니) 처음 1~2년은 설심당이 알려지지도 않았었거든요. ‘그냥 좀 특이한 카페인가 보다’ 하고 고객들이 찾아오는 정도였어요. 그게 1년, 2년 지나면서 그 자리에 항상 설심당이 있고 여름마다 사람들이 붐비는 것을 동네 주민들, 제주도민들이 인지해 주셨어요. 여름이 되어 빙수가 먹고 싶으면 자연스레 설심당을 떠올리는 정도가 된 거에요. 5년, 6년이 지나가니깐요. 그때부터는 ‘파워(경쟁력)’가 형성되더라고요. 가맹점도 생기고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버틸 만한 전략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고요. 


전: 버틸 만한 전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김: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인력 운영, 주방이나 서비스의 흐름이 비효율적이었어요. 제가 카페나 F&B(Food&Beverage, 식음료) 분야를 모르니까 처음에는 직원 위주로 운영을 했어요. 그런데 수익이 안 나는 거에요. 첫 해 손익 계산을 하니까 투자금 회수가 9년, 10년 이후로 예측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2년 차부터는 제가 직접 뛰면서 돈이 새는 것들, 비효율적인 것들을 잡아 나갔어요. 그때 저의 농협 경력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렇게 디테일(세부 사항)에 신경 썼고, 그런 디테일들이 열 개, 스무 개 모이기 시작하면서 버티기 좋은 전략이 만들어졌어요. 비용 절감 차원에서요. 카페에도 비수기, 성수기가 존재하다 보니깐요. 아무래도 카페는 겨울보다는 여름에 손님들이 훨씬 많거든요. 


전: 그렇지만 제주도는 사시사철 관광객이 방문하지 않나요?


김: 원래 카페는 겨울이 비수기에요. 설심당은 빙수가 맛있다는 이미지가 강해서 여름이 겨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겨울에도 손님이 찾을 수 있도록 커피 맛을 보완했어요. 겨울에 즐길 수 있는 디저트인 호떡이나 찹쌀 도넛, 단팥죽을 추가하게 됐어요. 서비스의 흐름, 주방 동선을 효율화하니 비용이 사, 오천만 원 정도 절약되었어요. 이렇게 버틸 수 있겠다고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고, 덩달아 가맹 사업까지 하게 되었죠. 


전: 그렇게 잘 버티시다가 코로나가 닥쳤을 때 충격이 꽤 컸을 것 같아요. 어느 산업이 안 그렇겠다마는, 특히 카페, 관광업, 제주도 이 세 가지 특징을 설심당은 다 잡고 있잖아요. 


김: 맞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제주는 해외 관광을 가지 못한 분들의 해소책이 되어 손님이 적지 않게 오셨어요. 육지의 상권만큼 어마어마한 타격이 있지는 않았어요. 여름에는 코로나가 조금이나마 잠잠해서 손실을 약간 더 메꿀 수 있었죠. 


전: 제주도는 카페 사업 경쟁이 엄청 치열한 곳 아닌가요?


김: 제주도는 카페 수가 편의점 수를 넘어설 만큼 치열한 곳이에요. 사실 제주도에서 카페를 한다는 것은 사업성이 그다지 없는 일로 받아들여져요. 


전: 설심당 정도면 터줏대감 아닐까요?


김: 그걸 잘 모르겠어요. (쑥스러워하며 웃는다) 그렇게 봐 주는 분들도 계세요.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깐요. 한편으로는, 정통 카페는 아니거든요. 디저트 카페로 유명하다 보니 아예 다른 부류로 평가하는 분들도 계세요. 제가 알기로, 지금 제주도에서 카페로 돈을 벌려면 엄청난 규모화가 필요해요. 100평 이상으로요. 투자도 많이 해야 하고요, 인력도 많이 써야 하고요. 그렇게 몇 군데만 사업성 있게 잘 운영되는데, 작은 카페는 굉장히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있어요. 사실 저도 프랜차이즈로 사업을 키우기보다는, ‘이제까지 자료 수집하며 탐구하고 있는 식문화 콘텐츠로 승부를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확장한 거죠. 하지만 가맹점 사업은 언제든 크게 성공할 거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웃음)


전: 그렇게 코로나와 레드 오션이 된 카페 산업이 계기가 되어 스타트업 세계로 입문하셨는데요. 그렇죠? (웃음)


김: 네. (웃음)


전: 법인 설립 전후의 차이가 느껴지나요?


김: 많이 느껴집니다. 


전: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법인 설립 전후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고요. 


김: 네, 법인을 단지 설립해서 나 혼자 지분 100%로 간다면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설립을 하고 스톡 옵션을 주는 팀원들도 생기기 시작했고요. 와이앤아처에서 시드 투자를 했고, 연계해서 벤처박스도 투자를 해 주었고요. 챙겨야 할 가족들이 많아진 거죠. 이 법인이 100% 나의 것이 아니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요. 마냥 내 것처럼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고요. 책임감도 생겼고요. 그리고… 가능성도 많이 보여요. 법인이라는 것을 설립한다는 의미가 곧 제가 중시하는 가치와 진행하는 사업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원리로 투자자들도 만나는 거고요. 그러다 보니 가능성이 모이고 커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 이런 답변은 처음 들어봐요. (웃음) 법적으로 처리할 일이 많아졌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을 주로 듣는 터라 많은 생각이 드는 답변이네요. 방금 사람을 거론하셨잖아요. 가능성도 언급하셨고요. 저는 항상 법적으로 처리할 일 외에 무엇이 달라졌을까 궁금했는데 대표님이 답변을 주셨네요. 제가 궁금하다고 해서 법인을 설립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웃음)


김: 법인 내는 건 어렵지 않아요. (웃음) 법무사에게 이야기하면 돼요. 다만 법인을 내는 목적이 중요한 거죠.


전: 그렇죠. 뭐든 목적이 중요한 거죠. 


김: 법적인 일들을 처리하려고 법인을 만든 거는 아니니깐요. 법인을 만든 이유는 법적으로 번거로워지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조금 더 공신력 있게 사업을 진행해 나가고, 함께할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계획대로 방향은 올바르게 가는 것 같아요. 즐겁습니다. 


전: 법인을 설립하고 청창사에 입교하셨죠. 청창사 입교를 통해서 대표님께서 배운 점을 듣고 싶습니다. 


김: 청창사 입교는 제 사업의 터닝 포인트(전환점)라고 생각해요. 


전: 원래는 모르신 거죠? 청창사라는 것이 있는지?


김: 몰랐죠. 그 정부 지원사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저는 해당이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지금 팀원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팀원이 저보다 먼저 청창사를 입교했어요. 팀원과 머리를 맞대서 사업계획서를 썼어요. 저는 처음에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팀원이 ‘형님, 청창사 정말 도움이 많이 돼요’라고 말했어요. 저는 ‘너희 같은 동생들에게 미안해서 안 된다’고 그랬고요. 마지막에 그 후배, 그러니까 우리 총괄 팀장이 ‘형님, 교육 좀 받으세요’라고 호소했어요. (웃음) 저에게는 교육이 필요하다면서요. 그제서야 저는 그곳을 교육받는 곳이라 인지하고 입교했어요. 청창사에서는 사업에 대한 교육을 받았어요. 청년 창업가를 위한 프로그램이잖아요. 비즈니스 모델을 잡는 것부터 여러가지요. 투자사를 어떻게 만나는지, 이 스타트업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세부적으로 교육을 잘 해줬어요. 개인사업자로서 매장을 운영하는 수준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사업 모델을 만들어 가고, 팀원들을 모으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 제가 대표님과 비슷한 입장에 있는 다른 대표님을 만난 적 있는데, 그분이 ‘그전까지는 주먹구구로 운영했다면,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서 체계화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의미의 말씀을 하셨거든요. 지금 대표님께서 들려준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봅니다. 


김: 제 의견으로는, 그 체계화라는 건 초기창업 수준에서는 쉽지는 않아요. 상황이 워낙 빠르게 바뀌니깐요. 그런데 네트워킹이 주는 이점이 굉장히 커요. 사례들도 빨리 접할 수 있고, 조언해 주는 분들도 많아요. 저에게는 이런 이점이 더 커요. 체계는 잡히기 어렵다고 보고요. 


전: 일반 초기창업 대표님들과 다르게 대표님이 조금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건 제주도를 잘 안다는 점과 농협 외에도 여타 사업까지 거친 경력이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김: 설심당이 이미 제주도 내에 인지도가 있으니까요. 


전: 그런 브랜드를 이미 구축해 놓았다는 점도 포함되네요. 청창사 입교 후, 그리고 지금까지 대표님의 스타트업이 보유하고 있는 강점은 무엇일까요?


김: 지금 거론한 것들이 다 강점이긴 한데요. (웃음) 그거 외의 강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올해 마흔두 살인데요. 나이가 이렇게 되니까 제주도 내에서 저라는 사람을 아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그리고 저라는 사람이 성실하게 일하고 사업을 한다고 아는 분들도 많아요. 그래서 네트워킹에 있어 이득을 많이 보고 있어요. 누가 제주도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 ‘너, 두원이 알아?’, ‘김두원이라고 설심당 대표 알아?’라고 물어본다면, 좋게 대답해주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점이 엄청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국은 사업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를 좋게 봐 주는 사람이 제주도에 많다는 것? 그게 가장 큰 강점입니다. 


전: 여기 육지에 한 명 더 생겼어요! (웃음)


김: 감사합니다. 육지에도 진출해야겠네요. (웃음)


전: 스타트업에게는 차별화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죠. 이 규래차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발생한 걸까요?


김: 저희 총괄 팀장이 개발한 거에요. 규래차는 티백도 필요 없고 다기도 필요 없어요. 미세 플라스틱과 관련된 환경 이슈(쟁점)가 있잖아요. 그 친구는 중국 유학생 출신이에요. 차 문화에도 관심이 있고요. 기존 차 문화의 불편함이나 문제점을 고민하다가 그 친구가 개발한 거죠. 그렇게 개발했는데 나이도 어리고 사업 경험이 없다 보니까 예쁘게 만들어 놓고 확장성을 염두에 두지 못한 거에요. 제품이 좋으니 제가 한번 키워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함께하고 있는 거죠. 개발이나 브랜딩에 있어 도움을 주었지만 아이디어는 그 친구의 것입니다. 


전: 협력 관계라고 보면 되나요?


김: 지금은 설심당의 핵심 인원이에요. 부사장이거든요. 업무에 있어서 총괄 팀장이에요. 


전: 본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직원의 아이디어임을 분명히 하시는 거네요?


김: 그렇죠. 규래차든 보리개역이든 저희는 일반적인 제주를 담았다는 느낌보다는 사회적인 불편을 해결하면서 확장성에 중점을 두거든요. 규래차라는 것은 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외에도 그 안에 들어가는 찻잎의 종류를 다른 것으로도 바꿀 수 있어요. 그러니 다양한 제품군이 나올 수 있죠. 보리개역도 선식이에요. 제주에서 재배되는 여러 곡물들의 조합을 바꾸면서 다채로운 제품군을 만들 수 있어요. 지금은 기존 보리개역에서 넘어서서 프로틴 라인(부문)을 구축하려고 해요. 운동하는 분들 맞춤이에요. 그 다음으로는 프로바이오틱스까지 고려하고 있어요. 또 보리개역이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말씀드리면요. 제주가 우리나라 2위 보리 생산지에요. 그런데 소비가 잘 되지 않았어요. 맥주에 쓰이는 보리로 정부에서 장려도 했지만, 수입산 보리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나 품질 경쟁력이 조금 아쉽다 보니 나중에는 이 제주 보리가 맥주용이 아닌 동물 사료용으로 처분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비가 되지 않았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보리개역을 떠올렸어요. 보리개역은 가치 있지만 잊혀 가는 제주 식문화거든요. 이걸 활용해서 잊혀 가는 식문화를 현대화하고 보리의 과잉 공급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기획했어요. 사실 이 이야기는 제품 판매 단계에서 소비자에게 전달하지 않아요. 소비자는 ‘왜 남아 도는 보리를 먹어야 하냐’고 느낄 수 있잖아요. 이 이야기는 우리를 지지해주는 분들께 들려 드리는 편이에요. 그럼에도 이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를 언급하는 건 우리가 이런 신중한 고민을 하면서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에요. 여러 제품을 마냥 찍어내는 것이 절대 아니거든요. 여러 고민을 하고 또 그 고민이 깊어지면서 사업에 속도를 크게 내지 못하는 점도 있지만, 그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 또 고민을 많이 하는 거죠. 


전: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 잊혀 가는 문화를 살린다는 점에서 이런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소비자들도 그저 제품을 사는 것보다 이런 긍정적인 의식을 선호하니깐요. 이런 관점에서 ‘티 클래스(tea class)’를 운영하게 된 계기와 연결되지 않을까요?


김: 규래차가 제품이 좋은데 알리는 방법이 쉽지 않았어요. 인스타그램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지만 오프라인에서 소비자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접점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거창한 의미보다는 그 접점을 계속 만들어 나가자는 취지에요. 이렇게 지속하다가 반응이 좋으면 제주의 관광 상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죠. 이 티 클래스도 계속 보완해 나가야죠. 사실 설심당이라는 공간은 직영점과 가맹점이 여러 곳이 있다 보니, 이 점을 활용해서 접근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전: 하나의 시도인 거네요. ‘코로나로 인해서 오프라인의 한계를 느꼈다’고 이전에 대표님이 언급하신 바를 읽었는데요. 티 클래스는 오프라인이잖아요. 이 모순은 어떻게 병행되는 걸까요?


김: 기존의 사업 모델인 디저트 카페는 매출을 올리거나 고객을 부르기에 적합했지만, 코로나 시국에서는 직격탄이었던 거에요. 그 점에서 한계를 느꼈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고객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오프라인(현실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우리의 자원인 오프라인 공간을 조금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작업이 바로 티 클래스인 거에요. 기존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에요. 추가로 규래차·보리개역 팝업 전시회도 진행하고 있어요. 


전: 이 설심당을 제주의 거점 브랜드, 로컬 협업 커뮤니티로 발전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계시더군요. 창작자와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반드시 큰 수익이 날 거라는 보장이 없어요. 그런 위험성을 어떻게 감수하고 계시나요?


김: (웃음) 사실 그 점에 관해서 고민이 커요. 


전: 선의와 현실은 다르니깐요. 


김: 정확히 알고 계시네요. 


전: 저도 그게 항상 고민이에요. 저는 대중 문화에 부합하기보다는 작가주의 성향이 큰 창작자인데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상업성을 갖춰야 하더라고요. 내가 과연 이 창의성과 상업성 사이의 줄타기를 잘 하면서 나를 잃지 않고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죠. 아마 모든 예술가의 고민일 거에요. 그리고 이 고민이 설심당의 고민과 크게 유리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더더욱 대표님의 답변이 궁금합니다. (웃음)


김: 정확히 인지하고 있듯이, 창작자의 활동이 지속 가능하려면 상업성이 분명히 존재해야 해요. 저희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먼저 시작을 했어요. 창작에서 시작하지 않고요.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수월해요. 수익이 발생하고 있는 모델이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저희도 마찬가지로, 마냥 상업적인 것만 추구하면 소비자는 그것에서 매력을 느끼기 쉽지 않아요. 금방 식상해지거든요. 이런 점을 창작자가 보완함으로써 상호협력 관계가 형성이 돼요. 창작성 자체로 수익성이나 사업성이 크게 나지 않지만 기존의 상업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이렇게 도움이 되면 창작자의 창작 활동이 저희와 함께 갈 수 있는 거죠. 이런 생각으로 진행하는 건데, 저희 입장에서도 일종의 시도거든요. ‘삼화왓’이라고 한 달 반 전에 개장한 공간에서 이 생각을 개시했어요. 이 계획을 잘 실행해 나가는 것도 저의 의무죠. 팀원들과 같이 그린 그림이니깐요. 설심당이라는 카페가 김두원이라는 사람이 이제까지 7,8년 동안 이끈 것인데, 잘 해왔어요. 성과도 분명 있고, 또 크기도 하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상업성 측면에서 자신이 있어요. 이 부분에서 공감하는 창작자가 있다면 계속 진행하려 합니다. 하지만 창작자 입장에서는 상업적인 흐름으로 치우칠까 염려할 수 있잖아요. 그 부분에 대한 조율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전: 투자를 받아야 하는 스타트업이지만, 역으로 보면 창작자에게는 투자자가 되기도 하네요. 


김: 서로 투자하는 거죠. 창작자 입장에서도 저희에게 투자를 하는 거겠죠. 제가 진행하고자 하는 그림을 사탕 발림보다는 상호 간 도움이 되고 지속 가능하도록 만들어 가자고 설득하는 과정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전: 실질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요?


김: 그렇죠. 그게 어렵긴 어렵더라고요. 어느 정도 퀄리티(품질)가 나오려면 창작 작업에도 자원이 많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그 안에서는 그만큼의 성과가 나오기 쉽지 않더라고요. 


전: 맞아요. (웃음)


김: 제품이나 공간, 마케팅을 투입해서 성과를 끌어내야 하는 거죠.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주 전문가들도 있고, 도와주는 분들도 있으니깐요. 열심히 하려고요. 그 다음 단계까지 기획하고 있어요. 


전: 이 제주라는 주제가 설심당에게 반드시 강점이 될까요?


김: 지금까지는 강점이었어요, 당연히. ‘앞으로도 강점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인 것 같은데, 바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다음 단계는 무조건 제주 안에만 존재하진 않아요. 제주에서 로컬의 창작자 혹은 콘텐츠를 활용한 상업 활동으로 사업 모델이 만들어지면 이 모델로 모든 곳이 로컬인 전국으로 충분히 진출할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이든 전통과 식문화, 전설과 이야기는 있으니까요. 이런 점을 활용하면 확장성은 충분합니다. 우리는 제주에만 국한하지 않아요. 하지만 현재 충실하는 건 제주이기 때문에 우선은 제주에서 확실한 성과를 만들려고 합니다. 


전: 그래서 설심당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제주 이상으로 마음이라고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슬로건 ‘마음으로 잇는다’에서도 이미 마음을 표방하고 있는 거잖아요. 지금까지의 행보와 시도에서 대표님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나요? 어떤 마음을 느끼고 계시는지?


김: (웃음) 어려운 질문을 많이 하세요. 편하게 하신다면서요. 


전: 지금까지 술술 답변하셨으면서 막판에 어렵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웃음)


김: 제 마음은… (신중히 고민한다.) 그게 고민이에요. 대외적인 이미지로 이야기할 것인지, 본마음을 이야기할 것인지 항상 갈등해요. 대외적인 마음을 이야기하자면, 제주는 저에게 가족이자 자긍심이자 기회입니다. 이 제주라는 브랜드와 자원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사명감을 느끼고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깊숙하게 마음으로 들어오시면… (난감한 듯 웃지만 여전히 진지하다.) 제 본마음은… 사실 저와 함께하는 팀원들과 저를 호감으로 평가하는 선후배님들, 우리 가족에게 멋있게 사회 생활하는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커요. 함께하는 팀원들은 김두원이라는 사람의 가능성과 성실함을 보고 동행하는 건데, 저는 성과를 분명히 내고 보상까지 해줘야 하는 입장이죠. 저를 좋게 봐 주고, 끌어 주고, 믿어 주는 분들께는 그런 믿음에 보답해야 하는 책임이 있어요. 제일 중요한 처자식에게는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아빠가 너희와 보내야 할 시간을 다른 일에 쓸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 이렇게 가치 있는 일에 그 시간을 썼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어렵네요. 책임감? 사명감? 애정?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 책임감, 사명감으로 정리가 될 듯하네요.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 이 설심당에 대한 마음은요?


김: 저는 제가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요. 제 능력 안에서 키울 수 있는 위치까지는 설심당이라는 아이를 잘 키울 거에요. 잘 키운 설심당이 더 멋있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해외 유학을 보내는 느낌? 더 좋은 스승에게 보낸다는 느낌? 더 좋은 사람에게 보내준다는 느낌? 


전: 딸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 같아요. 


김: 정리하자면, 저와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제주의 가치 있는 문화와 제주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 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만든 이 모델이 다른 지역에도 잘 쓰이길 바라고요. 


전: 인터뷰를 마치기 전, 인터뷰를 한다면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나 오늘 이런 질문은 받고 싶었는데 제가 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건 어떨까요?


김: 이미 기운을 다 써서요. (웃음) 충분합니다. 


글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자 합니다


스타트업인 전용 본문

http://www.asiaherald.co.kr/news/26669


네이버 포스트의 인터뷰 계정에서도 이 인터뷰를 그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naver.me/GoBYUP1O




*위 인터뷰와 사진은 아시아헤럴드에 귀속되며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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