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영수 님
- 기본 인터뷰
1.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존재감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존재감이 엄청 많진 않은 사람? 존재감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책임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존재감이 없다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까 싶다. 나만의 삶을 살면서, 의견 피력이 가능한 수준의 존재감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2.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이뤄진다면 하고 싶은 일 혹은 직업은?
돈 많은 백수. 굳이 힘들게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사람마다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있긴 하지만, 나의 목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일단 돈을 우선으로 뒀다. 나중에 돈이 여유로운데 만족스럽지 않다면 새로운 걸 찾지 않을까?
3. 못다 이룬 꿈이 있나요?
아직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 삶의 목표는 당연히 못 이뤘고, 교우관계는 무난하지만 성공한 사람의 교우관계는 또 아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모르겠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도 못한 인간이라 생각한다.
4. 당신이 현재 가장 두려운 건?
나름 세상 살면서 처음 갖게 된 목표가 소방공무원이다. 시험을 준비했던 2년 간 나로서는 제일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합격에 충분한 성적을 맞고도, 이유도 모르고 떨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남이 보기에는 쓸데없는 걱정이라 할 수 있지만. 이번에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자신이 없고, 삶의 목표가 사라져 열심히 살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할까 봐 무섭다.
5.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하세요?
마음 속으로 욕망하는 걸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게 됐을 때. 상황에 따라 같은 행동을 해도 만족도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정한 상황에 특정한 욕망이 채워졌을 때 가장 신나고 행복하다. 막상 현실에서는 그렇게 잘 맞는 일은 별로 없었다. 무난한 행복이 지속되는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6. 몰랐지만 알고 보니 나에게 무척 중요했던 가치는?
삶의 목표를 갖는 것. 소방공무원이라는 첫 번째 목표를 갖기 전에는 뭘 해도 언제든지 쉽게 그만뒀다. 목표가 생긴 이후로는 멈추거나 포기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에 관해 더 걱정할 수 있어 건전한 생활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본다.
7. 다른 사람이 오해하는 / 모르는 나의 모습은?
사람들은 내가 타인에게 깐깐하게 군다고 여기는 것 같다. 실제로 나는 나 자신에게만 철저하고 깐깐하지, 남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과 친하더라도 말이다. 남의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다만 나에게 피해를 줄 경우에는 다르다. 난 내가 피해 보는 것을 아주아주 싫어한다.
8. 당신은 무엇에서 자부심을 느끼나요?
나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목표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한 것. 노력에 따른 효율은 좀 별개지만, 노력에 대해서는 나름 자부심 있다.
9. 살면서 그리운 순간이 있다면?
아빠와 같이 있던 기억나는 모든 순간. 과거의 난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대충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는 내 사람들에게 잘하고 또 많이 만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하더라도 나중에 후회가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후회를 줄이기 위해 현재에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었다.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10. 그래서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자신이 생각하기에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한없이 게으르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에 대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사람
-심화 인터뷰
기본 문. 내가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 (불리우고 싶은 이름이 없다면 ‘영수’님이라고 부르겠다.)
답. 누구누구. 익명도 보장되고 무엇이든 대신 집어넣을 수 있고 어중간해서 좋다.
기본 문. 자, 그럼 누구누구 님은 이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보내고 있었나? 오늘 하루는 어땠나?
답.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매우 귀찮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다. 요새 스트레스가 많아 조금 힘들다.
해리(이하 ‘해’). 코로나로 인해 누구누구 님의 삶은 어떤 식으로 달라졌나?
누구누구(이하 ‘누’). 코로나 시국 이전부터 소방 공무원 시험 공부를 시작해서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원래 쉬는 날을 따로 정하지 않고 약속이 있으면 나가고 없으면 공부하는 생활이어서 못 나가는 일은 없고 안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여행은 못 가고 있는 거다.
해. 코로나가 누구누구 님의 현재 목표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누. 어차피 많이 놀면 안 되는 형편에 다 같이 못 나가는 상황이니 좋은 점이 많달까?
해. 현재 갖고 있는 목표가 당사자가 아닌 내가 봐도 정말 중대해 보인다. 사실… 기본 인터뷰를 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목표 달성을 중시하고 있었는지는 잘 몰랐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하루를 보통 어떻게 보냈나? 하루에 어떤 노력을 했는지 질문하는 거다.
누. 위에서 말한 것처럼 쉬는 날을 따로 정하지 않고 약속이 없으면 주7일을 공부한다. 기상/취침시간은 따로 정하지 않고 10~11시에 일어나 아침 먹고 12시쯤 의자에 앉아 (중간중간 딴짓을 하더라도) 웬만하면 자정12시부터 새벽2시까지 공부한다. 또, 매일 저녁 먹기 전에 1.5시간씩 운동한다.
해. 그렇게 보낸 하루에선, 노력에선 자부심을 느끼나?
누. 자부심까진 아니다. 인생을 막 사는 사람보다는 열심히 살았다고 느낄 정도? 솔직히 그렇게까진 안 해도 되는데 ‘혹시 모르니까’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한다.
해. 이번 목표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살면서 했던 노력 중에 어떤 노력에서 가장 큰 자부심을 느끼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번 목표에 대한 노력은 제외하고.
누. 이번 목표 이전에는 살면서 뭐든지 노력을 한 적이 없다. 뭘 하든 조금만 하면 중간 이상은 했고, 운도 재능도 중간 이상은 있었다. 학교도 어중간하게 다니고, 인간관계도 비슷하고, 군대에서도 비슷했다. 최근2~3년간을 제외하면 비교적 쉽게 살았다.
해. 아하. 정리하면 ‘뭘 해도 중간은 갔다’는 건가?
누. 맞다. 예술 분야인 음악과 미술을 제외하고는 조금만 해도 중간 이상은 갔다고 생각한다. 공부, 운동, 사교, 성격, 행운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중간 이상의 성과를 내왔다.
해. 그렇다면… 어떤 노력이 가장 소중했나?
누. 현재 하고 있는 것. 사실 지금 면접밖에 안 남았는데 면접이 변별력이 없어서 지금은 딱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
해. 마지막 관문이 남았는데 긴장이 전혀 없다는 건가?
누. 긴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범죄를 저지르거나 면접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붙을 수밖에 없는 점수를 받아서 다른 사람보다는 여유롭다고 본다.
해. 정말 부럽다. (웃음) 당신의 노력이 통한 것 아닌가. 어찌 되든, 그 노력을 소중하게 느끼는 건 그 노력에서 도출된 결과와 상관이 있나?
누. 그렇다. 이걸 통해 직장을 구하고 난 후 최대한 여유를 갖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자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직업은 안정적인 수입과 일정한 여가시간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즉, 수단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해. 그럼 지금은 누구누구 님 스스로 무얼 하고 싶은지는 정확히 모른다는 건가? 갖게 될 직업이 선사하는 안정적인 수입과 일정한 여가 시간이 본인이 무얼 하고 싶은지 알게 해줄 거라고 내가 이해해도 괜찮을까?
누. 맞다.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들이 꿈이 없으면 나중에 생길 꿈을 위해 일단 공부를 잘해 놓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때를 위해 먼저 노력해 놓는 중이다.
해. 그런 이야기는 나도 학교 다닐 때 많이 들었는데 참 오랜만이다. 일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항상 배우고 싶었고, 현재는 내가 번 돈으로 독학하는 것들을 학교 다니는 당시 배웠더라면 삶이 조금은 편해지고 덜 복잡하지 않게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 쉽지 않다.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도 않는 것들 대신 본래의 나, 지금의 나에게 유용할 것들을 지금보다 어린 나이에 배웠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내 요지는 이거다: 안정적인 수입과 보장된 여가 시간 이외 직업의 속성이 만약 당신이나 당신이 바라는 미래와 전혀 연관되지 않는다면?
누. 만약 나와 이 직업이 맞지 않고 퇴사를 고민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그럴 용의로 시작했다. 안 맞는 일을 굳이 해가면서 스트레스 받을 생각이 전혀 없고 새로운 일을 찾을 것이다.
해. 본인의 노력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시원시원하다! 그나저나 노력이라는 게 정확히 뭘까? 나는 한국어에서 가장 애매한 단어가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외국어로 ‘나는 노력했어’ 말할 때 표현이 굉장히 어려워진다. 노력이라는 단어를 쓰려면 구체적인 단어가 들어가야 하더라. “나는 노력했어”라고 말하면 꼭 상대방이 “어떤 노력?”이라면서 반문하거나, 예전에 선생님들도 “나는 노력했어”라고 하면 “나는 외국어로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도록 하루에 영어 문장을 3번씩 읽었다”라고 고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력이라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됐다. 이 시대도 그렇지 않은가. 노력이 분명치 않다. 그 유명한 말, ‘노오력’도 있고. 대관절 노력이 뭘까? 누구누구 님은 노력이 뭔지 답할 수 있나?
누. 당장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난 미래의 나에게 여유를 주기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유혹을 이겨내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해. 당장의 즐거움이라면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또 어떤 유혹을 이겨내는지 질문해도 될까?
누. 게임을 삭제하고, 친구들에게 먼저 만나자고 연락하지 않고, 좀 더 누워서 쉬는 것을 포기하고 공부를 하고, 귀찮아도 체력시험을 위해 헬스를 하는 등 당장의 즐거움을 멀리했다.
해. 행복을 미루고 있는 거라고 봐도 무방할까?
누.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적립하는 느낌이지만 그게 상해버려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해. 나도 어렸을 때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고 또 신봉했지만, 어른이 되어 보니 그게 은근 헛소리더라. 행복을 미룬다고 해서 그 행복이 날 기다려주지 않더라. 물론 어떤 목표를 실현하거나 어떤 목적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행복을 희생시켜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다만, 어떤 행복을 희생시켜야 한다 해도 다른 행복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걸 오랜 시련과 고뇌 끝에 깨달았다. 즉, 행복의 종류는 다를지라도 행복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거다. 고로, 당신이 당장 희생한 행복이 있다면, 당신의 곁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행복은 무엇인가?
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 먹고 술 먹고 노는 것들이 가장 큰 행복이다. 이건 미래의 행복을 위해 포기하진 않고 적당히 하는 정도로 유지했기 때문에 내가 다른 것들은 포기하기가 가능했다.
해. 혹은, 누구누구 님이 여기고 있는 행복이라는 게 그저 현재 누구누구 님의 삶에 없는 것 아닐까?
누. 나는 내가 즐거운 방법을 알고 있다. 그 행복을 더 쉽게 여유롭게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해. 노력에 대한 개개인의 답을 다를지 몰라도, 노력이 힘들다는 정도는 다같이 느끼지 않을까? 하지만 노력이 힘들어도 결국은 노력을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목표가 있기 때문이지 않던가. 목표가 생긴 이후로 삶을 그 이전과 다르게 살고 있는 누구누구 님에게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다시 말해, 삶을 보다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살기 위함인가?
누. 궁극적으로는 맞다.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기고 싶어서 지금 열심히 사는 중이다. ‘마음껏 즐기다’와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다’가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해. 목표가 생긴 이전과 이후의 삶의 태도가 나뉜다는 건, 그전에는 노력을 들여서 이루고 싶고, 포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소중한 무언가가 없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누. 맞다. 노력은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나 하는 거지, 이유 없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해. 방금의 발언에서 소설 ‘노르웨이의 숲’ 인물들 중 한 명인 ‘나가사와 선배’가 생각났다. ‘목적의식이 동반된 주체적 행동이 노력이지, 그게 아니면 노동’이라고 그 인물이 그런다. 당신의 견해와 비슷한가?
누. ‘노르웨이의 숲’을 봤는데 누군지 잘 기억은 안 난다. 그래도 그 ‘목적의식이 동반된 주체적 행동이 노력이지, 그게 아니면 노동’ 이 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최소한 반강제로 한다고 해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해. 반강제로 하는데,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나? 반강제로 하게 되면 나의 의지를 벗어나 의무가 되지 않는가?
누. 반강제라고 해도 어느 정도 내가 해야 되는 것을 알고, 할 의사도 어느 정도 있으니까, 강제가 아니라 반강제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반 정도의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느낌이다.
해. 고개를 갸웅뚱하는 대신 끄덕이겠다. 발상의 전환이다. 그래서, 목표가 없던 나날들의 누구누구 님은 아주 많이 형편없는 사람이었나?
누. 인생을 막 살았으니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범죄자=형편없는 사람’의 개념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부르지,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부르진 않지 않나.
해.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당신은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다. 기본 인터뷰에서 ‘못다 이룬 꿈이 있나’ 질문했을 때, 당신이 스스로를 너무 깎아내려서 조금 의외였다. 나는 항상 누구누구 님을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첫 목표가 생기기 전까지, 이루고 싶은 것도 없었고 이룬 것도 없어서 자기 자신을 폄하한 건가?
누. 폄하할 의도는 없었지만 그게 폄하한 것이라면 폄하하는 게 맞다. 형편없는 것까진 아니고 의미 없는 사람정도?
해. 당신이 말하는 의미라는 게 혹시 쓸모를 가리키는 건가? 세상에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이 의미 없는 사람이라는 건가?
누. 쓸모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에 대해 만족하는 정도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 정도 이뤘으면 만족해." 사람마다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설령 아무리 한심하게 살아도 죽어 사라져야 할 사람은 없다. 사람이 죽어 마땅한 이유는 없고 처벌은 받을 수 있겠지.
해. 당신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식으로 따지면, 나도 날 엄청 싫어하고 미워해야겠다. 나도 뭐 하나 이룬 것 없다. 그렇지 않던가? 당신이 날 보기엔 나는 뭘 이룬 사람이었던가? (미소)
누. 내가 많은 것을 알진 못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노력을 하는 사람이니까 아직 이룬 것이 없어도 존재가치는 충분히 있다. 세상에 목표도 없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뭘.
해. 좋게 평가해줘서 고맙다. 어쨌거나 나도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긴 매한가지라는 거다. 심지어 나는 누구누구 님과 달리 항상 이루고 싶은 게 있던 사람인데도 뭐 하나 성공시켜 본 적이 없다. 나야말로 참 한심한 사람인데 당신은 왜 내 친구로 머물고 있는 건가? (웃음) 내가 뭐 딱히 피해주는 게 없어서인가? (웃음)
누. 피해를 안 주는 것도 있겠지만 그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이 사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지적하거나 싫어할 이유는 없다. 친구가 좋지 않은 행동을 해도 자기 인생이니 그러려니 한다.
해. 이런. 내 생각보다 굉장히 매정한 사람이었다. (웃음) 실은 이것까지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해야겠다. 2년 만에 대뜸 연락해서 오랜만에 얼굴 본 날에 내가 그랬지 않았나,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서 아무도 못 만났다고. 열심히 하는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가 너무 창피했다. 그때 당신이 그랬지: “왜 초라하게 생각해.” 나는 있지,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해 준 사람이 없었다. 물론 ‘넌 초라하지 않아’라고 말해준 사람은 많았는데, (미소) 아무래도 당신이 말한 방식과 뉘앙스가 약간 다르지 않나? 사람들이 누구누구 님을 깐깐한 사람이라 보는 이유를 나는 사실 좀 알 것 같은데, 말하는 방식 때문 아닌가? 그런데… 글쎄. 나는 당신이 그런 말투를 갖춰서 항상 재밌고 좋았다. 그때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처럼 ‘넌 초라하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걸 굳이 ‘왜 초라하게 생각해’하면서 묻는 거지 않나. (웃음) ‘넌 초라하지 않아’라는 말을 들을 때는 솔직하게 속으로 ‘아니 내가 나를 초라하게 생각한다는데 왜? 그게 어때서’라며 반박했는데, 당신한테 ‘왜 초라하게 생각해’ 들었을 때는 ‘왜 내가 나를 초라하게 여기고 있었을까’ 질문하게 되더라. 오랜만에 만나고 나서도 만나길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만나기 전에도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줄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은 당신이라고 여겼다. 그러니까, 당신이 항상 제대로 된 친구이고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는 건 현재 당신이 갖고 있는 목표와 별개라고 본다. 어떤가? 그렇지 않은가?
누. 인생을 좀 막 살았다 뿐이지, 사람으로서는 나름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긴 한다. (웃음) 단순 인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본다.
해. 착한 거 좋다. 착하지 않은 사람을 너무 많아서 착한 사람이 귀하다. (웃음) 그나저나 무난한 행복이 지속되는 삶을 산 것도 목표가 생기기 전의 이야기지 않은가. 그럼 이 질문은 어떨까: 목표가 생기고 나서 행복의 정도는 달라졌나?
누. 목표와 행복의 정도는 상관이 없다.
해. 왜 상관이 없나?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목표가 안 이뤄지면 행복이 잘 안 느껴지지 않나. 반대로 목표가 생기면, 기대 때문인지는 몰라도 행복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것 같지 않나? 목표와 행복이 서로 무관하면, 행복은 무엇에 달려 있나?
누. 행복의 정도는 절대적인 것이라 최대치가 높아지는 것일 뿐 행복의 양이 달라지진 않는다. 행복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목표가 크지만 이룬 것이 적어도 만족한다면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해. 방금의 대답을 내가 이 인터뷰 후에도 좀 곱씹어 봐야겠다. 그렇다면 혹시 목표를 이루고 나서 행복의 정도가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나?
누. 아니다. 행복의 정도는 절대적이고 그 행복의 정도를 경험할 계기가 필요할 뿐. 경험해봐야 알 듯하다.
해. 경험해보고 나에게 좀 알려달라. 궁금하니까. 그렇다면 행복의 정도가 아니라 어떤 특정 행복이 있을까? 하고 싶은 걸 하고 산다는 건 약간 막연해서.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보고 싶다.
누. 여행으로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국외여행을 가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하고 국내여행은 적은 돈이 필요한데, 국내나 국외를 선택하는 데 돈이 기준이 되지 않는 삶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경우를 예로 들면, 다른 사람의 눈치 볼 필요 없이 하고 싶으면 하는 삶이다.
해. 그럼 이제까지 반대였다는 말인가? 국내나 국외를 선택할 때 돈이 기준이 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전에 눈치를 봤다는 걸로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누. 국내/해외를 선택하라면 해외가 경험을 하기엔 더 좋은 건 사실이고, 눈치를 본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다. 눈치까지 보면서 살진 않았다.
해.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무난한 행복이 지속된 삶이었다는 대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자체가 몹시 부러웠다. 나는 이렇게 대답 못한다. 무난한 행복은 어떤 거였는지 말해 줄 수 있나?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하고 소소하고 그런?
누. 어떤 사람은 뭔가 재밌는 경험을 하면서 살아온 것 같은데 나는 무난하게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무난히 술 마시거나 여행 다니고 그래서 무난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특별한 경험으로 보냈다면 특별한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어차피 비교해서 그렇지 남이 보면 나도 재밌어 보이는 인생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 맞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제가 누구누구 님의 인생을 재밌어 보인다고 하는 거다. 무난한 행복이 없고 특별한 행복이 드문드문 존재했던 삶을 살다 보니, 누구누구 님의 인생이 나 같은 인생보다 더 특별하고 더 좋다는 걸 느낀다. 행복이 지속된다는 건 안정된 삶처럼 보이거든. 나는 행복이 지속되질 않아서 행복에 기댈 수 없다. 그래서 질문을 하나 하자면, 당신이 뭔가 재밌는 경험이 있는 삶이 재밌어 보인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 무난한 행복이 지속됐다고 말한 건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고 평범한 나날이 지나가는 것도 행복의 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중간중간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굳이 떠올리지 않고 좋게 좋게 넘겼기에 그런 것이다.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해. 이 지점에서 당신의 삶과 나의 삶이 너무도 극명하게 다르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는 듯싶다. 그 이유를 말하진 않겠다. 또 훗날, 살면서 자연스레 드러났으면 좋겠다. 게다가, 이 인터뷰의 주인은 당신이니까, 나는 내 이야기를 좀 덜해도 되지 않나 싶다. 그래도 이거 하나쯤은 물어보고 싶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어떻게 좋게 좋게 넘길 수 있나?
누. 안 좋은 일이 어느 정도의 일인지 모르겠지만 쉽지 않다. 다만 잊으려고 노력할 뿐. 계속 생각하지 않으면 무뎌질 수 있으니까.
해. 노력해보겠다. 그렇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경험해보고 싶은 일은 그럼 무엇인가?
누. 지금은 그런 일이 없어서 모르겠다. 난 그 당시에 하고 싶으면 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그때가 지나면 흥미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해. 한편, 특정한 상황에 특정한 욕망이 채워졌을 때 느끼는 행복이 어떤 건지는 나도 잘 안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게 뭐였냐면, 행복이 들쭉날쭉한 것보다는 평이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앞서 말한 특정 상황-특정 행복론도 좋지만, 행복의 폭이 너무 넓다 보니까 사람이 좀 힘든 것 같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누. 특정 상황/욕망/목표달성이 높은 행복을 가져오는 것뿐이지 모든 게 다 채워지지 않아도 어느 정도 행복은 이룰 수 있다. 항상 완벽만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해. 어느 정도의 행복이라면? 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행복인가?
누. 만족만 한다면 얼마든지 대충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했던 충분한 돈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어중간한 행복이 아닌 꿈꾸는 행복을 위해.
해. 꿈꾸는 행복이라는 말에 굉장히 동감한다. 질문하기 조심스럽지만, ‘살면서 가장 그리운 순간’ 속 행복은 지금도 있나? 비단 추억으로 곱씹는 게 아니라 지금도 충분히 감지하고 있나?
누. 단순히 그 순간의 즐거움에서 끝내지 않고, 속으로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고 일부러 인지하고 나중에도 생각날 것 같다고 의식적으로 느끼려고 한다.
해. 지금 한 대답도 개인적으로 명심해야겠다. 나는 당신처럼 생각해 본 적이 없어 흥미롭다. 그렇다면 목표를 이루고 나서도 지금까지 겪은 무난한 행복이 지속될까? 아니면 어떻게 될까?
누. 합격한 순간에 욕망한 것과 이룬 것이 상충해 최고의 행복을 경험할 순 있겠지만, 이후로는 무난한 행복이 지속될 것 같다.
해. 그럼 목표가 이뤄지지 않아도 무난한 행복이 계속 당신의 삶에 남아 있지 않을까?
누. 목표를 이뤘을 때와 이루지 못했을 때 행복을 얻기 위해 희생하는 것들의 정도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 삶의 목표 말고, 삶의 목적에 관해 들어볼 수 있을까?
누. 목적은 결국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더 편한 길’이지 않을까.
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보고 싶은 것이 있을까?
누. 노력 없이 목적을 이루고 싶다. 인생, 날로 먹는 게 최고지. 내가 노력을 하지만 노력 없이 이루는 것이 제일 부럽다.
해. 누군가는 목적이나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바득바득 애쓰는 반면, 누군가는 아주 쉽게 쟁취한다는 섭리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나도 노력 빼면 시체거든. 노력을 해도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고. 그렇지만 나는 노력의 이익을 결과에만 기대지 않는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노력을 하는 그 시간 자체가 더 소중해졌다. 가령, 작가로 살고 싶어서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고 있는데, 이 인터뷰 프로젝트도 그 노력의 일환이고, 나는 노력이 가져다 줄 성과보다 노력하는 이 시간들이 어느덧 소중해졌다. 지금도 그렇다. 당신의 인터뷰 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도 모아서 언젠가 책으로 출판하겠지만, 나에게 그 책은 그저 책만의 의미는 아닐 거다. 취지에 공감해주고 본인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준 분들과의 시간의 모음집이 되겠지. 이런 맥락에서, 만약 본인이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지금까지 했던 당신의 노력은 훗날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누. 원하는 미래로는 이끌어줄 순 없어도 나는 실패로부터 잘 배우는 사람이다. 다른 노력을 할 때 곱씹으며 더 열심히 살게 해주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 같다. 실패한다고 해서 의미가 없거나 망한 인생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원하는 길로는 못 가고 다른 길로 가게 되겠지.
해. 그렇다면 목표와 목표를 완전히 제쳐 두고, 당신 자기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싶은 건? 돈이나 명예를 떠나 본인을 있는 그대로 자부심을 느끼고, 뭘 해도 격려해주고, 충분한 자신감을 갖는 삶을 살아 보는 건 어떤가?
누. 내가 일부러 사서 하는 유일한 노력은 운동 하나다. 안 해도 살아갈 수 있고, 해도 얻는 것이 없지만 운동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다. 사서 고생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이건 하고 싶다.
기본 문. 인터뷰에서 꼭 받아보고 싶었던 질문이 있다면? 본인이 질문하고 본인이 답해보는 건 어떤가?
답. 깨달음에 대해. 깨달음이 있으면 능률이 오른다는 사실을 공부하면서 느꼈다. 원래 영어가 7~8등급이었는데 공시 준비하면서 영어를 꾸준히 공부하면서 영어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영어를 잘하게 되었다. 계단식으로 성장한다는 말을 여기서 경험했다. 답답하더라도 일단 계속 시도하다 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니까 일단 노력해보자. 꼰대처럼 "일단 해"가 아니라 “해보면 얻을 수도 있다"의 추천 개념이다.
기본 문. 지금 본인의 인생을 살고 있나?
답.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취업하고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기본 문. 건강하고?
답. 네. 이마저도 평균 이상으로 타고났습니다.
기본 문.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이 웃고 덜 주저할 마음이 있나?
답. 그러고는 싶은데 웃는 것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원래 결단은 잘한다.
2021.05.22 시작
3차례 거쳐
2021.07.19 끝
- 감사 인사
누구누구 님이 인터뷰에서 그랬죠, 어중간하고 존재감이 크지 않다고. 아니요. 누구누구 님은 나에게 잊지 못할 존재입니다. 내가 처음부터 주변 세상에 어색한 혼자였을 때 안부를 묻고 말을 걸어준 건 누구누구 님이었어요. 이전에도, 이후에도 누구누구 님과 같은 사람은 없어요. 저는 오히려 이런 누구누구 님이 정말 흔하면 좋겠어요. 그게 바로 무난한 거겠죠.
중대한 기회를 앞두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참여한 누구누구 님, 고마워요.
길게 말하지 않고,
누구누구 님의 행복을 그 누구보다 바랄 거에요. 나를 들여다 봐줬던 그 마음을 돌려 줄게요.
누구누구 님과 당신의 행복은 어쩌다 오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 매일처럼 성실하고 꿋꿋하고 우직하길.
이 세상의 누구누구’들’에게 추천하는 전해리의 글
*작품[바닥을 높이는 연습] https://brunch.co.kr/@eerouri/98
이 작품이 꼭 세상에 책으로 존재하길 바라는 이유는 우리의 노력이 이토록 귀하다는 걸 알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부족을 느끼고 더 발전하라고, 더 깊어지라고, 더 나아지라고 채찍질하죠. 그런 분들이라면 이 [바닥을 높이는 연습]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우리는 바닥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얼마나 깊고 튼튼하고 이미 충분한지 체감할 수 있거든요.
*시<어제의 꿈> https://brunch.co.kr/@eerouri/211
무난한 행복을 이야기한 누구누구 님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나의 시입니다. 특별함에 관한 시가 아니라 무난하지 않음에 관한 시에요.
*글<사랑하라,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https://brunch.co.kr/@eerouri/184
인터뷰를 하면서 너무 일찍 철이 든 것 아닐까 추측되는 대목이 있었어요. 추측이었으면 좋겠지만 혹여 아니라면, 이 글을 읽어요. 우리에게 남은 순수가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도 있다고요.
*글<그 선택에도 길은 있으니>https://brunch.co.kr/@eerouri/173
당신의 선택이 당신의 마음과 같지 않다면 맹목적 버팀은 그만 둬도 괜찮아요. 물론 맞으면 금상첨화이지만! 나의 요지는 당신이 어떤 선택을 내리든 길은 있고 그건 이제까지 당신이 쌓은 자신감에 달렸다는 거에요.
*연작<피아노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https://brunch.co.kr/@eerouri/171
나는 아직도 피아노를 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너는 이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니. 더 자세히 대화를 나눌 날이 꼭 오면 좋겠다.
이 인터뷰를 읽은 당신도
인터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참여 방법은 아래에서 확인해주세요!
https://brunch.co.kr/@eerouri/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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