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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해리 Dec 16. 2022

나를 사랑하기 위해 섣불리 미워하지 않겠다

My Life but Better: 얼굴 피부가 이끈 삶의 변화

나를 사랑하기 위해 섣불리 미워하지 않겠다

_ 얼굴 피부가 이끈 삶의 변화 

__ My Life but Better

___ 둥글게 둥글게 



귀중할수록 손을 대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도 손을 대는 건 귀중한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귀중함을 깨닫는 건 이미 속수무책이 된 뒤다. 

빨간 머리와 주근깨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 문제없이 잘 놀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다들 나를 지적했다. 또래들은 날 무당벌레, 판다, 오페라의 유령, 점박이, 아수라 백작이라고 놀렸고, 어른들은 갑자기 날 끌어당겨 의자에 앉힌 다음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뜯어보았다. 그러고선 숫자를 세었고, ‘점점 진해지고 점점 늘어난다’고 말했다. 결국 피부과에 갔는데 의사는 펜을 곧게 세우더니 문진표에 그려져 있는 사람 얼굴에 ‘점’을 따닥따닥 찍었다. 그러면서 질환은 아니고, 선천성 모반이란다. 그날 피부과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의향이나 의도가 전혀 없는 오점을 타고났음을 확인받은 기분은 가히 또렷하다. 왜냐하면 이 모반은 그대로 진해지거나 시술로 옅어지게끔 할 수는 있어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누가 봐도 보기 미운 것, 이상한 것이 평생 얼굴에 낙인 찍혔다는 사실은 그때도, 지금도 곧잘 감당되지 않는다. 

잊고 살진 못해도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어떻게 잊겠나, 세수만 해도 거울을 봐야 하는데. 사진에서 각도만 잘못 지어도 고스란히 보이고 가끔 ‘눈 언저리가 왜’ 그러냐며 (눈치 없이) 질문하는 사람도 만났지만, 그래도, 나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진이야 지우면 되고, 눈치 없는 사람이야 만나지 않으면 되니까. 이십 년이 넘도록 선크림을 꼬박꼬박 바르며 태양은 피해 다니고 상대방이 얼굴을 쳐다보면 내 얼굴의 모반을 보는 걸까 싶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런 표현, 기구하기도 하고 작품성이 떨어져 쓰고 싶지 않지만, 나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도 처음 만난 사람이 나더러 ‘감염된 좀비 같다’고 말한 순간, 나는 처음 모반이 인식되었던 어린 시절 그때로 순식간에 거슬러 올라갔다. 기어코 눈에 띄는구나.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기어이 눈에 띄고 마는구나. 

모반을 그나마도 옅게 만들기 위해선 시술이 필요하다고 그러길래, 어린 나이에 몇 년을 걸쳐 수차례의 시술을 받았다. 차라리 그 횟수를 기억하지, 하필 시술 비용이 기억난다. 이십오만 원. 할아버지 의사께서 뚜껑을 닫은 펜으로 그 모반 그림에 결코 크기 않은 원을 그리며 ‘이만큼이 오만 원’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 원을 다섯 개나 그렸다. 같이 간 이모가 ‘해 주세요’라고 말했고, 나는 너무 어려서 당사자인 내 앞에서 오고간 대화가 나에 관한 것인 줄도, 정확히 무슨 대화인지도 몰랐다. 그저 이 모반만 없어진다면야 아무렴 어떠랴, 어리고 안일하고 단순했다. 어리고 안일하고 단순한 만큼 레이저 시술은 아프고도 무서웠다. 눈을 절대 뜨지 말라는 경고부터 차가운 시술 침상, ‘웅’ 불길하게 울리는 기계 소리와 스테이플러 찍는 소리와 흡사한 레이저 소리, 그리고 순간적으로 불꽃에 덴 듯한 고통과 ‘이렇게 몸부림 치고 울면 안 해 준다’는 의사의 으름장, 이런 상황이 서러운 나의 곡소리에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불에 타는 것 같은’ 표현 외에 다른 표현은 그다지 잘 떠올릴 수 없는 연유는 끔찍하게 타는 냄새와 더불어 시술이 끝나고 확인한 나의 얼굴 때문이다. 흉측했다. 내가 정말 싫었다. 가면을 벗은 오페라의 유령을 닮았다. 모반 부분은 빨갛게 부어 딱지가 울퉁불퉁 가득했다. 낫는 데만 넉넉히 한 달은 잡아야 하고, 햇볕은 피하라는 지침이 따르니 외부인을 못 보는 건 지당했다. 이 얼굴을 하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볼 수 있을까. 이런 양상이 일시적인 점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징그러웠다. 타인을 마주하기 싫은 얼굴이 거울에 보였다. 누가 보아도 기겁할 외면이었다. 결국 기대할 것은 시간이었다. 차가운 재생 크림을 바르고 바깥 활동을 못 하면서 거울을 수시로 들여다 보며 내 모습이 얼마나 좋아졌나 체크했다, 마치 초록색 염색약을 머리에 부은 줄도 모르고 언제 빨간 머리가 검어질까 기대했을 앤처럼. 시술이 효과가 없었다고 말하진 않겠다. 그러나 그 효과는 짧아도 너무, 너무 짧았다. 모반 없는 피부는 곧 감쪽같이 사라지고 점들은 또 스멀스멀 생겨나고 짙어졌다. 모반은 꽤 끈질긴 모양이고 네 번인가 시술을 더 받고도 난 아예 관뒀다. 그 가혹한 고통과 우스운 희망 고문에 질렸다. 무엇보다 모반을 두고 놀리는 남자 아이들이 없어졌다. 물론 왕따를 당하고 학교 생활에 적응 못하는 고통을 두고 보면 차라리 모반에 대한 놀림이 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나의 존재에 대한 비방임은 다를 바 없다. 

아토피 때문에 피부과에 갈 때면 그 옛날 할아버지 의사가 따닥따닥 그린 모반 그림이 눈에 띄었다. 당연하다, 그건 문진표의 첫 페이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좀비 어쩌구’ 얘기를 들은 그날 바로 피부과에 가서 여자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레이저 시술이 가능하나? 가능하다. 그럼 몇 번을 하면 족할까? 네 번? 다섯 번? 

“스무 번을 넘게 해도 없어질까 말까에요. 계속 해야 해요.”

나의 질문이 너무 가소롭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없어질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난 왜 아직도 하고 있던 걸까? 그 아픈 걸 어떻게 스무 번도 더 넘게 해도 모자를 수 있을까? 백 번 양보해서, 한다고 치면 시술 흔적이 바로 나는데 어떻게 일상생활을 하지? 바깥에서 외부인을 만날 일은 뜻하지 않게 생겨나는데 말이다. 

“옛날에는 시술하고 나면 딱쟁이가 생겼죠? 이제는 시술해도 딱쟁이 안 생겨요. 바로 일상생활 할 수 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 한 대를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결국 헛짓거리를 한 거구나. 아무 소용없을 줄 알았더라면 그대로 두었을 텐데, 피부는 이미 얇아질 대로 얇아졌고 모반은 점점 진해진다. 이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의미는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거울을 보지 않고 살 수 없는데, 이젠 거울을 봐도 희망이 없다.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모반이 얼마나 진한지 확인하며 ‘살았다.’ 얼굴 각도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어느 위치에 있는 점이 더 진한지 살폈다, 모반을 안 순간부터 평생. 하지만 이제는 이 선천성 모반이 짙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앤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다. 빨간 머리가 싫어 염색도 해 보고, 주근깨가 싫어 콧잔등에 무슨 로션 같은 것을 열심히 바르기도 했다. 그런데 번번이 실패했다. 검은색인 줄 알았던 염색약은 초록색이었고, 주근깨에 발랐던 건 러그 패턴을 만드는 데 쓰는 빨간 염색약이었다. 심지어 피부가 벗겨져도 주근깨는 그대로였다고 하니 그쪽 사정도 참 궁하기가 따로 없다. 빨간 머리와 주근깨를 없애려고 애쓰다가 결국 그르칠 때 앤은 자기 반성을 했다. 허영심, 덤벙댐을 내세우며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날 반성하지 않겠다. 앤은 적어도 나중에라도 빨간 머리와 주근깨에 대해 나쁜 소리를 듣지 않았다. 반면 내 얼굴의 모반은 앤의 빨간 머리와 주근깨처럼 누군가의 눈에 매력 있게 비칠 만한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 긴장한다. 내가 모반을 없애고 싶은 건 더 예뻐지고 싶어서 따위의 이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 얼굴을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반을 없애려는 모든 노력이 허사이고, 이제부터 어떤 노력을 해도 모반이 없어질 거란 기약조차 없다. 매일 거울을 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모반 외의 피부가 아무리 뽀얘도, 다른 잡티가 (운 좋게) 사라져도 모반은 그저 점점이다. 심지어 시술의 영향으로 짐작되건대 모반이 걸쳐진 피부는 그렇지 않은 피부보다 얇고 그 부위의 눈가는 그 까닭에 짙다. 점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왜 한쪽 눈가만 짙냐, 다크서클이 왜 한쪽만 짙냐는 질문도 점점 많이 받고 있다. 그때마다, 그 옛날부터 죽 그랬듯이, 나는 설명하기 싫다. 이렇게 태어난 걸 나 보고 어떡하라고. 없앨 수 없는 방법이 없는데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들을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만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얼굴을 매일 마주해야 한다. 어차피 이렇게 살 것을 나는 나에게 아무 것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서 상상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더라면, 그 사랑함이 곧 받아들임이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러나 나는 영영 알 길이 없다. 고칠 수 없는 것과 고쳐질 수 없는 것에 함부로 자평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스스로 건드렸다는 사실이, 이 돌이킬 길이 하나도 없는 삶 속에서, 처참히 후회스럽다. 선천성 모반을 없애려는 노력만큼 차라리 받아들이는 노력을 했더라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모반이 없는 모습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만 모반이 있는 모습으로 그대로 사는 삶은 상상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나를 너무 미워했다, 그것도 너무 일찍부터. 혹은, 날 사랑함에 있어 주변에 너무 많이 흔들렸다. 주변에서 무어라 놀리든, 무어라 지적하든 나를 의심하지 않았어야 했다. 주변의 놀림과 지적에 나는 내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이 이상함을 고쳐서 아무 군말도 듣지 않고 외면에 아무 흠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 나의 외면을 두고 말로 괴롭힌 사람들 사이에 끼고 싶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사람들은 내 곁을 떠날 것이고 내 곁에 남을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내 곁에 남은 나는 상처투성이 내면으로 주눅 든 외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외면을 고치려고 내면을 망가뜨린 것이다. 

한때 엄마는 선천성 모반이 야기하는 여러 상황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나에게 빨간머리 앤을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그렇지만 앤과 나는 다르다. 남들에 비해 튀는 외면의 특징을 나와 앤의 공통점으로 여기지 않으려고 한다. 앞서 말했듯 앤의 빨간 머리와 주근깨와 달리 나의 선천성 모반을 예쁘게 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나는 나를 긍정하지도 동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겠다. 앞으로 앤과 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나의 오점을 포장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더는 오점이라 부르지 않겠다. 선천성 모반은 선천성 모반이다. 거울을 똑바로 보겠다. 거울 속에서 나를 보겠다. 완벽을 가상하며 손질을 꿈꾸지 않겠다. 있는 그대로의 날 직시하겠다. 진실을 대면하고 피하지 않겠다. 날 받아들임으로써 어떤 일이 생겨나고 생겨나지 않을지 지켜보겠다. 

나는 섣부르지 않겠다. 날 사랑하기 위해 섣불리 미워하지 않겠다. 


이 사진은 글의 일부로, 무단 저장, 복사, 전재 모두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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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둥글게>

-내 원체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마지막 편지

-샴페인 잔에 담은 우유

-천 냥 빛

-하농

-My Life but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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